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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궁세가 천재 외손자-31화 (31/304)

31화

챙-

병장기가 부딪히는 소리를 들은 순간, 남궁민은 순간적으로 하현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무슨 말을 하려던 순간.

절레절레-

하현은 남궁민이 무슨 말을 하려고 하는지 안다는 듯 필사적으로 고개를 저었다.

‘객잔으로 도망가 있으라고 할 것을 어찌 알고.’

남궁민은 아주 잠시 고민했다.

하현에게 계속 객잔에 가 있으라 하면, 결국은 그의 말을 들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이 위험성이 없다고는 할 수 없다.

상황으로 보아 장원 안에서 칼부림이 난 듯한데, 여기서 객잔까지 가는 길에 어떤 적을 만날지 가늠할 수 없기 때문이다.

비록 조금 전까지 주변을 꼼꼼히 돌며 확인했다고 하더라도, 남궁민은 백분지 일의 가능성도 허투루 넘기는 사람이 아니었다.

-좋다. 함께 가자. 대신 나에게 바짝 붙어라. 절대 떨어져서는 안 된다.

결국, 남궁민은 자신의 옆이 가장 안전하다는 판단을 내렸다.

하현에게 전음을 보낸 그는 몸에 내공을 실어 담 위로 몸을 날렸다.

휘익-

일 장이나 되는 높이였건만, 남궁민은 계단 하나를 타고 넘듯 가볍게 뛰어넘었다.

하현이 따라오지 못할지 걱정한 것도 아주 잠시.

하현 역시 가볍게 담을 넘어 그의 뒤를 따랐다.

착지할 때 소리 하나 내지 않은 것이 나무랄 데 없는 신법이었다.

‘아까 그 소리는 어디였지? 가장 안채인가?’

남궁민은 하현이 쫓아올 수 있는 한도 내에서 최대한 소리를 죽여 그림자 사이를 타고 넘었다.

혹여 누군가 이 모습을 본다면, 화산파의 암향표(暗香飄)를 익힌 것은 아닌가 의심할 정도로 은밀한 신법이었다.

어느 날은 취월걸개가 경신법을 가르쳐줄 때였다.

‘걸을 때 소리를 내고 싶지 않아? 그건 더 간단하지. 땅과 접촉하는 면을 줄이면 당연히 소리는 조금만 나지 않겠느냐. 대신에 발끝에 내공을 더욱 집중해야 할 것이다. 면적이 적어지면 압력이 높아지는 건 상식이지 않느냐.’

하현은 취월걸개에게 배웠던 경신법을 떠올리면서 최대한 남궁민의 뒤를 따랐다.

먼저 앞서가는 남궁민도 아주 잠시 뒤에 하현이 따라오지 않는다고 착각할 정도로 조용한 몸놀림이었다.

싸아아-

가장 안채에 가까워지면 가까워질수록, 남궁민은 사이한 기운을 느꼈다.

분명히 눈에 보이지만, 왜인지 이곳에 같이 있는 것 같지는 않은 이질적인 느낌.

그리고 그들이 안채에 어느 정도 더 가까워지자.

-잠깐. 여기에 있어 봐.

남궁민이 손을 펼쳐 하현에게 멈추라는 수신호를 펼치며 전음을 보냈다.

하현은 아직 전음을 보내는 법을 모르기에 잠자코 남궁민이 말하기를 기다렸다.

남궁민은 이질적인 느낌이 드는 주변을 살피다가 전음을 보냈다.

-진법이다.

진법.

하현은 할아버지에게 들었던 진법에 대해 떠올렸다.

무림에는 사방오행과 팔괘를 이용해 여러 가지 진법을 쓰는 무인들도 있다.

진 중에서는 환상을 보여주는 진도 있고, 함정에 빠뜨리는 진도 있다.

그리고 하현은 무슨 진이 펼쳐져 있는지 쉽게 추측할 수 있었다.

탁탁-

하현은 양손으로 귀를 막는 시늉을 했다.

남궁민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의 앞에 있는 것은 소리를 바깥으로 퍼지지 않게 잡아두는 진으로 보였다.

-들어간다. 혹시 무슨 일이 있으면 즉시 몸을 빼.

끄덕

하현이 알겠다는 신호를 보내자 남궁민은 땅에 더욱 납작 엎드려 진을 통과했다.

화아악-

무언가를 통과하는 느낌이 듦과 동시에.

“이놈! 이런 천인공노할 짓을 하다니. 부끄럽지도 않으냐!”

노호성같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누구에게 부끄러운 일이란 말이오? 하늘에게? 하하. 정말로 하늘이 보고 있다면 나에게 벼락이라도 내리겠지.”

“닥쳐라!”

남궁민은 지금까지보다 더욱 소리를 죽여 안채에 다가가 수풀 사이에 숨어 안뜰을 바라보았다.

‘정대인의 목소리다. 상대는 누구지?’

안뜰 마당에는 머리부터 발끝까지 칠흑같이 검은 옷을 입은 몇 명의 사내들이 흰옷을 입은 사내들과 서로 대치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주위에는 십여 구의 시체가 피를 흘리며 쓰러져 있었다.

‘죽은 자들이 모두 흰 옷을 입었다. 둘이 대치하고 있는 게 아니라 흑의인들의 일방적인 학살이다.’

그리고 흰옷을 입은 사내들의 가장 뒤에는 한 노인이 두려움을 억누르려고 온몸을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정대인!’

남궁민은 어떻게 돌아가는 순식간에 상황을 파악했다.

‘흑의인들은 적. 백의인들은 정대인의 호위무사들.’

하현도 남궁민을 뒤따라와 이 광경을 보았다.

그리고 그 순간, 비릿한 피비린내가 물씬 풍겨왔다.

신가장이 멸문하던 그날 밤, 장원을 가득 메웠던 이 피비린내.

하현은 이 향을 맡자 도리어 놀랐던 가슴이 진정되고, 피가 싸늘하게 식는 것을 느꼈다.

“정대인. 그러게 내가 경고하지 않았소. 순순히 재산을 내놓았더라면, 이런 일은 없었을 것을.”

“네놈들한테 넘길 돈은 없다. 차라리 죽여라.”

“그렇지 않아도 그럴 생각이오. 그대의 목을 들고 부인께 찾아가면, 부인께서 친절하게 숨겨놓은 재산이 어디 있는지 말해주시지 않겠소?”

“재산은 모두 내가 관리하고 있다. 나를 죽이면 그 돈들도 같이 죽는 거다.”

“그렇다면 어쩔 수 없지. 이곳을 깨끗이 정리하고, 다른 장원을 터는 수밖에.”

정대인의 호위무사 중 가장 앞에 서 있던 자가 입안에 고인 피를 퉷! 하고 뱉어내고는 말했다.

“주인을 해하기 전에 나부터 베어 넘겨야 할 것이다!”

“하하하. 꼴에 부잣집 개라고 짖는 것 하나는 훌륭하구나.”

흑의인은 여유로운 모습이었다.

호위무사는 그 모습을 보며 입술을 깨물었다.

그는 감숙성에서 제법 이름있는 무인으로 구파일방의 하나인 공동파 출신의 무인이었다.

이런 시골 마을에서 호위무사나 할 정도 수준의 무인이 아니었건만, 정대인의 인망과 엄청난 보수에 이끌려 지금 여기에 있었던 것이다.

겨우 이런 장원을 터는 괴인들에게 쉽게 당할 실력이 아닌 것은 분명했다.

“네 이놈! 이 복마검(伏魔劍)을 받아 보거라!”

호위무사는 자신이 낼 수 있는 가장 강력한 초식을 펼치며 맨 앞의 흑의인에게 달려들었다.

마(魔)를 복종시킨다는 이름 그대로처럼 무엇이든 가를 수 있을 것 같은 기세의 검이었다.

쒜에엑-!

검이 흑의인을 향해 무섭게 내던져지고,

서걱!

무언가 검에 베이는 소리가 날카롭게 모두의 귀를 스쳤다.

“크읍, 쿡, 어째서…….”

분명히 달려들어 검을 내려친 것은 호위무사였건만, 흑의인의 검이 호위무사의 가슴팍에 박혀있었다.

검이 부딪히지도 않았다.

흑의인의 검은 마치 호위무사의 검을 통과하듯이 그의 가슴을 베었다.

“으윽…….”

호위무사는 단말마만을 남기고는 털썩 쓰러졌다.

흑의인은 호위무사가 쓰러진 곳으로 걸어가더니 그가 지금까지 쓰던 보검을 주워들며 말했다.

“무공도 약한 것이. 검은 좋은 걸 들고 있군.”

정대인이 어렵게 구해 호위무사에게 하사했을 보검.

그는 검을 몇 번 휘둘러 보더니 마음에 들었는지 비릿한 웃음 지었다.

“이것 참 길이 잘 들어있소?”

흑의인은 정대인을 향해 크게 한걸음 다가갔다.

‘마교?’

남궁민은 흑의인들에 정체에 대해 추측했다.

검은 의복에 사이한 진법.

그는 자연스럽게 마교를 떠올렸다.

흑의인은 일부러 사냥감을 괴롭히려는 듯 천천히 백의인들에게 다가간다.

백의인들 모두 무공을 배운 무인들이건만, 그가 한 걸음 다가올 때마다 움찔거리며 몸을 떨 뿐, 제재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남궁민은 무엇을 결심했는지, 하현을 보며 전음했다.

-하현아. 이곳에서 꼼짝하지 말고 숨어 있어.

하현은 수풀에서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생사결이 궁금하다고 했지? 한 눈도 떼지 말고, 똑똑히 봐.

남궁민은 전음성을 남기곤 검을 뽑으며 안뜰로 신법을 전개해 흑의인에게 검을 날렸다.

휘익-

“!”

채앵-

흑의인은 남궁민의 검을 가까스로 막아내었다.

상황에 어울리지 않게 두 검이 부딪히는 소리가 청아하게 울렸다.

“누구냐!”

“이럴 때면 항상 침입자들은 그런 표정을 짓곤 하더군. 일을 방해받아 기분 나빠하는 그 표정. 사실 이곳에 없어야 할 것들은 그대들인데 말이야.”

“누구냐고 물었다!”

흑의인이 기대하던 대답은 남궁민에게서 나오지 않았다.

그보다 더 뒤에 있는 정대인이 소리쳤다.

“미, 민이가 온 것이냐?”

“맞습니다. 정대인.”

“하늘이시여···! 감사합니다···!”

정대인은 남궁민 한 명의 존재가 천군만마를 얻은 듯했다.

무슨 일로 그가 여기에 있는지는 중요치 않았다.

그저 남궁민이 지금 이 자리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믿지도 않던 신에게 감사 인사를 드렸다.

“민? 민이라…. 남궁세가의 청룡신검(靑龍神劍) 남궁민?”

청룡신검.

남궁민은 너무 요란하다며 싫어하는 그의 별호였다.

“말이 너무 길군. 그대로 도망치면 뒤쫓지 않겠다. 떠나라.”

“떠나라? 하하. 내 나이의 반절도 안 되는 걸로 알고 있는데, 말이 짧군.”

“장원에 침입해 금품을 갈취하려는 인간쓰레기에게 존중해 줄 예의 따위는 없다.”

“예의? 예의라. 큭큭큭.”

흑의인은 남궁민의 말에 무엇이 그리 웃긴지 배를 잡고 웃었다.

그러다 싸늘하게 남궁민을 노려보며 말했다.

“얼마 전 절강성 지부를 헤집어 놓은 것이 네놈 짓이냐?”

이번엔 남궁민이 씨익 웃었다.

“잘 기억이 안 나는군. 그쪽에 벌레를 치운 기억은 있지만 말이야.”

말은 그렇게 했지만, 남궁민의 머리는 팽팽 돌아가고 있었다.

얼마 전 절강성에서 그는 마교의 잔당을 소탕한 바 있었다.

‘그렇다면, 이놈들은 마교에서 온 것인가? 그런데, 마교가 뭐가 아쉬워서?’

흑의인은 남궁민이 한 벌레라는 말에 분노했는지 눈썹을 꿈틀대더니 말했다.

“맞군. 그렇지 않아도 네놈과는 결판을 내보고 싶었다. 나는…….”

“관심 없다. 곧 죽을 놈의 이름 따위.”

“이놈이!”

남궁민은 평소와는 달리 검을 들자 굉장히 호전적으로 변했다.

평소의 남궁민을 아는 사람이라면 결코 예상조차 못 할 모습.

하지만 하현은 왜인지 느낄 수 있었다.

이 모든 모습이 상대의 평정을 깨부수기 위한 남궁민의 연기라는 것을.

‘형님은 적을 상대할 때는, 모든 수를 다 사용하시는구나.’

아직 둘이 제대로 검을 부딪치는 것도 보지 못했건만, 하현은 큰 깨달음을 얻었다.

호랑이는 토끼 한 마리를 잡을 때도 최선을 다한다.

불세출 천재라고 하는 남궁민이건만, 상대를 우습게 보지 않고 그가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사용하는 것이다.

흑의인이 한껏 진기를 끌어올린다.

남궁민을 검과 함께 한 번에 베어내겠다는 의지로 모든 진기를 검에 집중했다.

펄럭펄럭

흑의인의 옷이 진기의 흐름에 따라 펄럭인다.

그리고 검이 기묘한 방향으로 움직인다.

찌직- 찌이익- 찍-

그의 주위에서는 무언가 찢어지는 듯한 이상한 소리도 나기 시작했다.

마치 나비가 날아다니는 듯한 사이한 검술이었다.

남궁민도 그에 맞추듯 진기를 끌어 올린다.

눈앞의 흑의인을 도발하기 위하여 말로는 우습게 보는 척하였지만, 남궁민은 직감적으로 느꼈다.

그가 최선을 다해야 하는 상대라는 것을.

빠직- 빠직-

자신의 한계까지 진기를 끌어올리자, 그의 몸 주위에서는 푸른 번개 같은 것이 번쩍이기 시작했다.

천뢰제왕신공(天雷帝王神功)

그는 남궁무룡이나 하현처럼 창궁대연신공을 익히지 않았다.

하지만 그와 쌍벽을 이루는 남궁세가의 비전신공을 익혔다.

그렇기에 그는 푸른 뇌전의 진기를 가지게 되었고, 그 결과 청룡이라는 별호를 얻었다.

“아까, 하늘이 보고 있다면 벼락을 내릴 것이라고 했지?”

“그렇다! 마른하늘에 벼락이 칠 일은 없을 테니! 으아압!”

흑의인이 그에 지지 않으려는 듯 기합까지 내지르며 한계까지 진기를 끌어올린다.

콰릉-!

하지만 푸른 번개가 흑의인과의 거리를 좁힌 것은 눈 한번 깜짝할 사이였다.

콰앙!

흑의인은 부지불식간에 일검은 막아냈다.

그러나 다시 날아오는 남궁민의 검은 문자 그대로 섬전(閃電)이었다.

“그 벼락…. 내가 대신 내려주지.”

“뭐, 무슨……!”

섬전십삼검뢰(閃電十三劍雷) 제 십일 초 섬전일섬(閃電一殲)

콰르르릉-!

흑의인이 남궁민의 말을 이해하지 못한 순간, 무자비한 번개가 그의 몸을 짓이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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