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남궁세가 천재 외손자-40화 (40/304)

40화

철매화(鐵梅花) 유민민은 임기 내내 그토록 피하고 싶었던 상황에 직면해 있었다.

‘요즘 팔자에 살이 끼었나. 계속 왜 이러지?’

그녀의 미간은 좁혀져 내 천(川)자를 그리고 있었다.

무림맹주로 지내온 수년간, 그녀는 문파, 세가들끼리의 분쟁 중재에 있어서만큼은 역대 무림맹주 중 최고라는 평을 받아온 그녀였다.

하지만, 최근 들어 계속 문제가 생겨왔다.

그것도 현재 무림에서 최고 배분의 어른들이 만드는 문제였다.

‘어제는 취월걸개 어르신과, 주원대사님이 싸워서 말리는 데 한참 걸렸는데…….’

그녀는 어제를 생각만 해도 황당했다.

무림에서 최고의 고수로 선망과 존경을 받는 두 사람이 싸움 난 원인이 말도 안 되었기 때문이다.

‘남궁세가의 손주 배분이랑, 소림의 삼대 제자들이 붙으면 누가 이기는지 말싸움을 하다가 진짜 싸움으로 번졌었지. 그런데 취월걸개 어르신은 개방 제자들도 아니고 하필 남궁세가의 손주들이지?’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가지 않는 지점이었다.

‘네가 이기면 소환단이 뭐 어쩌고 형님이 저쩌고…. 온 무림인들이 저 분들의 진짜 성정을 알면 아마 까무러칠 거야.’

그녀가 한참 생각하다 정신이 번쩍 들었다.

냉혈검 모용비산이 생글생글 웃는 얼굴로 포권하며 검존에게 인사했기 때문이다.

“검존 어르신. 드디어 이렇게 이야기를 나눌 시간을 내어 주시니 감사할 따름입니다.”

“아니네. 나도 언젠가는 대화를 해 봐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었네.”

검존 남궁무룡과 냉혈검 모용비산의 만남.

모용비산은 겉으로는 매우 공손한 언행과 태도였다.

‘검존님께서는 그간 상대를 안 하시다가, 왜 오늘 같은 날 모용가주를 만난다고 하시는 거야? 모용가주도 그래. 한동안 잠잠하더니 내 임기가 끝나고 나서 시비를 걸면 좀 좋아?’

유민민은 머리가 아파왔다.

남궁세가와 모용세가의 반목은 십 년 전부터 지속하여오던 일이긴 했다.

하지만 머리가 아픈들 어쩌랴.

이미 엎어진 물이고, 일어난 일인 것을.

그녀는 최대한 이 상황을 중재하기로 마음먹었다.

“저도 두 분이 한자리에 계시는 걸 정말 오랜만에 보는군요.”

“그러게 말입니다. 저는 꼭 검존님을 뵙고 싶었는데, 저는 지금껏 저를 싫어하여 피하시는 줄 알았습니다. 하하.”

모용비산은 사람 좋은 웃음을 지으며 말했건만, 그 말속에 뼈가 있다는 것은 이 자리에 있는 모두가 잘 알아들을 수 있었다.

유민민 역시 의도적으로 둘이 만날 자리를 만들지 않으려 했다.

설마 환현문과 마교의 일이 엮인 자리에서 그가 이렇게 일을 크게 만들 줄은 몰랐지만.

“허허. 그렇게 느꼈다면 미안하네. 자네도 알다시피 요즘 마교의 일 같은 큰일 때문에 다른 소소한 일들에는 신경 쓰지 못했네.”

유민민은 남궁무룡의 말에서도 무언가 뼈를 느꼈다.

‘어? 검존께서 왜 이러시지? 최근에는 이런 분이 아니셨는데.’

검존은 전 무림에서 알아주는 인격자였다.

심한 일에도 분노하는 법이 없고, 어느 순간에도 허허 웃으며 평정을 유지하는 심성의 소유자였던 것이다.

그런데 조금 전 그가 한 말의 속뜻은, 모용비산이 만나자고 하는 일은 사소하여 신경 쓰지 않았다는 뜻을 담고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하하! 그렇군요. 역시나 무림의 안녕을 끔찍이도 생각하시는 어르신답습니다.”

그리고 당연히 그 뜻은 당사자인 모용비산이 가장 잘 알아들었다.

그는 기분 나쁜 티를 굳이 숨기지 않았다.

‘이빨 빠진 호랑이 같으니라고. 분명히 우리 모용세가가 무서운 것이다. 그러니 내가 그토록 천하제일가의 자리를 두고 직계 가족들끼리만 자웅을 겨루자고 하는 서신을 보고도 못 본 체한 것이겠지.’

그렇지만 남궁무룡의 표정은 싸늘하게 식어 있었다.

“나도 세가로 빨리 돌아가 봐야 하고, 자네도 바쁠 테니 본론만 말하기로 하세. 그 서신에 직계끼리만 비무를 하자는 말이 있더군.”

“그렇습니다. 세가의 힘은 곧 직계의 힘. 직계의 힘이 강한 세가가 주도권을 가지는 게 맞는 것 아니겠습니까?”

“하하. 이것 참 웃기군. 자네는 우리 남궁세가에는 직계가 오직 여섯밖에 없는 것을 알면서도 그런 말이 나오는가?”

보통의 세가에서는 직계와 방계의 혈족들만 따져도 최소 두 자릿수는 넘어가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렇기에 남궁세가는 그 수가 매우 적다는 것이었다.

애초에 남궁무룡의 형제 자매가 좋지 않은 일을 겪어 그가 혼자였던 것이 가장 큰 이유이기도 했고, 슬하에 자식도 셋밖에 없었다.

심지어 자식들도 후사를 잇기는 했지만, 무공을 모르는 양인이었던 며느리들이 전염병에 모두 유명을 달리하여 그마저도 그들 여섯이 끝이었다.

“잠시만요!”

유민민은 현재 둘의 대화가 과열되고 있는 것을 느꼈다.

특히나 죽은 남궁무룡의 가족들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것은 자칫 남궁무룡의 분노를 일으킬 수 있다고 생각한 그녀였다.

“두 분, 지금 너무 감정적이세요. 지금 싸우자고 두 분을 모신 게 아닌 건 잘 아시지요?”

그녀는 겉으로는 차분한 듯 말하며, 남궁무룡에게 전음을 보냈다.

-검존 어르신. 노여움을 푸시지요. 모용 가주에게는 제가 잘 얘기하여 다시는 이런 일이 없도록 하겠습니다.

-맹주. 걱정 마시게. 나는 전혀 흥분하지 않았으니. 다만 오늘은 마음먹고 맹주 앞에서 내가 추태를 보일 것 같으니 이해해주시게.

-아···. 알겠습니다. 어르신.

전음을 통해 들려온 남궁무룡의 목소리는 그 여느 때와 다름없이 평온했다.

민민은 남궁무룡에게 무언가 생각이 있을 거라고 굳게 믿었다.

“맹주님. 저는 대화를 하려 이곳에 온 것입니다. 맹주님께서도 잘 듣고 판단해 주시기 바랍니다. 제가 지금 현재의 남궁세가가 약하다는 말을 하는 것은 절대 아닙니다. 하지만, 외부에서 제자들을 받아들여 육성하는 것은 여느 문파와 다를 것이 없지 않습니까? 저희도 본격적으로 자질이 좋은 제자들을 끌어모으기 시작하고, 우리 가문 무공을 전수하기 시작하면 더욱 강해질 수 있을 것입니다.”

모용비산은 잠시 말을 멈추고 남궁무룡의 눈치를 살피다, 남궁무룡이 아무 대꾸도 하지 않자 다시 말을 이었다.

“그러니 중요한 것은 세가의 피가 섞인 직계들의 실력입니다! 그래서 비무로 어느 직계가 더 강한지를 겨루자는 것인데, 그것이 그렇게 문제입니까?”

모용비산은 그가 주장하면서도, 이 주장에 억지가 상당 부분 존재한다는 것은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모용세가가 다시금 무림제일가로 인정을 더욱 받기 위해서는 결국 남궁세가를 꺾는 방법밖에는 없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이 방법은, 현재의 모용세가가 남궁세가를 이길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기도 했다.

“그래서. 기어코 자네는 비무를 하고, 천하제일가로 인정받고 싶다 이 말인가?”

“저희가 이기게 된다면 말입니다. 다만, 대 남궁세가의 저력이 있으시니, 저희가 질 수도 있는 것 아닙니까?”

모용비산이 공손한 척 점잔을 떨며 말했다.

‘검존의 형제, 자매들은 사십 년 전 정사대전에서 모두 유명을 달리했다. 모두 후사를 잇지 못했지. 그렇기에 현재 남궁세가의 직계는 검존의 두 아들과 세 손주가 전부.’

여기까지 계산하고서 한 말이지만 말이다.

“자네가···. 올해로 몇 살이지?”

“저 말입니까?”

“그래.”

“올해로 쉰입니다.”

남궁무룡이 별안간 빙긋 웃었다.

“자네는 정사대전을 몸으로 느껴 본 적이 없겠군. 정사대전이 오십 년 전에 발발하여, 딱 5년 동안 계속되었으니 자네가 어린아이였을 때겠군.”

모용비산은 남궁무룡이 무슨 말을 하는지 파악하지 못해 대꾸하지 못했다.

그사이 남궁무룡은 계속 말을 이어갔다.

“그래서 그랬군? 정사대전, 그리고 우리 세대에 관한 이야기는 그저 옛날얘기였을 테고 말이야.”

“저도 그다음 정마대전에 대해서라면···. 크윽!”

모용비산은 갑자기 숨이 틀어막히는 것 같은 느낌에 말을 잇지 못했다.

“정마대전? 하하…. 겨우 자네가 약관이었을 때 벌어진 그 정마대전을 말하는 게지? 자네가 과연 그것을 잘 안다고 말할 수 있는가?”

화아악-!

겉으로 얼핏 보기에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남궁무룡이었다.

하지만, 무림맹주 역시 똑똑히 느낄 수 있었다.

어느샌가 발산한 무형의 기가 이 공간을 묵직하게 채우고 있고, 그보다 더 나아가 모용비산을 짓누르고 있다는 것을.

“크흡!”

하지만 모용비산 역시 모용가주의 자리를 거저 얻은 게 아닌 초절정의 고수였다.

그 역시 남궁무룡에게 질세라 기운을 내뿜으며 그에게 저항했다.

“우리 남궁세가의 직계 가족이 어린 손주들을 포함하여 겨우 여섯밖에 없으니. 해볼 만하다는 생각이 들었겠지. 자네의 가문은 직계 중 무림에서 절정고수라고 일컬어주는 자만 해도 열 손가락이 부족하니 말이야.”

온 힘을 끌어 올리느라 얼굴이 시뻘게진 모용비산과는 달리 남궁무룡은 태연자약했다.

“천하제일가? 나는 그런 것에는 일절 관심 없네. 그러나···. 아까 자네가 뭐라고 했지? 직계의 실력? 그래. 내가 한 가지만 물어보지.”

“무···. 무엇을 말입니까?”

모용비산은 있는 힘껏 힘을 짜내 목소리를 내었다.

남궁무룡은 그런 모용비산을 보고서는 사람 좋은 웃음을 지으며 대답해주었다.

“과연, 모용세가의 직계 모두가 덤벼도. 나 하나를 넘을 수 있을까?”

콰직-!

모용비산이 앉아 있는 의자가 찍어누르는 듯한 남궁무룡의 기를 이기지 못하고 무너지고 말았다.

졸지에 바닥에 철퍽 주저앉은 꼴이 된 모용비산은 일어나 보려 했지만, 남궁무룡의 기에 눌려

누군가 그의 어깨를 잡고 누르고 있는 듯, 꼼짝도 할 수 없었다.

그리고 그를 향해 남궁무룡이 자리에서 일어나 평온하게 뚜벅. 뚜벅. 다가왔다.

“은거하신 모용휘 형님···. 그러니까 자네 아버지에게 물어보고 오는 게 어떤가? 나. 남궁무룡이 어떤 사람인지.”

“허억-! 후욱, 후욱- ”

남궁무룡이 말을 마치며 기를 거두자, 모용비산은 비로소 숨이 쉬어져 거칠게 숨을 몰아쉬었다.

“하하. 내가 장난이 과했군. 일어나시게. 내가 사과함세.”

남궁무룡이 모용비산에게 손을 내밀었고, 모용비산은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꾸물대다가, 그의 손을 잡고 일어섰다.

“그리고, 생각을 해봤네. 자네의 뜻을 따르는 것도 방법이 될 수 있을 것 같네만.”

“그 말씀은….”

어느새 태세를 전환하여 공손해진 모용비산이었다.

“비무. 받아들이도록 하지. 규칙은 간단하게 칠 대 칠 비무로 하는 게 어떤가? 각자 짝을 맞춰서 말일세.”

“칠대 칠 말입니까?”

모용비산은 한껏 주눅이 들었지만, 재빨리 머리를 굴렸다.

그로서는 손해 볼 것 없는 얘기였다.

여태까지 그가 그토록 원하는 것이기도 하고.

하지만 한 가지 드는 의문이 있었다.

“칠대 칠이라면, 일곱 명 이여야 하는데 남궁세가의 직계는 여섯 아닙니까?”

“하하. 몰랐나? 손자가 하나 늘었네.”

“손자가…. 늘 수가 있습니까?”

“뭐, 그런 게 있네. 왜. 그러면 그냥 하지 말까?”

“아닙니다! 하겠습니다.”

남궁무룡은 모용비산의 손을 잡아주었던 손을 허벅지에 툭툭 털어 닦으며 말했다.

“시기는 일 년 뒤. 장소나 이런 건 자네가 준비해서 전달해주시게. 우리가 모용세가로 가는 것도 방법이겠군. 그 정도는 해줄 수 있겠지?”

“물론입니다. 그런데 어째서 일 년 뒤입니까?”

“내 손주들은 어린아이들이 아닌가? 그만큼은 더 수련해야, 대단하신 모용세가의 직계들과 붙어볼 만하겠지.”

모용비산의 얼굴이 흙 씹은 것처럼 일그러졌다.

방금 남궁무룡은 일 년의 시간만 더 있으면, 어린아이들도 너희 직계를 이길 수 있다고 말 한 것과 진배없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이 상황에 모용비산이 할 수 있는 건 없었다.

결국 그는 알겠노라 대답할 수밖에 없었다.

남궁무룡은 그런 모용비산에게 한껏 사람 좋은 미소를 지어주더니, 그를 확 잡아당기며 그의 귀에 대고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오늘은 무림맹이니, 내 여기까지 하겠네. 비무 때 보도록 하지. 그때는 좀 맞을 각오를 해야 할 걸세.”

“헙···!”

“자. 볼 일 다 봤으면 돌아가시게나.”

모용비산은 얼굴이 사색이 되어 무림맹주의 다도실을 나섰다.

“어르신···. 이걸 잘 참으셨다고 해야 하나···. 왜 그러셨냐고 해야 하나···. 헷갈리는군요.”

“하하. 맹주. 미안하네. 내 그래서 아까 이해해달라고 하지 않았나? 의자는 내가 배상하겠네.”

“참···. 여전하시군요.”

유민민은 겉으로 보기에는 아직 중년으로 보였지만, 환갑을 바라보는 나이였다.

그녀의 스승인 화산제일검 단목성이 남궁무룡의 막역한 친우였던 덕에 남궁무룡의 무용담(?)을 질리도록 들어왔던 그녀였다.

어찌 보면 현재 무림에서 그의 과거 이야기를 가장 많이 들었던 사람 중의 하나이기도 하기에 이런 장면이 낯설지는 않은 느낌이었다.

“그런데 어르신.”

“왜 부르시는가?”

“만약…. 남궁세가가 비무에서 지기라도 한다면, 무림에는 큰 혼란이 올 것입니다.”

현재 남궁세가는 단순히 세가 이상의 큰 의미가 있다.

그런 남궁세가가 다른 세가와의 비무에서 졌다는 소식은 무림 정세에 큰 지각변동을 가져올지도 모를 일이었다.

지금과 같이 혼란을 눈앞에 둔 시대에는…. 그리 긍정적인 일은 아닐 것이 분명했다.

“하하. 난 걱정이 되지 않네.”

“그렇습니까?”

“남은 시간 동안, 손주 녀석들을 내가 제대로 가르쳐볼 생각이거든.”

남궁무룡은 손주들을 생각하자 자연스럽게 미소가 피어올랐다.

그는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은 손주들을 떠올리며 한층 더 깊은 미소를 지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