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화
시간은 빠르게 흘러간다.
특히나 지금의 하현처럼 무언가에 온 정신을 몰두할 수 있는 상황에서는 더더욱.
하현은 무공에 완전히 푹 빠져 있었고, 지금은 자는 시간마저 줄여가며 무공을 단련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영향은 청룡각 수련생들에게까지 미쳤다.
‘이번 기수는 무슨…. 무공에 미친 사람들도 아니고.’
남궁규현은 무섭도록 집중해서 검을 휘두르는 청룡각 수련생들을 보며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분명 이번 기수가 처음 시작할 때까지만 해도 솔직히 기대감이 떨어지는 기수였다.
자질은 이전의 기수들만 못하다고 생각했던 그였건만, 몇 개월이 흐른 지금 그는 전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자질이 모자란다고 생각했던 게 미안할 지경이군.’
괄목상대라는 표현이 어울릴까.
청룡각 수련생들은 하루, 하루 발전해 가는 것이 눈에 보일 정도였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하현이 있음에는 의심할 여지가 없었다.
“후욱-. 후욱-.”
남궁규현은 숨을 몰아쉬며 또 기초 훈련을 반복하고 있는 하현을 바라보았다.
누가 보아도 뛰어난 자질을 가졌건만, 결코 자만하고 남을 무시하지 않는다.
게다가 자신의 깨달음을 베푸는 것에도 인색하지 않아 가장 어린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동기들이 사형처럼 따르고 있었다.
‘민이와는 또 다른 천재성이다.’
규현은 하현을 보자 자연스레 남궁민을 떠올렸다.
남궁민 역시 하현과 같이 청룡각 수련생일 시절이 있었고, 하현처럼 누구보다 앞서가기도 했다.
하지만, 남궁민은 지금의 하현처럼 청룡각 동기들에게 영향을 미치지는 못했다.
혹자의 말을 들어보면, 마치 구름 속을 노니는 용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랄까.
자신들이 어떻게 해도 넘을 수 없는 거대한 벽을 남궁민에게서 느꼈기 때문이라고 했었다.
‘그에 반해 하현은….’
하현 역시 그의 청룡각 동기들에게 벽으로 느껴지기는 매한가지다.
하지만 단 한 가지 크게 다른 점이 있었다.
“에고. 더는 못 하겠네. 좀 쉬었다가 더 하든가 해야지.”
“하현. 쉬는 거야?”
“지금 우리보다 앞서간다고 자만하는 거지?”
“그래. 오히려 잘 되었다. 오래오래 쉬어야 우리가 따라잡지.”
하현이 휴식을 취하러 털썩 주저앉자 주변 수련생들이 하현을 보며 한 마디씩을 건넸다.
모두 하현을 놀리는 것에 진심인 듯한 모습이었다.
“아니, 형님들. 그러면 제가 더 쉴 수가 없잖아요.”
“누가 쉬지 말라고 했나?”
“그러게. 오히려 우리는 쉬라고 했지.”
“으으.”
하현이 소매로 흐르는 땀을 닦아내고는 다시 목검을 쥐고 일어났다.
그리고 주변 수련생들은 그 모습을 보고 한바탕 웃어젖힌 후에 다시 자신의 수련에 몰두했다.
남궁규현은 그 모습을 보고 자신도 모르게 빙그레 미소를 지었다.
하지만 웃고 있으면서도 하현이 가져온 효과를 웃어넘길만한 것이 아니라는 것은 잘 알고 있었다.
‘어쩌면, 아주 어쩌면 다 같이 대원으로 승급을 하는 말도 안 되는 일이 벌어질 수도….’
남궁규현은 여태껏 단 한 번도 없었고, 앞으로도 없을 가능성이 농후한 일이건만, 아주 어쩌면 이번 기수는 그것이 가능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뇌리에서 지워지지 않았다.
* * *
“자. 오늘 수련은 여기까지다. 다들 단시간에 엄청나게 성장했구나. 내일부터는 새로운 검법을 가르쳐주마.”
“우와아-!”
수련생들 사이에서 함성이 터져 나왔다.
삼재검법을 배우고 나서 몇 개월만의 새로운 검법이었다.
“무슨 검법인지 가르쳐주시면 안 돼요?”
남궁소화가 재빠르게 묻고, 동기들이 소화에게 고맙다는 눈빛을 보냈다.
모두가 궁금했지만, 남궁규현에게 저렇게 스스럼없이 대하는 것은 소화만의 특권이나 다름없었기 때문이다.
“흠…. 좋아. 말해주지. 창궁 검법이다.”
“헛…?”
누군가 헛숨을 들이키는 소리가 들렸다.
다들 어안이 벙벙한 가운데 한 명이 조심스레 물었다.
“제가 생각하는 남궁세가의 독문무공인 창궁 검법이 맞습니까?”
“그래. 이것 말고 다른 창궁검법이 또 있더냐.”
“아! 제가 듣기로 독문무공은 정식 대원으로 승급해야만 배울 수 있다고 들어서….”
그 말에 남궁규현이 씨익 웃었다.
“그리고 이게 다가 아니다. 내일부터는 창궁심법도 역시 함께 배울 것이다.”
남궁규현의 말에 그 누구도 쉬이 대답하지 못했다.
그의 말을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이 아니라, 그가 말하는 것이 어떤 의미가 있는지 너무나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남궁규현은 멍하니 자신만을 바라보는 수련생들을 흘끗 보고 피식 웃은 뒤에 말을 이었다.
“내 특별히 가주님께 독문무공을 배울 기회를 조금 당길 수 있을지 요청드렸고, 가주님께서는 받아들여 주셨다. 내가 볼 때는 너희 모두 정식 대원으로 승급 할 수 있는 자질로 보이기도 했고.”
남궁규현은 그대로 몸을 돌려 연무장을 빠져나가며 말했다.
“그럼, 내일 수련시간까지 개인 수련을 하도록. 상승의 무공을 배운다고 해서 기본기를 그만두어도 된다는 것은 절대 아니다. 이제는 각자 시간을 더 내어서 무공을 익히도록.”
남궁규현이 연무장 문을 닫는 순간.
“우와아!”
“이런 기회가 오다니!”
문 너머에서 환호성을 지르는 소리가 터져나왔다.
그 소리를 듣는 남궁규현의 입꼬리는 귀까지 걸려 있었다.
* * *
기본기 수련만에서는 수련생들이 다 엇비슷한 성취를 보였을지 몰라도, 본격적으로 창궁검법을 익히기 시작하면서는 눈에 보이는 차이가 나기 시작했다.
본디 검법이라는 것은 단순히 노력만으로 강해지는 것이 아니다.
당연히 피나는 훈련과 노력이 뒷받침해줘야 하지만, 그 전에 검에 가진 자질이 얼마나 뛰어나냐에 따라 같은 시간을 훈련하더라도 그 성취가 다르다.
그 자질에는 말 그대로 검을 휘두르는 감각이 뛰어날 수도 있고, 구결을 이해하고 검로를 이해하는 오성이 뛰어나다고 할 수도 있다.
그리고 또 하나를 꼽자면······.
‘집착, 집착이지.’
남궁규현은 창궁검법의 검로를 더듬어가는 수련생들을 보며 생각했다.
검법을 익히기 시작하며 눈에 띄는 성취를 보이는 수련생은 세 명이었다.
그중에 두 명은 당연하게도 남궁세가의 피를 이어받은 하현과 남궁소화였고, 또 하나는 하북팽가주이자 도제(刀帝)로 불리는 팽길산의 늦둥이 아들 팽헌홍이었다.
남궁규현은 처음 팽헌홍이 청룡각에 입관 시험을 보러 온다고 했을 때 의아함을 감추지 않았다.
애초에 하북팽가 역시 명문정파이자 고강한 무공을 가지고 있었고, 팽헌홍은 그 하북팽가주의 아들이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도제 팽길산이 그의 막내아들을 총애하여 여렸을 적부터 상승의 무공을 가르치고, 온갖 영약을 구해다 먹였다는 소문은 온 무림에 파다하게 퍼져 있을 정도였다.
그런 팽가주의 막내아들이 남궁세가에 몸을 의탁하다니?
‘가주님께서 훗날 때가 되면, 그 이유를 가르쳐 주신다고 하였으니.’
규현은 그 날 이후로 팽헌홍에 대한 의문을 고이 접어 마음 한 켠으로 숨겨버렸다.
남궁무룡이 나중에 말해준다고 했으면, 그에 대한 이유가 있는 법이다.
남궁세가의 사람들이 가진 가주에 대한 절대적인 신뢰는 남궁세가가 무림제일세가로 불리우게 된 주된 이유 중의 하나였다.
팽헌홍은 창궁검법의 태를 수련하면서도, 계속해서 어딘가를 힐끔거렸다.
그 시선의 끝은 바로 하현이었다.
처음부터 이러지는 않았다.
하현은 이곳에 있는 수련생들 중 가장 어리기도 하고, 또 언뜻 보기에는 숫기도 없어 보였으니까.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팽헌홍을 비롯한 모든 모든 수련생들은 하현을 의식하고 있었다.
‘마른땅에 물이 들어가듯 한 번에 모든 것을 흡수한다.’
‘어떻게 저게 가능한거지?’
‘나도 우리 지역에서는 천고의 기재라고 불렸었는데.’
이것만으로 끝난다면 자신의 능력의 한계를 실감하고, 절망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것이 끝이 아니었다.
‘한 번에 익히지 못한다면, 익힐 때 까지 반복한다.’
‘그런데 하현도 계속 반복하잖아?’
‘그보다 더 수련하는 것이 답이다.’
하현의 존재 자체만으로도 청룡각 대원들의 수련시간과 수준은 점점 더 높아져 갔다.
그리고 그 영향은 누구보다 팽헌홍에게 진하게 다가왔다.
하현은 마치 창궁검법의 검로를 태어났을 때부터 알고 있었다는 듯이, 한 번 보자마자 제법 태가 나게 따라하기 시작했다.
지금까지 천재, 영재, 기재라는 단어는 자신의 앞에 붙는 수식어였다.
하지만 이곳에 오니 자신은 그 단어에 어울리지 않는다는 생각만이 들었다.
바로 그의 옆에 있는 하현 때문에.
하지만.
씨익-
그는 웃었다.
아니, 웃음이 났다.
그로서는 처음 느껴보는 감정이었다.
‘내 뜻대로 되지 않는다는 것이 이렇게 재미있는 것이었다니.’
생에 처음으로 벽을 만났다.
심지어 그 벽은 더 달아난다.
벽을 뛰어넘는 것뿐만 아니라, 쫓아가는 것만 해도 온 전력을 다해야 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것이 그를 진정 웃게했다.
‘아버지께서 이곳에 보낸 많은 이유 중에는 분명 이런 이유도 있었을 것이다.’
팽헌홍은 남궁세가로 떠나오던 날 그의 아버지 팽길산이 했던 말을 떠올렸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지만, 결국 힘이다. 피신이 아니다. 힘을 키우러 가는 시간이라고 생각해라.’
솔직히 처음에는 그 말을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했다.
팽가이 사람이, 그것도 가주의 아들이 남궁세가라는 먼 곳에서 유학한다는 것이 상식적으로 납득할 수 없었다.
그리고, 도대체 남궁세가에서 무엇을 배워야 할지 짐작도 가지 않았기 때문이기도 했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그는 수련이 조금씩 즐거워지기 시작했다.
* * *
하현은 이 세상에 할 일은 무공을 수련하는 것밖에 없는 사람처럼 살았다.
남궁규현이 강조하는 기본기는 오히려 규현이 이제 그만하라고 할 때까지 해야 직성이 풀렸으며, 밤에는 창궁 검법을 수련하고, 또 창궁대연심공을 운기했다.
처음에는 쌓이는지, 쌓이지 않는지도 잘 모를 정도였는데, 눈덩이가 굴러가며 점점 덩치를 불려가듯, 하현은 매일 조금씩 늘어나는 내공에 성취를 느낄 정도였다.
또, 창궁대연심공을 운기하면서 몸에 쌓였던 탁기가 계속 배출되었고 점점 체질이 바뀌어 가는지 이제 하현은 온종일 수련을 해도, 또 잠을 적게 자도 피곤함이 덜하고 오히려 하면 할수록 체력이 늘어가는 현상을 경험하고 있었다.
“좋아. 옳은 길로 가고 있어.”
남궁세가에 들어온 지도 어느덧 3개월이 흘렀다.
그리고 그 기간 하현은 처음 들어왔을 때와는 비교도 못 할 정도로 강해졌다.
하현의 재능과 남궁규현의 체계적인 가르침은 폭발적인 성장을 만들어내기에 충분했다.
그는 지금껏 앞만 보고 수련했던 것과는 달리, 오늘은 지금까지 해온 것들을 되돌아보며 그의 성취와 상태를 점검했다.
‘하루가 다르게 발전해 가는 것이 눈에 보이는구나. 너희 중 성취가 가장 뛰어난 자들은 먼저 승급시험을 볼 수 있게 해주겠다. 마음의 준비를 해 두거라.’
하현은 바로 어제 남궁규현이 수련시간에 했던 말을 떠올렸다.
승급 시험.
이 시험을 통과하면 하현은 정식 청룡각 대원이 되며, 무공 수련에서도 기본기뿐만 아니라 상승의 무공도 익힐 소중한 기회를 얻게 될 것이다.
“기필코 통과해 내야만 해.”
총명한 하현은 현재 남궁세가 내에서 자신이 온갖 관심과 기대를 한 몸에 받고 있다는 것을 모르지 않았다.
불세출의 천재로 불리던 남궁민에게 필적하는···. 아니, 어쩌면 뛰어넘을지도 모른다는 소문이 돌고 있다는 것 역시 알고 있다.
‘지금까지 대원으로 가장 짧은 기간에 승급한 수련생도 일 년이라는 시간 동안 수련생이었다. 그러니 이번 시험은 그저 네 현재 능력을 평가해본다고만 생각해라. 떨어지는 것이 당연한 시험이야.’
남궁 규현은 하현의 부담을 지워주려 그에게 이야기해주었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는 것을 하현은 알고 있었다.
기대를 한 몸에 받고 있을 때, 그 기대를 저버리면, 평가는 바닥에 곤두박질칠 것은 불 보듯 뻔한 일이었다.
아니, 사람들의 기대는 차치하더라도, 할아버지의 총애를 얻기 위해서라도 통과해야만 한다고 다짐했다.
“좋아 한 번 더 하자.”
하현은 다시 검을 치켜들었다.
그리고는 다시금 물 흐르듯 창궁검법의 초식을 펼쳐내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