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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궁세가 천재 외손자-30화 (30/304)

30화

꼬박 하루가 지나 해가 뉘엿뉘엿 저물어갈 때, 남궁민과 소화 그리고 하현은 정덕현 초입에 도착했다.

소화는 힘든 기색이 역력했는데, 하현과 남궁민은 아직 여유로운 모습이었다.

솔직히 말해 하현이 있는 힘껏 달렸더라면 훨씬 일찍 도착할 수 있었겠지만, 소화를 배려한 것과 더불어 항상 힘의 오 할은 비축해 놓으라는 말을 실천에 옮겼다.

“와. 도착했다!”

소화는 기뻤는지 힘든지도 잊고 방방 뛰며 소리쳤다.

소화로서는 자신의 한계를 이겨낸 경험이 되었을 것이다.

속도를 조금 늦추긴 했지만, 쉬는 시간을 한 번 가진 이후로 정덕현까지 거의 쉬지도 않고 달려오는 것에 성공했기 때문이다.

“하하. 소화야 역시 네 고집은 못 당해내겠다.”

남궁민이 질렸다는 듯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바로 옆 마을이라고는 했지만, 오백 리에 달하는 어마어마한 거리였다.

원래 일주일 정도로 계획되어 있던 여정을 하루 만에 주파한 것이다.

“거봐! 내가 할 수 있다고 했지?”

소화는 의기양양하게 가슴을 펴며 말했다.

솔직히 말해서 소화는 마지막 이십 리를 남겨 놓고서는 결국 내공이 고갈되었기에 포기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다.

하지만 포기하지 않고 계속 달렸고, 그때부터는 체력과 정신력의 싸움이었다.

그 결과, 결국 하현과 남궁민에게서 뒤처지지 않을 수 있었다.

“어때. 해내니까 즐겁지 않아?”

“응! 즐거워.”

“하하. 나도 그게 지금껏 수련을 계속하는 가장 큰 이유 중에 하나야. 하현아. 너는?”

“저도 좋았어요. 항상 세가 내에서만 수련하다가, 이렇게 나와서도 수련한다고 생각하니까 느낌이 다르더라고요.”

“그래. 둘 다 자신을 이기는 것에 재미 들리기 시작하면, 어떤 것보다 큰 쾌감을 받을 수 있어.”

남궁민의 말대로 하현은 자기 자신을 이기는 것에 대한 재미에 점차 중독되어가는 중이었다.

“어차피 오늘 남궁세가까지 다시 돌아가는 건 무리니까, 오늘 밤은 객잔에서 보내고, 내일 표물을 가져다주러 가자.”

“아직 해가 지지 않았는데, 표물을 미리 가져다주고서 객잔에 들어가 편히 쉬는 게 좋지 않을까요?”

“맞아. 할 일이 빨리 끝내고 가면 더 좋은 거 아니야? 임무는 미루지 말라고 배웠는데!”

하현과 소화의 의문은 타당했다.

객잔을 먼저 들르게 된다면 결국 돌아와야 하기 때문에 동선이 비효율적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표물을 전달해주는 일자도 하루 늦춰지게 된다.

하지만 남궁민은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지금 우리 모습을 봐. 좋은 말로 해줘도 절대 단정하다는 말은 못 나오지 않을까?”

사실이 그랬다.

몇 시진 동안이나 산길을 달린 덕분에 그들의 의복은 흙먼지를 잔뜩 뒤집어썼으며, 머리도 헝클어지고 얼굴도 꾀죄죄했다.

소화와 하현 같은 경우에는 의복이 땀에 젖어있기까지 했다.

“세가 밖을 나오면 우리가 세가의 얼굴이야. 어디서든 용모와 행실을 올바르게 해야 한다.”

“또 하나 배웠습니다. 형님.”

큰 깨달음을 얻었다는 듯 비장한 목소리로 말하는 하현이 웃긴지 남궁민은 피식 웃으며 객잔을 향해 걸었다.

그를 따라 객잔으로 들어가려는 하현의 곁으로 소화가 다가와 말을 걸었다.

“하현아. 사실 세가에서 볼 때는 잘 몰랐는데, 민 오라버니는 정말 무림에 익숙해 보여. 그렇지 않니?”

하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남궁민에게서는 자신과 다른 엄청난 경험의 격차가 느껴졌다.

‘생사결…….’

순간 하현은 왠지 아까 남궁민이 말해준 생사결이라는 단어가 뇌리에 스쳐갔지만 이내 들려오는 남궁민의 소리에 시선을 향했다.

“뭐 하는데 안 오고 있어. 무슨 일 있어?”

“아! 아니야. 갈게.”

이미 멀찍이 걸어간 남궁민이 재촉하자 소화와 하현은 재빨리 남궁민의 뒤를 따랐다.

하현은 그를 따라 걸으며 속으로는 끊임없이 창궁대연심공을 운기 했다.

덕분에 객잔으로 가는 동안 어느 정도는 내공을 회복할 수 있었다.

* * *

소화가 숙소에 들어오자마자 등에 메고 있던 봇짐을 털썩 내려놓으며 말했다.

“으아 힘들어!”

남궁민은 그런 소화를 보며 귀여운 듯 웃어 보였다.

“거봐. 정대인의 장원에 내일 가자고 하길 잘했지?”

“내가 뭐라고 했나 뭐.”

객잔에 도착한 그들은 간단히 요기하고 목욕까지 하고 나서 깨끗한 의복으로 갈아입은 뒤 2층의 숙소를 잡았다.

노잣돈은 충분했기에 작은 거실에 방 두 개에 큰 거실이 있는 가장 큰 객실을 빌렸고, 그중에서 소화가 방 하나를 쓰고 하현과 남궁민은 같은 방을 쓰기로 했다.

각자 방으로 들어가기 전 셋은 거실에 모여 내일 건네줄 표물에 대해 얘기했다.

남궁민이 표행의 절차에 대해서 설명하고 나자, 소화가 기지개를 켜며 말했다.

“그나저나, 정말 오랜만에 뵙겠네.”

“정대인님 말하는 거야? 누나는 전에도 뵌 적 있어?”

“원래는 합비에 계셨는데 고향이 여기라고 아예 이쪽으로 오신 거야.

소화는 예전 기억을 되짚었다.

“내가 엄청 작을 때는 만날 때마다 맛있는 것도 사주시고, 장난감도 많이 사주셨고.”

“누나는 지금도 작…….”

“뭐?”

“아무 말도 안 했어.”

소화는 시치미를 떼는 하현을 흘겨보다가 말을 이었다.

“정대인은 원래 작은 상단을 꾸리셨는데, 본격적으로 무기 상단을 하시면서 지금처럼 엄청난 부자가 되신 분이야.”

하현은 소화의 말을 흥미롭게 들었다.

“게다가 우리 할아버지랑도 친분이 깊으셔서 남궁세가에서 쓰는 무기는 대부분 다 정대인이 유통하는 물건들이지.”

“장삼 아저씨가 만드시는 게 아니라?”

“일부는 장삼 아저씨가 만들지만, 아저씨 혼자 있는 대장간에서 우리 세가 사람들이 다 쓸 만큼의 무기를 많이 만드는 건 무리지.”

소화는 하현과 자신을 손가락으로 번갈아 가리키며 말을 이었다.

“너나 나처럼 직계들이나 장삼 아저씨가 만드는 무기를 쓰지, 나머지는 상단에서 구매한 걸 쓰는 거야.”

“그렇구나.”

소화는 아무것도 모른다는 듯 신기한 표정을 짓고 있는 하현이 답답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어쩜 너는 무공 배울 때는 그렇게 똑똑한 것처럼 보이더니 세상 물정은 하나 몰라?”

“하하…. 그러게.”

하현은 멋쩍게 웃으며 소화의 말에 수긍했고, 소화는 오히려 그 모습에 한 번 더 가슴을 쳤다.

“내가 앓느니 죽지!”

어린아이답지 않게 깊은 한숨을 푹 내쉰 소화는 왼편에 있는 방문을 열고는 말했다.

“나 먼저 들어가서 잘 테니까, 이제 말 시키지 마.”

“벌써 자게?”

“응. 나 피곤해 죽겠어. 뜨거운 물로 목욕까지 했더니 막 잠이 쏟아져.”

“알겠어. 잘자, 누나.”

“푹 쉬어. 소화야.”

“오라버니도 잘 자. 내일 아침에 봐.”

소화가 방문을 닫고 들어가고, 하현이 남궁민을 돌아봤을 때 남궁민은 뭐가 그리 재밌는지 싱글벙글 웃고 있었다.

“현아. 소화랑 항상 이렇게 재밌게 지내니?”

“네. 누나가 잘 해줘요. 진짜 누나처럼.”

“그렇게 말하면 소화가 정말 서운해할걸? 소화는 진짜 네 누나야. 나도 네 진짜 형이고. 물론 환이도 마찬가지고.”

하현은 그 말에 배시시 웃었다.

남궁민은 속으로 저 웃음이면 하현이도 몇 살만 더 먹어도 여러 여자 울릴 것 같다는 생각을 했지만, 굳이 말하지는 않았다.

“난 아직 시간도 이르고, 잠도 오지 않아 잠깐 나가볼 것인데 너는 뭘 할래?”

“어디 가시는데요? 저도 같이 나가도 돼요?”

“그냥 습관이야. 내일 혹시 무슨 일이 생길지도 모르니 주변 지형을 완전히 인지하는 거지.”

“여기는 이전에도 몇 번 와봤다고 하시지 않았어요?”

남궁민은 단호한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그렇다고 해도 최근에 와본 게 벌써 몇 개월은 지났어. 그 사이에 뭐가 어떻게 변했는지 모르는 일이지. 정말 작은 것 하나가 임무의 성패를 가르니까, 우리는 할 수 있는 최대한 변수를 통제할 수 있어야 해.”

“그렇군요. 감사합니다. 형님.”

하현은 남궁민의 말을 가슴에 새겼다.

임무라는 것이 단순히 무공이 강하다고 해서 무조건 성공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런데 남궁민은 지금까지 수백 건의 임무를 수행하며 단 한 번의 실패도 없었다.

그러니 그의 말은 진리나 다름없는 말이었다.

하현과 남궁민은 혹여 소화가 깰세라 조심조심 객잔을 빠져나와 골목 어귀로 나왔다.

어느새 해가 져 주변이 어둑어둑했다.

남궁민은 익숙한 듯 거침없이 발걸음을 옮겼다.

아주 조금 걷자 길게 늘어진 담벼락이 나왔다.

“정대인의 장원은 이곳에서 가장 큰 장원이야. 우리가 묵는 이 객잔을 선택한 이유도 장원과 가까워서이기도 해.”

“찾기 쉽겠군요.”

“하하. 솔직히 말하면, 그냥 찾기 쉬운 정도가 아니야.”

남궁민은 따라 걷던 담벼락에 손을 가져다 대었다.

“이런 작은 시골 마을에서, 이렇게 긴 담이라니. 뭔가 이상하지 않아?”

“아……!”

하현은 무언가를 깨닫고는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담벼락을 살폈다.

남궁민의 말대로 이곳 정덕현은 남궁세가의 장원이 있는 안휘성의 성도 합비와는 비교할 것도 없고, 취월걸개를 처음 만났던 고시현보다도 작은 시골 마을이다.

인제 보니 이토록 긴 담벼락의 존재가 이질적이라고 생각했다.

“그래. 우리는 아까부터 정대인의 장원 담벼락을 따라 걷고 있었던 거야.”

“그랬군요?”

하현은 새삼 신기한지 담벼락에 손을 가져다 대보기도 하고, 또 위아래를 훑어보기도 했다.

“이제 그만 가자. 마저 돌아보고 들어가서 쉬어야지. 피곤하지 않아?”

“별로 안 피곤해요.”

“그래?”

하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솔직히 말해 아까는 소화의 속도에 맞추었기에 그리 무리했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그리고 평소에 하는 수련에 비하면 여기까지 걸어온 것은 평소 하현의 운동량을 채워주지 못했다.

“하하. 알겠어. 천천히 돌자.”

남궁민은 그런 하현이 대견한지 눈부시게 웃어주고는 다시 앞장서 걸었다.

그는 하현과 담벼락을 돌며 어떤 부분을 봐야 하는지 천천히 일러주었다.

“우리 세가에서 임무를 할 때는 뭐를 제일 중요시하라고 했지?”

“목숨이요.”

“그래. 목숨이야. 목숨을 부지하는 제일 좋은 방법은 뭘까?”

“음…. 싸우지 않는 것?”

“와. 역시 현이 너는 총명하구나. 그게 정답이야. 싸우지 않는 것.

하현은 남궁민의 칭찬에 맑게 미소 지었다. 이어 남궁민은 담벼락 주위를 둘러보며 말을 이었다.

“보통의 혈기왕성한 무인들은 강해지는 것이나 싸워서 이기는 것이라고 대답하는데 말이야.”

남궁민은 하현의 어깨를 몇 번 토닥여 주었다.

“그래서 제일 유심히 볼 것은 퇴로를 살피는 거야. 담의 높이는 얼마이고, 나는 여기를 한 번에 뛰어넘을 수 있을지. 혹시나 다치게 되어 이곳을 넘지 못하게 될 때는 어떤 방법으로 나갈 수 있을지.”

하현은 남궁민의 말에 따라 유심히 곳곳을 살펴보며 걸었다.

그의 말대로 평소에는 보이지 않던 작은 개구멍이나, 혹은 빗장이 걸려있긴 하지만 사람이 드나 들만한 쪽문들이 보였다.

하현이 남궁민에게 그것들을 설명하자 남궁민은 잘했다며 또 하현을 칭찬해주었다.

“역시 배우는 게 빠르네. 이런 식으로 몇 번 하다 보면 나중에는 숨 쉬는 것처럼 자연스러워지는 날이 올 거다.”

남궁민과 하현은 장원 주위를 마저 돌았다.

남궁세가의 장원도 상당히 큰 편인데, 얼핏 보아도 정대인의 장원은 그 두 배는 되어 보였다. 그래서인지 하현과 남궁민이 장원의 대문 앞까지 당도했을 때, 이미 깊은 밤이 되어 있었다.

“마지막으로 대문을 확인하면 일단은 끝이야. 대문은 크기가 얼마나 되는지. 지키는 사람은 몇이나 되는지, 가능하다면 안채와의 거리는 얼마나 되는지를 파악하면 되는데…. 어?”

남궁민은 대문을 보며 뭔가 이상함을 느꼈는지 갑자기 경계하며 그림자로 숨었고, 하현도 재빨리 그를 따라 몸을 숨겼다.

“잠깐만. 뭔가 이상해.”

“네. 보통 이 정도로 큰 장원에 문지기가 없을 리 없을 텐데요.”

남궁민은 그 와중에 하현의 말에 조금 놀랐다.

하나를 가르쳐주면 열을 깨우친다는 말은 하현을 위해 존재하는 말 같이 느껴졌다.

“그래. 사람을 쓸 여력도 없는 졸부라면 모를까. 정대인은 안휘성의 부자를 말할 때면 가장 처음에 이름이 불리곤 하는 분이니까.”

하현이 언뜻 남궁민을 바라보니, 그의 표정은 싸늘하게 굳어 있었다.

눈이 마주치자 입술에 손가락을 하나 가져다 대었다.

쉿-

끄덕.

하현은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남궁민의 뜻이 전해졌음을 알렸다.

아주 천천히, 그리고 은밀하게.

남궁민은 경계심을 잔뜩 끌어 올리고 천천히 대문에 다가가 문에 귀를 대었다.

‘정대인이 사람을 안 쓴다는 말은 들어본 적이 없는데.’

하지만, 귀에 내공을 집중하여 한껏 청력을 키워봐도, 인기척 하나 들리지 않았다.

결국, 포기하고 귀를 떼려는 순간.

챙-

아주 작지만, 분명히 무슨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이 소리는 병장기가 부딪히는 소리가 분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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