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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궁세가 천재 외손자-27화 (27/304)

27화

며칠이 지나고, 하현은 할아버지 앞에서 처음으로 월광검법을 보여주기로 했다.

원래는 바로 그다음 날 보여드리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았으나 하현 스스로도 온전히 이해하지 못한 부분을 정리하고, 오늘에서야 보여드리게 된 것이다.

쒜엑-!

번개가 하늘을 가르듯 아무것도 없는 공간을 하현의 검이 비집고 들어간다.

검은 걸리는 무엇이든 갈라버릴 것 같이 기세 좋게 쳐 내려갔다.

“후욱-!”

검이 바닥에 닿을 듯 내려갔을 때, 하현이 심호흡을 내뱉으며 몸을 한 바퀴 돌려 바닥으로 향했던 검날을 다시 위로 쳐올렸다.

“호오······.”

그 모습을 보는 남궁무룡이 자신도 모르게 감탄을 흘렸다.

현재 하현은 극단적으로 한쪽 날만 사용하고 있었다.

즉 도법을 구사하는 것과 마찬가지.

하지만 남궁무룡은 하현이 겨우 도법을 하는 것만으로 감탄하는 것은 아니었다.

‘혼원벽력도가 이렇게….’

남궁무룡은 언젠가 그의 친우인 도제가 보여주었던 혼원벽력도를 떠올렸다.

세대를 내려오면 실전되어버린 팽가의 절대적인 무공 중 하나.

그리고 그 실마리를 검법에서 찾을 수 있다고 판단한 둘이 팽헌홍을 남궁세가로 유학을 보내기로 했던 일까지 자연스레 떠올렸다.

‘이렇게 빠르게 실마리를 찾았다니.’

하지만 검존이라 불리는 그마저도 이렇게 빠르게 혼원벽력도에 대해서 생각하게 될 것이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

애초에 헌홍을 남궁세가에 부르기로 할 땐 하현의 존재는 상정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지금 팽헌홍을 하북팽가로 다시 보낼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팽헌홍을 남궁세가로 부른 것에는 혼원벽력도의 복원이라는 이유도 있었지만, 그뿐만 아니라 가주가 되기 위하여 물불 가리지 않는 팽가주의 나이 많은 다른 아들들에게서 헌홍을 떨어뜨려 놓으려는 것도 그 이유 중의 하나였으니까.

휙-! 휘익-!

남궁무룡이 잠시 다른 생각을 하는 도중에도 하현의 검은 쉴 새 없이 움직였다.

도법처럼 움직인다고는 하지만, 하현이 구사하는 것은 엄연한 검법이다.

검의 장점은 양날을 모두 활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하현은 중간중간 잘 사용하지 않는 반대 날을 이용하며 상대의 허점을 노렸다.

‘도법과 검법의 중간…. 아니, 그렇게 말하기엔 너무 조화롭다.’

보통 무인들이 검으로 도법을 구사하지 않는 이유는 간단하다.

강맹하고 패도적인 초식들이 많은 도법을 검으로 구사하기에는 검이 너무 얇기 때문이다.

도는 그저 베는 것이 아니라 힘껏 힘으로 내리치는 동작이 많은 무기이기에 검으로 구사하기에는 알맞지 않다.

그러나 검은 또 검만의 장점이 있다.

바로 찌르는 동작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찌르기는 공격에 당하는 면적 자체도 적고, 적에게 최단거리로 공격할 수 있기 때문에 굉장히 효과적인 공격법이다.

그런데 하현은 마치 도법도 오래전부터 연마해온 도수(刀手)처럼 두 가지의 장점을 모두 아우르는 검법을 만들어온 것이다.

“후우…. 여기까지입니다.”

“······.”

하현이 구상한 초식을 모두 마치고, 남궁무룡의 반응을 기다렸다.

하지만 남궁무룡은 잠시 동안 아무 대답도 하지 못했다.

그는 자신도 모르게 떨리는 손을 주체하느라 주먹을 꼭 쥐고 있었다.

‘엄청난 재능. 재능이라고 표현하기에도 부족한 재능.’

불세출의 천재라는 것은 진작 알고 있었지만, 오늘 하현의 모습을 보니 평소와는 또 다른 전율이 느껴졌다.

“그래. 잘했구나.”

남궁무룡은 겨우 입을 열어 말을 꺼냈다.

아무 말이 없어 불안해하던 하현이 이제야 활짝 웃었다.

남궁무룡은 그 모습에 허허 웃어버릴 뻔했지만, 곧 냉정함을 되찾았다.

“허나, 아직 미숙한 부분이 많이 보이는구나. 내가 떠오른 것도 있으니, 차근차근 하나씩 뜯어보자꾸나.”

“네! 감사합니다.”

“그리고 이 월광검법을 수련하면서도, 창궁무애검법의 수련을 게을리해서는 안된다. 우리의 뿌리는 남궁에 있다는 것을 절대 잊어서는 안 될 것이야.”

“네. 명심하겠습니다.”

남궁무룡은 기어코 진지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는 하현의 머리를 쓰다듬고야 말았다.

“먼저, 제일 첫 초식을 취해봐라. 거기서는 그렇게 깊숙하게 치는 동작을 한다면 검을 보호하느라 과도한 내기가 소모될 터. 더 얕게, 하지만 예리하게 들어가야 한다.”

“넵!”

그 후로도 하현과 남궁무룡의 수련은 계속되었다.

새로운 검법을 창안하고, 익숙해진다는 것이 사실 말처럼 쉬운 일은 절대 아니지만, 하현은 그 어려운 것을 착착 해내었다.

남궁무룡은 자신이 경험해온 것, 깨우쳐온 것 할 것 없이 모두 하현에게 아낌없이 전수해주며 그렇게 시간은 흘러갔다.

* * *

남궁세가의 또 하나의 천재이자 이미 무림에서도 후기지수로 이름이 알려진 남궁민.

그는 남궁세가 역사상 최연소 정예대원이 되며 수련보다는 실전 임무에 집중하던 그가 언제부터인가 다시 무공에 대한 열정이 피어올라 밤낮을 가리지 않고 수련에 힘쓰고 있었다.

육체적인 수련을 게을리하지는 않았지만, 그가 주로 하는 수련은 운기조식과 병행하는 명상.

그리고 그 명상의 끝은 항상 그의 머릿속에서 펼쳐지는 가상의 무인과의 대련이었다.

움찔-

상상의 대련이 점점 심화되며, 남궁민은 마치 실제로 싸우는 것처럼 몸이 움찔거렸다.

한 명, 두 명······.

지금껏 남궁민이 임무를 행하며 만나왔던 사파의 악인들, 마두들이 차례로 지나가고 그 형태는 하나로 뭉쳐지기 시작해 이윽고 한 사람의 형상을 띠었다.

‘하현.’

그리고 그 상대는 놀랍게도 하현이었다.

하지만 그냥 하현이 아닌, 어느 정도 성장한 모습의 하현이었다.

피식-

남궁민은 그 모습을 보고 자신도 모르게 웃음을 흘리고 말았다.

자신이 만든 상상이지만, 항상 귀엽게 형들을 졸졸 따라다니는 하현의 큰 모습이라는 게 왠지 모르게 웃겼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는 이내 웃음을 지우고 다시 진중하게 하현을 바라보았다.

하현의 재능과 실력만은 진짜이기 때문에.

“후우-”

잠시 후.

머릿속에서 대련을 마친 남궁민은 깊은숨을 내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비록 상상으로 한 대련이건만, 어찌나 심력을 소모했는지 온몸이 땀으로 흠뻑 젖어 있었다.

대련의 결과는 오직 그만 알겠지만.

“오늘은…. 이만해야겠군.”

남궁민은 땀으로 젖은 옷을 갈아입고 요깃거리라도 찾으러 방 밖으로 나섰다.

막 나서자마자, 문 앞에서 누군가와 마주쳤다.

“형님.”

“환이 아니냐. 무슨 일로 왔느냐.”

“이러다가 얼굴 잊어버릴 것 같아서 찾아왔습니다. 차나 한잔하실까 하고요.”

“하하. 그러게. 정말 오랜만에 보는 것 같긴 하구나.”

남궁민은 머쓱하게 웃고는 남궁환을 데리고 다도실로 향했다.

그가 능숙하게 차를 우려 내오자, 남궁환은 특유의 밝은 얼굴로 말했다.

“저는 또 어디 멀리 임무라도 가셨는 줄 알았습니다. 세가 내에서도 거의 안 보이셔서요.”

“내가 식사시간에도 얼굴을 잘 비추지 않아서 그랬구나.”

“네. 수련하신다는 말씀을 들었는데….”

남궁환은 남궁민을 슬쩍 훑어보다가 흠칫 몸을 떨었다.

‘민이 형님의 기세가 이 정도로 강력했나?’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이 있다.

그 말은 무림에도 통용되는 말이다.

본인의 수준이 높을수록 상대의 수준을 더 파악하기에 쉬워지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일 것이다.

남궁환은 최근 하현과 수련을 시작한 몇 개월간 급격한 성장을 이루었다.

그래서일까? 남궁환은 그전까지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이는 것 같았다.

이전까지는 막연히 강하다고만 생각했는데, 그것과는 다른 느낌이었다.

‘끝을 알 수 없는···. 느낌.’

무저갱(無底坑), 마치 끝도 없는 구덩이를 들여다보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환아. 이제 보니 큰 성취를 이루었구나. 축하한다. 내가 너무 오래도록 너에게 관심이 없었구나.”

“아닙니다. 형님이야말로…. 성취를 이루셨군요.”

남궁민은 대답 대신 가벼운 미소를 지으며 남궁환 앞에 있는 찻잔에 차를 따랐다.

그리고 남궁환의 질문을 다시 질문으로 돌려주었다.

“수련에 뜻이 없어 보이더니, 최근 들어 열심히 한 것처럼 보이더구나. 심경의 변화라도 있었던 것이냐.”

이번에는 남궁환이 대답 대신 남궁민의 찻잔에 차를 따라주었다.

남궁민은 그에 방긋 웃으며 얘기했다.

“현이구나.”

“하하. 그렇습니다. 요즘 저녁이 되면 계속 현이와 소화와 함께 수련하고 있습니다. 비록 제가 형이지만 많이 배우고 있습니다.”

“그때의 그 공터로구나.”

남궁민은 하현을 만났을 때를 떠올렸다.

하현에게 삼재검법을 처음 보여주었을 때를.

“네. 맞습니다. 아참, 최근에는 헌홍이라고, 정식대원으로 승급한 하현이 동기도 함께 수련 중입니다.”

“아하. 팽가주님의 막내아들 말이냐.”

“맞습니다.”

남궁민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하현에게는 왠지 사람을 끌어당기는 마력이 있다고 생각했다.

“사실은…. 나도 자극을 많이 받더구나. 하현이를 보고 있으면 어딘가 마음 한구석이 근질거려 수련하지 않고는 배기지 못하겠어.”

남궁환은 그 생각에 동의한다는 듯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

“저도 그 마음 잘 알 것 같습니다. 그런데, 형님도 그런 생각을 하셨다니 놀랍습니다.”

“하하. 그러냐? 하현이가 특별한 아이인 것이지.”

남궁환은 이때 그 말을 뱉는 남궁민의 얼굴을 자세히 살펴보았지만 그의 얼굴에는 시기, 질투 따위의 감정은 추호도 보이지 않았다.

굉장히 밝은 얼굴, 그리고 어딘지 모르게 홀가분한 얼굴이었다.

“형님. 어딘지 기분이 좋아 보이시는 것 같습니다.”

“그래?”

남궁민은 저도 모르게 얼굴을 매만졌다.

그는 그 자신도 인지하고 있지 못했지만, 입꼬리가 어느새 올라가 있음을 알아챘다.

“그렇구나.”

남궁민은 아예 활짝 웃어버렸다.

사실 남궁환으로서도 어딜 내놓아도 둘째가라면 서러운 미남이었건만, 남궁민이 저렇게 웃자 창문도 다 닫혀 있는 방에 순풍이 이는 것 같은 착각이 일었다.

“환아. 혹시 기억하느냐.”

“무엇을 말입니까?”

“사 년…. 아니, 오 년 전이던가. 그때 너에게 내 꿈을 이야기해 주었을 때 말이다.”

“꿈 말입니까? 아···! 혹시?”

“그래.”

“제가, 처음으로 형님께 대들었던 그때 말씀하시는 겁니까?”

“하하. 맞아. 그랬었지.”

남궁민과 남궁환은 과거를 회상했다

* * *

‘환아. 나는 가문에 얽매이지 않고, 세상을 방랑하고 싶구나.’

하지만 그 꿈은 이루어질 수 없는 꿈이었다.

현재 남궁세가는 무림맹에서…. 아니, 무림 전체에서도 엄청난 영향을 끼치고 있었다.

남궁민은 유력한 차기 남궁세가주였고…. 남궁세가의 가주라는 자리는 쉽게 자리를 비울 수 없는 자리였으니까.

그 말은 들은 남궁환은 태어나 처음으로 남궁민에게 대들었다.

그는 가지고 싶어도 가질 수 없는 반짝이는 재능과 그 자리를 가진 남궁민이 그렇게 이야기 하는 것이 결코 이해가 가지 않았기 때문에.

하지만 이내 곧 둘은 서로를 이해했었다.

* * *

남궁환이 그때의 대화에 대해 말을 못 하고 우물쭈물할 때, 남궁민이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말했다.

“환아. 나는 그때 얘기했던 것이 진심이었다. 그리고…. 그 생각은 아직도 변치 않았다.”

남궁민은 어딘가 씁쓸해 보이는 얼굴로 말을 이었다.

“다만, 조부님을 실망하게 해드릴 수 없어 그 뜻을 숨기고 살았을 뿐이지.”

“형님….”

그를 안쓰럽게 보며 남궁환은 말끝을 흐렸다.

“그런데, 요즘에는 그 꿈을 이룰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곤 한다.”

“혹시? 하현이를…?”

“맞다. 내가 볼 때도 하현이는 나보다 뛰어난 재능을 가졌어.”

남궁민이 씨익 웃었다.

하현이 자신보다 낫다는 말이 결코 웃음이 나올 말은 아니건만, 그는 진심으로 기분이 좋아 보였다.

남궁환이 참지 못하겠다는 듯 벌떡 일어났다.

지금 남궁민이 한 말을 쉬이 받아들일 수 없었기 때문이다.

“형님! 그 말은···. 하현이를 가주로 만들겠다는 말씀입니까?”

“그래. 그래서 있는 힘껏 나도 하현이를 도와줄 생각이다. 물론, 너만 괜찮다면 말이야.”

남궁환은 담담하게 말하는 남궁민의 얼굴을 바라보다 힘없이 다시 의자에 털썩 앉았다.

“솔직히 말해, 저는 가주에 뜻이 없습니다. 이전에도 그랬고 앞으로도요. 그런데, 현이는 직계가······.”

“우리의 형제고, 조부님의 손자다. 그것만으로도 정통성은 충분해. 다만······.”

“다만?”

남궁민은 모든 생각을 정리한 듯, 결연하게까지 보이는 얼굴로 말했다.

“현이 혼자서 해내기는 어려울지도 모르지. 그래서 우리가 현이를 도와주는 거다. 나는 현이를 가주로 만들고 말 것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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