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1화. 새삼 다르게 느껴진다
지금은 KBC <뮤직 오피스>, 상반기 결산 특집에 왔다.
오늘 할 무대는 2곡이었다.
발라드 수록곡인 ‘Mind map’과 타이틀곡인 ‘Darkest’ 이렇게 두 곡이었다.
“우세현, 컨디션 어때?”
“좋아.”
“오케이.”
동시에 백은찬이 씨익 웃어 보였다.
이제 막 깁스를 푼 지 3일째가 되는 날이었다.
발목은 탈 없이 잘 회복되었다.
그리고 지금은 발이 꽤 가벼웠다.
오랜 깁스를 벗은 덕인지.
이대로 관리만 잘한다면, 차차 안무 연습에도 다시 참여할 수 있을 거다.
“야, 뛰지 마라.”
“애초에 뛸 일 자체가 없어.”
“그만큼 신경을 쓰고 있으라고.”
그런 안지호의 엄포에 일단 알겠다고 전해두었다. 여기에 다른 멤버들 역시 한 명씩 비슷한 주의를 던지고 갔다.
어차피 대기실이나 무대에서나 앉아만 있을 텐데.
그리고 얼마 안 돼 리허설을 하러 올라갔다. 올라간 무대 사이드에는 내 몫의 의자가 하나 놓여 있었다.
‘드디어 무대인가.’
정말로 오랜만의 무대였다.
정말로 많이 오랜만에.
그렇게 오른 무대 위 풍경은 새삼 다르게 보였다.
오늘 내가 상반기 특집 무대에 출연을 한다는 사실은 멜로우들에겐 비밀이었다.
윈썸이 출연을 한다는 건 이미 공개된 라인업을 통해 익히 알려진 바였지만, 알려진 사실은 그게 다였다.
그러니 오늘 내가 무대에 있는 건 깜짝이라는 거다. 그리고 이렇게라도 전해주고 싶었다.
이제 괜찮다는걸.
걱정하던 멜로우들에게.
“네, 리허설 수고하셨습니다.”
이제 얼마 안 있으면, 곧 본방이 시작될 터였다. 그리고 그 사실이 내 가슴을 조금 뛰게 만들었다.
* * *
“네, 다음은 아주 강렬하고 동시에 부드러운 분들의 무대가 기다리고 있는데요~”
“아, 어떤 분들일지 정말로 궁금하네요.”
방송이 시작되고 본방 무대에 들어가기 직전, MC들의 소개 멘트가 진행되고 있었다.
그리고 그사이, 멤버들과 함께 빠르게 무대 위로 투입이 됐다. 그와 동시에 눈앞으로 하얀색 눈꽃봉이 흔들렸다.
오랜만에 보는 우리의 응원봉이었다.
간만에 보는 응원봉이라 그런지 더 반가웠다. 보기만 해도 미소가 지어질 정도로.
“그럼 지금 바로 만나러 가시죠!”
“윈썸!”
그렇게 멘트가 끝이 났다.
그와 동시에 들려오는 엄청난 함성.
그리고 흔들리는 눈꽃 응원봉.
익숙한 반주가 흐르며, 그대로 타이틀곡인 ‘Darkest’의 무대가 시작되었다.
도입부 파트를 맡은 나는 그렇게 잡은 마이크를 입가에 가까이 대었다.
[흘러가던 시간은]
[어느새 검은 밤을 맞이해]
[내가 있는 이곳은]
[언제나 검은 밤]
이윽고 눈앞으로 보이는 카메라를 바라보며, 그대로 살짝 웃어 보였다.
이 느낌이었다.
무대 위에서만 느낄 수 있는 이 공기, 수많은 사람들의 환호, 열기. 그리고 그에 따른 작은 떨림.
기분이 좋았다.
오랜만에 서게 된 무대로 인해.
그리고 이어지는 차선빈의 파트.
[Only you]
[Make me change]
언제나처럼 묵직하면서도 듣기 좋은 딕션이었다. 그리고 오늘따라 그 목소리가 더욱 선명하게 다가오는 것 같았다.
그런 차선빈의 이어지는 파트를 백은찬이이어 받았다. 이내 백은찬이 정해진 동선에 따라 가장 앞으로 나와 파트를 이어갔다.
‘잘하네.’
알고 있었지만.
그렇게 홀로 떨어져 무대 위에서 춤을 추고 있는 멤버들을 보고 있으려니 왠지 좀 느낌이 달랐다.
분명 언제나와 같이 무대 위에 있고, 언제나처럼 함께 무대를 하는 것임에도 뭔가가 달랐다.
[Darkest, Darkest]
[Stay in the dark]
멤버들의 움직임 하나하나가 더욱 눈에 잘 보였다. 멤버들의 작은 움직임 하나, 목소리 하나. 그 모든 게 더 깊게 다가왔다.
평소엔 느껴보지 못한 것이었다.
‘이건, 또 새롭네.’
멤버들 한 명, 한 명 어떻게 무대를 하고 있는지 그리고 그때마다 어떤 표정을 짓는지 새삼 그런 게 다시 보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신기하게도 그 모든 것은 마치 하나처럼 어떠한 조화를 이루었다. 마치 정말로 무대를 함께 만들어 가는 것처럼.
그와 동시에 다시 내게 온 파트.
[나 이렇게 어둠 속에]
[그저 홀로 잠겨 있어]
[끝도 없이 빠져들고 있어]
평소와 달리 안무를 보여드릴 수 없으니 더욱더 노래에 집중했다. 혹여 무대의 흐름을 망치는 일이 없도록.
그리고 그런 내 파트를 이어 백은찬이 다시금 빠르게 앞으로 치고 나왔다. 언제나처럼 가벼운 몸놀림이었다.
하지만 여기서 보니 그런 움직임 또한 새삼 달리 보였다. 안무를 하는 백은찬의 표정이나 눈빛, 그런 게 더 눈에 들어왔다.
새삼 그 표정이 낯설었다.
분명 평소에도 무대 위 멤버들과 잘 호흡하고 있다 생각했는데, 이렇게 보니 아니었던 것 같다.
내가 그동안 보지 못했던, 모르는 것들이 잔뜩 보였다. 새로운 것들이 보였다.
그리고 그 순간, 파트를 마친 백은찬과 그대로 눈이 마주했다. 아니나 다를까 그대로 나를 향해 입꼬리를 살짝 올려 웃는다.
그 모습에 나 역시 입꼬리를 올렸다.
무대 위에 오를 때면 항상 그런 생각을 했었다. 완벽해야 한다고. 오늘 무대도, 무대는 늘 완벽해야 한다고.
그런 생각에 사로잡혀 있었다.
그래서 더 보지 못했던 걸지도 몰랐다.
오로지 나만의 ‘완벽’에 사로잡혀 내 식대로 멤버들과 함께 호흡하고 있다고, 그렇다고 착각하고 있었을지도 몰랐다.
‘완벽···.’
그렇게 생각하자 새삼 그 단어가 이질적으로 느껴졌다.
그런데 왜 꼭 그래야 한다고 생각했을까.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물론 완벽을 추구하는 것은 당연했다. 그런 무대를 선보여야 하는 것도 맞고.
하지만 뭔가, 뭔가 더 그래야 한다는 강박 관념에 사로잡혀 있었다.
그리고 조금 더 생각해보면, 그냥 무대는 항상 완벽해야 한다는 생각이 어렸을 때부터 깊게 잡혀 있었던 것 같다.
아마도 루트 무대를 보면서.
항상 그런 무대를 하고 싶다고 꿈꿨으니까. 항상 사람들은 형에게 그런 무대를 원했으니까.
형은 늘 사람들에게 평가받고 있었다.
끊임없이, 끊임없이.
그렇게 상한선을 모른 채로 끊임없이.
‘···그래서인가.’
어쩌면 그래서 무대란 완벽해야 한다고 그래야만 하는 것이라는 관념에 사로잡혀 있던 것 같았다.
반드시 잘해야 한다는, 그런 생각을 은연중에 계속했던 것 같다.
나도 모르게 느꼈던 무대라는 위치의 부담감.
하지만 이제 보니 그 완벽이라는 건, 결국 나 혼자 추구할 수 있던 게 아니었다.
혼자 잘하면 되면, 그런 게 아니었다.
[Darkest, Darkest]
[Stay In the Dark]
이윽고 무대가 클라이맥스 부분으로 진입했다. 그때까지도 무대 위론 여전히 열기로 가득했다.
멤버들이 만들어 낸 열기였다.
그리고 그 열기에 잠시 눈을 감았다. 이어서 다시 눈을 떴을 땐, 그런 내 옆으론 홀로그램 같은 무언가가 작게 떠 있었다.
[현재 상태 : OFF]
온오프의 상태창이었다.
지금 이 순간, 한번 시도해보고 싶어졌다. 이유는 알 수 없었다. 그저 한번 시도해보고 싶단 생각이 들었다.
멤버들과 함께 호흡하는 이 순간에.
‘괜찮아, 쫄지 마.’
그렇게 나는 떨리는 숨을 작게 내쉬었다. 귓가를 울리는 멤버들의 목소리를 지지대로 삼아, 나는 그렇게 상태를 바꾸었다.
[현재 상태 : ON]
노랫소리가 들렸다.
우리 노랫소리였다.
[“윈썸!”]
그 가운데, 생각이 들려오기도 했다.
눈앞에 있는 많은 관객들의 생각이.
이에 순간 미간을 좁힐 뻔했으나 이내 다시 정신을 다잡았다. 지금은 무대 위였다. 표정 관리를 해야 했다.
[“───.”]
[“───.”]
‘할 수 있어.’
혼자 있는 무대가 아니었다.
완벽 같은 건 필요 없었다.
그저 멤버들과 함께 무대를 만드는 것에 집중하면 됐다.
[흔들리는 내 손을 잡아줘]
[그대로 꽉 잡아줘]
[이 흔들림을 멈춰줘]
안무는 새로운 버전이 아닌 원래 버전에서 내가 빠진 버전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그리고 그 탓에 항상 내 자리가 남겨졌다.
저 부분을 채우고 싶었다.
내가 직접 채워주고 싶었다.
혼자 완벽할 필요 없었다.
그렇게 멤버들과 함께하면 된다.
[“──.”]
‘줄어들고 있다.’
조금씩, 조금씩.
그렇게 머리를 어지럽히던 목소리들이 조금씩 줄어들고 있었다.
그리고 그 찰나의 순간, 무대 위에 있던 안지호와 눈이 마주쳤다. 그와 동시에 들려왔다. 안지호의 목소리가.
이내 안지호는 그렇게 나와 눈을 마주한 채로 노래했다.
[그대로 내게 닿을게]
[이대로 널 놓지 않을게]
[어떠한 공간 속에서도]
[네 손을 꽉 잡을게]
그리고 그런 안지호의 목소리는 그대로 머릿속을 울려오던 생각의 목소리를 덮어버렸다.
오로지 목소리만 들릴 뿐이었다.
멤버들의 목소리만이.
[이렇게 깊은 어둠 속에서도]
[나는 너만을 바라볼게]
이번엔 차선빈의 목소리.
그렇게 오로지 멤버들의 목소리만이 들렸다.
그리고 그 순간, 나는 들고 있던 마이크를 그대로 더욱 손에 꽉 쥐었다.
[너만 곁에 있다면]
[난 이대로 Resign]
엔딩이었다.
그리고 그 순간, 나도 모르게 카메라를 향해 미소를 띠었다. 그와 동시에 이전보다 더욱 큰 함성이 일었다.
그리고 그 함성은 한동안 계속되었다.
그와 동시에 귓가를 맴돌던 목소리들 역시 조금씩, 조금씩 그렇게 사라져 가고 있었다.
* * *
발목의 회복 속도는 빨랐다.
반깁스를 푼 이후에도 관리를 꾸준히 해준 덕인지 이제는 일상생활을 하는 데 무리가 없을 정도까지 회복이 됐다.
물론 아직 안무 연습에 참여하기까지는 갈 길이 멀었지만.
그리고 난 지금, 회사 보컬룸 앞에 서 있었다. 보컬 연습이 아닌 또 다른 볼일을 위해서.
[Vocal 404]
사자를 만나기 위해서였다.
“다리는? 많이 좋아졌나 보네.”
눈앞의 사자가 턱을 괸 채 그대로 능청스러운 얼굴로 물었다.
“많이 좋아졌죠. 조금 더 지나면 안무 연습도 들어갈 수 있을 것 같아요.”
“오, 그럼 이제 춤도 추는 거야? 앉아서 하는 것도 괜찮긴 했지만, 역시 춤을 추는 게 멋있더라고.”
마치 직접 봤다는 듯이 말하는군.
하지만 아마 그게 맞을 거다.
그때 거기 있어도 이상할 게 없었을 테니.
“그래서, 오늘은 무슨 일인데?”
“오늘은 요구를 하러 왔어요.”
“요구? 무슨 요구?”
이에 사자가 잠시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난 그런 사자를 바라본 채 말했다.
“온오프의 해제요.”
그와 동시에 일순 사자의 표정이 굳어졌다. 하지만 그건 아주 찰나의 순간이었다.
이어서 언제 그랬냐는 양, 사자는 다시 언제나와 같이 능글맞은 얼굴을 보였다.
“온오프의 해제? 진심으로 하는 소리야?”
“네. 진심이요.”
“정말?”
“네.”
그렇게 한 번 더 명확하게 답했다.
“···이건 예상 못 한 전개이긴 한데. 어떻게, 이제 다시는 무대에 서지 않기로 결심이라도 한 거야?”
“그럴 리가요. 그럴 일은 없습니다만.”
“그럼 혹시 지난 일로 인한 단순한 분풀이, 뭐 그런 건가?”
“분풀이로 온오프의 해제를 요구할 만큼 멍청하진 않아요.”
그렇게 사자를 향해 웃어 보였다.
그리고 그러한 내 모습에 사자는 잠시 입을 다물었다.
고민하고 있었다.
비록 생각을 읽을 수 있는 상태는 아니었지만, 머리를 굴리고 있는 거다.
지금의 내 의도에 관해서.
하지만 내가 앞서 말한 것엔 어떠한 숨겨진 의도는 없었다. 정말로 말 그대로 온오프의 해제를 원한다는 것뿐.
그 이후로도 몇 번 무대에 서면서 도전을 했었다. ‘오프’를 하지 않은 채 무대에 서는 것을.
그리고 마침내 나는 가능하게 되었다. 온오프 없이 무대에 서는 게.
‘물론 완벽하다고는 할 수 없지만.’
이제는 이전처럼 방해받지 않은 채 온전히 무대에 설 수 있었다.
귓가를 맴돌던 소리들이, 머리를 어지럽히던 소리들이 더 이상 들려오지 않았다.
마침내.
온전히 무대에 설 수 있게 된 것이다.
지금 이대로.
그 소리들은 나의 어떠한 강박으로부터 온 것이었으니까.
“이제 더 이상 필요 없어요, 온오프.”
이제는 정말로 필요가 없었다.
그렇게 사자와 시선을 똑바로 맞춘 채 말했다. 그리고 그런 내 시선을 사자는 피하지 않았다.
그렇게 고요함이 감도는 가운데, 답을 기다리며 이와 같이 사자와 한참을 시선을 마주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때였다.
사자가 다시 입을 연 것은.
“미안하지만, 해제는 안 돼. 그렇게 되면 내가, 아니. 이쪽 입장이 상당히 곤란해지거든.”
···역시. 이렇게 나오는 건가.
“윗선에서 모처럼 잡은 건수야. 쉽게 포기할 리가 없지. 그런 의미에서 해제 못 해줘. 깨지긴 싫거든. 그리고 그럴 의무도 없고 말야.”
사자가 그대로 어깨를 한번 으쓱였다.
지난번, 할 수 있으면 하라는 듯 선택하는 것처럼 말했지만 결국엔 하지 못하는 거였다.
나에겐 처음부터 선택권이 없었다.
해제할 생각 따위 사자에겐 처음부터 없었으니까.
“···하, 그럴 것 같았어요.”
“알았다니 다행이네.”
사자가 그대로 입꼬리를 올려 웃었다.
여전히 열받는 면상이었다.
확실히.
그리고 난 그대로 숨을 한번 내쉬었다.
“그러니 소원으로 쓰려고요.”
“···어? 뭐?”
“소원이요. 잊은 건 아니죠? 예전에 나한테 소원 하나 들어주기로 했잖아요.”
그런 의미에서 역시 엿 한번 먹여야겠다.
이 따봉 사자 X끼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