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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궁세가 천재 외손자-2화 (2/304)

2화

하지만 현실은 마음을 다잡은 것이 무색하게 차가웠다.

특히나 물리적으로 신가장이 위치했던 섬서성부터 남궁세가가 위치한 안휘성까지는 10살짜리 꼬마가 걸어서 가기에는 멀어도 너무 멀었다.

‘최대한 산길만을 통해서 가야 해.’

특히나 하현은 그 누구도 믿을 수 없는 상황이었기에 민가로는 절대 내려가지 않을 작정이었다.

그렇기에 안휘성까지의 길이 더욱 힘들 것이 분명했다.

털썩-

갈 길이 하루가 바쁘건만, 곧은 나뭇가지 하나를 주워 와 바닥에 수직으로 박고는 자리에 털썩 주저앉아 현재 그림자의 끝 위치에 돌멩이를 하나 놓았다.

그리고 이각(30분) 정도의 시간이 흐르고, 움직인 그림자 끝 위에 또 하나의 돌멩이를 놓았다.

두 돌 사이를 나뭇가지로 죽 그어 방향을 가늠한 하현은 자리를 툭툭 털고 일어나 동쪽으로 걷기 시작했다.

현재 그가 있는 섬서성의 동쪽에는 하남성이 붙어있고, 또 하남성의 동남쪽에 가서야 비로소 안휘성이 있다.

그렇기에 동쪽으로 방향을 잡은 것이다.

‘그림자는 해와 반대 방향으로 움직인다. 첫 번째 돌은 서쪽을 나타내고, 두 번째 돌은 동쪽을 나타내지’

하현은 귓가에 울리는듯한 신지혁의 말을 상기했다.

공교롭게도 해와 그림자를 이용하여 방위를 찾는 법을 가르쳐준 사람이 바로 어머니를 죽인 원수 신지혁이었다.

뿌득-

하현은 자기도 모르게 이를 뿌득 갈며 발걸음을 옮겼다.

* * *

하현은 몇 날 며칠 동안 걷기만 계속했다.

어머니가 주신 꾸러미에는 반지나 귀걸이 같은 작은 패물과 더불어 약간의 은자. 그리고 수십 장의 화섭자가 들어 있었다.

어느 정신에 이런 걸 챙기셨는지······.

하현은 어머니를 생각하며 다시 한번 눈물을 삼키고는 걸어 나갔다.

총명한 머리로 방위를 찾는 것은 어렵지 않았기에 방향을 잃지는 않았다.

낮에는 그림자로, 또 밤에는 별자리의 위치로 계속해서 안휘성의 위치를 찾아갔다.

물론 먹는 것 자는 것 모두 자급자족해야 했다.

‘몇 번을 죽을 뻔했어.’

배고픔에 못 이겨 먹었던 버섯이 독버섯이었던 경우도 있었고, 야밤에는 산짐승 때문에 밤잠을 이루지 못한 날도 있었다.

화섭자를 한 장이라도 아껴야만 했기에 큰 짐승들을 피하고자 잠은 나무 위로 올라가서 잤다.

그 덕분에 추위를 피하기도 쉽지 않은 나날들이었다.

그럴수록 하현이 깊게 파고든 것은 바로 그의 어머니 남궁영령과의 기억이었다.

약 삼 년 전, 그녀는 하현에게 창궁대연심공의 구결을 일러준 적이 있었다.

본디 창궁대연심공은 남궁세가의 직계에게만 전수되는 가문 무공이나, 영령은 아주 혹시나 모를 상황을 대비해 하현에게 구결을 한 번 읊어주었던 것이다.

‘아니다. 괜히 무공을 배워서 좋을 게 없다.’

허나 남궁영령은 단 한 번 구결을 말하고 나서는 더 이상 하현에게 무공을 가르치지 않았다.

하루가 멀다하고 칼부림이 나고, 사람이 죽어가는 무림에 하현이 발도 들이지 않길 원했기 때문에.

남궁영령 정도의 무인이 이름 높은 무가가 아닌, 소규모 세가인 신가장에 시집이 온 이유 역시 그녀가 무림을 떠나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검존 남궁무룡의 무인이자 그녀의 어머니가 유명을 달리한 사건 이후, 남궁영령은 무림의 법도에 치를 떨었다.

그렇기에 그녀는 하현에게 무공을 가르치지 않았다.

그리고 당연히 하현이 이 길고 어려운 구결을 잊을 것이라고 여기고 없던 일로 하려 했다.

하지만 그녀는 몰랐다.

한 번.

단 한 번 구결을 읊어준 것만으로도 하현이 모든 구결을 외웠고, 또 이해해 심법을 익히고 있었다는 사실을.

하현도 이전까지는 최선을 다해 심법을 익히지 않았다.

그럴 필요도 느끼지 못했고.

하지만 이런 상황이 되자 하현은 추울수록, 배고플수록, 심법에 더욱 매달렸다.

내공이 쌓여갈수록 추위와 배고픔이 잊혀지는 것처럼 느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느낌은 사실이었다.

본디 단전에 내공이 충만해질수록, 신체는 범인의 그것에서 점점 진화한다.

그 덕에 무림의 고수들은 오랫동안 식사를 하지 않아도 오래 버틸 수 있고, 추위나 더위에서도 자유로운 편이다.

현재 그의 상황은 매우 힘들었지만, 역설적으로 정순한 내공을 쌓기에는 매우 좋은 상황이었다는 것을 하현은 모르고 있었다.

최소한의 음식만 섭취하고, 끊임없이 몸을 움직이며, 심법에만 몰두할 수 있는 상황.

각 문파나 세가에서 갓 무공에 입문한 어린아이들에게 정순한 내공을 쌓을 수 있게 하고자 제공하는 환경이나 다를 바 없었다.

‘그때 어머니는 어차피 창궁대연심공은 삼재심법을 완전히 체득하고 나서나 운용이 가능하다고 하셨지만, 꼭 그렇지만도 않은 것 같아.’

무릇 어느 무가에서든지 문파의 어린아이에게 가장 처음 가르치는 검법과 심법은 삼재검법과 삼재 심법이다.

비록 엄청난 위력이나 효용을 보이지는 못하지만, 위험부담이 거의 없고 소량이나마 정순한 기운을 차곡차곡 모을 수 있는 기초 중의 기초인 무공이니까.

삼재 심법이 몸에 완전히 체득되고 나면 그때서야 각기 가문이나 문파의 독문무공을 배우기 시작한다.

하지만, 하현은 삼재심법의 구결은 이미 완전히 이해하고, 또 느끼고 있는 상태였다.

차근차근 단계를 밟아가도록 유도하는 궁극적인 목적인 하나.

최대한 질 좋은 내공을 많이 쌓는 것.

하현이 삼재검법을 건너뛰고, 창궁대연심공을 운용하는 것은 그 목적에 더할 나위 없었다.

남궁세가를 무림 명문가, 특히나 오대세가 중에서도 가장 꼭대기에 이름을 올리게 해 준 심공이니 무슨 설명이 더 필요하랴.

게다가 하현은 어린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창궁대연심공마저 정확하게 이해하고 있었다.

보통 무인들이 말하는 깨달음이라는 경지를 거칠 필요도 없이 심공의 구결을 있는 그대로 이해하고 자신의 몸에 적용하고 있었다.

그렇기에 하현의 신체와 내공은 하루가 다르게 진화하고 있었다.

* * *

하현이 하염없이 걷기만 한 것도 어느덧 2주일이 흘렀다.

그동안 하현의 의복은 그 시간만큼 더러워졌으나, 눈빛만은 그에 비교할 바 못 되게 맑고 깨끗했다.

"후우-···. 흡."

그리고 하현은 지금 작은 바위 뒤에서 심호흡하더니 숨을 꾹 참았다.

"꾸룩···. 꾹?"

하현이 자신의 기척을 지우고 잠시 후.

바위 틈 사이 토끼 굴에서 산토끼 한 마리가 머리를 비집고 나왔다.

쉬익-

하현은 번개같이 그 토끼의 머리를 향해 손을 뻗었다.

"삐익?"

하지만 야생토끼를 잡기에 하현의 손은 너무나도 느렸다.

토끼는 가볍게 하현의 손을 피하고는 굴 밖을 향해서 냅다 도망치기 시작했다.

"이런!"

하현은 달리는 토끼를 쫓기 시작했지만, 사람의 다리로 쫓아갈 수 있을 리 만무했다.

그때 하현은 생각했다.

'움직여. 더 움직여라. 다리야!'

본능적인 판단이었다.

하현이 생각한 순간 내공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단전에서 똬리를 틀고 있던 내공은 다리를 향해 유수(流水)처럼 흐르기 시작했다.

하현은 점점 다리가, 그리고 이내 몸이 점점 가벼워지는 것을 느꼈다.

'잡을 수 있다······!'

하현과 토끼의 거리는 빠르게 좁혀져 갔다.

하지만 손만 뻗으면 닿을 것 같은 거리에서 더 이상 따라잡지 못했다.

그 순간 하현은 토끼의 발이 똑똑히 보였다.

마치 세상이 느려지는 것 같은 착각마저 들었다.

팍-!

토끼는 땅을 박차는 순간 온몸의 힘을 내지른다.

계속해서 온몸에 힘을 주고 달리는 하현과는 달리 발바닥이 땅에 닿는 순간에 힘을 집중하는 것이다.

그 찰나에 그것을 이해한 하현의 내공은 다리에서도 더 아래 발바닥으로 향했다.

그리고 하현의 발이 바닥에 닿는 순간······!

쾅-!

발바닥, 그것도 용천혈에서 뿜어져 나온 기운은 순간적으로 엄청난 속도를 만들었고.

"삐익-!"

하현은 드디어 토끼를 붙잡을 수 있었다.

누가 가르쳐준 것도 아니건만, 스스로 경공을 깨달은 것이었다.

게다가 평소보다 훨씬 격하게 움직였으나, 숨도 차지 않고, 몸도 피로하지 않았다.

‘이것이, 내공의 힘.’

하현은 조심히 자신의 신체를 관조(觀照)했다.

온몸에 퍼져 있는 내공들 덕에 상쾌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이 느낌 때문에 무인들이 내공에 집착하는 것인가 하는 생각마저 들 정도로.

“삐익, 삑-!”

하현은 손아귀에서 빠져나가려 발버둥 치는 토끼를 바라보았다.

일순간 불쌍하다는 생각이 스쳐 갔으나, 하현은 마음을 다잡았다.

‘고통 없이 한 방에.’

빠악!

내공을 담은 주먹이 토끼를 강타하고, 이내 토끼는 축 늘어졌다.

생존을 위해 다른 생명을 취해야만 하는 자연의 섭리.

그리고 강호의 도리를 하현은 하나씩 배워가고 있었다.

* * *

그날 이후로, 하현의 이동은 이 전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빨라졌다.

하지만 그저 산길을 내달리는 것임에도 하현은 그저 생각 없이 달리기만 하지는 않았다.

‘다리를 뻗을 때, 이렇게 내디디면 다음 발을 디디기 쉬운 것 같아. 그리고 그다음 발은······.’

꽈당- 데굴데굴.

“아이고, 죽겠네.”

더 효율적으로, 또 더 빠르게 달리는 방법을 스스로 연구하며 달렸다.

와장창 구르기도 했지만······.

“읏차. 후···. 다시 한번.”

하현은 매번 다시 일어섰다.

산길을 달리며 스스로 일어서는 법도 배우고 있었다.

* * *

하현이 이동하는 거리만큼, 시간은 무섭도록 빠르게 흘렀다.

신법에 더욱 익숙해질수록, 자신에게 맞는 보법을 점점 더 익혀나갈수록 하현의 안휘성 행은 점점 더 빨라져 갔다.

특히나 하현 스스로 만족스러운 점은, 이제는 작은 들짐승들보다도 월등히 빠른 속도를 가졌기에, 사냥이 쉬워져 배를 곯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었다.

타닥- 타닥- 타닥-

오늘 밤도 하현은 장작을 피워 놓고, 어렵지 않게 잡은 청설모를 구워 먹으며 별자리로 현재의 위치를 가늠했다.

일부러 민가를 최대한 피해 가며 산으로만 이동했기에 이곳이 어디인지 쉬이 파악하기는 힘들었지만, 어림짐작으로 대강 하남성에 들어선 지는 한참 지났다는 것 정도를 알 수 있을 뿐이었다.

와작-

하현은 고기를 한 입 뜯으며 결정했다.

"슬슬 민가로 내려가 봐야겠어."

그가 이런 결정을 내린 이유는 단 하나였다.

하현이 도망칠 때, 어머니에게 받은 화섭자가 단 한 장밖에 남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틀, 삼일 간격으로 한 장씩을 사용하여 서른 장에 가까웠던 화섭자를 모두 소모하였으니, 신가장으로부터 도망친 지 두 달은 족히 흐른 시간이었다.

두 달의 시간 동안, 하현이 입고 있던 의복과 신발은 거의 넝마 수준이나 다름없어 거지꼴이나 다름없었다.

하지만, 뒤로 정갈히 넘긴 머리와 빛이라도 나는 것 같은 용모의 얼굴은 절대로 그를 단순한 거지로 보이게 만들지는 않았다.

하현은 물가를 만날 때마다, 몸과 얼굴을 깨끗이 닦았다.

혹시라도 몸에서 나는 체취 때문에 맹수를 자극할 수도 있다는 이야기를 더 어릴 적에 들은 것 같았기 때문이다.

물론 그때마다 의복도 빨 수 있으면 좋으련만, 젖은 옷을 말릴 시간까지는 없었기에 하는 수 없이 옷을 벗고 물로 들어가곤 했다.

“말로만 듣던 삼매진화(三昧眞火)의 경지라면, 고민할 필요도 없는데.”

하지만, 무림에서 나름대로 고수라고 불리던 그의 모친도 내공으로만 불을 일으키는 경지는 도달하지 못했기에, 이내 망상을 포기했다.

하현은 민가로 내려가기로 결정하기에 앞서 최근 며칠간 유심히 그를 쫓는 자가 있는지 살폈지만, 추적의 흔적은 찾을 수 없었다.

하기는, 안휘성은 하현이 처음 도망쳤던 대나무밭과 반대 방향이니 이쪽으로 도망쳤다는 생각은 추호도 하지 못할 것이 분명했다.

“좋아.”

하현은 뜯던 고기를 마저 뜯고서 흙을 끼얹어 불을 끄고는 나무 위로 올라갔다.

내일 무슨 일이 생길지 모르니, 최대한 체력을 비축해두기 위해.

* * *

며칠 후.

하현은 드디어 사람이 사는 곳에 도착할 수 있었다.

두 달 만에 내려온 민가는 떠들썩했다.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마침 하현이 도착한 날에 장이 들어섰는지, 저잣거리에는 사람들로 바글바글했다.

“와아.”

그 광경을 보고 하현이 처음 내뱉은 것은 순수한 감탄이었다.

불과 두 달 전까지만 해도, 섬서에서 남 부러울 것 없이 지내던 하현은, 두 달 만에 보는 수많은 인파가 신기했다.

하지만 언제까지고 감탄만 하고 있을 수는 없을 노릇.

하현은 이내 정신을 차리고, 이곳저곳을 기웃거리며 정보를 모으기 시작했다.

또래보다는 머리 하나씩은 더 크다고는 하지만, 그래도 하현은 아직 어린아이.

대부분의 사람들은 하현의 행색을 보고서 꼬마 거지가 궁금증이 많은가보다 하며 하현의 질문에 대답해 주었다.

또 몇몇 어른들은 똘망똘망한 하현의 눈망울에 귀여움을 느꼈는지 만두나 당과 따위를 건네는 경우도 있었다.

하현은 당과를 씹으며 아직 강호의 정은 살아있다고 느꼈다.

그리고 하현이 종합한 정보는 이러했다.

먼저 이곳은 하남성의 남동쪽 끝에 있는 현(縣)인 고시현이었다.

이곳이 바로 안휘성과 경계에 있는 현이었으니, 하현은 옳은 방향을 향해 달려왔다는 것이 증명되었다.

그리고 세상 사람들은 아직 신가장에서의 혈겁을 모르는 듯했다.

물론 하루가 멀다 하고 칼부림이 일어나는 무림에서 신가장 같은 소규모 무림 세가 괴멸하는 것쯤이야 특이한 소식도 아니긴 했지만.

‘화섭자만 구하는 대로 바로 출발해야겠어.’

이곳이 하남성의 끝자락이니, 안휘성의 성도인 합비에 위치한(안휘성의 정중앙에 위치한다.) 남궁세가까지는 실로 얼마 남지 않았다.

하현은 다시 한번 의지를 다잡으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리고 그때.

어디선가 큰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디서 굴러먹던 개뼉따구가 남의 구역을 넘봐!”

하현이 그 소리에 뒤돌아보니, 하현보다 두어 살은 많아 보이는 소년 거지와 그 뒤에 세 명의 거지가 팔짱을 끼고 하현을 노려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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