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화
남궁무룡이 하현에게 도리어 영감을 얻어 무공이 진일보된 다음부터, 그는 하현을 가르치는 것에 더욱 힘썼다.
솔직히 말해 남궁무룡 역시 최고의 스승은 아니었다.
물론 취월걸개보다야 백 배는 나았지만.
“자. 검격에 힘을 더 싣고 싶을 때는 검이 더 무겁다는 느낌으로 쳐내려 가면 된다.”
그는 주로 느낌이나 감각을 말했기 때문인데, 사실 그 역시도 엄청난 천재였기 때문이다.
천재는 좋은 스승이 되기 어렵다고 했던가.
그는 누구보다 자신 있는 무공이지만, 하현에게 구체적으로 상세히 설명하는 것을 힘들어했다.
하지만, 그와 반대로 하현은 최고의 제자였다.
“아···. 그렇군요. 그저 진기를 담아내는 것이 아니라, 만근추의 수를 검에도 적용해내면 된다는 말씀이시죠?”
“맞다. 맞아.”
하현은 무언가를 가르쳐주면 그것에 대한 이해력이 빠를 뿐만 아니라, 바로바로 응용해내는 능력마저 갖춘 천재였다.
남궁무룡이 가르치는 재미에 푹 빠진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그리고 그들의 수련의 마지막에는 꼭 서로의 생각을 나누는 시간이 있었다.
“그러니까, 하현이 네 말은 창궁무애검법의 사초식이 팔을 위로 뻗어가야 하는 자세가 아닌, 머리 위에서 굽히며 넘어가야 한다는 말이냐?”
“네. 창궁검법의 십이초에서 넘어온 초식으로 보이는데, 창궁검법 십이초는 공격을 위한 초식이 아닌 반격을 위한 초식이니까요. 상대의 검을 쳐내기 위해서는 이 자세가 더 용이할 것 같습니다.”
“그렇구나. 창궁겁법의 십이초에서 가져온 것이라는 것은 나도 동의한다. 하지만 창궁무애검법을 창안한 사조께서는 그 반격을 위한 초식을 출수하는 초식으로 변경하고 싶으셨던 건 아닐까? 그래서 십삼초에서는 곧바로 반격이 나오는 것이고.”
“아···. 그렇군요. 거기까지는 생각지 못했습니다.”
남궁무룡과 하현은 제법 수준 높은 대화를 나누었다.
가끔씩은 남궁무룡도 하현이 아득히 어린 나이라는 것을 잊고 즐겁게 토론하곤 했으니까.
그들은 이렇게 함께 검에 대해 연구하고, 검법을 수정하고 보완해 나갔다.
그리고 그 덕분에 하현의 검술 실력은 눈에 띄게 발전했고, 또 알게 모르게 남궁무룡마저 성취가 있었다.
그들의 창궁무애검법은 점점 완벽 해져가고 있었다.
* * *
남궁무룡의 마음 같아서는 모든 시간을 하현의 성장에만 힘쓰고 싶지만, 그는 남궁세가의 가주였다.
이런 대 세가의 가주는, 응당 가주로서 해야 할 일들이 산재한다.
그중에 주변 마을을 시찰하며 세가 주위의 동향을 살피는 것도 가주의 일 중에 하나다.
그리고 하현은 이번 시찰에는 할아버지와 함께 동행하기로 했다.
호위는 당연하게도 필요 없었다.
남궁무룡 그가 검존인데 호위가 무엇에 필요하랴.
장원의 문 앞을 나서자, 바로 앞에 있는 대장간 앞에 하현이 전에도 본 적 있던 방산이 나와 있었다.
“방산. 건강하게 잘 지냈는가.”
“가주님! 저는 항상 세가와 가주님 덕분에 잘 지냈습니다. 오랫동안 무림맹에 갔다 오셨다 들었습니다.”
“그렇네. 우리 막내손자가 자네에게 검을 받았다면서 자랑을 그렇게 하더군. 고맙네.”
“기뻐해 주셨다니 감사합니다. 공자.”
“아닙니다. 제가 감사합니다.”
방산은 하현에게도 목례하며 말했다.
하현이 남궁소화를 자신의 대장간에 두고 장원 안으로 홀랑 들어가 버린 사건이 생각났는지 웃음이 가득한 얼굴이었다.
“자, 그럼 계속 수고하시게. 갈 길이 멀어서.”
“네. 가주님. 또 들러주십시오.”
남궁무룡은 장원 밖 마을을 한 바퀴를 돌았다.
작은 마을이 아님에도, 남궁무룡은 꽤 많은 사람을 만났다.
“황규. 아버님은 좀 쾌차하셨나?”
“아이고, 저번에 보내주신 의원 덕분에 아주 정정하십니다요.”
농사꾼으로 보이는 청년에게 먼저 인사를 건넨다던가.
“아이고, 가주님! 이게 얼마 만입니까. 얼굴 뵌 것도 오랜만인데 여기, 이거 하나씩 잡수십시오!”
가판에서 당과를 파는 상인이 저 멀리서 남궁무룡을 먼저 보고 달려와 팔고 있던 당과를 하나씩 쥐여주기도 했다.
“가주님! 뒷산에서 호랑이 울음소리가 들려 무서워서 나무를 하러 갈 수가 없습니다.”
“최대한 이른 시일에 세가 무인들을 보내도록 하겠네.”
또 어떤 사람은 남궁무룡에게 이런 식으로 요청이나 부탁을 하기도 했다.
남궁무룡은 어느 한 사람 귀찮아하지 않고 모두와 인사를 나누고 이야기를 들어주었으며, 그들이 하는 선물들도 거절하지 않았다.
물론 가는 곳곳마다
“이 아이가 내 손주라네. 잘 생겼지? 영령의 아들이네.”
라며 하현의 자랑도 온 곳에 하는 것을 잊지는 않았고 말이다.
마을 사람들은 하현에게 잘 생겼다며 입을 모아 칭찬했고, 뭐 하나라도 더 쥐여주지 못해 안달이었다.
“이제 마지막으로 청룡표국만이 남았구나. 그 전에 잠시 쉬었다 갈까?”
“네. 조부님.”
남궁무룡과 하현은 평평한 바위 위에 앉았다.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앉아 있는 조손의 모습이 누군가 봤다면 흡사 소풍이라도 왔냐고 물어볼 만했다.
와자작
남궁무룡이 시원하게 당과를 씹었다.
그는 나이답지 않게 이런 주전부리를 좋아했다.
하현도 그를 따라 당과를 먹기 시작했다.
“조부님께서는 어떻게 마을 사람들을 전부 아시는 것 같습니까?”
“내가? 하하. 전부는 아니다만 많이 알고 있는 것은 맞지. 이곳에서 오래 살았으니 말이다. 정사대전 십 년 동안 내가 집을 한 번도 돌아온 적이 없으니, 칠십 년을 여기서 살았구나.”
남궁무룡은 흘러간 세월이 헛헛한지 웃어버렸다.
그는 먼 곳을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마을 사람들이 행복해 보이지 않더냐?”
“네. 다들 얼굴에 구김이 없었습니다.”
“그렇지? 우리 남궁세가는 그들의 울타리나 다름없다. 사람을 물어가는 산짐승이 있다면 우리 무인들이 처리해준다. 물론 산적이나 비적들도 마찬가지다. 흉작이 들면 세가의 곳간에서 곡식을 나누어 주지. 나는 진심으로 그들이 우리와 함께 삶에 있어 좋은 마음으로 살았으면 한다.”
남궁무룡이 하는 말은 어려울 것이 없었다.
하지만 하현은 고개를 갸웃했다.
“솔직히 잘 모르겠습니다.”
“우리 남궁세가가 왜 이렇게까지 하는지 말이냐?”
“네. 세금을 걷는 것도 아니고, 보호비를 받는 것도 아닌데······.”
하현은 말끝을 흐렸다.
마치 왜 득도 안 되는 일을 하냐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남궁무룡은 생긋 웃었다.
“난 이들을 내 가족이라고 생각하니까. 이렇게 만나고 이야기할 때마다 나도 즐겁고 행복한 감정이 든단다.”
“가족이요?”
“나는 가족이라는 것을 어렵게 생각하지 않는다. 누군가 힘겨울 때 진심으로 도와줄 수 있는 게 가족이라고 생각한다. 우리가 이렇게 이들에게 항시 마음을 준다면, 언젠가는 우리가 힘들 때는 그들도 우리를 생각해주지 않겠느냐? 물론 우리 남궁세가가 힘들어질 일은 앞으로 존재하지 않겠지만.”
남궁무룡은 허허 웃었다.
하현은 그런 외조부에게 따뜻한 기운이 흘러나오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칠십 년이나 같은 곳에서 살았더니 자연스럽게 생기는 생각이더구나. 그리고 하현이 네가 내 나이까지 이곳에서 살게 되면, 공교롭게도 너도 나와 같은 시간을 이곳에서 살게 되는 것이고.”
하현은 할아버지의 눈빛이 너무나도 따뜻해 슬쩍 시선을 아래로 내리며 말했다.
“저는, 여기서 태어나고 자라지 않았는데 괜찮을까요?”
그가 남궁세가에 온 지도 벌써 6개월.
하지만 하현은 아직도 자신이 이방인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지금까지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던 게야?”
하현이 미미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줄은 꿈에도 몰랐구나.”
남궁무룡이 하현의 손을 잡았다.
“하현아. 너는 우리 세가의 수많은 식솔이 모두 이곳에서 태어났다고 생각하는 건 아니겠지?”
“아···. 아닙니다.”
“규현을 비롯한 세가의 무인들이. 또 장칠이나 주완 같이 우리의 허드렛일을 봐주는 사람들이 이곳을 집이라고 생각지 않는 것 같으냐?”
하현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하현이 보기에도 세가에 있는 모두는 이곳을 진정 자신의 집으로 여기고, 자신은 남궁세가의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듯했으니까.
“모든 것은 마음먹기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다. 그들도 서로를 가족으로 여기는데, 하물며 너는 내 피가 이어져 있지 않느냐?”
“그것이 외가라도요?”
남궁무룡은 듣는 이도 아무도 없건만, 하현의 귀에 대고 작은 소리로 말했다.
“난 사실 네 엄마를 삼촌들보다 더 예뻐했단다.”
“하하하. 정말요? 삼촌들이 들으면 속상해하시겠는데요?”
“아마 그 아이들도, 이미 그 사실을 알고 있을 수도 있다.”
하현과 남궁무룡은 잠시 웃으며 이야기를 나누다, 불현듯 든 남궁영령에 대한 생각에 조금은 분위기가 가라앉았다.
“어머님은···. 제가 행복하길 바라시겠죠? 복수 따윈 잊고.”
“음···. 솔직히 말하자면······.”
하현의 눈이 똘망똘망해졌다.
남궁세가의 가족들은 하현에게 영령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것을 의도적으로 피했기에.
“영령이의 성격이라면, 네가 천하제일인이 되어 복수를 해주기를 원할 수도 있겠구나.”
“그래요?”
“그렇단다. 오죽하면 별호가 독심미화겠느냐···. 내 분명 그렇게 가르치지 않았거늘······.”
“어머니에 대한 것 좀 말해주세요. 제가 지금 지내는 방도 원래는 어머니의 방이었다면서요?”
“그 방구석을 잘 보면 아직도 그을음이 져 있을 것이다. 영령이 여덟 살 때였던가···? 그 방에서 화섭자를 가지고 놀다가···.”
남궁무룡은 웃는 얼굴로 이제는 세상에 없는 그의 딸에 대한 추억을 이야기했다.
하현도 밝은 표정으로 그 이야기를 들었다.
하지만 하현은 그 이야기가 듣고 싶었다.
자신의 어머니가 이곳에서 어떤 생활을 어떻게 했는지에 대한 이야기들.
그것이 하현이 어머니의 그리움을 충족하는 방법이었다.
“어머니는 굉장한 말괄량이셨겠네요.”
“그랬단다. 소화가 영령을 어찌나 닮아가는지······.”
두 조손은 시간이 가는지도 모르고 떠들었다.
남궁무룡은 하현에게 무공만을 가르치지 않았다.
자신의 생각과 사고방식.
그리고 가주로서 식솔들을 생각하는 마음.
하현은 그 모든 것을 남궁무룡에게 배워가고 있었다.
* * *
한참을 떠들던 남궁무룡은 이제 아직 시찰이 끝나지 않았다는 것을 깨닫고는 하현을 안아 들고 경공을 펼쳐 청룡표국까지 한달음에 도착했다.
“이곳이 우리 세가에서 운영하는 표국이다. 세가에서는 아무런 생산 활동을 하지 않는데, 어떻게 그렇게 풍족한지 궁금했지?”
“네. 궁금했습니다.”
“세가의 무인들이 다른 문파나 세가의 일에 도움을 주고, 사례금을 받아오는 경우도 있지만, 그건 극히 미미하다. 주된 수입원은 바로 이곳에서 나오지.”
남궁세가에 비할 바는 못 되지만 제법 널찍한 크기였고, 입구에 청룡표국(靑龍鏢局)이라고 적힌 멋들어진 현판이 인상적이었다.
“이 현판은 내가 직접 쓴 거란다. 하하.”
남궁무룡은 자신이 말하고도 민망한지 헛웃음을 켜며 표국 문을 열고 들어갔다.
하현은 남궁무룡과 대화를 나누기 전보다 훨씬 가까워진 것을 느끼며 그를 따라 들어갔다.
“국주. 여기 있는가?”
남궁무룡이 외치자 표국 안쪽에서 무언가 우당탕탕 넘어지는 소리가 들리더니 누군가 튀어나왔다.
‘고수다······!’
하현은 순간적으로 그가 보이는 기도에 놀랐다.
그는 최소한 남궁기철이나 기현정도는 되어 보이는 고수로 보였다.
“아니, 가주님! 연락도 없이 여기까지 무슨 일이십니까?”
“돌아볼 때가 되어 도는 중에 들렀지.”
“잘 오셨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드릴 말씀도 있었습니다. 이쪽은···. 하현 공자로군요?”
어떠한 소개도 없었건만, 그는 하현을 한눈에 알아보았다.
“반갑습니다. 언제고 제가 세가로 찾아가야지 생각만 하고 있었는데, 청룡표국의 국주를 맡고 있는 남궁휘연이라고 합니다.”
“남궁세가의 신하현입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하현은 이번에는 당당하게 신하현이라고 밝혔다.
그도 알게 된 것이다.
그의 성이 신이든, 남궁이든 상관없이 그는 세가의 일원이라는 것을.
“듣던 대로 굉장한 재능이 느껴지는 듯합니다. 하하. 제가 사람 보는 눈 하나는 정말 기가 막히거든요.”
“그래. 네 눈이 좋은 건 모두가 다 알고 있지. 만약 네가 규현처럼 차분한 성정만 가지고 있었다면, 너에게 청룡관 사범을 맡겼을 텐데 말이다.”
“하하. 모두 옛날 일 아니겠습니까? 저는 자유로운 표국이 좋습니다.”
남궁휘연은 자유분방한 사람이었다.
하현은 지금까지 남궁무룡을 이렇게 편하게 대하는 사람을 처음 보았다.
심지어 외삼촌들보다도 더욱 친근하게 대하는 모습이었다.
‘남궁…. 휘연.’
하현은 남궁휘연의 모습과 이름을 머리에 새겼다.
그는 휘연이 참으로 멋지다는 생각이 들었다.
‘바람을 닮았구나.’
바람을 닮은 사람.
그런데 휘연이 남궁무룡에게 대하는 것을 보면 틀림없이 아버지를 대하는 듯한 모습이다.
하현은 그 모습을 보며 새삼 깨달았다.
‘그렇구나. 내가 먼저 가족으로 생각하는 거야.’
휘연처럼 강하고 자유로운 사람도 이곳을 집이라고 생각한다.
하현은 그를 보며 새삼 깨달을 수 있었다.
할아버지가, 또 이 주변에 사는 사람들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사는지.
하현은 슬그머니 웃음이 삐져나왔다.
불과 잠깐의 시간이 흘렀을 뿐인데, 그가 이제는 세가의 일원이라는 것이 실감이 났다.
그가 이곳의 일원이라는 것이 좋았다.
그렇게 남궁세가에 들어온 열 살짜리 천재는 이제야 온전히 남궁세가가 자신의 집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