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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궁세가 천재 외손자-29화 (29/304)

29화

하현은 금방 멀지 않은 곳에 있던 물이 졸졸 흐르는 계곡을 찾아낼 수 있었다.

준비해 온 수통을 열어 물을 받으려 할 때, 하현은 계곡 상류에 있는 갈색 토끼 한 마리를 발견할 수 있었다.

‘토끼…….’

하현은 토끼를 발견하고서는 숨죽여 상류로 걸어 올라갔다.

최대한 기척을 숨긴 발걸음이었다.

청룡각에서는 기본적으로 은신, 은폐에 대한 기본기도 가르친다.

일부 정파에서는 은신술을 펼치는 것은 무인으로서 창피한 일이라고 생각하는 곳도 많았지만, 식솔들의 무사귀환을 임무의 첫 번째 목표로 생각하는 남궁세가에서는 아무렇지도 않게 가르쳐왔다.

사삭-

하현이 최대한 소리를 없애며 움직이자, 토끼는 하현이 있다는 것을 눈치채지도 못하고 계속 물만 마시고 있었다.

살금살금 다가간 하현이 어느 정도 거리가 되었다고 판단을 내렸고.

콰앙-!

하현은 있는 힘껏 지면을 박차고 토끼에게 뛰어들었다.

혹시 누군가 지금 하현의 모습을 보았다면, 제자리에서 사라진 하현이 토끼가 있던 자리에 갑자기 생겨났다고 했을 정도로 신속한 이동이었다.

이 역시 취월걸개에게 배운 이형환위의 기술을 응용한 것이었다.

“삐이-!”

평화롭게 물을 마시다 별안간 하현의 손아귀에 잡혀버린 토끼가 놀랐는지 새된 소리를 내었다.

하현은 발버둥 치는 토끼를 다시 조심스럽게 내려놓았다.

토끼는 땅에 닿자마자 숲속으로 다리가 안 보일 정도로 빠르게 사라졌다.

하현은 괜히 미안해져 그 뒤에 대고 소리쳤다.

“미안! 잡아먹으려고 한 건 아니었어!”

지금은 배도 고프지 않고, 남궁세가에서 가져온 식량들도 많이 남아 있기에 사냥을 할 목적은 아니었다.

“이젠, 이렇게 쉽게 잡는구나.”

하현은 처음 경공을 깨우치던 날을 떠올렸다.

그때는 저 토끼 한 마리를 잡으려 얼마나 고생했던가.

그러나 지금은 코를 풀 듯 쉽게 잡아챌 수 있었다.

이렇게 하현은 자신이 성장했음을 느꼈다.

* * *

“아 시원해. 그렇게 멀지 않았나 봐?”

“응. 저기 바로 앞에 있더라고.”

소화는 하현이 떠온 물이 마음에 들었는지 얼굴이 밝아졌다.

남궁민은 그런 소화를 유심히 보다가 소화가 아직 완전히 회복되지 않은 것을 눈치챘다.

“아예 쉬는 김에 조금 더 쉬어가자. 시간은 많으니까. 그리고 소화야.”

“응 오라버니.”

“힘들면 힘들다고 말하는 것도 중요해. 특히 무림에서는 있는 힘을 다 쓴다고 해서 능사가 아니야. 언제든지 내 힘의 절반은 아껴둔다는 생각이어야 해.”

“나도 알고 있다 뭐.”

물론 소화도 잘 알고 있는 내용이었다.

청룡각에서 그토록 강조하는 것 중의 하나였으니.

하지만 마음대로 되지 않는 걸 어쩌겠는가, 죽어도 하현에게 뒤떨어지고 싶지는 않았다.

“소화야. 왜 그렇게 급해. 천천히 해도 된다. 지금 네 성취는 네 나이대에서도 특출난 편이야.”

소화는 남궁민의 말에 대답하는 대신 입술을 꾹 물었다.

‘그러면 하현이는?’

이라는 질문을 하고 싶었지만, 하현 앞에서 그런 질문을 하는 것이 또 그녀의 자존심을 상하게 했다.

그래서 대신 소화는 다른 질문을 던졌다.

“오라버니는 내 나이 때 어땠어? 그때도 지금처럼 강했어?”

“나? 하하…. 잘 기억이 안 나네.”

“그러면 오라버니는 항상 전각에서 뭘 하는 거야? 임무가 아니면 잘 나오지도 않고 전각에 콕 틀어박혀서 나올 생각을 안 하잖아.”

소화의 질문에 하현이 눈을 반짝였다.

사실 하현으로서도 남궁민이 평소에 무엇을 하는지 굉장히 궁금했기 때문이다.

남궁민은 두 동생들의 반짝이는 눈빛에 잠시 당황하다가, 입을 열었다.

“하하…. 전각에서 할 게 뭐 있겠어. 당연히 수련밖에 할 게 없지.”

“수련이요? 연무장이 아니라, 전각에서 하신다고요? 어떻게요?”

하현이 속사포처럼 질문을 던졌다.

남궁민은 하현을 바라보더니 짓궂게 웃으며 말했다.

“그건 비밀이다. 안 그래도 너희가 나를 따라잡을까 긴장하고 있는데, 내 영업비밀을 이렇게 쉽게 말해줄 수는 없잖아?”

“아…! 형님!”

“아잇! 오라버니. 그런 게 어딨어!”

남궁소화는 힘든 것도 잊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고, 하현은 저도 모르게 부루퉁한 표정을 지었다.

평소 할아버지 앞에서도 어리광을 피우지 않는 하현이건만, 평소에 그다지 교류도 없던 남궁민에게는 이상하게 이런 모습이 자연스럽게 튀어나왔다.

“하하하. 재밌구나.”

둘의 반응에 남궁민은 진심으로 크게 웃었다.

평소 남궁민을 알고 있는 사람이라면 크게 놀랐을 것이 분명했다.

남궁민은 원래 이렇게 감정을 솔직하게 표현하는 사람이 아니었으니까.

“정말 말 안 해줄 거야?”

“그래그래, 말해줄게. 대신에 너무 아무것도 아니라고 비웃으면 안 된다?”

“절대!”

남궁민은 웃음기를 가라앉히고 사뭇 진지한 태도로 말했다.

“대련이다. 그것도 목숨을 건 생사결이지.”

“생사결?”

하현과 소화의 눈에는 의문이 가득했다.

남궁민이 평소 침소에서 나오지 않는 이유를 말해달라고 했더니, 그 이유가 생사결이라니.

“오라버니. 혹시 내가 아는 그 생사결이랑 다른 거야?”

“아니 맞아. 그 생사결(生死決)을 말하는 거야.”

“아……!”

하현은 무언가를 깨달은 듯 놀란 표정이었지만, 소화는 아직도 남궁민이 무슨 말을 하는지 알아채지 못했다.

남궁민은 그런 소화에게 눈높이를 맞추고는 그의 머리를 툭툭 건드리며 말했다.

“바로 이 머릿속에서지.”

“상상 대련이구나!”

이제야 소화도 남궁민의 말이 무슨 뜻인지 알아챌 수 있었다.

하현이 진작 알아챈 것은 어찌 보면 당연했다.

가상의 상대를 만들어 머릿속에서 싸우는 것은 하현도 즐겨 하는 수련법이었기에.

“조금 더 자세히 설명해줄까?”

“응.”

“기본적인 육체훈련도 빼먹지 않고 해. 다만 내가 아침잠이 없는 편이어서 말이야. 아침 식사 시간 전에 한 시진 정도는 항상 수련하지.”

“그래서 연무장에서 볼 수 없었던 거구나?”

청룡각의 일과는 보통 아침식사를 하고 나서 시작한다.

아침 식사 시간도 묘(卯)시(오전 5시에서 7시 사이)이기에 보통의 아침 시간보다 훨씬 빠른 시간인데, 남궁민은 그보다 더 빨리 하루를 시작하는 것이다.

“그렇지. 그리고는 이제 대부분 시간은 운기를 하며 머릿속에서 생사결을 치르는 거야.”

조용히 경청하던 하현이 심각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저는 운기하는 것보다는 직접 몸을 움직이며 하는 게 더 좋던데…. 형님은 그게 아니시군요?”

“지금 너와 소화의 단계에서는 직접 몸을 움직이는 게 더 나은 수련법이야.”

하현은 생각에 잠긴 채 말했다.

“이유가 있을까요?”

“글쎄.”

남궁민은 하현과 소화가 생각해 보라는 듯 잠시 뜸을 들였다.

그리고 충분히 지났을 때 그는 다시 말을 이었다.

“너희는 경험이 너무 없기 때문이야.”

하현은 그 말만으로도 남궁민이 하고 싶은 말이 무엇인지 단번에 이해했다.

머릿속에서 가상의 인물을 만들어도, 그 움직임이 너무 제한적이었다.

지금까지 맞붙은 상대라고 해봤자 손에 꼽을 정도였고, 그나마도 남궁환을 제외한다면 그리 어려운 상대들은 아니었다.

하현은 방금 정리한 생각을 소화에게 말해주려고 소화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하지만 하현은 그것이 괜한 친절임을 깨달았다.

소화도 하현에게 가려 빛이 바래서 그렇지 무공에 굉장한 소질도 있었고, 특출나게 총명한 아이였다.

그녀도 이미 남궁민의 말을 모두 이해한 듯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수많은 생사결을 실제로 나누고 나면, 그 방법이 굉장히 효율적이겠네?”

“그렇지. 머리로 만들어낼 수 있는 싸움 방식과 움직임이 그만큼 많아지게 되니까.”

소화와 하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하현은 잠시 먼 곳을 바라보며 나직하게 말했다.

“생사결···. 언젠가는 저도 지겹게 하게 되겠죠?”

남궁민은 씁쓸하게 웃었다.

남궁세가는 무가(武家)다.

그것도 무림에서도 알아주는 무가.

그렇기에 무림에서 분쟁이 끊이지 않는 한, 남궁세가 무인의 검에서 피가 마를 일은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남궁민은 하현을 똑바로 보며 말했다.

“현아. 그리고 소화야. 너희도 언젠가는 누군가의 목숨을 걸고 싸울 때도 있을 것이고, 또 누군가의 목숨을 취하는 날이 올 것이다. 하지만, 한 가지는 꼭 가슴속에 품고 있어야 한다.”

“그게 무엇입니까?”

“신념이다.”

남궁민은 한 손은 하현의 어깨에, 그리고 또 한 손은 소화의 어깨에 손을 올리며 말했다.

“모순적으로 들릴 수도 있지만, 우리는 아무 때나 검을 뽑지는 않는다. 의(義)를 위해 검을 뽑고 협(俠)을 지키려 검을 휘두르지. 우리가 기분 나쁘다고 아무 때나 검을 뽑는다면, 사파의 마두와 다를 것이 뭐가 있겠느냐?”

하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 남궁민이 하는 말은 그가 예전에 했던 고민이었고, 하현이 앞으로 하게 될 고민일 수도 있다.

“그렇기에 신념이 필요한 것이다. 네 신념을 따라 검을 뽑아라. 하지만···.”

진중한 얼굴로 하현과 소화에게 말하던 남궁민이 아주 살짝 비릿한 표정을 짓는다.

그리고는 잘 볼 수 없었던 사나운 얼굴로 말했다.

“너희를, 남궁세가를 해하려는 자는 무슨 수를 써서라도 이겨라. 제압하기 힘들다면, 죽여라. 그것이 이곳 무림이다.”

그리곤 언제 그런 표정을 지었냐는 듯 원래의 맑은 얼굴로 돌아왔다.

“하하. 쓸데없이 심각해졌구나. 이런 이야기를 하려고 했던 것은 아닌데 말이야.”

“아닙니다. 큰 도움 되었습니다.

“맞아. 오라버니도, 할아버지도, 아버지도 무인이잖아. 그리고…. 나도 이제 무인이고. 그런 각오는 항상 하고 있어.”

소화가 조그마한 주먹을 굳게 쥐었다.

남궁민은 그 모습이 퍽이나 귀여워 그도 모르게 소화의 머리를 헝클여주었다.

“아잇. 그만해! 머리 망가진단 말이야.”

“하하. 알겠다, 알겠어.”

남궁민은 손을 뿌리치는 소화를 보며 또 한바탕 웃고 난 후에 하현을 보았다.

“자. 나는 내 영업비밀을 다 말했다. 그러니 나도 하나 묻고 싶은 게 있는데.”

“저한테 말입니까?”

“그래.”

남궁민은 시선을 조금 내려 하현의 발을 바라보며 대놓고 물어보았다.

“어떻게 그렇게 잘 달리는 거야? 말해줄 수 있어?”

“아, 혹시 제가 달리는 방법이 궁금하신 거예요?”

“그래. 혹시 조부님께 특별한 신법이라도 전수받은 거야? 그래서 말해줄 수 없는 거면 어쩔 수 없고.”

그의 얼굴에는 질투 같은 감정이나, 하현을 견제하고자 하는 마음은 한 톨도 없었다.

그는 그저 순수하게 궁금했을 뿐이다.

비록 불세출의 천재라는 말을 듣고, 또 이제 약관의 나이로 청룡각에서는 어느 정도 자리를 잡은 그라고 해도 결국은 무(武)에 대한 궁금증으로 가득한 평범한 한 명의 무인이었다.

“아, 아닙니다. 취월걸개 어르신에게 배운 걸 토대로 제가 스스로 연구하고 있는 신법입니다.”

“뭐? 무공을 창안하고 있다는 거야?”

남궁민은 정말로 놀란 얼굴이었다.

“창안이라고 하기에는 조금 거창하고, 이미 배운 것들을 이리저리 조합하는 정도의 수준입니다.”

겸손한 하현의 말에 남궁민은 호탕하게 웃었다.

“와하하. 솔직히 나도 천재라는 소리를 평생 지겹도록 듣고 살았는데, 아무리 생각해봐도 나보다는 네가 더 천재 같아.”

“지금 저의 수준으로는 형님의 말끝에도 미치지 못합니다.”

“뭐? 하하하!”

하현이 웃긴 말을 하지도 않았건만, 남궁민은 더욱 크게 웃어버렸다.

“지금의 수준으로는 안 된다는 말이지? 나중이 기대되는데?”

“아…. 그런 뜻은 아니었는데.”

“그래? 난 아닌데. 나중엔 네가 나를 넘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머지않아서 말이지.”

남궁민은 어린 동생을 놀리는 것이 즐거웠는지 진심으로 웃는 얼굴이었다.

“제가 어떻게 달리는지 설명을 해드릴 수 있을 것 같은데. 한 번 들어보시겠습니까?”

“그래 준다면 고맙지. 소화야, 이리 와서 너도 자세히 들어. 아마 너한테 정말 큰 도움이 될 거야.”

“이래서 내가 하현이를 한 번도 못 잡은 거였어. 나한테도 가르쳐줘! 내가 수련해서 기필코 너를 잡고 말 테니까.”

“누나가 수련하는 동안 나라고 그냥 놀진 않을 텐데.”

“요게!”

소화가 당장이라도 하현을 쫓아갈 기세로 벌떡 일어났다.

하지만 남궁민의 제지로 하현을 쫓아갈 수는 없었다.

“자, 소화 기운 다 차린 것 같으니 이제 출발할까?”

“잠깐 오라버니! 하현이가!”

“누나 뭐해. 빨리 출발해야지. 이러다가 밤이 늦어야 도착하겠어.”

“뭐? 이게!”

소화는 이번에는 정말로 하현을 쫓았고, 하현은 잡히지 않으려고 부지런히 신법을 펼쳤다.

그런데 하현은 의도한 건지 정확히 가야 하는 방향으로 도망갔다.

하현을 쫓아간 소화도 옳은 방향으로 가게 된 것은 당연지사.

“소화…. 신법 수련은 저걸로 충분하겠네.”

남궁민은 가볍게 피식 웃은 후에 둘을 쫓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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