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남궁세가 천재 외손자-8화 (8/304)

8화

남궁규현은 본디 황씨 성을 쓰는 무인이었다.

별 볼 일 없는 가문 출신이었던 그가 청룡각 입관시험에 통과한 것이 바로 십 년 전.

그리고 검존 남궁무룡에게 인정받아 남궁의 성을 하사받고, 정식으로 남궁세가의 일원이 된 것이 삼 년 전이였다.

그가 검존에게 가장 크게 인정받은 부분은 바로 재능을 알아보는 ‘안목’과 그 재능을 이끌어내는 ‘교육’이었다.

그래서 청룡각 기초 교관이라는 언뜻 보면 별 볼 일 없지만, 사실은 가장 중요한 직책을 맡게 된 것이다.

그런 남궁규현은 오늘 온종일 지루하기 그지없었다.

‘올해는 두어 명만을 제외하고는 그저 그렇군.’

몇몇은 그의 눈을 반짝이게 하는 재능도 있었건만, 올해의 수준은 대체적으로 떨어졌다.

중간에 남궁소화가 들어와 눈부신 재능을 빛내며 그의 입에 미소를 걸어주기도 했지만, 눈살을 찌푸리게 한 이가 더 많았을 정도였다.

‘그랬는데······.’

마지막 순번.

어젯밤 가주님께서 입관시험을 볼 수 있게만 하라고 하여 등록만 해 놓았던 아이.

이제 겨우 열 살에 변변한 무공도 하나 배우지 못했다는 아이인데······.

“이, 이게 무슨?”

남궁규현은 어느새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있었다.

탓탓탓-

“후우- 시험은 끝인가요?”

심지어 순식간에 보법을 전개해내고 나서 숨을 한번 크게 내쉬었을 뿐, 숨을 몰아쉬거나 힘든 기색 하나 보이지 않았다.

“아···. 합격, 합격이다. 나가서 다음 지령을 기다려라.”

“넵. 감사합니다.”

하현은 공손히 고개를 숙여 예를 표하고는 청룡각 밖으로 나갔다.

“허···. 형님. 형님 외조카는 도대체 정체가 뭡니까?”

“그러게 말이다.”

연무장 위에 있던 또 한 사람.

그는 바로 하현을 조금이라도 빨리 보고 싶었던 남궁기철이었다.

“아버님께서 자신 있게 청룡각 입관시험을 보게 하신 이유가 있었구나.”

남궁기철은 하현이 보인 무위에 오히려 웃음마저 나와 버렸다.

슬쩍 옆을 보니 남궁규현은 조금은 심각한 얼굴이었다.

“하지만, 아직 2차 시험이 남았습니다. 형님”

“뭐가 그리 걱정이냐. 시험에서 떨어진다고 해도, 어차피 이제부터는 우리 남궁세가의 일원인 것을.”

“그렇게 되면 제가 못 가르치게 되지 않습니까?”

규현의 말에 남궁기철이 새로운 것을 깨달았다는 듯 말했다.

“아! 그렇게 되면 내가 가르치면 되겠군.”

“형님!”

남궁기철은 큰 소리를 내는 규현이 웃겼는지 그만 껄껄 웃고 말았다.

남궁규현은 다른 건 몰라도, 재능있는 인재에 대해서만은 진심이다.

그런 규현이 이렇게까지 반응한다는 것은 하현의 재능이 진짜라는 것을 증명해 주는 것이나 다름없는 일이었다.

* * *

일 차 시험을 통과하고 청룡각 밖에서 잠시 기다리자, 하인 하나가 나와 합격자 전원은 다시 들어오라는 말을 전했다.

합격자들은 청룡각으로 우르르 들어갔고, 하현도 그 뒤를 따랐다.

“일 차 시험의 합격자들은 모두 이쪽으로 모이시오!”

안내자의 말에 따라 청룡각 입구에 모인 사람의 수를 헤아려 보니 합격자는 서른 명.

오백 명이 넘는 응시자가 있었건만, 겨우 일 차 시험에서 이것밖에 남지 않은 것이다.

“너도 일차 시험에 붙었구나?”

하현의 뒤에 있던 남궁소화가 짐짓 놀라는 척 하현에게 말했다.

하현은 대답 대신 싱긋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총명한 두뇌를 가진 하현이었지만, 아직 남궁소화를 어떻게 대해야 할지는 잘 몰랐으니까.

그때 청룡각 입구가 살짝 열리더니, 남궁규현이 밖으로 나왔다.

“모두 일 차 시험을 통과한 것을 축하한다. 이제 이 차 시험만 통과한다면, 너희도 당당히 청룡각의 일원이 될 수 있다. 이 차 시험은 간단하다. 청룡각 무인들과의 비무다.”

목소리에 내력을 담은 듯, 그다지 큰 소리가 아니었음에도 귓가에 똑똑히 들렸다.

“비무라고? 우리가 청룡각 무인들을 어떻게 이기라는 거야?”

“그러게 말이야. 우리는 배우러 온 것인데······.”

몇몇 유약한 지원자들은 불만을 제기했다.

그들은 비무에서 이길 수 없을 것이라 지레짐작한 것이다.

“걱정하지 말아라. 진짜 대련도 아니고 간이 대련이며, 대련에서 진다고 하여 무조건 탈락하는 것이 아니다. 각자 보여줄 수 있는 모든 것을 보여주면 된다.”

남궁규현은 끝말에 ‘사실 이길 것이라고는 기대도 하지 않는다. 여태까지 지원자가 이긴 경우는 단 한 번도 없었거든.’이라는 말을 덧붙이고는 말을 이었다.

“자. 그럼 모두에게 무운을 빈다. 이름이 불리면 한 명씩 들어오도록.”

그는 이 말을 끝으로 다시 청룡각 안으로 들어갔다.

그러자 또 몇몇 응시자들은 투덜대기 시작했다.

하지만, 몇 명은 좋은 표정을 하고 있었다.

‘자신이 있는 거구나. 우선 남궁세가의 시험이 터무니없는 것을 요구할 리 없다는 믿음과 자신의 실력에 대한 믿음이야.’

그런 표정을 짓고 있는 사람 중에는 당연하게도 남궁소화도 있었다.

하현도 그녀를 보며, 어느새 남궁소화와 비슷한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자신의 이름이 호명되기를 기다렸다.

아주 잠깐의 시간이 흐르고.

“신하현 공자. 들어오시오.”

이번에는 하현의 이름이 가장 먼저 불리었다.

남궁소화보다도 빠른 순서였다.

하현은 거침없이 청룡각 안으로 들어섰다.

연무장 위에는 이제 세 명의 남자가 서 있었는데

그중의 둘은 아까 일 차 시험을 볼 때 있었던 남궁규현과 또 한 사람이었고, 나머지 하나는 덩치는 크지만, 이제 열다섯은 되었을까 싶은 앳된 얼굴이었다.

“하현아. 이리 올라오거라. 이제부터 여기 보이는 청룡각 무인과 간이 대련을 할 것이다. 간이 대련은 초식을 이용해 직접적인 타격을 하는 건 안 되고, 상대를 밀어 넘어뜨리면 이기는 것이다. 보일 수 있는 보법, 내공, 장법들을 모두 활용하여 최선을 다해라.”

“알겠습니다.”

하현은 연무장 위로 올라서 그와 대련할 상대를 바라보았다.

굉장히 수려한 외모에 단련된 탄탄한 몸.

그리고 어디선가 본 것 같은 외모였다.

“반갑다. 동생.”

“네?”

“사부님이랑 아버지한테 얘기 들었어. 남궁환이라고 해.”

하현은 기억을 더듬어 둘째 사촌 형의 이름이 남궁환이라고 했던 것을 기억했다.

“형님···. 이시군요.”

“그래. 조금이라도 빨리 보고 싶어서 첫 번째 순서로 빼달라고 했지.”

“아, 그래서 제가 첫 번째였군요.”

“그래. 여튼, 잘 부탁한다.”

“저도 잘 부탁드립니다.”

남궁환은 형님이라는 말이 듣기 좋았는지 활짝 미소 지으며 기수식을 취했다.

남궁규현이 이차 시험으로 보는 간이 대련은 겉보기에는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보이지만, 기초 무공을 배우기 전, 자질을 정확하게 판단할 수 있는 대련이었다.

규현은 이제 막 시작하는 무인들에게 있어서 화려한 초식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사소한 보법의 습관과 어린 나이부터 쌓아온 내공의 질, 그리고 무인으로서의 성정은 앞으로의 성장률을 반증하는 것이기에 굉장히 중요한데, 그것들을 보여주기에 이만한 대련법이 없는 것이다.

‘초식은 그저 배우면 그만인 것.’

남궁규현이 손뼉을 치면 그 소리를 신호로 대련을 시작하기로 했다.

‘환이는 다른 건 몰라도, 자질 하나만큼은 내가 지금까지 봐온 모든 무인들 중에서도 손에 꼽는다. 물론 민이는···. 논외기는 하지만.’

그는 남궁환이 진다는 생각은 추호도 하지 않았다.

아니, 애초에 청룡각에서 수년이나 수련받은 무인이 지원자한테 진다는 것 역시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짝-

남궁규현이 손뼉을 친 순간.

하현과 남궁환은 서로를 향해 달려들었다.

‘그렇지! 무인은 이런 대련에서 뒤로 빼서는 승부를 낼 수 없다. 가르쳐 주지도 않았는데 바로 앞으로 달려들다니. 무인으로서의 성정 역시 합격이군.’

남궁규현은 자신도 모르게 손뼉을 한 번 더 칠뻔했다.

이번에는 감탄의 손뼉을.

보통 어린아이들은 누군가 맹렬하게 달려들면 그 모습에 지레 겁을 먹고 뒷걸음질을 치기 십상이다.

상식적으로 뒤로 뛰는 것은 앞으로 뛰는 것보다는 느릴 수밖에 없고, 공격적으로 달려온 상대방에게 밀려 그대로 뒤로 넘어갈 수밖에 없는 것이다.

‘하지만, 무작정 달려드는 것이 능사는 아닐 텐데.’

상대방의 힘을 정확하게 가늠하고 있다면 모르지만, 그게 아니라면 상대와 맞붙는 것은 최대한 피해야 한다.

더군다나 상대방이 나보다 더 강할 것이 기정사실인 상황에서는.

‘그런 점에서는 아직 멀었···. 음?’

남궁규현은 하던 생각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그대로 앞으로 달려들던 하현과 남궁환이 맞붙으려는 순간,

타다닷-!

하현이 순식간에 보법을 밟아 횡으로 이동하며 남궁환의 옆구리를 향해 두 손을 뻗었으니까.

‘역시 보법을 익혔구나!’

남궁규현은 하현이 상승의 보법을 익혔다고 확신했다.

하현은 내공 한 줌 사용하지 않고 일차 시험을 통과해냈기에, 어떤 보법을 익혔는지 알 길이 없었다.

하지만 조금 전의 폭발적인 움직임은 웬만큼 보법을 수련하지 않고서는 나올 수 없는 움직임이었다.

휘익-!

하지만 하현의 손은 허공을 갈랐다.

그가 손을 내지름과 동시에 남궁환도 보법을 전개해 튀어나가듯 하현의 권역에서 벗어난 탓이었다.

“제법!”

남궁환이 신난다는 듯 외쳤고, 하현은 입술을 깨물었다.

‘완벽하게 허를 찔렀다고 생각했는데.’

첫수에 허를 찌르기 위해서 일부러 보법을 전개하지도 않고 부딪히기 직전까지 뛰어 들어갔지만, 겨우 이 정도로는 턱도 없어 보였다.

그때부터는 마치 숨바꼭질과도 같았다.

남궁환이 하현의 뒤를 잡으면, 하현은 다시 남궁환의 옆이나 뒤로 보법을 전개한다.

그러면 다시 남궁환은 멀리 떨어지거나, 하현의 뒤를 잡는다.

샥- 샥- 샥-.

고요한 연무장에는 둘이 바람처럼 움직이는 소리만이 가득했다.

“타압-!”

그러다 남궁환이 기합을 내질러가며 하현에게 번개같이 팔을 휘둘렀다.

조금 전까지 움직이던 속도에 비하면, 족히 곱절은 더 빠른 속도였다.

퍼억-

남궁환의 손바닥이 하현의 몸을 타격했다.

하현은 꽤나 큰 충격을 받았는지, 비틀거리며 몸이 주르륵 밀렸다.

하지만, 아직 넘어지지는 않았다.

“와, 그 순간에 곧장 뒤로 몸을 뺐구나? 네가 조금만 더 빨랐다면 내 장(掌)이 아무 타격이 없었을 거야.”

하현은 등골이 오싹했다.

힘의 방향으로 몸을 빼 충격을 최소화하지 않았더라면, 꼼짝없이 넘어질 뻔했으리라.

이 상황에 고민에 빠진 것은 남궁규현이었다.

‘여기서 멈춰도 충분히 합격이다. 하지만···. 둘의 대련을 조금 더 보고 싶다.’

슬쩍 옆을 바라보니, 남궁기철 역시 같은 생각을 했는지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이것도 피해 봐!”

남궁환은 조금 전과 같은 단순히 빨리 달리기가 아닌, 남궁세가의 보법인 무한보(無限步)를 밟으며 들어왔기에 말 그대로 전광석화와 같은 속도였다.

‘빠르다···! 어? 저 보법은?’

하현은 엄청난 속도로 가까워져 오는 남궁환을 바라본 찰나의 순간, 문득 그의 보법이 익숙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저 보법은···. 일차 시험에 연무장 위에 찍혀 있던 보법이다!’

생각은 길게 느껴졌지만, 하현이 판단하고 행동으로 옮긴 시간은 찰나였다.

하현은 단 한 번 봤던 보법이지만, 생생히 기억하고 있었다.

그 말인즉슨 비록 속도는 엄청나지만, 남궁환이 갈 다음 경로를 알고 있다는 뜻이다.

타다다-

하현은 다리에 최대한의 공력을 실어 거침없이 보법을 밟아 나갔다.

그는 경로를 알고 있다고 해서 뒤로 도망가거나 하지 않았다.

대신에 하현이 엄청난 속도로 향한 곳은 남궁환의 다음 진로였다.

“어어?”

남궁환은 하현이 생각보다도 훨씬 빠르게 가까워지자 당황했다.

순간 방향을 틀어보려 했지만, 이미 보법을 밟고 있던 상황이라 쉽지 않았다.

퍼억-!

하현은 팔로 머리를 감싸고 그대로 몸으로 박아버렸다.

내력을 있는 힘껏 실은 몸통박치기.

나이에 비해 상당히 큰 덩치의 하현이었기에, 남궁환은 생각지도 못한 엄청난 충격을 입었다.

“크윽-!”

남궁환은 쓰러질 뻔했지만, 내력을 다리에 집중해 가까스로 중심을 잡았다.

그리고 정신을 차리곤 다시 하현을 찾는데······.

“없어?”

하현이 시야에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지금 시야에 없다는 것은······.

“하압!”

퍽-!

어느새 남궁환의 뒤에 있던 하현은 다시 한번 온 힘을 다해 남궁환에게 몸을 던졌고.

털썩.

결국, 남궁환은 앞으로 넘어지며 손으로 땅을 짚을 수밖에 없었다.

최초.

청룡각 입관 시험이 시작된 이래로 처음 지원자에게 청룡각 무인이 지는 상황이 벌어졌다.

그것도 최고의 재능이라는 검존의 손자 남궁환이.

그것도 10살짜리 꼬마한테.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