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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궁세가 천재 외손자-24화 (24/304)

24화

하현이 처음 세가에 오고 나서 시간이 흐르고, 하현은 드디어 열 한 살이 되었다.

그동안 남궁세가 내에서의 하현의 위상은 크게 달라졌다.

처음 세가에 왔을 때만 해도 ‘똘똘한 가주님의 외손자’ 였다면, 지금은 겨우 그 정도가 아니었다.

‘절세의 기재.’

‘하늘이 내린 재능.’

‘검존의 직전제자.’

등등, 조금은 뻔뻔한 성격의 하현마저 민망해 자리를 뜨게 만들 정도로 칭찬 일색이었다.

하현은 청룡각 대원들과도 교분을 나누기 시작했다.

남궁환은 좋은 성격 덕에 대부분의 청룡각 대원들과 잘 지냈다.

그래서 그는 하현을 데리고 다니면서 모두에게 인사시켜주는 등 여러모로 하현을 잘 챙겨주었다.

하현에게는 그것이 정말로 다행이었다.

남궁세가의 가주라는 자리는 그리 한가한 자리가 아니었기에, 남궁무룡은 자리를 비우기 일쑤였다.

그리고 스승을 자처했던 취월걸개는 어찌나 바쁜지 남궁세가에 모습을 많이 비추지도 못할 정도였다.

그렇게 되면 하현은 그동안 원래 혼자서 수련해야만 했는데, 남궁환 덕분에 다른 청룡각 대원들과 교류하며 수련할 수 있기에 그 효율이 무척이나 높아졌으니까.

“오늘도 한 수 부탁해.”

“저도 한 수 부탁드립니다.”

하현은 청룡각 대원 중 하나인 우진과 서로 포권하며 예를 갖추고는 검을 들었다.

그가 들고 있는 검은 평소에 잘 때도 껴안고 잘 정도로 애지중지하던 진검이 아닌 대련용으로 잘 깎아놓은 목검이었다.

남궁세가의 무인들이 최근 하현에게 비무를 청하는 일이 많아지며 하현은 아예 진검과 목검 두 자루를 들고 다녀야 할 정도였다.

딱!

하현과 우진의 목검이 맞붙었다.

언뜻 보기에도 하현은 자신보다 대여섯 살은 더 많아 보이는 우진과 동등한 힘과 속도로 검을 휘두를 수 있었다.

휘익- 휘익-

우진이 어지러이 허초를 넣어가며 하현의 몸을 두드리기 위해 열심히 검을 놀렸다.

하지만, 하현은 어찌 알았는지 허초에는 반응하지 않고, 진짜 공격에만 반응하며 신묘한 발놀림으로 피해내거나 목검으로 간결하게 흘려보냈다.

따악-!

이십여 초를 주고받았을 때쯤 승패가 갈렸다.

하현이 우진의 검 하단을 강하게 때려 넣고, 우진이 내려간 그 검을 회수하는 아주 짧은 찰나 하현이 검을 목에 가져다 댄 것이다.

“내가 졌네.”

우진은 깔끔하게 자신의 패배를 인정했다.

처음 우진이 하현과 비무를 했던 것은 석 달 전이었다.

그때만 해도 하현은 우진에게 검 끝도 닿지 못했건만, 지금은 여유롭게 그를 이기는 상황이니 이 자리에 있는 모두가 하현의 자질에 혀를 내두르고 있었다.

“오늘도 내가 보완해야 할 부분이 보였어?”

“음···. 그제보다는 나아지셨는데, 아직도 보법 운용이 부족합니다.”

“그래?”

“검이 나가는 방향으로 발을 먼저 끄시는 습관을 지니고 있으시기에, 발만 보면 다음 검이 어느 방향으로 출수 될지 알아챌 수 있습니다. 더 정석적인 방법으로 보법을 연마하시며 습관을 지우시면 크게 발전하실 것 같습니다.”

“정말 고맙다.”

우진은 크게 고개를 끄덕이고는 연무장 한쪽 구석으로 가 무한보부터 차근차근 연습을 시작했다.

그리고 그가 떠난 빈자리에는 몇 명의 무인이 우르르 몰려왔다.

“현아. 힘들지 않지? 다음은 나다.”

“자네는 어제도 하지 않았는가. 다음은 날세.”

“둘 다 이번에는 참는 게 어떤가? 나는 지금 심득이 오려 한단 말일세.”

하현은 티격태격하는 그들이 웃긴지 피식 웃어버렸다.

온 무림에서도 알아준다는 청룡각 대원들이 줄을 서서라도 비무를 한번 해보고 싶어 하는 이 상황이 재미있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제 체력이 닿는 한 모두와 비무를 할 생각이니, 순서를 지켜 주세요.”

하현으로서도 비무를 하는 것이 엄청난 도움이 되었다.

그의 경험이 거듭될수록, 하현의 상상 속 무인은 날로 강해졌으며, 그것이 결국 그것이 돌고 돌아 하현의 직접적인 실력 향상을 가져왔다.

“알겠다. 그렇다면 역시 내 차례군.”

가장 먼저 왔던 청룡각 대원이 웃으며 하현의 앞에 섰고, 곧 비무를 시작했다.

솔직히 말해, 청룡각 대원쯤 되는 사람들이 마음먹고 생사결을 치른다면 하현을 이기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은 일일 수도 있다.

하현이 무공을 보는 눈이 아무리 뛰어나다고 해도, 절대적인 수련 기간과 경험은 그만큼 무서운 무기 중의 하나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들은 하현에게서 하나라도 배우는 것이 있었기에 그를 존중하고 가르침을 얻는다는 생각으로 임했다.

그리고 어린아이에게 훈수를 받는 것은 어찌 보면 굉장히 자존심이 상할 수도 있는 노릇이다.

그러나 남궁세가의 무인들에게 그런 쓸데없는 자존심 따위는 없었다.

‘하현이? 그 아이 덕분에 나도 모르던 내 버릇을 찾지 않았는가? 그것만 해도 큰 은혜를 입었다고 할 수 있지.’

‘나는 특히 하현의 성정을 높이 산다네. 그만한 자질이 있으면, 콧대가 높아질 만도 한데 그럴 기미도 보이지 않더군?’

청룡각 대원들에게 하현은 굴러온 돌이 아니라, 품어야 할 가족이었다.

그리고 가족에게 시기와 질투를 하는 것은 천치들이나 하는 것이라고 그들은 굳게 믿고 있었다.

세 명이나 되는 청룡각 무인들과의 대련이 끝나자 두 시진이 어떻게 지나가는지도 모르게 후딱 지나가 버렸다.

‘오늘은 여기까지인가.’

주변을 둘러보니, 각자 개인 무공 수련에 한창이다.

하현과의 대련에서 무언가를 깨달았는지 명상에 들어간 무인고 있고, 또 누군가는 자신의 버릇을 지우기 위하여 올바른 자세를 반복하고 있기도 하다.

‘무서운 사람들이야.’

하현은 그런 그들에게서 아주 조금이나마 무섭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나쁘게 말하면 자신의 먹을 것을 놓치지 않는 승냥이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들이 하현에게 대련을 청하는 이유는 단 하나다.

바로 하현에게서 얻을 것이 있으므로.

이런 남궁세가 무인들의 무공에 대한 순수한 집착과 욕심이 결국 남궁세가가 지금 가장 강력한 세가이자 문파로 거듭나게 했을 것은 분명했다.

하현도 이제 슬슬 오늘 깨달은 것들을 전각에 돌아가서 정리하려 자리에서 일어났을 때, 누군가 하현에게 다가왔다.

“혹시, 나와도 한 번 해볼 수 있을까? 하현아?”

하현이 문득 고개를 돌려보니, 반가운 얼굴이 그 자리에 있었다.

“팽 형?”

“그래. 하현아. 같이 세가 내에 있으면서도 한동안 얼굴을 보지도 못했구나.”

도제 팽길산의 막내아들 팽헌홍이었다.

하현은 진심으로 반가운 얼굴로 헌홍의 손을 맞잡았다.

“여긴 어쩐 일이십니까? 아! 팽 형도 정식 대원이 되신 겁니까?”

팽헌홍이 멋쩍은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최대한 빨리 너를 따라오려 했건만, 애석하게도 자질이 따라주지 않아 조금 늦고 말았구나.”

그가 말은 이렇게 했지만, 사실 이 정도만 해도 이례적이라고 할 수 있을 만큼 빠른 속도였다.

게다가 남궁소화 마저 멀지 않은 시기에 승급시험을 본다고 들었으니, 일 년 만에 정식 대원이 되는 수련생이 무려 셋이나 되는 것이다.

하현은 싱글벙글 웃는 남궁규현의 얼굴이 떠오르는 듯했다.

“어찌 됐건 축하드립니다.”

팽헌홍도 하현의 인사가 싫지는 않은지 생글생글 웃으며 고맙다고 대답했다.

“조금 전에 하셨던 말은 진심입니까? 저와 대련하고 싶으시다는.”

“그래. 내 성취를 너에게 보여주고 싶다. 물론 네 성취도 보고 싶고.”

하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이미 네 번이나 비무를 치렀기에 피곤할 만도 하건만, 창궁대연심법은 하현이 대화하고, 호흡하는 동안에도 꾸준히 내공을 다시 채워주었다.

그 덕에 지금은 체력과 내력이 거의 회복된 상태였다.

“좋습니다.”

하현은 잠시 내려두었던 목검을 다시금 쥐어 들었다.

팽헌홍도 어느새 목검을 손에 들고 기수식을 취하고 있었다.

“오, 저기 좀 보게나. 신입이 하현이와 대련을 하나 봐.”

“저 신입은 도제님의 아들이 아닌가? 자질이 뛰어나다더니, 벌써 승급했나 보군.”

하현만큼은 아니지만, 팽헌홍 역시 세가 내에서 유명한 인물 중 하나였다.

하북팽가라는 출중한 가문을 두고 남궁세가까지 유학을 온 것은 호사가들 사이에서 이런저런 이유를 추측하게 하는 흥미로운 일이었다.

‘기도가 확실히 다르다.’

하현은 천천히 팽헌홍을 살펴보았다.

몇 개월 전 붙었을 때와는 확연히 다른 팽헌홍의 기도.

그동안 얼마나 얼마나 노력했는지 눈에 보이는 듯하다.

‘그리고···. 보이는 것 역시 확연히 다르다.’

그와 동시에 자신의 발전도 함께 관조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팽헌홍과 이전에 붙었을 때는 그의 겉모습과 태만이 눈에 들어왔다.

하지만, 지금은 겉모습 이외에 팽헌홍의 하단전 부근에서 꿈틀대는 맹렬한 기운과 흐름도 함께 느껴졌다.

탓-

먼저 출수하는 경우가 적은 하현이 팽헌홍을 향해 먼저 보법을 전개했다.

그리곤 목검에 기운을 잔뜩 실어 횡으로 크게 베었다.

딱!

팽헌홍이 하현의 검을 막아내자 요란한 소리가 울려 퍼졌다.

하현의 검을 막아낸 그의 손이 아주 살짝 찌르르 저려오는 것이 느껴졌다.

피하지 않고 막아낼 줄 알았다는 듯 하현이 옅은 미소를 지었다.

후웅!

하현이 다시 한번 검을 휘둘렀을 때는 허공을 갈랐다.

정공을 고집할 것 같았던 팽헌홍이 뒤로 훌쩍 신형을 물렸기 때문이다.

“짧은 시간에 이토록?”

팽헌홍은 경악했다.

솔직히 그는 지금까지 내공에 있어서만큼은 하현보다 자신이 더 낫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어렸을 때부터 아버지께서 그에게 챙겨준 영약만 하더라도 열 손가락이 부족했기 때문에.

그래서 애초부터 내공을 이용한 전면전을 생각했다.

하지만, 단 한 번의 부딪힘으로도 현재 하현의 내공수준이 결코 자신보다 아래가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없을 수 없는 일은 아니지요.”

“공청 석유라도 마신 거야?”

“하하. 그건 아닙니다.”

하현이 여유롭게 대답했다.

“이런, 도대체 어디까지 강해질 거냐.”

하현은 대답 대신 눈부신 미소로 대답했다.

그리고 팽헌홍에게 들어오라는 듯 손짓했다.

“간다.”

팽헌홍이 진기를 최대한 끌어올리며 하현에게 쇄도했다.

어찌나 그 기운이 강맹한지 보법을 밟는 발소리마저 쿵쿵 울렸다.

슈욱-!

하현에게 찔러 들어가는 검이 날카롭다.

초식은 하현도 익히 알고 있는 창궁검법이었다.

콰악-!

하현 역시 최대한의 진기를 담은 검으로 팽헌홍의 검을 막아냈다.

목검끼리 부딪쳤건만, 전혀 그에 어울리지 않는 소리가 울려퍼졌다.

하현은 팽헌홍의 검을 보며 이채를 띠었다.

여기 있는 그 누구에게도, 자기도 모르게 시전하고 있는 팽헌홍에게도 보이지 않은 것이었건만, 하현은 누구보다 뛰어난 기감으로 느낄 수 있었다.

팽헌홍의 기운이 검을 담기다 못해 겉으로 새어 나오며 두꺼운 무형의 기운이 검을 감싸는 형태가 되고 있다는 것을.

부앙-!

샤락

팽헌홍이 검을 하현을 향해 다시 휘두르자, 검에는 닿지도 않았건만, 하현의 옷자락 앞섬이 갈라지고 말았다.

“으음! 검기라고?”

둘의 대련을 지켜보던 무인 하나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며 경악했다.

이제 막 정식 대원이 된 팽헌홍이 검기를 사용한 것으로 보았기 때문이다.

‘아니, 엄밀히 말하면 이건 검기는 아니야.’

하지만 정작 하현은 침착했다.

팽헌홍이 지금 해낸 것은 팽헌홍의 막대한 진기가 넘처 흘러내리며 나온 현상일 뿐이다.

하현은 그것을 이미 눈치채고 있었다.

‘이런 식으로 싸우면, 내공의 소모는 당연하고······.’

하현도 검에 진기 넘치도록 실리기 시작한다.

그런데 하현의 진기는 팽헌홍의 진기와는 전혀 달랐다.

마치 예리한 보검을 목검 위에 덧씌우는 것처럼 얇고 날카로운 진기였다.

‘밀도도 떨어지게 되지.’

스윽-

하현의 검이 팽헌홍의 검을 통과한 듯이 스윽하고 지나간다.

겉으로 볼 때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아 보이지만, 하현은 똑똑히 들리는 듯했다.

와장창-

헌홍의 검을 감싸던 두꺼운 내공이 산산이 깨져 흩어져 버리는 것을.

그와 동시에

스륵- 툭.

팽헌홍의 목검이 아주 깔끔하게 반으로 썰려 연무장 바닥에 떨어졌다.

척-

그리고 하현은 저항할 생각도 못 하는 팽헌홍의 목에 목검을 가져다 댔다.

“졌다.”

팽헌홍은 순순히 패배를 인정했다.

하현도 고개를 끄덕이며 검을 회수했다.

“나도 많이 강해졌다고 생각했는데, 너를 따라갈 기미가 보이지 않는구나.”

“원래 선발대가 가장 빠른 법입니다. 포기하시지만 않는다면 종국에는 결승선에서 만나지 않겠습니까?”

“하하. 위로할 필요 없다.”

팽헌홍은 웃어버렸다.

너무 깔끔하게 져버린 탓인가?

그는 패배감 대신 웃음이 새어 나왔다.

“팽형. 실례가 되지 않는다면, 제가 한 말씀 드려도 될까요?”

“그래. 부탁하마.”

하현은 잠시 뜸을 들이더니, 입을 열었다.

“팽형은, 검보다는 도를 드시는 게 더 나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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