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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궁세가 천재 외손자-21화 (21/304)

21화

하현이 자소단을 흡수한 다음 날 수련시간.

남궁무룡은 하현의 몸을 점검했다.

“현아. 이리 와 보거라.”

남궁무룡은 하현의 혈을 짚어가며 샅샅이 몸을 살폈다.

어제 불타는 듯 노도와 같이 흐르던 기운은 이제 호수처럼 잠잠해졌다.

또한, 어떠한 탁기도 느껴지지 않았다.

“허허 영단을 섭취한 다음 날이라고는 믿기지 않는구나.”

무인이 내공을 단기간에 상승시키고자 할 때 섭취할 수 있는 영약은 세 가지 종류가 있다.

먼저는 내단.

짐승들이 자신의 수명을 넘어 살게 되면 영물이 되고, 영물이 되면 자연의 기를 모아두기 시작하는 내단이 생겨난다.

그 내단을 섭취하면 지금껏 영물이 모아왔던 자연의 기. 즉 내공을 흡수할 수 있다.

두 번째는 자연에서 만들어진 영약으로, 만년하수오, 산삼, 공청석유 등 자연의 기운이 자연스레 집약된 것들을 말한다.

이런 것들은 구하기가 극히 힘들지만, 영약 중에서 가장 효능이 좋다.

그리고 마지막으로는 영단이 있다.

영단은 사람이 인위적으로 만든 영약으로, 온갖 몸에 좋은 약재와 자연물 등을 사문이나 가문에서 내려오는 특유의 방법으로 조합한 것을 말한다.

소림의 대환단, 화산의 자소단, 무당의 태청단등이 대표적이다.

영단은 아무래도 자연 그대로가 아니라 사람이 만든 것이기에 가진 기운 자체가 적고, 흡수할 수 있는 양도 적다.

또 잘못 흡수하면 탁기가 스며들어 도리어 혈맥이 막히는 경우도 발생할 수 있다.

하지만 하현은 영단 중에서도 가장 투박하다는 자소단을 섭취했음에도 마치 자연에서 만들어진 영약을 흡수한 것처럼 탁기 하나 발견할 수 없었다.

“지금 네가 느끼기에 상태가 어떠냐?”

“아주 좋습니다. 전보다 몸이 더 가볍기도 하고요. 제일 좋은 건 기운이 이전에 비해 넘친다는 것입니다.”

“다행이구나.”

남궁무룡은 판단이 빠른 사람이었다.

그는 하현의 몸에 대해 이해하기를 포기하고 그저 받아들이기로 했다.

본디 영약을 흡수하면 응당 하루는 쉬며 그 기운을 정제하는 시간을 가져야 한다.

하물며 어제는 온몸의 기혈이 들끓는 것 같은 기현상도 있었기에 더욱 조심하는 것이 당연해 보였다.

하지만 하현은 그럴 필요도 없어 보였다.

자소단이 가졌던 기운은 원래부터 하현이 가지고 있던 기운인 것 마냥 자연스럽게 하현의 몸에서 흐르고 있었으니까.

그래서 남궁무룡은 오늘 한 발을 더 나가기로 했다.

“그러면 오늘은 하현이 네가 가진 기운을 더 잘 활용할 수 있고, 또 잘 키워낼 수 있도록 하는 심법을 배울 것이다. 구결을 일러줄 터이니, 잘 기억하도록 해라.”

“알겠습니다. 조부님.”

하현은 경청할 준비가 이미 되어 있는듯했다.

남궁무룡은 천천히 하현에게 ‘창궁대연심공’의 구결을 일러주었다.

‘지금도 가진 기운이 적지 않으니, 창궁대연심공을 먼저 일러 주는 것이 더 좋을 것이다. 현이라면 분명히 이해할 것이기도 하고.’

본디 이제 막 내공을 쌓기 시작한 남궁세가의 제자들은 대연심공 혹은 천뢰심공을 익히며 상승의 무학을 받아들일 준비를 하는 것이다.

대연심공이나 천뢰심공도 무림에서는 일절로 알아주는 심공이기는 하지만, 창궁대연심공만큼은 아니었다.

창궁대연심공이 가진 최고의 장점은 지닌 기운이 클수록 점점 더 많은 기운을 쌓을 수 있다는 것이다.

반대로 단점이라 하면 구결의 이해가 매우 어렵고, 또 익히더라도 본신의 기운이 적을 때는 쌓는 속도가 미미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는 것이지만.

“어······?”

남궁무룡이 한창 구결을 말하는 도중, 하현의 낸 소리에 흐름이 끊겼다.

이런 상황에 화가 날 법도 하건만, 남궁무룡은 온화하게 말했다.

“무슨 일이라도 있느냐?”

“아, 조부님 그게 아니라. 이미 제가 익힌 심공이 바로 그것이라 그렇습니다.”

“뭐라고?”

“예전에 어머니께서 구결을 말씀해주신 적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익히고 있었습니다.”

“그러면 지금 익히고 있는 심공이 창궁대연심공이라는 말이야?”

“네. 구결을 말해 볼 테니, 틀린 점이 있으면 말씀 부탁드립니다.”

하현은 빠른 속도로 구결을 말했다.

정말 당연하게도 남구무룡이 알고 있는 것과 토씨 하나 다르지 않았다.

“정확하구나. 내가 지금껏 왜 이 생각을 못 했을꼬.”

남궁무룡은 이마를 탁- 하고 쳤다.

조금만 생각했더라면, 신경을 조금 더 썼더라면 알 수 있는 일이었다.

아니, 애초에 물어보기라도 했더라면 쉽게 알 수 있는 일.

그러나 하현이 가진 기운이 삼재심법만으로 쌓은 것처럼 정순했다는 것과, 창궁대연심공은 단순히 구결을 알고 있는 것만으로는 깨우칠 수 없다는 것이 그에게 선입견을 품게 했다.

“창궁대연심공을 운기 하고자 할 때 어려운 점은 없었느냐?”

“네. 구결에서 일러준 대로 해야겠다는 마음이 일자, 기운이 따라왔습니다.”

“하하하. 그렇구나. 마음이 일자 기운이 따라왔다니.”

남궁무룡은 껄껄 웃었다.

하현은 깨달음이라는 과정이 필요 없었던 것이다.

“좋구나. 아주 좋아. 이렇게 되면 더 빠르게 되겠어. 좋다. 창궁검법은 배웠지?”

“네. 창궁검법에 이어 대연검법도 익혔습니다.”

“그래? 그러면, 이제 정말 제대로 된 검법을 익힐 때가 되었구나.”

“검법······!”

하현은 남궁무룡의 입에서 검법이라는 단어가 나오자 반색하며 반겼다.

“조부님. 보여드리고 싶은 게 있습니다.”

“보여주고 싶은 거?”

“네. 어제 수련을 하다가 검을 놀리는 법을 생각해봤습니다.”

“호오. 그래?”

남궁무룡은 흥미가 돋는 얼굴이었다.

무림에서는 검존이라 칭송받고, 이미 세수도 백 세를 바라보는 나이건만, 그는 아직도 새로운 무공에 대한 호기심이 가득했다.

아니, 그 호기심이 그를 이 자리에까지 올려주었을 것이다.

“제가 한번 해봐도 될까요?”

“그래라. 어서.”

하현은 검을 들고 기수식을 취했다.

시작은 평범한 삼재검법의 기수식이었다.

“후우······.”

하현은 심호흡을 한 번 한 후에 검을 휘둘렀다.

횡소천군과 태산압정은 건너뛰고 바로 팔방풍우로 들어간 하현은 어제 검을 쏘아내던 감각을 일깨웠다.

휘이이이익-!

어제의 그 바람이 불어닥쳤다.

하현의 모습을 보는 남궁무룡의 눈은 화등잔만 해졌다.

‘이건 내가 민이한테 가르쳐줬던…?’

직전제자가 아니라고 하여 가르침을 전혀 주지 않는 것이 아니다.

실제도로 남궁무룡은 천고의 기재라는 남궁민에게 이런저런 조언과 도움을 많이 주었고, 그 덕에 남궁민은 크고 작은 깨달음을 많이 얻어가기도 했다.

휘리리릭-!

그때 하현의 몸이 팽이처럼 돌기 시작했다.

고오오오-

빠른 회전과 그 안에 담겨 있는 기운 덕택에 검은 웅장한 소리를 내며 돌아갔다.

몇 바퀴를 더 돌았을까? 회전하는 속도가 점차 줄기 시작하더니, 이윽고 하현이 연무장 위에 고고하게 서 있었다.

“휴우-.”

하현은 할아버지 앞에서 처음으로 선보이는 무공이 혹시나 잘되지 않을까 염려하여 긴장했었는지 큰 숨을 몰아쉬었다.

“이건….”

“제가 어젯밤에 삼재검법을 수련하다 더 나아가봤어요. 이름은 폭풍검이라고 지었습니다.”

“그래. 폭풍이로구나.”

남궁무룡은 고개를 끄덕였다.

하현의 말대로 그 검법은 폭풍이라는 말 이외에는 어울리지 않을 것 같았다.

“대단하구나. 여태껏 어째서 아무도 이런 생각을 못 했을꼬.”

남궁무룡은 순수하게 감탄했다.

그가 보기에도 조금 전 하현이 보여준 폭풍검은 보통의 위력이 아니었다.

상승무공에서나 볼 법한 위력의 검법이 삼재검법에서 파생되어 나온 것이다.

허나 남궁무룡도 깨닫지 못하고 있지만, 이는 하현이 가진 특수한 상황 덕분에 가능한 일이기도 했다.

하현은 무공에 대한 큰 깨달음과 영약으로 인해 어지간한 무인보다도 충만한 내공을 가지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삼재검법에만 매달렸다.

대부분의 무인들, 아니 거의 모든 무인들은 하현 정도의 성취에 다다르면 삼재검법의 수련은 그만두고 상승의 무공만 수련한다.

그렇기에 삼재검법을 더욱 발전시킬 생각도 하지 못했던 것이다.

“아직 많이 미숙하지만, 조금 더 갈고 닦아 볼 생각입니다. 조부님.”

하현은 마치 재미있는 장난감을 쥔 어린아이처럼 눈동자가 반짝반짝 빛났다.

남궁무룡은 그런 하현을 보고 흐뭇한 마음이 일었으나, 이내 냉정을 되찾고 말했다.

“대단한 발상이고, 훌륭한 무공이라는 것은 틀림없다.”

“그래요?”

“허나, 내가 보기에는 치명적인 단점이 있는 무공이로구나.”

“단점이요?”

“이 검법은 너와 비슷한 상대나 강한 상대에게는 쓰기 어려울 것이고, 너보다는 약하지만, 다수의 적을 상대할 때 유리할 것으로 보이는구나.”

“아…!”

남궁무룡은 하현의 반응에 씨익 미소 지었다.

이번에도 하현에게는 부가 설명 따위는 필요 없었다.

“제 검이 상대의 검을 가르지 못하고, 퉁겨 나가며 회전이 멈추는 순간, 오히려 엄청난 허점을 보이게 되겠군요.”

“그렇다. 그렇기에 검을 한 번에 가르지 못할 것 같으면 검을 흘려서 회전을 멈추지 않는 방법도 연구해야 할 것이다.”

“조부님 덕분에 방향을 잡았습니다. 감사합니다!”

남궁무룡은 곧장 대답하는 하현이 귀여워 머리를 몇 번 쓰다듬어 주었다.

“네가 좋은 검을 보여주었으니, 나도 너에게 보여주어야겠지?”

그리고 조금 긴 듯하지만, 아주 정교해 보이는 자신의 검을 집어 들었다.

“앞으로 네가 배울 검법은 수없이 많다. 검법을 배우는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하느냐?”

“음······.”

하현은 조금 생각해보다 입을 열었다.

“아주 효율적이거나 혹은 상대가 생각지도 못할 검로를 언제든지 펼칠 수 있도록 몸에 익혀두는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맞다. 역시 한 번에 맞췄구나. 밥을 먹다가도, 잠을 자다가도 내가 원하는 검술을 펼칠 수 있도록 하는 것. 그것이 검법의 의의다. 그런데, 단순히 초식만을 완벽히 익힌다고 하여 그게 전부일까?”

“아닐 것 같습니다.”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하느냐?”

하현은 또다시 생각에 잠겼다.

남구무룡은 그런 하현을 여유로운 표정으로 기다려 주었다.

조금 전보다는 시간이 더 흐른 후 하현은 입을 열었다.

“상대···. 상대방이군요.”

“허허. 그렇다. 정말 놀랍구나.”

하현의 대답은 짧았지만, 남궁무룡은 이미 하현이 모든 것을 이해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남궁무룡은 하현이 기특한지 애정이 듬뿍 담긴 눈으로 바라보며 부연 설명을 시작했다.

“검이라는 것은 누군가와 검을 나누기 위함이다. 혼자서 아무리 검을 휘둘러 봤자, 그건 칼춤과 다를 것이 없지. 검법을 익힐 때 초식을 외우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상대의 검이 들어오는 것을 보고, 그에 맞는 검법을 펼치느냐이다.”

“그렇기에 대련을 통해 수련하면 더욱 효율이 좋다는 것이군요.”

“바로 그것이지.”

남궁무룡은 하현에게 보란 듯이 검을 들어 기수식을 취했다.

“네가 배울 것은 이것이다. 창궁대연검법이라고 하는 검법이지. 네가 익히고 있는 창궁대연심공과 아주 잘 어울리는 검법이다.”

남궁무룡은 말이 끝남과 동시에 창궁대연검법을 펼치기 시작했다.

간결하면서도 힘 있는 움직임의 검법이었다.

너무 화려하지도, 또 너무 직선적이지도 않은 검법.

부와앙- 부앙-

본디 창궁대연검법은 굳이 따지자면 초 상승의 검법이 아닌, 중상급의 검법이다.

하지만, 남궁무룡의 손에서 펼쳐지니 또 다른 모습이었다.

진심을 담은 검이 아닌 하현에게 시범을 보이기 위한 검법이건만, 공간을 가르는듯한 착각마저 들게 하는 검이었다.

‘이것이···. 검존의 검.’

하현은 그의 검을 보고 개안하는듯한 느낌이 들었다.

지금까지 그가 직접 본 검법 중 가장 뛰어난 검법은 남궁민의 그것이었다.

남궁민의 검도 훌륭하고 아름다웠다만, 그것은 갓 핀 꽃봉오리의 아름다움이랄까?

남궁무룡은 만개한 꽃밭을 연상케 했다.

한 송이의 꽃이 아닌, 사방이 빽빽이 꽃으로 가득한 꽃밭.

“잘 봤느냐?”

“감사합니다. 조부님.”

그런데 하현의 표정이 탐탁지 않아 보였다.

하현은 남궁무룡의 무공 실력과는 별개로, 조금 전 남궁무룡이 보여준 검법에서 이상한 점을 느꼈다.

“왜. 무슨 문제라도 있느냐?”

“문제라기보다는…. 이상한 점이 하나 있습니다.”

“이상한 점?”

“조부님께서 조금 전 보여주신 검법은 상승의 무공이라는 것은 틀림없어 보입니다. 그런데…. 어딘가 어색하군요.”

“어색해?”

남궁무룡은 조금 전보다 더 놀란 모습이었다.

“어디가 어떻게 이상한지 알겠느냐?”

“한 번밖에 못 봐서 정확하게는 말씀을 못 드리겠으나….”

하현은 조금 전 남궁무룡이 보여준 검법을 상기하며 입을 열었다.

“이질적인 두 검법이 붙어 있는 것 같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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