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남궁세가 천재 외손자-32화 (32/304)

32화

콰과과곽-!

쾅-!

남궁민의 검격을 몸으로 받아낸 흑의인의 신형이 실 끊어진 연처럼 날아가 내원 담벼락에 부딪혔다.

단 한 번에 부딪힘이었건만, 가슴은 징그럽게 움푹 파여있고, 눈은 까뒤집은 것으로 보아 단칼에 절명한 것이 틀림없어 보였다.

“대주님!”

챙-!

조금 전까지만 해도 여유로운 표정이던 남은 두 명의 흑의인이 경악하며 검을 뽑아 들었다.

남궁민은 검에 묻은 피를 털어내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너희들의 기도는 저놈만 못하군. 이곳에 어떤 연유로 온 것인지 말하면, 편히 죽여주마.”

“어디 죽여봐라!”

“대주님? 너희, 마교인가?”

“닥쳐라!”

두 흑의인은 마치 그림자처럼 동시에 남궁민에게 검을 찔러 갔다.

일류 고수라고 해도 막아내기 힘들 정도의 쾌검.

스윽-

하지만 남궁민은 그들이 들어오는 순간에 맞추어 앞으로 나가 있던 오른발을 뒤로 한 발 빼내어 아주 작은 공간을 만들었다.

쩌엉-!

남궁민이 검을 휘두르는 데는 그 작은 공간이면 충분했다.

분명 검 세 개가 부딪히는 소리였건만, 소리는 한 번만 울려 퍼졌다.

남궁민이 두 검을 동시에 후려쳤기 때문이다.

“크윽.”

검과 검이 부딪혔건만, 흑의인들은 내장이 진탕 하는 것 같은 충격에 뒤로 물러날 수밖에 없었다.

그들은 단 한 번의 부딪힘으로도 충분히 알 수 있었다.

그들로서는 절대로 남궁민을 넘을 수 없다는 것을.

끄덕

한 흑의인이 먼저 고개를 끄덕이자, 사전에 약조라도 되어있었던 듯 나머지 하나가 따라서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그 잠깐의 틈을 가만히 둘 남궁민이 아니었다.

후웅!

남궁민의 보법을 밟아 순식간에 다가오며 검을 휘둘렀다.

진기를 가득 담아 일도양단할 셈으로 휘두른 검이었다.

“크아압!”

흑의인 하나가 괴성을 지르며 남궁민에게 달려들었다.

푸학!

타다닥!

남궁민의 검이 흑의인 한 명의 몸에 박히는 순간, 다른 흑의인이 남궁민과는 반대의 방향으로 최대한의 신법을 전개했다.

“도망을?”

그를 눈치챈 남궁민이 검을 뽑아내려 하는데.

덜컥

“크흐흐. 못 쫓아간다.”

흑의인이 남궁민의 검이 몸에 박혔음에도 검을 꼭 붙들고 있던 탓에 검이 한 번에 뽑히지 않았다.

남궁민이 급히 진기를 담아 검을 붙잡은 흑의인의 손가락까지 베어내며 검을 뽑아냈다.

“끄윽.”

눈앞에 괴인은 남궁민의 검에 양단되어 절명했지만, 도망친 흑의인이 내원 담장에 도달하기엔 충분한 시간이었다.

타다닥!

흑의인은 벌써 담장을 타고 오르기 시작했다.

그를 본 남궁민 역시 지체 없이 신형을 날렸다.

‘잡아야 하는데!’

남궁민은 마지막 순간에 방심한 자신을 자책했다.

도망친 흑의인은 원래부터 유사시에 도망치는 역할을 수행하기로 되어있는지 예사 몸놀림이 아니었다.

남궁민이 이대로 쫓아간다고 해서 잡을 수 있을지 순간 확신이 서지 않을 정도로.

‘지독한 자식!’

도망친 흑의인은 번개 같은 속도로 가까워지는 남궁민을 보며 속으로 욕지기를 내뱉었다.

‘그것도 이 담장만 넘으면 끝이다.’

남궁민의 추측대로, 그는 다른 무공보다는 신법을 주로 익혔다.

단순히 달려서 도망치는 것이라면, 무림에서 경공으로 일절이라는 취월걸개에도 따라잡히지 않을 자신이 있는 그였다.

남궁민도 그것을 본능적으로 느꼈는지, 모든 내공을 짜내어 달려오는 것이 느껴졌다.

‘그렇게 폭발적으로 내공을 쓰면, 오래 달리지 못하지.’

그는 청룡신검이 이제 겨우 약관이 된 애송이였다는 것을 상기하며 달리기 시작했다.

아니, 달리려고 했었다.

터억- 콰당!

하지만 흑의인은 뜻대로 하지 못하고, 꼴사납게 바닥에 넘어지고 말았다.

풀숲에서 갑자기 튀어나온 손이 그의 발목을 낚아챈 것이다.

“무슨!”

그는 황망한 얼굴로 그의 다리를 잡은 손의 주인을 바라보았다.

“아이?”

그의 다리를 꼭 붙잡고 있는 자는 이제 열 서너 살밖에 되어 보이지 않는 청색의 무복을 입고 입는 아이였다.

“하현아!”

남궁민이 담장을 뛰어넘자마자 하현을 발견하고는 소리쳤다.

당연하게도 그 아이는 하현이었다.

하현은 남궁민이 튀어나가기 전 당부했던 말을 반은 듣고, 반은 듣지 않았다.

그의 싸움에 한 눈도 떼지 말라는 말은 잘 들었지만, 꼼짝도 하지 말라는 말은 듣지 않았다.

하현은 흑의인이 도망치려는 순간, 그가 도망치는 방향을 파악하고, 그곳에 미리 와 풀숲에 숨어 있었다.

콰악!

하현은 그의 발목을 쥔 손에 힘을 주며, 왼발로 흑의인의 손목을 짓밟았고, 그 덕에 흑의인은 검을 놓칠 수밖에 없었다.

“이익!”

검이 없다고 해도, 아이 하나 뿌리치지 못한 흑의인이 아니다.

그런데, 아이에게 잡힌 발목이 꿈쩍도 하지 않았다.

커다란 돌덩이에 다리가 깔린 것 같은 기분이었다.

“이런 개 같은……!”

흑의인에게 마지막 남은 것은 단 하나였다.

어금니 하나를 빼고, 그사이에 넣어둔 독 단약으로 자결하는 것.

죽음으로서 침묵하려는 것이다.

하지만, 이것마저 그의 뜻대로 되지 않았다.

흑의인이 눈을 질끈 감고 어금니를 깨물려고 할 때.

푸욱-!

그의 입안으로 하현의 주먹이 들어왔다.

내공이 잔뜩 실린 덕에 주먹은 이빨을 우수수 넘어뜨리며 목젖까지 닿았다.

“읍으읍”

하지만 그 덕에 입을 다물지 못했고, 자결하려는 그의 시도마저 수포로 돌아가고 말았다.

“하현아! 이게 무슨!”

남궁민은 흑의인의 입안에 주먹을 꽂고 있는 하현을 보며 놀랄 수밖에 없었다.

그가 살아온 인생이 결코 길다고는 할 수 없지만, 남궁민은 태어나서 이런 광경은 본 적도 없었다.

“아야야. 형님. 제 주먹 좀 빼 주세요. 이거 많이 아프네요.”

순식간의 하현의 곁으로 다가온 남궁민은 얼른 흑의인의 혼혈을 짚었고, 이내 그의 몸은 시체처럼 추욱 늘어졌다.

그리고 흑의인의 입을 벌려 하현의 주먹을 빼내자, 흑의인도 마지막까지 저항했는지 하현의 손에 난 이빨 자국에서는 붉은 피가 뚝뚝 떨어졌다.

“도대체 이게…….”

남궁민은 제대로 말을 잇지 못할 정도로 당황하여 하현을 바라보았다.

하지만 하현은 별 대수롭지 않은 일이라는 듯 말했다.

“전에 규현 스승님께서 말씀해 주신 적이 있거든요. 뒤가 켕기는 게 많은 것들은 항상 입안에 뭔가를 준비한다고요. 그래서 입을 다물지 못하게 하려고 했는데, 마땅한 게 보이질 않아 방법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주먹을 박아 넣었고?”

“네.”

남궁민은 하현의 주먹에 이빨이 몽땅 뽑혀 입에서 질질 피를 흘리는 흑의인을 흘끗 보자 자신도 모르게 피식 웃음이 터졌다.

지금이 웃을 분위기가 아니라는 건 그가 가장 잘 알고 있었으나, 합죽이가 된 흑의인의 꼴은 퍽이나 웃겼다.

“어찌 됐건 잘했다.”

남궁민은 하현이 대견스럽다는 듯 머리를 몇 번 쓸어 주고는 흑의인을 들쳐메고는 다시 안뜰로 들어갔다.

이번에는 하현도 몸을 숨기지 않고 남궁민의 뒤를 따라 안채로 들어섰다.

“민아! 덕분에 살았구나! 고맙다.”

정대인은 남궁민의 손을 꼭 붙들고 감사의 뜻을 표했다.

“대인. 도대체 무슨 일입니까?”

“나도 무슨 일인지 모르겠네.”

“놈들의 목적이 돈이었습니까?”

정대인은 고개를 끄덕였다.

“대인의 호위가 보통들은 아닌데…. 오직 셋한테 당한 겁니까?”

“그 셋만으로도 능히 일류라고 생각했던 내 호위들이 절반은 목숨을 잃었네.”

정대인은 슬픈 눈으로 죽은 호위들을 바라보았다.

이들은 정대인에게 단순히 호위가 아니었다.

정을 주고 함께 시간을 보낸 식솔들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렇다고 해서 정대인은 호위에 돈을 아끼는 사람이 아니었다.

그의 호위 중에서는 낭인으로서 이름을 날렸던 자도 있고, 꽤 유서 깊은 무가 출신도 있었다.

심지어는 구파일방의 하나인 공동파의 속가제자도 있을 정도.

하지만 그들 모두 흑의인들에게는 상대도 되지 않았다.

그나마 호위가 절반이나 살아남은 것도, 남궁민이 때에 맞추어 나타나 주었기 때문이다.

“어찌 되었건, 거처를 옮기는 것이 좋겠습니다. 이렇게 대놓고 움직일 곳이 어딘지 가늠이 가지도 않는군요.”

이곳 정덕현은 남궁세가의 영역이라 봐도 무방한 곳이었다.

특히나 정대인은 무공을 익히지는 않았지만, 검존 남궁무룡의 친우였기에 무림에서도 알만한 사람들은 모두 알고 있는 유명인이었다.

그런데도 이렇게 대놓고 들이닥치다니.

으득

남궁민은 순간 치미는 분노를 삭이느라 이를 갈았다.

이놈들은 남궁세가를 우습게 본 것이나 다름없었다.

“무림맹에 전갈을 넣어 주시겠습니까?”

“알겠네. 지금 당장 사람을 보내지.”

“이놈을 생포했다는 말을 꼭 함께 보내주십시오.”

정대인은 고개를 한 번 끄덕이고는 호위 무사의 부축을 받아가며 안채에서 아예 나가버렸다.

하기는, 고개만 조금 돌려도 온통 시체다.

무공 하나 익히지 않은 노인이 감당하기에는 잔혹한 풍경이다.

‘어? 그런데···.’

남궁민은 언뜻 순간 위화감이 들어 하현을 바라보았다.

하현은 이 상황에 전혀 동요하지 않은 모습이었다.

‘비범하다고는 하지만, 열 한 살 아이가 이 광경에서 침착할 수 있다고?’

조금 전에는 괴한의 입에 지체 없이 주먹을 꽂아 넣기까지 했다.

비무를 제외하고는 태어나 처음으로 사람에게 폭력을 행하는 것일 텐데 말이다.

하현의 평온한 태도에 남궁민은 위화감마저 느끼려 했다.

“현아. 괜찮아?”

“네. 손등이 찢어지긴 했지만, 큰 상처는 아니에요.”

“아니, 손의 상처 말고.”

하현은 평온하게 대답했고, 남궁민은 하현을 눈을 유심히 바라보았다.

아주 혹시나, 하현이 복수심을 마음속에 숨기고 있다거나, 더 나아가 혹여 감정을 느끼지 못하게 태어난 것이 아닐까 해서.

‘어휴. 저 눈에서 복수심은 무슨 복수심이야.’

그리곤 곧 자책하고 말았다.

하현의 눈빛은 맑고 곧았다.

남궁민은 어깨의 괴한을 다시 고쳐 들고 걸음을 옮겼다.

“빨리 객잔으로 돌아가자. 혹여 소화가 깰지도 모르니.”

“그…. 남자는 우리가 데리고 가는 거예요?”

“나가는 길에 정대인께 들러 내가 데리고 간다고 할 생각이다.”

하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 이 근방에 남궁민보다 강한 무인은 없을 것이다.

흑의인을 누군가 지키고 감시해야 한다면, 그건 남궁민이 하는 게 맞았다.

“가자.”

“네. 형님.”

안채에서 마음을 추슬러던 정대인은 흔쾌히 아니, 오히려 감사하는 듯한 모습이었다.

“민아. 지금 어디서 머물고 있느냐?”

“바로 옆에 객잔입니다. 장원에서 제일 가까운 곳.”

“아아, 그곳이군. 오늘 거처는 이곳으로 옮기지 않겠나? 아니, 부탁하네. 내가 불안해서 말이야.”

“…알겠습니다. 가서 짐을 챙겨오도록 하겠습니다.”

“고맙네. 고마워.”

남궁민과 하현은 객잔으로 돌아가 한창 잠에 취해 있는 소화를 깨워 정대인의 장원으로 돌아왔다.

정대인은 가장 좋은 방을 내주었고, 남궁민과 하현은 흑의인을 기둥에 단단히 묶어두고는 정대인에게 남궁세가에서부터 지고 온 표물을 건네주었다.

“허허…. 이 물건이 내 목숨을 살린 게구만…. 조상님들이 나를 도우셨어.”

정대인은 소중하게 표물을 끌어안았다.

공교롭게도 표물은 그의 조상들을 기리기 위해 주문한 위패였다.

“정대인. 저희는 이만 들어가 보겠습니다. 무슨 일이 있으면 즉시 사람을 보내주십시오.”

“알겠네. 정말 고맙네. 편히 쉬게나.”

남궁민은 정대인에게 꾸벅 인사하고는 돌아서서 하현에게 말했다.

“이제 새벽이다. 들어가서 조금이라도 자야지.”

“네. 형님.”

남궁민은 어느새 다시 잠에 곯아떨어진 소화를 안고 방으로 휘적휘적 들어갔다.

어느덧 한밤도 지나 달마저 저 너머로 넘어가려고 할 정도의 시간이었다.

남궁민은 기둥에 묶어둔 괴한을 지키기 위해 잠을 자지 않기로 했다.

입안에 있던 독약도 제거했고, 온몸을 꽁꽁 포박해 두었건만, 또 무슨 해괴한 방법으로 탈출을 시도할지도 모르는 일이기에 무림맹에서 사람을 보내올 때까지는 그를 감시하기로 한 것이다.

하지만 시간이 조금 더 흘러도, 하현은 잠에 들지 못했다.

“하현아. 너는 자라니까?”

“괜찮아요. 잠이 안 와서요.”

“흠···. 알겠다.”

남궁민은 문득 창밖을 바라보았다.

조용하고, 을씨년스러운 밤이다.

조금 전까지 그런 일이 있었거늘 장원의 모두가 이미 잠들었는지 인기척은 어디에서도 들리지 않았다.

“형님.”

하현이 남궁민을 나직이 불렀다.

남궁민이 창문에서 시선을 돌려 하현을 보니, 굉장히 진중해 보이는 얼굴이었다.

“왜 그래?”

“여쭙고 싶은 게 있어서요.”

“뭔데? 뭐든 말해봐.”

남궁민은 이어지는 하현의 말에 마음이 철렁하고 말았다.

“저는 왜 아무렇지도 않은 걸까요?”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