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화
개방에서 장로의 직전제자가 된다는 것.
하현을 제외한 나머지는 그 의미를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다.
‘후개의 자격을 얻을 수도 있다는 것······!’
개방이라는 방파는 다른 문파와 확연히 다른 점이 하나 있다.
개방의 방주. 즉 용두방주는 자신의 의지로는 제자를 들일 수 없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다음 대의 용두방주는 어떻게 선정하느냐는 의문이 생길 수 있다.
용두방주의 후계자. 즉 후개는 모든 장로와 호법들이 의견을 모아 한 명을 후개로 선정하게 된다.
후개가 선정되면, 비로소 용두방주는 후개에게 자신의 모든 것을 가르치기 시작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후개의 후보자는, 모든 개방의 제자가 그에 해당한다.
그 말인즉슨 능력이 있는 누구든지 개방의 방주. 즉 용두방주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중에서도 오직 여덟 명만이 존재하는 장로들의 직전제자들에게 가능성이 가장 크다고 할 수 있었다.
‘취월걸개 장로께서는 지금까지 단 한 명의 직전제자도 거두지 않으셨다.’
취월걸개는 자유로운 개방 내에서도 유독 자유로운 영혼이었다.
어디 한 군데 거점을 두는 일 없이, 천하를 유랑하며 자신이 하고픈 대로 행동하는 자였다.
그 덕에 광견이라는 그다지 긍정적이지 않은 별명도 얻었긴 하지만······.
‘장로님이 개방 내에서도···. 아니 무림 전체에서도 손꼽히는 고수라 아무도 건드릴 수 없는 게 제일 크지.’
분명 취월걸개는 개방 내에서, 아니 강호 전체를 통틀어서도 충분히 초고수의 반열에 들어갈 수 있는 무인이었다.
복우는 이 순간 자신도 모르게 하현에게 ‘부럽다.’라는 감정이 생겨났다.
이 사실을 아는지, 모르는지 하현의 표정은 어리둥절했다.
그러다 곧 정신을 차렸는지, 또박또박한 목소리로 말했다.
“죄송합니다.”
“뭐?”
하현은 어리둥절한 와중에도 눈빛만은 굳건했다.
“저는 어르신의 제자가 될 수 없습니다.”
하현의 기대치 못한 대답에 취월걸개는 곧바로 대답하지 못했다.
그리고 그가 무슨 말을 하려 할 때, 큰 소리는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터져 나왔다.
“지금 네가 무슨 기회를 거절한 건 줄 알아?!!”
하현과의 승부에서 무참히 깨지고 나서 쥐 죽은 듯 있던 마윤철이었다.
“도대체 왜! 어째서 거절하는 거야? 우리가 얼마나 꿈에나 바라는 일인 줄 알고?!”
“그만.”
바락바락 악을 쓰는 마윤철을 취월걸개가 제지했고, 마윤철은 입을 꾹 닫을 수밖에 없었다.
“왜냐. 이유나 물어보자.”
“첫째로는 어르신과 만난 지 한나절도 되지 않았다는 것이고, 두 번째는···. 가야 할 곳이 있기 때문입니다.”
“가야 할 곳?”
하현은 대답 대신 굳은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취월걸개는 잠시 그런 하현의 얼굴을 유심히 보다가······.
“하하하. 그래. 머리털 나고 처음으로 제자를 들여보려 했건만, 생각해보니 귀찮기 그지없구나. 잘 생각했네. 소공자.”
“···이제 제가 갈 길을 가도 될는지요?”
“목적지가 어디인가?”
하현은 대답을 망설였다.
“그건······.”
“두 번 묻게 하지 말게.”
“남궁세가입니다.”
하현은 나직이 진실을 말했다.
취월걸개는 빙긋 웃고서는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네. 무운을 바라네. 여봐라. 정가야. 먹을 걸 내놓거라.”
취월걸개는 닫혀 있던 상점 문을 벌컥 열고 들어가며 소리쳤다.
“후우. 겨우 이 정도로 지나간 걸 다행이라고 생각해야 하나.”
그리고 복우는 왠지 모를 안도감에 숨을 푸욱 내쉬고 말다 문득 하현을 바라보고는 포권을 취하며 말을 이었다.
“소공자. 우리 제자의 오해를 용서하시게. 내가 우리 구역은 목숨을 걸고 지켜야 한다고 가르쳐서 그렇게 한 것이니 내 불찰이네.”
“아닙니다. 저도 좀 더 의연하게 대처하지 못했습니다. 덕분에 많이 배웠습니다.”
하현도 그를 보며 마주 포권을 취해주었다.
마윤철은 쭈뼛쭈뼛 하현에게 다가가 조금 전보다는 힘이 빠진 목소리로, 하지만 무언가 결의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
“다음번에 만날 때는 내가 꼭 이길 테다. 이를 갈고 수련해서 이 타구십팔초를 극성까지 익히고 말 테다.”
“그래라.”
“이름이 뭐지?”
“···하현.”
“성은?”
“······.”
마윤철이 픽 하고 웃었다.
“그래, 말하기 싫다면 말하지 마라. 대신 내 이름을 똑똑히 기억해 둬. 나는 마윤철이다.”
“요 며칠간 질리도록 들어서 절대 잊지는 못할 것 같아.”
“그럼 다음에 꼭 만나 자웅을 겨루자. 하현.”
마윤철은 땅바닥 굴러다니는 자신의 타구봉을 다시 쥐어 허리춤에 찔러 넣고는 이미 돌아가기 시작한 복우의 뒤를 따랐다.
하현은 왠지 뒤돌아 가는 그 두 명의 모습을 보며 웃음이 날 것만 같은 느낌이었다.
그리고 취월걸개는 비록 거지지만, 굉장히 멋진 무인으로 가슴속에 자리할 것 같았다.
“좋아. 얼마 안 남았어.”
하현은 다시 남궁세가를 향해 발을 굴렀다.
아니, 발을 구르려 한 그 순간.
쾅-!
“도저히 못 참겠다. 그냥 보내려 했는데, 궁금해서 미칠 것 같아!”
가게 안으로 들어갔던 취월걸개가 갑자기 문을 박차고 다시 나왔다.
그의 뒤에는 정씨라고 했던 상점 주인도 뒤따라 나왔다.
“이, 이 미친 거지가! 돈도 없으면서 문 떨어지면 네가 갚아줄 거야?!”
“지금 문이 문제야? 정가야. 내가 말했지 않냐. 내가 스승이 되어준다고 했는데 나를 거절했단 말이다!”
하현은 이게 어찌 된 영문인지 상황 파악을 하지 못했다.
조금 전 멋있게 보이던 개방의 장로 취월걸개는 어디 가고, 진상 노인네가 하나 떡하니 나타났으니.
“아직 출발하지 않았을 줄 알았다. 정말로 나를 거절한 게 맞느냐?”
하현은 반사적으로 복우와 마윤철이 떠나간 방향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그는 볼 수 있었다.
마윤철을 들쳐메다시피 하고 최선을 다한 속도로 이 자리에서 빠져나가는 복우를.
‘광견한테 잘못 걸리면 끝장이다. 아직 조용할 때 한 발자국이라도 더 도망쳐야 해.’
그는 분명 이런 상황을 예견했을지도 모른다.
“아이야. 묻지 않느냐. 내가 스승으로서 그리도 부족해 보이더냐?!”
“그런 게 아닙니다! 저는 꼭 가야 할 곳이······.”
“뭐. 남궁세가? 그곳에는 왜 가야 한다는 말이냐!”
세상이 왜 취월걸개를 미친개라고 부르는지 여실히 보여주는 모습이었다.
“꼭 만나야 할 사람이 있습니다!”
“만나야···? 허허···. 가만 보자. 인제 자세히 보니 얼굴이 낯이 익구나. 우리가 전에 본 적이 있던가?”
“없습니다. 만약 있었다면 제가 절대 못 알아뵀을 리 없습니다.”
하현은 이런 괴팍한 거지는 절대 못 잊었을 것이라는 뜻으로 말했다.
하지만 꿈보다 해몽이라고 취월걸개는 대 개방의 장로를 잊을 수는 없었을 것이라는 좋은 뜻으로 받아들였다.
“그렇지. 아직 어린 너를 내가 봤을 리는 없고, 가만 보자···. 이 기생오라비 같은 허여멀건 한 얼굴에 이 눈···. 어디서 봤을꼬.”
취월걸개는 잠시 생각에 빠졌다.
‘튀어야 하나? 아니다. 곧바로 잡히고 말 거야. 그러면······.’
하현은 재빨리 머리를 굴려 이 상황을 타개할 방법을 찾았다.
그런데, 다음 순간 취월걸개가 내뱉는 말에 그만 사고를 멈추고 말았다.
“영령?”
“네?”
취월걸개는 하현의 두 눈을 바라보며 말했다.
“네 눈. 독심미화 남궁영령의 눈과 똑 닮았군!”
“······!”
취월걸개의 기도는 아주 조금 전과는 또 판이하게 달라져 있었다.
조금 전에는 영락없는 미친개였지만, 지금은 대 개방의 장로가 어울리는 중후한 모습이었다.
개방은 무림 방파이면서도, 무림 최강의 정보 조직이기도 하다.
그런 개방에서 열 손가락 안에 꼽을 정도인 장로라는 신분이다.
과연 무공만 강하다고 해서 장로가 될 수 있을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결코 아니다.
장로라는 신분은 고강한 무공과 더불어 정보에 대한 처리와 분석 역시 엄청난 수준을 요구했다.
그런 취월걸개에게 인상이 깊었던 한 무인의 얼굴을 기억하는 것은 일도 아니었다.
“너. 남궁영령과 무슨 사이지?”
취월걸개가 진중하게 물어봤다.
마치 무언가를 알고 있다는 듯.
“저는······.”
“아니다. 대답하지 말아라. 네 얘기를 굳이 들을 필요가 없지. 넌 지금 나와 남궁세가로 간다.”
조금 전부터 하현에게는 놀람의 연속이었다.
그의 총명한 머리로도 지금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인지 간신히 파악만 해내고 있을 정도였으니.
“정가야.”
“왜 부르나 거지야.”
“술은 다음에 먹어야겠다.”
“쯧. 언제는 여유롭게 마신 적이 있더냐. 하나 있는 친구라고는 미친 거지를 사귀어서는···. 잠시만 기다려라.”
상점 주인은 혀를 몇 번 차더니 가게로 돌아가 먼지가 잔뜩 쌓인 지게 하나와 육포 한 뭉치를 내왔다.
“얘기를 들어보니, 당장이라도 합비로 떠날 것 아니냐. 네놈 성질에 어린아이를 끌고 가는 것보다는, 여기에 메고 가는 게 더 낫겠지.”
취월걸개는 지게가 마음에 들지 않는지 미간을 찌푸렸다.
“떼잉, 장로 체면에 지게라니.”
“끌끌. 네놈한테 체면이라는 게 있긴 했냐.”
“그건 또 그렇지?”
취월걸개는 뭐가 그리 웃긴지 낄낄 웃고는 지게에 붙은 먼지를 후후 불어 털어내고는 어깨에 멨다.
“올라타라.”
하현은 군말 없이 지게에 올라탔다.
그는 이미 판단을 마친 상태였다.
‘어차피 이 고수의 손에서 벗어날 방법은 없다. 어머니와 아는 사이였던 것 같기도 하고, 정말로 남궁세가로 간다면 나에게는 큰 이득이야.’
“꽉 잡아라. 혹시나 놓쳐 다치거나 죽는다면 나는 버리고 갈 것이다.”
“넵.”
화악-!
‘으윽!’
하현은 대답한 순간, 손에 공력을 집중할 수밖에 없었다.
취월걸개의 속도는 지금껏 그가 경험한 적도, 본 적도 없던 것이었다.
떨어지지 않도록 버티는 것, 지금 하현이 할 수 있는 모든 것이었다.
* * *
취월걸개가 걸음을 멈춘 것은 무려 하루를 꼬박 달리고 나서였다.
“아이고, 오랜만에 이렇게 달렸더니 힘이 드는구나. 아이야 잘 붙어 있느냐?”
“······.”
취월걸개의 질문에도 하현은 아무런 대답을 하지 않았다.
분명 아직도 등에 묵직한 무게감이 느껴지니 떨어지지는 않았을 텐데······.
그가 지게를 내려놓자, 그제야 하현은 정신을 차렸다.
“뭐 하는데 대답도 없었느냐. 혹시 잠이라도 잔 게냐?”
“아닙니다.”
“그러면 뭘 했느냐.”
“······.”
취월걸개는 아까부터 아무런 대답이 없는 하현을 향해 다시 한번 물었다.
“뭘 했느냐 묻지 않았느냐? 봐서 알겠지만, 나는 인내심이 매우 적은 사람이다.”
“어르신의 달리는 법을 연구하고 있었습니다.”
“뭐?”
강호에서 수많은 무림인을 만나온 취월걸개지만, 그의 표정은 자신도 모르게 경악으로 물들고 말았다.
“내가 달리는 법 말이냐?”
“네. 물론 지금은 제가 내공이 일천하여 따라 할 수는 없겠지만요.”
“그 말은 내공이 충만하다면 따라 할 수 있겠다는 것이냐?”
취월걸개의 표정은 경악에서 어느새 호기심으로 바뀌어 있었다.
“완벽하게는 아닙니다만···. 저는 발바닥에 내공을 분출한다는 느낌으로 지금까지 달려왔습니다. 하지만, 어르신께서는 바닥을 디딘 다리를 다시 들어 올리실 때 내공을 상당 부분 회수하시는 것처럼 보입니다.”
“······!”
하현은 취월걸개의 표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여전히 생각에 빠진 채 말을 이었다.
“물론 어떻게 회수하는지는 전혀 알 수 없어서 계속 시도를 해봐야겠지만요.”
경악에서 호기심으로, 또다시 호기심에서 경악으로.
취월걸개는 그의 표정을 숨길 생각도 하지 못했다.
조금 전 하현이 말한 무리(武理)는 그가 오랜 기간 연구한 끝에 겨우 깨달은 심득이었기에.
‘단지 보는 것만으로 깨닫는 천고의 기재라고?’
취월걸개는 순간 두려움이라는 감정마저 들었다.
하지만 곧 이성을 되찾았다.
‘만약 정말로 남궁세가의 아이라면···. 무림의 희망이 될지도 모른다.’
하현의 얼굴은 취월걸개가 온종일 본 얼굴 중에 가장 신나 보였다.
무리를 깨달은 것에 저렇게 재미를 느끼는 아이는 지금껏 보지 못했다.
“어르신을 일찍 만났더라면 제가 더 오래 달릴 수 있었을 텐데 아쉽습니다. 그리고 감사합니다.”
“혹시 모르니 앞으로 충고 하나를 해주마.”
“무슨 충고입니까?”
취월걸개는 진중한 태도로 말했다.
“앞으로 다른 무림인 앞에서 그의 무공을 따라 하거나, 혹은 따라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소리는 절대로 하지 말아라.”
“그건 어째서입니까?”
겉은 이토록 점잖아 보이지만, 속은 겨우 열 살 아이.
취월걸개가 강호의 생리에 대해 설명을 해주려 할 때.
“아···! 그렇군요. 조금 전 제가 저지른 실례는 용서를 구하고 싶습니다. 어르신. 죄송합니다.”
“허허······.”
하현의 천재성은 그런 설명마저 허락하지 않았다.
“다시 타라. 이제 얼마 남지 않았으니.”
취월걸개는 육포를 꺼내 질겅 씹으며 하현을 다시 들쳐멨다.
원래는 하루를 야영하며 쉬어갈 생각이었지만, 그는 지금 한 시라도 참을 수 없었다.
이 소년이 정말 남궁세가의 사람인지.
그는 지금 당장이라도 확인하고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