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남궁세가 천재 외손자-1화 (1/304)

남궁세가 천재 외손자 @신랑

1화

어두운 밤.

두 모자(母子)가 손을 잡고 숲길을 뛰어가고 있었다.

누군가 그 모습을 본다면 야밤에 무슨 산책이냐고 할 수도 있겠지만, 그들의 급박한 표정을 보고, 몰아치는 숨소리를 듣는다면 그 누구라도 그런 태평한 상황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을 정도였다.

“하악- 하악- 하현아. 다리를 움직여라. 조금만 더 가면 된다!”

“네···! 어머니!”

사실 말이 좋아 같이 뛰어가는 것이지, 실상은 앞서 달리는 여인이 그녀의 아들을 거의 끌고 가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그녀가 펼치는 신법으로 보아 나름대로 상승의 무공을 익힌 듯 보였지만, 고수에게도 사내아이 하나를 끌고 달리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심지어 아들은 겨우 10살 남짓밖에 되지 않았으나, 근골만으로 보았을 때 또래보다 머리 하나는 더 커 보였다.

저잣거리에서 열 서너 살이라고 해도 충분히 믿을 수 있을 것처럼 보였다.

두 사람, 특히 여인은 숨이 문자 그대로 턱 끝까지 차왔지만, 그래도 다리를 멈추지 않았다.

얼마나 더 달렸을까.

“엇?!”

그녀는 그녀도 모르게 쉬지 않던 다리를 세워 우뚝 서고 말았다.

“갈림길······?”

분명히 이 길은 한 방향으로만 나 있는 숲길이었다.

아주 혹시라도 무슨 일이 생기면 도망칠 요량으로 그녀가 풀을 밟고 나무를 베어 만들어 둔 길.

그런데 거짓말처럼 길은 양 갈래로 갈라져 있었다.

하지만 지금 그 연유를 따질 여유는 없었다.

‘길을 잘못 들면 이 뒤부터는 운신하기에도 힘들 정도로 빽빽한 대나무 숲인데······.’

그녀는 혹시라도 그녀의 아들이 불안할까 의문을 속으로만 삼켰다.

그리고 아주 잠깐 눈을 감았다 떴다.

지금 그녀에게는 이 잠깐의 고민도 사치였다.

“오른쪽으로 가자 현아.”

“네!”

소년은 씩씩하게 대답했지만, 그의 얼굴은 새빨갛게 달아올라 있었다.

겨우 10살.

아무리 앞에서 끌어주고는 있다고 해도 무공도 배우지 않은 아이가 고수 반열에 올라 있는 무인의 뒤를 따른다는 것 자체가 기적이나 다름없었다.

아마 지금쯤 폐가 터질 것 같고, 다리가 떨어져 나갈 것처럼 힘들 테지만, 분명 어머니가 염려하실까 두려워 내색하지 않으려 하고 있을 것이 분명했다.

‘이럴 줄 알았으면, 진작 무공을 가르쳐 놓을 것을….’

그녀는 아들의 나이가 열 살이 되도록 제대로 된 무공을 가르쳐 놓지 않은 것을 후회했다.

남궁세가의 여식으로 태어나 상승의 무공을 배웠고, 또 무림을 횡보했다.

소싯적 무림에서 활동할 때는 독심미화(毒心美花)라는 별호까지 얻었다.

“아들······.”

그녀는 후회를 담아 아들을 한 번 불렀다.

무공을 모르는 남편을 만나 아들을 낳았다.

그리고는 무림과는 전혀 상관없는 삶을 살아왔고, 그의 아들 역시 애초에 무공을 배우지 않으면 무림과는 관련 없는 삶을 살 수 있을 것이라 믿었다.

하지만…. 무림은 죽어서만이 떠날 수 있다고 했던가.

결국, 오늘 같은 날이 오고야 만 것이다.

“후우….”

한숨을 돌린 그녀는 지체 없이 다시 오른쪽 길로 달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녀를 기다리고 있는 것은 절망이었다.

‘아! 신이시여······!’

그녀가 선택한 오른쪽 길은 곧 빽빽한 대나무로 인해 막다른 길이 되어 있었다.

억지로 지나간다면 못 지나갈 것도 없지만···. 그런 느린 속도로 여기를 넘어가려다 보면 그녀와 그녀의 아들을 쫓는 자들에게 붙잡힐 것은 불 보듯 뻔했다.

그녀는 이번에는 조금 더 오래 눈을 감았다 떴다.

다시 눈을 떴을 때, 그녀의 표정은 결연했다.

“현아. 이것을 받거라.”

그녀는 품에서 작은 중국결(중국의 노리개와 비슷한 장식) 한 개와 작은 꾸러미를 꺼내 아들의 손에 쥐여주었다.

“어머니, 이게 뭐예요?”

“현이 외할아버지가 누구인지 엄마가 얘기 많이 해줬지?”

“네. 검존(劍尊) 남궁무룡께서 제 외할아버지시라고요.”

그녀가 고개를 끄덕였다.

“맞다. 절대 그 증표를 잃어버리지 말고, 남궁세가를 찾아가거라. 찾아가서 이 증표를 보여주고, 이 엄마의 이름을 말하거라. 분명 할아버지께서 이 증표를 알아보실 거야. 자, 가거라. 지금부터 절대 뒤돌아보지 말고, 최대한 이곳에서 멀리 가는 거야. 알겠지? 그리고 그 꾸러미는 내가 급한 대로 필요해 보이는 것들을 챙겨 왔으니, 유용할 거야.”

“어, 어머니는요?”

“걱정 말거라. 금방 따라갈 테니.”

“어, 어머니······!”

소년이 엄마의 손을 꽉 쥐었다.

아직 어리지만, 총명한 소년은 그의 어머니가 한 이야기를 한 번에 이해할 수 있었다.

희생, 그녀는 지금 아들이 도망갈 시간을 벌려고 하는 것이다.

“혹시, 이 엄마를 믿지 못하는 건 아니겠지?”

“아뇨. 믿어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드는 아이의 얼굴은 이미 눈물범벅이었다.

애석하게도 아이는 너무나도 총명했다.

여기서 헤어진다면 두 번 다시는 어머니를 볼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을 만큼.

그리고 여기서 더 꾸물거린다면 어머니의 희생이 그냥 개죽음이 되어버린다는 것도 잘 알고 있을 정도로.

“자, 가거라!”

어머니의 마지막 말을 뒤로하고, 아들은 숲속을 향해 몸을 던졌다.

또래보다는 크다고는 하지만, 아직 성인에 비하면 작은 체구였기에 빽빽한 대나무 숲도 빠른 속도로 시야에서 사라졌다.

“후우······.”

그녀는 한참 동안 아들이 사라진 방향을 쳐다보고는 숨을 갈무리했다.

스릉-

그리고 검을 뽑아 들고는 그녀가 달려온 방향을 뚫어지게 응시하며 입을 열었다.

“더러운 배신자 같으니라고. 음흉하게 쳐다보지만 말고 나와라.”

“하하-. 역시 독심미화(毒心美花) 남궁영령답군. 세월은 흘렀어도, 입은 그대로이니 말이오.”

어둠 속에서 몇 명의 사내가 걸어 나왔다.

그중에 맨 앞에 있는 사내는 광대부터 시작된 흉터가 턱 끝까지 길게 늘어진 사람이었다.

“닥쳐라. 너와 세월을 이야기하고 싶지 않으니.”

“말도 못 하게 하시는구먼. 그나저나, 이렇게 애먹이기 있는 겁니까? 아직도 신법이 어떻게 그리 유려하시오. 도중에 잘못된 길로 들어서지만 않으셨으면, 꼼짝없이 놓칠 뻔했지 뭐요.”

“그러면 그 길은 네가······!”

“참나. 뜬금없이 주군이 길을 만들어 두라 해서 팔자에도 없는 노동을 했는데, 거기에 꼼짝없이 걸리실 줄 내가 알았겠소? 독심미화는 갈림길에서 무조건 오른쪽을 택할 거라고까지 하셨는데, 그 말이 정말일 줄이야. 하하하.”

사내는 말이 많아도 너무 많았다.

남궁영령은 머리가 지끈 울리는 것만 같았다.

“참, 독심미화 당신도 운이 없소. 왜 당신 같은 무인이 많고 많은 가문 중에 왜 하필 신가장(申家場)으로 시집을 온 거요? 무공도 별 볼 일 없고, 그렇다고 재산이 많은 것도 아닌데 말이오.”

“너 같은 더러운 놈이 욕보일 곳이 아니다. 어째서 배신한 거지? 신지혁?”

사내 역시 신(申)이라는 성씨를 쓰고 있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녀와 인척 관계는 아니었다.

아주 오래전, 부모도 없이 신가장에 흘러 들어와 ‘신’이라는 성씨를 받게 된 경우였으니까.

“그 말에는 어폐가 있는 것 같소. 난 배신한 적이 없으니까.”

“뭣이······?”

“난 처음부터 주군이 보낸 사람이었소.”

남궁영령은 신지혁의 말에 큰 충격을 받았다.

지혁이 신가장에 처음 들어왔을 때는 겨우 열다섯 살 남짓이었던 것으로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면···. 20년도 더 전부터 이 혈겁을 계획 했다는 소리인 것이냐?!”

“크큭. 역시 영민하시오. 아이고, 내가 말이 너무 많았군. 신가장에 있을 때 잘 해주셔서 고마웠소. 보답으로 고통 없이 보내드리리다.”

남궁영령은 으득 이를 갈았다.

‘정말 다행인 점이라면, 현이가 숲속으로 도망갔다는 사실은 모르는 듯하다. 시간을 최대한 끌어야 한다.’

그때 신지혁이 무엇인가 생각이라도 난 것처럼 손뼉을 짝! 하고 치며 말했다.

“아참! 그리고 현이는 걱정하지 마시오. 금방 곁으로 보내 줄 테니.”

“뭐라고?!”

“죽여라!”

“존명!”

“이놈들! 내 아들 몸에는 손끝 하나 대지 못한다!”

“손끝은 안 대지, 칼끝이라면 모를까!”

챙-!

남궁영령과 신지혁의 검이 부딪히며 불꽃이 일었다.

* * *

하현은 최대한 멀리 도망가라는 어머니의 말을 들었지만, 그 말을 따르지는 않았다.

‘지금 내 속도와 체력으로는 절대로 고수들의 손에서 도망칠 수 없어. 게다가 이렇게 빽빽한 대나무 숲이라면 더더욱.’

하현은 어머니의 손을 놓은 순간 판단했다.

아무리 하현의 체구가 성인 남성보다는 작다고 하지만 저 숲을 헤집고 다닌다면, 주변 나무가 격하게 흔들릴 것이 분명했다.

그것은 곧 그가 여기 있다고 얘기해주는 것과 진배없다.

그래서 하현은 먼저 주변을 살폈다.

‘아까까지 온 비 때문에 흙이 젖어 있다.’

본디 땅을 파서 숨는 것은 좋은 방법이 아니다.

땅은 겉으로 보기에는 말라 있지만, 겨우 한 자(약 30cm)만 파고 들어가도 메마르지 않은 젖은 흙이 나오게 된다.

그렇기에 땅을 파게 되면 그 자리만 젖은 땅이 드러나게 되고, 그 결과 주변의 땅과는 다른 색이 되는 것이다.

하지만, 이렇게 비가 온 뒤에는 그 차이가 심하지 않다.

게다가 이렇게 야밤이라면.

‘도망치는 것보다는 이쪽이 승산이 있다.’

하현은 즉시 맨손으로 땅을 파기 시작했다.

푹- 푹-

도구 하나 없이 맨손이건만, 두부처럼 손이 쑥쑥 들어갔다.

분명 하현은 무공을 배우지 않았지만 마치 손에 내공을 담아낸 것처럼 보일 정도였다.

아주 잠시 후, 딱 자신이 몸이 누울 정도로 땅을 파낸 하현은 땅속으로 들어가 몸을 뉘었다.

가는 대롱으로 숨구멍까지 잊지 않은 하현이었다.

털썩-

그때 들려오는 무언가 쓰러지는 소리.

그리 멀지 않는 곳에 숨어 있던 신하현은 직감적으로 이 소리가 그의 어머니가 신지혁의 검에 쓰러지는 소리라는 것을 깨달았다.

‘아! 어머니······.’

하지만 하현은 밖으로 소리를 내는 실수는 저지르지 않았다.

오히려 감정을 더 추스르며 기척을 없애는 데 집중할 뿐.

“하현을 찾아라. 나이답지 않게 커다란 놈이니 쉽게 찾을 수 있을 거다. 쳇, 하필 대나무 숲으로 들어와서는.”

멀리서 신지혁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지혁삼촌···. 아니, 신지혁······!’

본디 신지혁을 많이 따랐던 하현이었다.

비록 출생은 다르다고는 하나, 그에게 많은 것을 배우기도 했고 또 도움받은 것도 많았다.

오죽하면 그가 아버지에게 인정받고 ‘신’씨 성을 받게 되었을 때는 자신의 일처럼 기뻐했던 하현이었다.

‘언젠가, 어머니의 복수는 내가 해내고야 말겠다.’

하현은 그 생각을 끝으로 숨죽여 기척을 죽여가기 시작했다.

하현은 숨바꼭질할 때 써먹던 방식이 여기도 통할 것이라 확신했다.

호흡이 점점 느려지고, 그에 따라 심장박동도 점점 느려진다.

귀식대법.

보통 살수들이 많이 익히는 배우기 까다로운 수법이건만, 하현은 그걸 본능적으로 해내고 있었다.

타다다-

경쾌한 발소리가 하현의 주변에 가까워져 갔다가, 이내 대나무숲 밖을 향해 사라진다.

셋, 넷, 다섯.

“제길. 이놈의 꼬맹이. 어디로 간 거냐.”

마지막으로 신지혁의 말소리마저 지나쳤건만, 하현은 꼼짝하지 않았다.

얼마나 귀식대법에 몰두했는지, 의식마저 점점 사라지고 있었다.

* * *

“푸하-!”

마른 흙을 뚫고 손이 하나 튀어나왔다.

그리고 그 구멍에서 하현이 낑낑대며 기어 나와서는 큰 숨을 내뱉었다.

“시간이 얼마나 흐른 거지?”

주변을 둘러보아도 지금이 언제인지 정확하게 알 수는 없었다.

꼬르륵- 배에서 나는 소리만이 꽤나 오랜 시간이 지났음을 가르쳐줄 뿐이었다.

하현은 잠시 주변을 더 살폈다.

아주 혹시나 괴한들이 아직 이 주변에 있는지를 확인하기 위해.

하지만 다행히도 주변에는 사람 그림자 하나 보이지 않았다.

하현은 조심히 대나무 숲이 시작되는 곳으로 향했다.

달리 말하자면 어머니가 돌아가신 곳.

“아······.”

하지만, 그곳에는 어머니의 시체도, 심지어는 핏자국 하나 남아 있지 않았다.

누군가 와서 깔끔하게 처리한 것으로 보였다.

하현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어머니, 신지혁, 그리고···. 남궁세가.”

그는 절대 잊을 수 없는 사람, 그리고 잊어서는 안 되는 사람의 이름을 연달아 부르고는 마지막으로 그가 향해야 할 곳을 되뇌었다.

남궁세가가 어디 있는지는 잘 모른다.

하지만 단 하나.

안휘성으로 향해야 한다는 것만 알고 있을 뿐이다.

이제부터는 그 누구도 믿을 수 없다.

남궁세가에 도착하기 전까지 그의 편은 모두 죽었다고 생각하기로 했다.

하현은 그의 품 안에 있는 어머니의 유품을 꽉 쥐며 마음을 다잡았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