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화
“뭐라고?”
남궁무룡은 굉장히 놀란 얼굴로 되물었다.
“제가 느끼기에는 이 검법은 하나이나, 하나가 아닙니다. 그러면서도 굉장히 초식이 익숙하기도 한 것이······.”
“비밀을 한 가지 말해 주자면, 창궁대연검법은 네가 이미 익힌 창궁검법과 대연검법 두 가지의 검법이 합쳐져 만들어진 검법이다”
“아!”
하현은 뭔가를 깨달은 표정이었다.
남궁무룡은 이번에는 놀라지도 않았다.
이제는 즐거운 얼굴로 하현의 다음 말을 기다릴 뿐.
“그래서 이질적인 두 검법이 붙어 있는 것 같았군요. 그런데 이건…. 음….”
“그래, 네 생각을 얼른 말 해봐라.”
하현은 뭐라고 더 설명하려다 아예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남궁무룡에게 고개를 푹 숙이며 말했다.
“조부님. 한 번만 더 보여주실 수 있으십니까? 한 번만 더 보면 확신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확신?”
“네. 제가 지금 떠오르는 것이 맞는지에 대한 확신 말입니다.”
“좋다. 조금 떨어지거라.”
남궁무룡은 흔쾌히 한 번 더 창궁대연검법의 초식을 펼쳤다.
하현이 확신을 가졌다는 말을 조금이라도 빨리 듣고 싶어서일까?
알게 모르게 그가 펼치는 초식은 첫 번째보다는 조금 빨랐다.
그렇지만, 그 동작은 더욱 크고 명확했다.
조금이라도 하현이 이 초식을 더 잘 받아들이고 분석할 수 있게 하려는 마음이었다.
“자. 이제는 정리되었느냐?”
“감사합니다. 조부님! 아주 조금만 더 생각해야 할 것 같습니다.”
곧바로 생각에 빠진 하현은 뭐가 그리 좋은지 생글생글 웃고 있었다.
‘저토록 즐거워하다니.’
남궁무룡이 보았을 때, 지금 하현의 얼굴은 어린아이가 장난감을 가지고 놀 때와 같은 즐거운 얼굴이었다.
무공을 저토록 즐기는 자를 본 적이 있던가?
아니, 여태껏 본 적이 없다.
남궁무룡은 속으로 고개를 저었다.
본인 스스로도 어디서 둘째가라면 서러울 무공광(狂)이지만, 하현이 무공에서 즐거움을 느끼는 정도는 자신을 이미 아득하게 벗어났다.
하현은 생각이 끝났는지 남궁무룡에게 입을 열었다.
“말로 표현하면 제 뜻이 온전히 전해지지 않을까 두려워 제가 직접 해보아도 되겠습니까?”
“그러거라.”
스르릉-
하현이 자신의 검을 뽑아 들었다.
그리곤 초식을 펼치기 시작했다.
우웅-
남궁무룡같은 강대한 기운은 아니었으나, 영약을 흡수한 덕분인지 무시 못 할 기세가 흘러나왔다.
“엇?”
그런데 하현이 펼치는 검법이 이상했다.
첫 시작은 분명 창궁대연검법과 같았다.
그렇기에 남궁무룡은 하현이 깨달았다고 하는 것이 이 검법을 두 가지로 분리하는 것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창궁대연검법은 창궁검법과 대연검법을 이어붙인 검법이니까.
그리고 분리된 두 검법에서 무언가를 얻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하현이 지금 펼치는 것은 남궁무룡의 예상을 아득히 벗어나는 것이었다.
“창궁무애검법?”
그랬다.
하현이 어설프게나마 펼치고 있는 검법은 남궁세가의 상징이나 다름없는 창궁무애검법이었다.
비록 세세한 동작이나 초식에 내공을 싣는 요령은 매우 미숙하고 어색했지만, 그 태와 형만은 창궁무애검법의 검로를 따라가고 있었다.
“이, 이 검법을 어떻게?”
창궁무애검법은 검존마저도 극성에 달하지 못하고 팔 성에 머물러 있지만, 그를 검존의 자리에까지 올려주었다.
남궁기현이나 남궁기철도 익히고는 있다고 하지만, 그 둘도 이제 막 이 성의 경지에 올랐을 뿐인 초 상승의 검법.
‘창궁대연심공처럼 영령에게 창궁무애검법 마저 배운 것인가?’
남궁무룡이 고개를 저었다.
하현은 얼마 전까지만 해도 삼재 검법도 몰랐었다.
애초에 검이라는 것을 잡아본 것이 남궁세가에 오면서라고 했다.
게다가 결정적으로, 남궁영령은 창궁무애검법을 전수받은 적도 없다.
‘그 말뜻은······.’
일단 남궁무룡은 추측을 자제하고 하현이 하는 것을 끝까지 지켜보았다.
휘익-
위에서 아래로 내려치는 동작을 끝으로 하현이 검을 멈추었다.
하현의 표정을 무언가 개운치 않다는 표정이었다.
“일단 이 정도인데···. 연구를 조금 더 해봐야겠습니다.”
“조금 더 자세히 얘기 해보거라. 이 검법을 어떻게 펼친 것이지? 어디서 배운 것이야?”
하현은 고개를 저었다.
“어디서 배운 적은 없습니다. 다만….”
“다만?”
“창궁대연검법을 만드신 분이 어느 사조님이신지는 제가 잘 모르지만, 이런 불편한 검법을 창안하신 이유를 생각해봤습니다.”
“불편한 검법이라니?”
하현이 대답 대신에 검을 들고 한 초식을 펼쳤다.
검을 들고 하늘이라도 가르려는 듯 동작이 크고 시원시원한 검법이었다.
“이 검법이 창궁검법입니다.”
“그렇지.”
그리고 이번에는 느리지만, 동작 하나하나에 변화의 묘를 담아내려는 검법이었다.
“그리고 이것이 대연검법.”
남궁무룡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사조님께서는 각자의 장점이 확실한 두 검법을 하나로 합치고 합쳐 시원시원하고 빠르면서도 변화의 묘를 가득 담은 검법을 만들고 싶으셨던 것 같습니다. 그렇게 만들어진 첫 시도가 바로 창궁대연검법인 것으로 보입니다.”
남궁무룡은 어느덧 하현의 말에 경청하고 있었다.
“그런데, 사조님께서는 거기에 만족하실 생각이 없으셨던 것으로 보입니다. 어색한 부분은 더 자연스럽게. 그리고 불필요한 부분은 더욱 제거하며 가장 간결하고 빠르지만, 그 안에 변화의 묘를 담은 검법을 만들고 싶으셨을 것이라는 생각까지 들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걸 해낸 것이 창궁무애검법이다?”
“넵. 검법의 이름은 몰랐지만요.”
남궁무룡은 팔십 평생을 살며 놀란 일 중에 오늘이 가장 크게 놀랐다.
정사대전에서 전 사도련주가 어둠 속에서 불의의 습격을 했을 때보다도 더욱.
“그 말뜻은, 창궁대연검법에서 결국 창궁무애검법을 유추해 냈다는 것이냐?”
“그렇습니다. 그런데 아직은 많이 부족합니다. 이 동작 다음에 어떻게 진행될지 감이 잡히지 않습니다. 아직 제가 그 단계까지 오르지 못하여 시야가 트이지 못한 것으로 보입니다. 감사합니다. 조부님. 더욱 정진해야 할 이유가 생겼습니다.”
하현이 고개를 숙이며 감사의 뜻을 전했지만, 남궁무룡은 아무 대답이 없었다.
그가 놀란 이유는 하현이 놀라운 모습을 보였기 때문이 아니었다.
진짜 이유는 창궁무애검법이 창궁대연검법에서 발전했다는 것은 알았으나, 이 무공을 창안한 사조께서 어떤 생각을 하고 검법을 만드셨는지는 전혀 생각해본 적도 없다는 발상의 전환에서였다.
‘아, 창궁무애검법이 막혔을 때는 오히려 창궁대연검법을 돌아봐야 했구나. 아니, 정작 나는 창궁검법과 대연검법을 모두 완벽하게 익히고 있다고 말할 수 있나?’
남궁무룡은 그의 마음속에서 폭풍 같은 무언가가 치밀어 오르는 것을 느꼈다.
이런 감각은 무공을 수련한 수십 년의 시간 동안 몇 번이나 느껴봤던 감각이었다.
그는 이 감각을 이렇게 부르곤 했다.
‘깨달음’이라고.
남궁무룡은 눈앞에 하현이 보이지 않는다는 듯 연무장에서 홀린 듯 검을 휘두르기 시작했다.
시작은 창궁검법이었고, 바로 뒤이어 대연검법을 펼쳤다.
그리고 쉬지도 않고 이어진 검법은 조금 전 하현에게 두 번이나 보여주었던 창궁대연검법이었다.
‘아······!’
하현은 그런 남궁무룡의 모습을 보며 속으로 쉴 새 없이 감탄하고 있었다.
분명 자신과 같은 무공이 분명하건만, 남궁무룡의 무공과 자신의 무공은 하늘과 땅 차이라는 말 그대로였다.
꽈악-!
하현은 저도 모르게 주먹을 꽉 쥐었다.
순수하게 무인으로서 하현은 자신의 할아버지를 따라잡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털썩
남궁무룡은 창궁대연검법의 초식을 모두 끝마치고 자리에 털썩 가부좌를 틀고 앉았다.
‘아버님께서 창궁무애검법을 전수해 주실 때, 이 검법은 기본기가 가장 중요한 검법이라고 하셨었지.’
아버지의 그 말이, 지금 남궁세가에서 기본기에 집착하다시피 하는 분위기를 만들어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검존의 아버지는 지금의 검존만큼 강하지는 못했다.
그렇기에 기본기가 중요하다는 말은 당신께서 몸으로 익히신 것이 아니라, 저 먼 선대로부터 내려오는 말일 터.
‘그 기본기를 나는 오해하고 있었다. 창궁무애검법 안에서만 해답을 찾으려 하니 그 답이 멀리 있었던 거야. 결국, 모든 것은 이어지는 것인 것을.’
그는 자신의 상태를 객관적으로 관조했다.
그리고 지금 그가 창궁무애검법에서 이해하지 못했던 것을 대연검법과 접목하여 생각하자······.
‘아! 이리도 간단한 것이었다니!’
그는 작은 깨달음을 얻었다.
검법에서 변(變)이란 상대의 더 화려하고 멋진 검을 위한 것이 아니다.
그저 내가 상대하는 그 상대를 아주 잠시라도 눈속임하는 것.
그것이 바로 변화를 주는 의미인 것이다.
번쩍-
남궁무룡이 눈을 떴다.
그는 검을 들고, 천천히 창궁무애검법을 펼치기 시작했다.
굉장히 느리지만 정확한 동작이었다.
지금껏 수백, 수천 번 이상을 반복한 검로이건만, 그는 오늘이 처음이라는 듯 정성스레 검을 휘둘렀다.
‘검법이 화려해야 할 이유가 있었을까?’
검은 상대에게 닿을 수 있는 최단의 거리를 찾아 들어가고, 변화는 눈 한 번 깜짝일 새면 충분하다.
그의 검은 눈 깜빡임보다 빠를 테니.
화려함을 포기하자 언뜻 보기에는 창궁무애검법이 무미건조해진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화려한 검법이든, 무미건조한 검법이든, 검격에 맞으면 목이 꿰뚫리는 것은 매한가지다.
샤악-!
화려함을 포기하니 도리어 예리함이 살아난다.
상대의 눈을 현혹하려 검을 흔들며 손실되었던 힘과 기운을 더욱 효율적으로 쓸 수 있게 된다.
‘검법의 본질은 결국 상대를 죽이는 것.’
남궁무룡은 왜인지 한없이 웃고 싶은 것을 겨우 참아내며 계속해서 검을 휘둘렀다.
창궁무애검법을 처음 전수 받았을 때처럼 천천히. 그리고 정성스럽게.
샥- 샤악- 샤악-
연무장에는 예리한 검이 흘러가는 소리만 울려 퍼졌다.
* * *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이윽고 남궁무룡의 검이 멈추었다.
검집에 멋지게 그의 검을 갈무리해 집어넣은 남궁무룡이 가장 먼저 한 것은, 웃음이었다.
“하···. 하하···. 하하하하.”
검법을 멈춘 남궁무룡은 파안대소하기 시작했다.
이십 년.
장장 이십 년 동안 팔 성에서 그를 괴롭히던 창궁무애검법이 드디어 구 성의 경지가 된 것이다.
“겨우, 이런 것에 이십 년이라는 시간을 허비했다니,”
원래 그렇다.
벽을 넘지 못할 때는 태산과도 같이 높게 보이는 벽이건만, 막상 넘고 보면 아무것도 아닌 것.
남궁무룡은 재빨리 고개를 돌려 하현을 찾았다.
“현아.”
“조부님. 축하드립니다.”
“하하하.”
하현은 어디서 본 것은 있는지 검을 빼 들고 남궁무룡의 호법을 서고 있었다.
남궁무룡은 하현에게 성큼 다가가 그를 꽈악 안아 주었다.
“네가, 진정 복덩이로구나. 네 덕분에 알게 되었어.”
“아닙니다. 제가 아니었어도 조부님이시라면 분명 머지않아 깨달음을 얻으셨을 것입니다.”
남궁무룡이 힘을 가득 주어 세게 안았기에 답답할 만도 하건만, 하현은 가만히 안겨 있었다.
그런 품 안의 하현을 바라보는 남궁무룡의 머릿속에는 이 세글자만이 떠올랐다.
‘대종사(大宗師). 이 아이는 대종사가 될 자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