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화
‘검과 도가 다른 것이 무엇일까?’
팽헌홍의 무공을 보며, 하현이 가장 먼저 든 의문이었다.
당연히 이론으로는 알고 있다.
검은 양날이고, 찌르기가 가능하고, 도는 날이 하나고 베기가 주력이고······.
하지만 하현은 그 모든 것이 무슨 소용이냐는 생각이 들었다.
‘검이든, 도든, 결국은 상대방의 육신에 닿게 하는 것이 목적.’
사실 검이라고 해서 육체의 힘을 싣지 말라는 법이 없고, 도라고 해서 찌르지 말라는 법은 없다.
‘검법이니, 도법이니 하는 것들은 병기의 장점을 효율적으로 사용하려는 방법일 뿐이야.’
하현은 검을 곧추세웠다.
팽헌홍이 자연스럽게 뒤로 물러났다.
검이 자연스럽게 원을 그렸다.
하지만, 그것은 손목을 이용한 검법의 태가 아닌, 팔 전체를 이용하는 도법의 모습이었다.
“앗······?!”
하지만, 그것만으로도 팽헌홍은 자신도 모르게 놀란 소리를 내고 말았다.
하현이 도법을 배운 적이 없다는 것은 하현이 처음 검을 잡는 순간부터 함께했기에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오랜 시간 도법을 연마한 도수(刀手)처럼 하현의 동작은 자연스러웠다.
하현이 검이 화려하게 피어난다.
분명히 초식은 팽헌홍도 익히 아는 창궁검법의 초식이다.
그러나 검에 진기를 싣는 대신 육체의 힘을 싣는다.
찌르기나 역날을 사용하는 초식은 처음부터 그랬던 것처럼 한쪽 날만 사용하는 초식으로 대체되어 있었다.
“이건 대체······.”
팽헌홍은 이해할 수 없었다.
하현은 창궁검법을 이 자리에서 도법으로 변환해 낸 것이다.
이런 게 가능하다는 것은 들어본 적도 없기에 그는 경악할 수밖에 없었다.
“후우······.”
창궁도법의 초식을 모두 마치고, 하현은 크게 심호흡을 한 번 내뱉었다.
내공을 끌어 올리기보다는 육체의 힘만으로 초식을 펼쳐낸 듯, 그의 이마는 땀으로 번들번들했다.
팽헌홍은 그런 하현에게 말을 걸지 않았다.
왜인지 여기서 끝날 것 같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쿠웅-!
팽헌홍의 기대에 부합하듯, 하현이 별안간 연무장 바닥에 발을 굴렀다.
이번에는 진기를 실은 동작인지, 쾅 하는 소리가 연무장 전체에 울렸다.
“이제 준비가 끝났군요. 도(刀)라는 무기를 어떻게 다루어야 하는지 대강 느낌이 옵니다.”
하현은 생긋 웃으며 말하고는 다시 검을 들었다.
그리곤 그의 손에서 익숙한 검법, 아니 도법이 펼쳐지기 시작했다.
“혼원벽력도······?”
팽헌홍은 자신의 입으로 내뱉은 말이건만, 금세 하현의 무공이 혼원벽력도가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이 무공은 혼원벽력도를 검법으로 변환한 느낌의 무공도 아니었다.
굳이 따지자면, 혼원벽력도의 먼 친척이라고 할까?
비슷한 분위기를 풍기지만, 실상은 전혀 다른 무공이었다.
“덕분에 영감이 떠올랐습니다. 이 무공은 결단코 혼원벽력도는 아닙니다. 하지만, 제가 느낀 것을 팽 형께서 느끼신다면, 혼원벽력도를 완성하시는 데에 조금이나마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팽헌홍은 고개를 끄덕였다.
혼원벽력도를 완성하는 것은 자신의 몫이다.
하현은 팽헌홍의 지금 표정이 매우 좋다고 느꼈다.
결연하면서도 초연한 얼굴.
쉽게 말해 깨달음을 얻기에 가장 좋은 얼굴이었다.
스윽-
찰나의 순간, 하현은 다시금 검에 집중했다.
하현이 혼원벽력도를 지켜볼 때,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도법을 검법으로, 그리고 검법을 한 번 더 도법으로 변환한 것이 아닌가?’
그러자 문득 검법을 도법으로 변환하는 것이 가능하냐는 의문이 들었고, 하현은 창궁검법을 창궁도법으로 변환해냄으로써 그것이 가능하다는 것을 스스로에게 증명했다.
한 번 본 무공을 따라 하는 것은 그에게는 쉬운 일이다.
게다가 팽헌홍이 했던 것처럼 천천히 차근차근 보여준다면 더더욱 쉬워진다.
머릿속으로 혼원벽력도를 검법으로 변환해보니 그는 더욱 어색함을 느꼈다.
마치 이가 빠진 듯 중간중간 내용이 부족한 것 같은 검법이 생겨난 것이다.
하지만, 하현에게는 할아버지와 함께 창궁무애검법을 분석하고, 더욱 발전시킨 경험이 녹아들어 있다.
그는 중간중간 이가 빠진 부분을 자연스럽게 채워 넣기 시작했다.
쉬익- 쉬익-!
하현의 검이 점점 빠르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빠진 부분을 채워 넣는 것에 별다른 기준이 있는 것은 아니다.
‘응당 들어가야 할 것.’
하현은 이번만큼은 자신의 영감을 온전히 믿기로 했다.
머리에서 생각나는 대로, 몸이 따르는 대로, 그리고 이 새로운 검법이 그를 이끄는 대로 검을 휘둘렀다.
우우웅-!
하현의 검이 신나게 진기를 빨아먹으며 기분 좋은 강아지마냥 부르르 떨린다.
마치 살아있는 생물인 것처럼 제멋대로 검로를 탔다.
‘진정해라.’
하현의 뜻이 전해지자, 검법이 정돈되어가기 시작한다.
대신 말 잘 듣는 사냥개가 되어 하현이 원하는 곳에 쇄도했다.
검은 어지러이 달빛을 반사하며 팽헌홍에게 말하는 듯했다.
기다리고 있을 테니, 언제고 나를 찾아봐라.
분명히 혼원벽력도는 아니었으나, 혼원벽력도의 의지가 느껴졌다.
아니, 조금 더 정확히는 혼원벽력도를 창제한 먼 사조님의 의지가 느껴진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아버지가 그를 이곳에 보낸 이유가 무엇인지, 오호단문도가 아닌 혼원벽력도를 가르쳐준 이유를 이제야 깨달을 수 있었다.
주르륵
옥쟁반 같은 팽헌홍의 얼굴에, 은구슬 같은 눈물이 한 방울 흘러내린다.
‘아버지······.’
그날은 팽헌홍이 집을 떠나와 처음으로 눈물을 흘린 날이었다.
* * *
“후욱, 후욱.”
검술을 모두 끝마친 하현은 거친 숨을 몰아쳤고, 의복은 땀으로 젖어 있었다.
몸의 움직임과 검의 예기까지 모두 진기를 실어 구사하는 검법과는 달리, 도법은 육체의 힘을 많이 사용한다.
때로는 한 줌의 진기가 없더라도 본신의 힘으로 상대의 목을 칠 수 있어야 하는 것, 그것이 바로 도법이었다.
‘깨달음에 비해 내 육체는 너무나도 나약하다.’
하현은 지금껏 자신이 얼마나 건방졌는지를 깨달았다.
몸이 아니라 내공이야말로 무공의 진수라고 생각했다.
그렇기에 신체가 그의 의지에 따라 움직이기 시작하면서부터 그는 육체 수련보다는 내공과 정신 수련에 더욱 힘썼다.
그런데 지금 그의 모습이 어떤가?
도법 한 번 펼쳤다고 힘들어하는 자신의 모습이 한심하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환 형님이나 소화 에게도 이건 꼭 말 해 줘야겠다.’
하현은 여러모로 좋은 깨달음을 얻었다고 생각했다.
‘그나저나, 이 형은 언제까지 이러고 있으실 거지?’
초식이 끝나고부터 팽헌홍은 하현에게 절을 한 번 하더니, 아직도 일어서지 않고 있었다.
하현은 황당한 목소리를 감추지 않고 말했다.
“저, 팽형. 언제까지 이러고 계실 건가요? 일어나시지······.”
그 말에 팽헌홍이 슬그머니 일어났다.
그의 눈이 부어 있는 것으로 보아, 흐르는 눈물을 감추고자 일어나지 않았다고 생각했다.
“우리 팽가는 은인은 절대 잊지 않는다. 너는 내 은인이다.”
“은인까지는······.”
“아니, 은인이다. 앞으로 내가 가야 할 길을 정하게 해주었으니.”
팽헌홍의 눈은 부었지만, 눈빛만은 맑았다.
평상시에 팽헌홍은 다른 세가 출신이어서 그런지 어딘가 불안하고, 남들과 거리를 두는 모습이었다.
그런데 지금 그의 태도는 확연히 달라져 있었다.
확신을 가진 모습이었다.
“날이 밝는 대로, 스승님께 나는 도를 수련하겠다고 말씀드릴 것이다.”
“네. 저도 그것이 옳은 선택으로 보입니다.”
“그리고 혼원벽력도를 완성하여, 팽가로 돌아갈 것이다.”
팽헌홍의 얼굴은 결연했다.
그리고 그는 하현의 얼굴을 뚫어져라 쳐다보며 생각했다.
‘하현이는 분명히 엄청난 사람이 될 것이다. 비록 나보다 몇 살 어리다고는 하나, 나이는 아무 의미가 없다. 내가 가주가 되려면 하현의 도움은 필수적일 수도 있다.’
이런 생각을 아는지, 모르는지 하현이 고개를 크게 끄덕였다.
“제 작은 숙부께서는 도법에도 일가견이 있다고 들었습니다. 조언을 구한다면, 분명 도와주실 겁니다.”
“고맙다.”
팽헌홍이 손을 내밀었고, 하현은 그 손을 마주 잡았다.
분명히 자신의 손보다도 더욱 작은 하현의 손이건만, 팽헌홍은 그 손이 무척이나 커다랗다고 생각했다.
* * *
그날 이후로 팽헌홍은 다시 도를 잡았다.
혹자는 이렇게 물을지도 모른다.
남궁세가에서 무슨 도냐고.
그렇지만, 팽헌홍은 더는 남궁세가의 절기를 배울 필요가 없었다.
그가 바라보는 것은 오직 하나.
혼원벽력도 뿐이었으니까.
‘하현이 보여주었던 혼원벽력도의 실마리. 그것을 내 것으로 만드는 것이 내가 할 일이다.’
그렇기에 팽헌홍은 정식 대원이 되었음에도 따로 사부를 정하지 않았다.
원래 하던 대로 남궁규현에게 기본기와 성취를 확인하는 방식으로 수련을 계속하기로 했다.
이 소식이 남궁무룡에게까지 전달 되었을 때, 남궁무룡은 이미 모든 것을 알고 있다는 듯 의미심장한 미소로 그리 하라고 이야기한 것은 이번 일과 관련된 모두가 익히 알게 되었다.
팽헌홍 덕분에 새로운 검법을 얻게 된 하현은 이 검법을 ‘월광검법’이라 칭했다.
달빛 아래에서 창안한 검법이기도 하고, 은근하지만 온 세상을 뒤덮을 수 있는 것 역시 달빛과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오늘도 은은하게 밝아오기 시작한 달빛을 바라보며, 하현은 전각 앞 공터로 나갔다.
‘오늘은 소화 누나랑 환이 형한테 월광검을 보여줘야지.’
최근 남궁소화는 팽헌홍마저 정식대원으로 올라서자 엄청난 자극이 되었는지 평소보다 수련의 양을 배는 늘렸고, 설렁설렁 살고 싶다던 남궁환 역시 덩달아 수련에 불이 붙었다.
‘할아버지가 무슨 말을 해주고 나서 갑자기 더 열심히 하게 된 것 같은데.’
남궁환이 더더욱 수련에 진심이 된 것은 며칠 전 남궁무룡과 독대를 하고 나서다.
분명히 할아버지가 형에게 무슨 말을 해준 것 같은데, 아직 하현에게는 아무 말도 없었기에 그는 잠자코 있었다.
“하현아!”
하현은 공터에 거의 도착했을 때, 다급히 그를 부르는 소화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왜 누나? 무슨 일 있어?”
하현이 황급히 보법을 밟아 공터에 다다랐다.
“어?”
하현은 조금 놀랄 수밖에 없었다.
공터에는 평소에 볼 수 없었던 이가 한쪽 구석에서 몸을 풀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현! 네가 오라고 한 거야?”
“아니? 팽 형 연무장 놔두고 왜 여기로 온 거예요?”
팽헌홍이었다.
그는 머리를 긁적이며 말했다.
“아무래도, 너와 가까이 있으면 그만큼 성취가 더 빠를 것이라고 생각했다.”
“아니, 그러니까 여기 좁단 말이에요! 팽 오라버니는 양심이 있으면 연무장에서 수련하세요!”
“난 딱히 연무장이어도 상관없다만···. 하현이 그곳에서 수련한다면 말이다.”
소화가 하현을 향해 도끼눈을 떴다.
“하현! 너 이제부터 연무장으로 가서 수련해!”
“여긴 내가 제일 먼저 온 곳인데? 누나가 연무장에서 수련해.”
“수련생 연무장은 여기서 멀단 말이야. 네가 가. 대원 연무장은 가깝잖아.”
“그러면 누나가 빨리 대원으로 승급하면 되는 거 아니야. 아, 여기서 수련생은 누나 하나밖에 없구나?”
“뭐?! 너 가만 안 둬!”
소화가 하현을 향해 달려들었지만, 잡혀 줄 하현이 아니었다.
하현은 무한보를 극성으로 밟으며 소화에게서 벗어났다.
“너! 잡히면 죽어!”
둘은 쫓고 쫓기다 아예 공터 밖으로 달려나가 팽헌홍의 시야에서 사라졌다.
팽헌홍은 자신 때문에 이 사달이 난 것인가 안절부절못하고 있는데, 남궁환은 그들을 보고도 아주 자연스럽게 자기 할 수련을 하기 시작했다.
“어···. 사형. 둘이 저렇게 놔둬도 되는 겁니까?”
“뭐, 항상 있는 일이야. 보법 수련에는 아주 저만한 것이 없지.”
청룡각은 나이에 상관없이 철저히 기수제로 운영되었다.
그렇기에 팽헌홍과 남궁환은 동갑이었지만, 엄연히 사형제 지간이었다.
“금방 돌아올 테니, 사제도 할 거 해.”
팽헌홍은 아무렇지도 않게 검을 휘두르는 남궁 환을 보고는···. 그도 도를 뽑아 들었다.
‘참 이상한 곳이야. 이상한 사람들이기도 하고.’
팽헌홍은 이 상황이 재미있는지 풉 하고 작게 웃음을 터뜨리고는 마음을 진정시키고 하현과 소화가 다시 오기를 기다리며 수련을 시작했다.
조금 전, 본인이 그 이상한 사람 중의 하나가 되었다는 것은 전혀 깨닫지 못한 듯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