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0화. 왜 그 생각들을 듣게 된 걸까
형이 숙소에 왔다.
반깁스를 하고 있는 이상, 움직임이 자유롭지 못해 숙소 밖으로 나가는 건 힘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렇게 내 방에서 마주한 형은 이마에 땀이 흥건했다. 표정 또한 다급한 게 급하게 달려온 게 보였다.
“다른 곳은?”
“어?”
“다른 곳 더 다친 데는 없어?”
“어, 없어. 발목 말곤 없어.”
“하···.”
그와 동시에 형이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그러면서도 여전히 미간을 잔뜩 좁히고 있었다.
“도대체 무대 관리를 어떻게 한 거야.”
마치 욕을 꾹꾹 누른 듯이 이를 가는 말투였다. 와중에 주먹을 꽉 쥐는데, 그걸 보니 미안한 마음이 번졌다.
형이 너무 놀란 게 보여서.
그리고 형은 곧 다시 깊은 한숨을 내뱉더니 그대로 이마를 짚었다.
“평생 깁스 같은 걸 해본 적이 없는데···.”
“형?”
“나 말고 너.”
“아, 그러네. 근데 그래도 생각보다 그렇게 불편하지는 않···.”
“이 새X들이 도대체 무대 관리를 어떻게 한 거야.”
···갑자기 화제가 다시 그리로 돌아갔다. 와중에 아까 눌렀던 욕도 이제는 같이 튀어나오고 있었다.
이전보다 더욱 날이 선 형의 모습에 나는 그대로 조용히 시선을 피할 수밖에 없었다.
확실히 깁스를 해본 적이 없긴 했지.
이리저리 넘어진 적은 많아도.
크게 어디가 부러지거나 해본 적은 없는 것 같았다.
아, 이전에 망할 사자와 엮였을 때 한번 그럴 뻔하긴 했으나 다행히 그런 일까진 가지 않았다.
생각해보니 다시 열 받는군.
망할 사자 자식.
그리고 그때였다.
형이 그대로 자세를 조금 굽히더니 이내 침대 위에 주저앉았다.
동시에 나를 보며 말했다.
“역시 데려갈까.”
“···뭐?”
“마음 같아선 난, 지금이라도 당장 널 그만두게 만들고 싶어.”
진지한 목소리였다.
그리고 그 말을 하는 형의 표정 역시 흔들림이 없었다.
“형, 나 괜찮아.”
“안 괜찮아. 내 나름대로 참고 있지만···이딴 일 겪는 거 못 참아.”
여전히 화를 꾹꾹 눌러 담는 듯한 목소리였다. 그리고 그런 형의 목소리로부터 형이 얼마나 참고 있는지가 나에게까지 느껴졌다.
그리고 형이 참고 있는 그게 뭘 의미하는지는, 굳이 말하지 않아도 이미 잘 알고 있었다.
···너무 잘 알고 있어서 문제였다.
“······!”
그리고 난 그대로 팔을 뻗어 형을 안았다. 그렇게 형에게 몸을 기댔다. 여전히 미안한 마음에.
“형, 고마워.”
“······.”
형은 말이 없었다.
그리고 그 순간, 형이 그대로 팔을 들어 나를 감싸 안았다.
“···난 아직도 고민하고 있어.”
그리고는 그렇게 한마디를 했다.
그렇게 한 손으로 내 머리를 받친 채 나를 더욱 힘주어 안았다. 그 말 한마디에 마음 한 켠이 일렁였다.
“다치지 마, 아프지도 말고.”
“응.”
그렇게 고개를 끄덕였다.
더 이상 형을 걱정시키는 일을 만들어선 안 됐다.
“평생 깁스를 해본 적이 없는데···.”
이내 형이 한 번 더 중얼거렸다.
그리고 그 말에 나도 모르게 잠시 웃음이 새어 나왔지만, 마냥 웃을 수만은 없었다.
속상해하는 형의 마음이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 * *
그 이후로도 형은 한참을 있다가 갔다. 그리고 그렇게 현관을 나설 때까지도 여전히 표정이 좋지 못했다.
“형님이 많이 속상하신가 보다.”
“당연히 그렇겠죠. 세현이 형이 이렇게 다쳤는데.”
“그렇지. 나도 이렇게 속상한데.”
이내 백은찬이 내 깁스를 한 번 바라봤다.
“걱정 안 해도 돼. 그냥 인대 조금 늘어난 것뿐이잖아.”
“그러고 있는데 어떻게 걱정을 안 하냐.”
아무래도 빨리 회복을 해야 할 것 같다.
더불어 신도하에게도 연락이 왔다.
기사가 난지 얼마 안 됐을 시점에서의 연락이었다.
─ 상태는 정확히 어떤데?
“그냥 인대가 좀 늘어났어요. 그래서 반깁스를 한 상태고요.”
─ 물리치료는 잘 받고 있어? 깁스를 풀고 난 뒤에도 꾸준히 관리해 줘야 하는데.
“잘하고 있어요. 걱정 감사합니다.”
─ 답답하네.
“예?”
─ 만나고 싶어도 만나질 못하니.
답지않게 목소리에 조급함이 묻어있었다.
그렇게 심각한 건 아닌데.
반응만 보면 다리가 부러진 줄 알겠다.
그리고 만날 수 없다는 것치곤, 지금 이미 얼굴을 마주하고 있었다. 지금 하고 있는 이거, 영상 통화다.
물론 절대 내가 먼저 건 게 아니었다.
─ 혹시 필요한 건 없어?
“아뇨, 딱히 없어요.”
─ 원한다면 이번에야말로 예쁜 생화를 사 갈 생각이었는데.
병문안 선물이냐.
그러고 보니 저번에도 생화 어쩌고 했었지.
어쨌건 안부 차 연락을 준 거니 나중에 괜찮아지면 다시 연락을 주겠다고 전했다.
─ 그때도 얼굴 보고 부탁해.
···이걸 또 하잔 소리냐.
[아마도 권해진]
: 세현이 ㄱㅊ?
와중에 이 인간에게서도 연락이 왔다.
대충 답장을 보내자.
‘···조용하네.’
그리고 숙소는 조용했다.
오늘 멤버들 모두 미리 잡혀 있던 행사에 간 터라 숙소엔 혼자 남아 있었다.
와중에 침대 근처로는 먹을거리가 쌓여 있었다. 백은찬을 비롯한 멤버들이 이것저것 옮겨 놓았기 때문이었다.
와중에 인형은 왜 있는지 모르겠지만.
‘얘 이름이 백뭉이었지.’
백은찬 강아지 인형.
그 옆엔 호랑이 인형도 하나 있었다.
호랑이라면 차선빈···이겠지.
호랑이가 귀엽게 딸기 가방을 메고 있었다. 차선빈이랑 닮았다.
회복을 위해선 되도록 움직임을 최소화해야 한다고 했으나 오히려 가만히만 있으려니 힘들었다.
마찬가지로 스케줄에 나가지 못하는 것도 힘들고.
‘···온오프.’
그리고 무대를 생각하자 온오프 역시 떠올랐다. 온오프에 대한 진실을 알게 된 이상, 이대로 가만히 있을 순 없었다.
‘어떻게 하면 온오프 없이 무대에 설 수 있을지 그걸 생각해야 해.’
상황이 이렇게 된 이상, 온오프 없이 무대를 설 수 있을 방법이 무엇보다 필요했다. 어쩔 수 없다며 그저 가만히 앉아 손 놓고 있을 순 없었다.
이대로 얌전히 저 위에 앉아 있다는 놈들의 실험체가 될 생각은 추호도 없으니까.
결국 부작용의 해결 방법 같은 건 없다는 걸 안 이상. 그리고 형이 이와 같은 사실을 안 이상, 더욱더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특히 사자 놈의 그 얼굴은 굉장히 짜증이 났으니까.’
넌 절대 온오프를 해제를 선택하지 못할 거라는 그 자신만만한 얼굴. 그 얼굴이 굉장히 짜증이 났었다.
마음 같아선 한 방 먹여주고 싶을 정도로.
‘그러니 어떻게 하면 온오프 없이도 무대를 설 수 있을지 그 방법을 생각해야 하는데···.’
차분히 생각해보면 이건 결국 심리와 관련된 문제였다. 그러니 심리적인 뭔가를 해결해야만 했다.
근본적으로 왜 무대 위에서 그 많은 소리들을 듣게 된 걸까.
그와 더불어 이를 해결하기 위해선 하나 더 해야 하는 게 있었다. 그건 바로 무대 위에서의 ‘온 (on)’이었다.
‘온 (on)’을 할 수 있는 용기가 필요했다. 온오프를 해결하기 위해선 과감하게 온을 할 수 있어야만 한다.
‘무대 위에서의 온···.’
그 생각을 하니 순간이지만 눈이 아득해졌다. 젠장, 벌써 쫄아서 어쩌자는 거냐!
이에 황급히 고개를 저었다. 해결을 위해선 분명 앞으로 수십 번은 더 온을 해야 할 터였다.
정신줄을 잡아야만 했다.
그리고 그대로 옆에 있던 물을 하나 집어 들었다. 괜히 목이 탄 탓이었다.
그 와중에 누가 뚜껑을 따 놓은 건지 힘을 주지 않아도 쉽게 열렸다.
- 이번 상반기 결산 윈썸도 나올까?
‘어.’
그러던 도중, 우연히 글 하나가 눈에 띄었다. 상반기 결산에 관한 이야기였다.
오늘 올라올 멤버들의 행사 프리뷰나 미리 확인해볼까 싶은 생각에 아이돌 관련 커뮤니티를 확인하던 도중 발견했다.
여기서 말하는 상반기 결산이란, KBC <뮤직 오피스>에서 매년 상반기가 끝날 시점에 상반기 컴백 가수들을 모아 특별 무대를 꾸리는 특집을 의미했다.
‘분명 스케줄표에 있었지.’
그리고 그 라인업에 우리 역시 이름을 올린 걸로 기억한다. 물론 아직 공개적으로 공표되지는 않았지만.
‘···상반기 결산이라.’
이에 곧바로 스케줄 표를 뒤져 정확한 날짜를 찾아보기로 했다. 그리고 얼마 안 가 곧 날짜를 확인할 수 있었다.
‘앞으로 약 17일···3주 정도 뒤인가.’
스케줄 표에 공표된 날짜는 앞으로 약 3주 정도 뒤였다. 그리고 그걸 확인한 순간, 가슴 한 켠에 안도감이 번졌다.
이때쯤이면, 무대에 설 수 있을 것이다.
멤버들이랑 같이.
다른 무대도 모두 서고 싶지만, 상반기 결산인 만큼 이 무대에도 꼭 서고 싶었다.
‘물론 좀 아슬아슬한가.’
병원에서 이야기한 깁스를 푸는 날짜는 앞으로 약 2주 뒤였다.
그리고 나서도 2주간은 무리하게 움직여선 안 된다고 했지만, 적어도 깁스는 풀 수 있었다.
그렇게 깁스를 풀고 나면, 앉아서라도 무대를 하는 게 가능할 거다. 내가 목표로 하는 건 그거였다.
앉아서라도 무대를 하는 것.
깁스를 풀자마자 무리하게 무대를 할 생각은 없었다. 한 번 다친 부위는 다음에 또 다치기 쉽다. 그만큼 꾸준한 관리가 필요하다.
더욱 오래 무대에 서기 위해선.
당장의 욕심에 앞뒤 안 보고 나설 생각은 없었다.
그리고 이와 같은 사실을 멤버들에게도 알렸다. 상반기 결산 때, 같이 무대를 하고 싶다는 이야기를.
“앉아서 무대를 하겠다고?”
“네.”
“생각해보니 그때쯤이면 깁스를 다 풀 시점이긴 하네.”
백은찬이 날짜를 확인하며 말했다.
“그래도 이참에 푹 쉬면 좋을 텐데.”
“가만히 있는 게 더 힘들더라고요. 그리고 어차피 앉아서 무대 하는 거니 움직일 일도 없잖아요.”
“그거야 그렇긴 하지···.”
도운이 형이 그렇게 고민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리고 일단 회사에 같이 이야기해보기로 했다.
“상반기 결산 때 나가고 싶다고?”
“네. 나가고 싶어요.”
“굳이 무리하지 말고 쉬라니까.”
“앉아서라도 하고 싶어서요.”
그렇게 나름 굉장히 확고하다는 의지를 보였고, 회사는 잠시 이를 두고 고민했다.
“하여튼 세현이 넌 진짜 무대중독이야. 알겠어, 일단 병원에도 한 번 물어볼게.”
다행히 일은 긍정적인 방향으로 풀렸다.
이어서 회사와 병원의 의견을 종합한 결과, 마침내 최종적으로 허락이 떨어졌다.
KBC <뮤직 오피스>의 상반기 결산 무대에 나갈 수 있게 된 것이다.
* * *
- 애들 상반기 결산 나올지 안나올지 추측해보는 달글
└ 뮤직 오피스? 무조건 나올 것 같은데
└ 222 무조건 나올 것 같은데
└ 난 왜 안 나올 것 같지...세현이도 다치고 해서 그런가 왠지 건너뛸 것 같아
└ 제발 나왔으면 좋겠다 제발제발제발 그날 뭐 스케줄 따로 없잖아ㅠ
└ 공식은 그런데 비공은 또 모르지 근데 나도 왠지 안 나올 것 같음 2222
└ 라인업 언제 띄워주냐 진짜 피말리네
- 뮤직 오피스 상반기 결산하는 거 보통 라인업 언제 띄워줘? 이제 띄울 때 되지 않았나
└ 누구 기다리는데?
└ 윈썸
└ 윈썸이면 나오지 않나
└ 아직 모름 안 나온단 얘기도 있어서...
- 윈썸 안 나온단 얘기 있는데 그거 세현 때문이야?
└ 그게 왜 세현이 때문인데
└ ㅇㅇ 세현 다쳤고하니 걍 건너뛴다는 말 있던데
└ [글쓴이] : 아 역시 세현 때문이군
└ 아니 그게 왜 세현이 때문이야; 그냥 다른 사정이 있는 거겠지
상반기 결산이 다가오자 아이돌 관련 커뮤니티에선 그 라인업에 관심을 표하는 글이 하나둘씩 올라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중 가장 많은 관심을 받은 건 역시나 윈썸의 참석 여부였다.
- 아직까지 소식 없는 거 보면 조율중이거나 안 나오거나 하는 듯
└ 안 나온다니까 세현 때문에
└└ 뭘 자꾸 세현 때문이래 지금도 5명이서 행사 잘 돌고 있는데
└└└ 냅둬 정병들이 윈썸 안 나오는 거 세현이 탓하려고 드릉드릉하는거임
- 내 생각엔 걍 기대를 안하는 게 나을 것 같은데ㅋㅋ
└ 왜? 뭐 나옴?
└ [글쓴이] : ㅇㅇ 계자썰 들으니 윈썸 안나온다고해서
└ 찐으로 안 나온다고? 어디서 들었는데
└└ [글쓴이] : 출처는 말 못하고 다들 예상한 이유로 못 나오는 거래
└ 예상한 이유?
└ 세현이네
그리고 그렇게 윈썸은 나오지 않을 거라는 의견이 한창 우위에 이를 찰나, 마침내 모든 팬들이 애타게 기다리던 게시글이 올라왔다.
[<202X년 뮤직 오피스> 상반기 결산 특집 라인업]
- ㅁㅊ 뮤직 오피스 상반기 결산 라인업 떴다
<뮤직 오피스>의 특집 라인업이었다.
[WINSOME (윈썸), CHASE (체이스)···]
- 윈썸 있다!!!!!!!!!!!!!!
- 뮤직 오피스에 애들 나온다!!!!!!!!!!!!!
- 윈썸 안 나온다고 했던 놈들 누구냐 윈썸 나오잖아ㅠㅠㅠㅠㅠㅠ
- 솔직히 윈썸 나올 것 같았음ㅋ
- ㅆㅂ 그렇게 세현이 때문에 못 나온다고 아득바득 우기더니 미친 정병들
└ ㄹㅇ 어디서 구씹 가지고 와서 초치더니 다 어디갔냐고ㅋㅋㅋㅋㅋㅋ
- 윈썸 그럼 5명으로 나오는 건가
- 6명이었으면 더 좋았겠지만 5명도 괜찮음ㅠ 세현이 무리하면 안 되니까ㅠ
- 나오는 것만으로도 좋아서 나는 그저 좋다
- 아쉽긴 한데 그래도 애들 보니까 좋아ㅠㅠㅠㅠㅠ
- 완전체가 아닌 게 너무 아쉽다
그리고 그러한 상황 속에서 <뮤직 오피스> 상반기 결산 특집의 생방송 당일. 다시 한번 게시판은 뜨거워질 수밖에 없었다.
- 세현아아아아아아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