408화. 현재 상태 : OFF
멍했다.
그저 머리가 멍했다.
사자와의 대화 이후, 능력, 온오프에 관한 진실을 알게 된 이후 그저 머리가 멍했다.
‘···하.’
그사이, 헛웃음이 불쑥불쑥 튀어나왔다.
사실 부작용이 앞으로 계속 나올지도 모른다는 것 자체를 모르지 않았다.
이미 충분히 인지하고 있었다.
하지만 막상 그게 더욱 큰 방향으로, 어쩌면 목숨을 위협할지도 모르는 방향으로 흐를 수도 있다는 말을 들으니 속이 일렁였다.
‘확인 사살을 당한 기분이군.’
분명 이미 눈치채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지금의 상황이, 한편으론 갑갑했다.
‘더불어 사자는 그건 관찰하는 입장.’
해결이 아니었다.
해결책을 찾는 것이 아닌 단순히 지켜보는 입장에 불과했다.
앞으로 어떠한 부작용이 나오든 사자는 정말로 그것을 지켜만 보고 있을 거라는 거다.
‘···제대로 속고 있었잖아.’
사자 놈한테.
항상 뭔가 믿음직스럽지 못하다는 생각은 가지고 있었는데, 그게 이런 방향일 줄은 몰랐다.
이미 윗선에는 들켰고, 사자는 그 윗선의 지시대로 나를 관찰하고, 이제껏 그 사실을 철저하게 숨기고 있었고.
오프를 계속하기를 바랐던 것 역시 순전히 그 망할 ‘관찰’ 때문이었다.
어쩌면 지금 이 순간에도 사자는 나를 관찰하고 있을지 몰랐다. 보이지 않는 모습을 하고서.
그 순간, 주먹을 꽉 쥐었다.
배신감.
그 엇비슷한 뭔가가 잠시 느껴지기도 했다. 하지만 그것도 잠깐에 불과했다.
애초에 사자를 그렇게 믿은 것도 아니었으니.
그저 허탈했다.
아무것도 몰랐던 지난날들이.
그런 식으로 이용되고 있을 줄은 몰랐던 지난날들이.
하지만 결국엔 내가 선택한 길이었다.
무른다고 물러질 리도 없겠지만, 무를 생각도···.
‘하.’
맥이 빠졌다.
···모르겠다, 앞으론 어떻게 해야 할지.
어떻게 해야 맞는 건지.
어떻게 해야 이 갑갑한 마음에서 벗어날 수 있는 건지.
“우세현, 왜 그래?”
그 순간, 어떠한 손이 눈앞으로 불쑥 튀어 나왔다. 백은찬이었다.
이어서 백은찬이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내 눈앞으로 손을 몇 번 흔들어 보였다.
“뭘 그렇게 멍을 때려?”
“아니. 그냥.”
“벌써 체력이 딸리는 건 아니지? 오늘부터 행사 꽤 잡혀 있잖아.”
이에 괜찮다는 의미로 그냥 작게 웃었다. 체력이 딸릴 리가 없었다.
다만, 조금 생각이 많아졌을 뿐이다.
오늘부터 시작해 앞으로 행사 스케줄이 몇 개 잡혀 있었다. 연달아 이어지는 스케줄은 아니었지만, 무대에 오를 일이 꽤 됐다.
“오늘 야외무대죠?”
“응. 야외무대. 근데 바람이 좀 많이 부는 것 같던데.”
“비가 안 오는 게 어디예요. 비 올 때 야외무대가 진짜 힘들잖아요.”
“아무래도 그렇지.”
오늘 있을 무대는 야외에서의 무대였다. 바람이 좀 강하게 분다는 것 말고는 그래도 날씨가 좋았다.
“우세현, 어디 안 좋냐?”
들리는 목소리에 그대로 뒤를 돌아보니 그런 안지호가 미간을 좁힌 채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아니. 괜찮아.”
이에 안지호는 여전히 미간을 좁히고 있었지만, 나는 그런 안지호를 향해 괜찮다는 의미로 다시 한번 웃었다.
그리고 그런 안지호를 뒤로한 채 이내 카시트에 몸을 뉘었다. 창밖으로는 여전히 햇빛이 쏟아지고 있었다.
‘···집중하자.’
이런저런 생각이 들긴 했지만, 어쨌건 지금은 무대에만 집중해야 했다.
그렇게 몇 시간을 달려 행사 장소에 도착했다. 준비된 무대는 생각보다 넓었다.
“곧바로 리허설 들어간대.”
그런 도운이 형의 말에 조금 서둘러 발을 옮겼다.
그리고 그 리허설을 위해 무대에 올라서는 순간, 언제나처럼 오프 (OFF)를 걸었다.
[현재 상태 : OFF]
동시에 상태창이 눈앞에서 희미하게 빛났다. 현재 상태 오프.
늘 그랬듯 능력을 꺼둔 상태다.
하지만 이 작은 글자엔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많은 의미가 내포되어 있었다. 정말 많은 의미가.
그리고 그대로 상태창에서부터 시선을 돌려 무대 너머를 바라봤다. 그렇게 선 무대는 왠지 모르게 평소와 느낌이 조금 달랐다.
분명 익숙한 무대임에도 불구하고, 조금 다르게 느껴졌다.
그리고 그 사이로 작게 바람이 불었다. 그 바람은 노래가 시작될 때까지도 어느 방향으로부터 줄곧 불어오고 있었다.
* * *
중간 리허설을 마쳤다.
리허설 자체는 일단 그렇게 잘 끝맺었으나 마치는 순간, 찜찜함이 덮쳐왔다.
그리고 그러던 찰나,
도운이 형이 급하게 스텝을 불렀다.
“왜 그러세요?”
“아무래도 무대 일부분이 좀 흔들리는 것 같아요.”
“무대가요? 어느 부분이요?”
“이쪽이요.”
그대로 도운이 형이 무대 한쪽을 가리켰다. 조금 전 내가 느낀 찜찜함 역시 이와 관련된 것이었다.
무대 중앙으로부터 조금 뒷부분, 무대의 일부분이 묘하게 덜컹거렸다.
여기는 원래 리프트가 올라오는 부분이기도 했는데, 닫혀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밟을 때마다 묘하게 덜컹거리는 느낌이 전해져 왔다.
그리고 이로 인해 무대 내내 조마조마했다. 혹시나 멤버들이 넘어지진 않을까 싶어서.
이윽고 그 부분을 확인한 스텝이 곧 그렇다는 듯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그러네요. 한번 체크를 해볼게요.”
그리고선 여러 방면으로 다시 한번 안전 체크를 했다. 그 결과, 보기엔 일단 이전보다 고정이 된 듯한 모습이었다.
‘그래도 여전히 불안한데.’
하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불안한 건 마찬가지였다.
이 부분은 되도록 밟지 않는 게 가장 좋겠지만, 동선상 어쩔 수 없이 밟게 되는 부분이었다.
“조심해. 꼭 신경 쓰고.”
이에 멤버들에게 이를 일러두었다.
“너야말로 조심해라. 아까도 잠깐 흔들하던데.”
“그건 순간적으로 좀 놀라서 그래. 그리고 다 한 번씩 흔들거렸잖아.”
“전혀~?”
백은찬이 그대로 모른 척 어깨를 으쓱했다. 모른 척하기는. 아무래도 무대 위에서 신경을 좀 써야 할 것 같았다.
그리고 그 뒤로도 리허설이 한 번 더 남아 있었다. 오늘의 세트리스트 마지막 곡인 ‘Darkest’를 마지막으로 리허설은 끝이었다.
“자, 그럼 리허설 한 번 더 갈게요.”
그와 동시에 인트로가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그렇게 정해진 동선대로 몸을 빠르게 움직였다.
그때까지도 여전히 불안불안한 감은 있었지만, 다행히 리허설은 별 탈 없이 마무리되었다.
* * *
주변이 어두워지자 본격적으로 행사가 시작되었다. 이번 행사는 생방이 아닌 녹화 방송을 통해 몇 주 뒤, 방송으로 나갈 예정이었다.
“우리 순서가 꽤 뒤네.”
“Ace 선배님들 바로 전이니까 꽤 많이 뒤긴 하지.”
앞서 백은찬과 도운이 형이 말한 대로 오늘 행사에선 순서가 꽤 뒤인 터였다.
출연진 중 연차가 가장 높은 그룹 바로 전에 무대를 하는 거니. 마지막, 바로 그 전 무대가 우리 무대였다.
- 꺄아아아악!
“와, 함성이 여기까지 들린다.”
그 가운데 바깥의 함성이 우리가 있던 대기실까지 들려오기도 했다. 물론 직접적으로 들린다기보다는 울려 퍼지듯 들려오는 쪽이었다.
그리고 바깥에서 진행되고 있는 무대는 대기실 안에 있던 모니터를 통해서도 지켜볼 수 있었다.
이어지는 화면 속 무대 앞으로 수많은 관객들이 자리 잡고 있는 게 보였다.
‘···이렇게 많은 관객들 앞에서 노래할 수 있으면 좋을 텐데.’
온오프가 없는 채로.
그럴 수 있다면, 정말 좋을 텐데.
“뭔데 그런 이상한 표정을 짓고 있냐.”
그리고 그때, 순간 작은 물통 하나가 눈앞의 시야로 들어왔다. 안지호였다. 이어서 그 물통은 곧 내 품으로 안겨 들어왔다.
“이상한 표정?”
“어. 완전 이상한 표정.”
뭐 어떤 표정이었길래 저러지.
그렇게···이상했던 건 아닌 것 같은데.
괜히 앞선 표정이 신경 쓰였다.
“너, 솔직히 말해 봐.”
“뭘?”
“어디 안 좋은 거 아니냐?”
이윽고 안지호가 의심이 가득한 얼굴로 나를 응시했다. 하지만 나는 곧바로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런 거 아니라니까.”
“너 지금 얼굴에 다 티 나는데.”
“뭐?”
“생각 많은 거 다 보인다고.”
그 말엔 잠시 할 말이 없었다.
생각이 많은 건 사실이었으니까.
···그런데 그렇게 티가 많이 났었나.
“오늘따라 느낌이 구린 게 투명하다.”
“느낌이 구리다고?”
“어.”
안지호가 단호하게 답했다.
뭔가 알 듯하면서도 말 듯 했다. 느낌이 구리다는 게 어떻게 구리다는 건지···.
“겉과 속이 이렇게 같을 수가 있나.”
그리고 덧붙인 그 말엔 나도 모르게 피식 웃을 수밖에 없었다. 지금 누가 누굴 말하고 있는 건지.
“괜찮아. 그런 거 아니야. 걱정 안 해도 돼.”
“싫은데.”
“뭐?”
“그냥 보고 있기 싫다고.”
그대로 시선이 마주한 안지호는 꽤나 진지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앞선 그 말엔 좀 많이 놀랐지만, 한편으론 그 안에서 걱정이 느껴졌다.
그걸 알고 나니 괜히 미안해졌다.
그러면서도 고마웠고.
“그래서, 무슨 생각 했는데.”
이내 안지호가 다시 물었다.
“···그냥. 오래 서고 싶단 생각.”
“뭐?”
“저 무대 위에 많이 서고 싶단 생각을 했어.”
그렇게 다시 한번 모니터를 바라봤다.
무대 위에선 여전히 공연이 한창이었고, 그 앞엔 여전히 수많은 관객이 이에 환호하고 있었다.
* * *
“다음 분들은 여러분들이 굉장히 오래 기다리신 분들이죠!”
“드디어 그분들의 무대입니다!”
- 꺄아아아악!
“바로바로 윈썸의 무대입니다!”
무대 너머로 그 어느 때보다도 큰 함성이 들려왔다. 그리고 이어서 들리는 익숙한 인트로.
시작은 ‘FACE OFF’였다.
[FACE OFF]
[그 속에 있는 진짜 모습을 드러내]
[그렇게 완벽해진 너와 나]
이윽고 시간이 지날수록 그 함성을 더욱 커져만 갔고, 무대 주변은 그렇게 열띤 열기로 가득했다.
‘여기서 바로 들어가야···.’
그리고 그렇게 동선에 맞춰 이동하는데, 그 과정에서 순간 고개를 숙였다.
그런데 그때였다.
순간적으로 머리가 어질했다.
‘···어?’
그러더니 곧 눈앞이 어질어질 돌기 시작했다. 갑작스럽게 찾아온 어지럼증에 나는 그대로 몸을 멈칫했다.
이내 눈앞이 돌기 시작하면서 머리가 무거워졌다. 강한 현기증이 일었다.
그리고 그 순간, 직감했다.
‘부작용.’
이건 부작용이라고.
- 삐익!
그 와중에 들리는 이명.
귓가를 울리는 이명이 그렇게 주변 함성을 뚫으며 번졌다.
‘젠장, 하필!’
하필 이 상황에서의 부작용이었다.
이제껏 무대 위에서 부작용을 겪은 적이 있던가. 갑작스러운 부작용 증세에 나는 최대한 정신줄을 붙잡으려 노력했다.
집중해야 했다.
어떻게든 버텨야 했다. 여긴 무대 위였다.
그리고 그렇게 정신줄을 부여잡은 채로 다시 한번 뒷걸음을 내딛는 순간, 뭔가 이상함을 느꼈다.
‘어?’
분명 닿아야 할 바닥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이상하게 닿는 게 없었다. 오히려 뭔가 그대로 허공을 향해 훅 꺼지는 느낌이었다.
‘아.’
그리고 정말로 발이 훅하고 꺼졌다.
그 순간 떠올랐다.
리허설 때 덜컥거리던 무대의 일부가 여기였다는 걸.
이에 그대로 빠르게 고개를 돌려 뒤를 확인했다. 아니나 다를까 무대가 몇 cm 정도 꺼진 게 보였다.
‘젠장!’
그리고 그대로 몸이 기우뚱했다.
잘못된 발 디딤으로 인해 무게 중심이 뒤로 쏠렸다.
‘─넘어지면 안 돼!’
이대로 넘어지는 것만, 엎어지는 것만 어떻게서든 피하고자 했다.
바로 다음은 내 파트였다.
방송 사고를 막기 위해선 마이크를 잡아야만 했다.
- 삐끗!
그리고 간신히 넘어지지 않고 그대로 몸을 지탱했다. 중심을 잃지 않고 왼쪽 발만 무대 밑으로 빠진 덕이었다.
그와 동시에 무대 위에 있던 멤버들과 시선이 마주쳤다. 누구랄 것도 없이 놀란 눈으로 이쪽을 쳐다보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 그런 멤버들의 표정을 일일이 신경 쓸 새가 없었다. 그렇기에 빠르게 꺼진 무대에서부터 자력으로 올라왔다.
어디까지나 무대가 살짝 주저앉은 것뿐이었기에 혼자 벗어나기에도 무리가 없었다.
‘···많이 꺼지지 않아서 다행이군.’
그나마 이 정도인 게 다행이었다.
그리고 다른 멤버들이 빠지지 않아서 다행이고.
그렇게 나는 다시 앞으로 나오며 정해진 동선에 따라 마이크를 잡았다.
[FACE OFF]
최대한 아무렇지 않은 모습으로.
그렇게 무대 위의 조명은 여전히 나를 향한 채였고, 함성은 더욱 빠르게 커져만 갔다.
와중에 방금 전 일 덕인지 갑작스럽게 일어난 부작용은 어느새 줄어든 채였다.
이전까지 들리던 이명 또한 이제 더 이상 들리지 않았다. 다행이었다. 다행히 무대를 마칠 수 있을 것 같았다.
···발목이 욱신거리긴 했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