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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궁세가 천재 외손자-41화 (41/304)

41화

무림맹에서의 회동이 있고서 얼마 후, 무림맹은 환현문이 한 일을 무림에 공표하고 사파의 마두들에 대한 경계를 더 강화하였다.

무림에 올 큰 혼란을 막기 위하여 이번 공표에 흡성마공이나 마교에 대한 이야기는 제외하였지만 말이다.

그 과정에서 당연하게도 하현은 이번 일이 마교와 연관이 있을 수는 있지만, 결국 신가장이 멸문했던 일과는 별개의 일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하지만, 이 일에 동요하리라 생각했던 것과는 달리 그는 평온했다.

‘군소 방파들의 멸문지화가 멈추었다면, 오히려 잘 된 거야.’

그는 가지고 있던 일말의 아쉬움마저 삼켜버리고, 진심으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혈겁이 일어나지 않아 마교의 흔적을 찾을 수 없어 아쉽다는 생각은 그동안 죽어간 이들에게 너무나 실례고, 또 모욕적인 생각이다.

보통의 열 살 꼬마 아이였다면 그런 철없는 생각을 할지도 몰랐을 일이다.

하지만 하현은 보통 아이가 겪을 수 없는 큰일을 겪으며 또래보다 빠르게 성숙해졌다.

게다가 남궁세가에 와서 무도(武道)를 배우고 사랑도 듬뿍 담았기에 올바른 정신을 키워나갈 수 있었다.

하현이 실망하는 내색을 보이지는 않았지만, 남궁무룡은 노파심에 하현에게 말했다.

‘마교 놈들은 언제고 간에 무림에 마수를 들이밀 터. 때를 기다려라.’

하현은 할아버지의 말씀을 가슴에 새겼다.

하현이 할 수 있는 가장 좋은 일은 이들을 믿고, 제 실력을 키우는 것뿐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일 분 일 초를 허투루 쓰지 않기 위해 애쓰는 동안에도 시간은 쏘아진 활시위처럼 빠르게만 지나갔다.

* * *

“아니…. 얘네들이 요즘 왜 이래?”

남궁환은 요즘 급작스러운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고 있었다.

소화는 첫 임무를 갔다 오더니 갑자기 독기가 생겨 미친 듯이 무공수련에 매진했고, 팽헌홍은 하현의 뒤만 졸졸 다니긴 했지만, 피 튀길 듯 수련했다.

하현은 뭐…. 말할 필요도 없이 목숨을 걸고 수련을 하는 중이고 말이다.

“아, 나는 모르겠다. 이거 여기서 나만 열심히 안 하면 이상한 사람 취급받을 거 같아.”

그래서 남궁환도 수련을 게을리하지 않게 되었다.

남궁소화는 저번에 다녀온 첫 임무에서 남궁민과의 격차를 실감하기 이전에, 하현과의 격차를 절실히 깨달았다.

그래서 그녀는 그저 수련을 열심히 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하현의 일거수일투족을 따라 하기 시작했다.

“현아! 너 이제 뭐 할 거야? 평소처럼 수련하려는 것 같지는 않고.”

“나? 이제 달리려고.”

“달려?”

소화가 고개를 갸웃했다.

달린다는 말뜻을 이해 못 한 것은 아니었다.

다만, 무인이 달리기 수련을 한다는 말을 듣지 못했을 뿐.

“응. 신법을…. 그러니까, 내공을 쓰지 않는 달리기가 허리 근력이랑 하체 근력을 키워주는 데 그렇게 도움이 많이 된다고 취월걸개 어르신이 말씀하셨거든.”

“그래? 그러면 나도 달릴 거야.”

“정말? 나 좀 오래 달릴 건데.”

소화의 미간이 살짝 찌푸려졌다.

하현의 입에서 오래라는 말이 나오면, 그건 정말 오래라는 뜻이다.

“괜, 괜찮아.”

“정말 괜찮아?”

“응! 가자!”

소화가 일부러 쾌활하게 말했다.

하현은 그녀를 보고 피식 웃고는 휘적휘적 연무장 밖으로 나갔다.

“하현아. 소화야. 나도 가도 될까?”

그때 구석에서 혼자 열심히 도법을 연마하던 팽헌홍이 도를 갈무리하며 말했다.

“팽 오라버니? 좋아. 따라와!”

“아니, 누나 왜 누나 마음대로…….”

“왜. 불만이야?”

“그건 아닌데.”

“그럼 같이하면 되잖아. 팽 오라버니 빨리 와.”

그리고 소화는 애써 그들을 모르는 척하고 있는 남궁환에게 소리쳤다.

“환 오라버니! 빨리 안 와?”

“아니, 내가 왜?”

“왜 안 들리는 척을 하고 있어? 수련 안 해?”

“지금 보고 있다시피 열심히 창궁검법에 매진 중인 것이 안 보이니?”

남궁환이 열심히 허공에 검을 휘두르며 수련하는 척을 하자 소화가 양 허리에 손을 척 올리고 의미심장하게 말했다.

“아빠한테 이른다?”

“하…. 소화야.”

“그래. 그러면 열심히 ‘창궁검법’ 수련하세요. 오라버니. 저는 갈 테니까요.”

“아, 소화야!”

소화가 연무장을 휙 나가버리고, 하현과 팽헌홍은 남궁환을 안쓰러운 눈길로 한 번 봐주고는 따라서 연무장을 나갔다.

남궁환은 아주 잠깐, 시간이 멈춘 듯 정지해 있다가 결국 소리치며 그들을 따라갔다.

“나도 같이 가! 나도!”

그들은 한 시진(약 두 시간) 동안 내공의 도움 하나 없이 말 그대로 입에 단내가 장원을 몇 바퀴고 돌았다.

그중에 남궁환이 가장 먼저 낙오한 것은 어떻게 보면 당연한 일이었고, 소화는 하현이 멈출 때까지 악으로 깡으로 버티며 함께 달렸다.

이날 이후로 그들은 하루에 최소 한 시진. 길게는 두 시진까지 달리기를 지속했다.

물론 하현이 그걸 의도한 것은 아니겠지만, 이 수련법이 남궁세가에 점점 전파되며 그들을 따라 달리기를 하는 인원은 점점 많아졌고…. 훗날 청룡각 수련생들이 가장 치를 떤다는 천리구보(千里驅步)는 이렇게 생겨나게 되었다.

* * *

이렇게 서로 복작거리고, 부딪히고, 함께 수련하며, 팽헌홍은 점점 더 남궁세가 사람들과…. 정확히는 저 남매들과 비슷해져 갔다.

솔직히 말해 팽헌홍은 하현을 질투하고, 시기하지 않았다면 그건 거짓말이었다.

그가 하현을 은인으로 받드는 것과는 별개로 왜 자신은 저런 재능이 없는지 괴로워했다.

수련을 시작한 가장 처음, 그는 가장 커다란 의문이 있었다.

‘어떻게 남궁환 사형와 남궁소화는 저렇게 아무렇지 않을 수 있지?’

사람이라면 분명히 시기와 질투를 떼놓을 수 없는 것이 사실이다.

수십 년간 부처를 모신 고승들도 가장 힘들어하는 것이 시기와 질투를 멀리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수련을 육 개월 가까이 함께한 지금, 그는 남궁환과 소화를 드디어 이해하게 되었다.

‘이들은 하현에게 드는 이 질투심을 자신이 성장할 수 있는 양분으로 삼는구나.’

그랬다.

아무리 가문의 분위기가 좋다고 해서, 또 어릴 적부터 사랑으로 품어 자랐다고 해서 인간으로 태어난 이상 질투를 모른다는 것은 말도 안 된다.

하지만, 그들은 두 가지는 확실히 가슴에 새기고 있다.

첫 번째는, 상대를 넘어뜨리거나 고꾸라뜨려서 얻어내는 승리는 하등 의미 없다는 것.

그리고 두 번째는, 아무리 아득하게 보이는 상대일지라도 자신도 그만큼 성장할 수 있다고 믿는 향상심이다.

즉, 그들의 마음에 있던 시기와 질투의 감정이 그들을 더 움직일 수 있도록 하는 원동력이 되어준 것이다.

사실 이제야 알게 된 것이지만, 이 두 가지 사고방식은 남궁무룡이 가주로 즉위한 그때부터 강조하던 것이었다.

그 결과 지금의 남궁세가가 있었던 것일지도 모른다.

‘우리 가문도, 이렇게 될 수 있을까?’

팽헌홍은 잠시 하북팽가를 떠올렸다.

힘이 있어야 더 인정받고, 내 힘이 모자라면 상대를 깎아내려서라도 위에 존재하고자 하는 곳.

분명히 그 문화가 하북팽가를 지금 같은 위치에 올려놓았다는 것은 사실이다.

경쟁은 성장의 가장 큰 원동력이니까.

‘나는 그곳에서 진정 행복했던가?’

하지만, 결코 그곳에서의 생활이 행복했다고는 말할 수 없었다.

더군다나 팽헌홍처럼 눈에 띄는 자질을 가지고 있었을 때는 더더욱.

그는 남보다 못한 형제들을 생각하다가, 결국 두 주먹을 꽉 쥐었다.

‘아니, 내가 그렇게 만들어야지. 하북팽가도 모두가 행복한 곳으로 만들고 말 것이다!’

그는 인생의 목표를 정했다.

과거 그 언젠가, 그의 아버지가 팽헌홍의 손을 꽉 잡아주며 그에게 큰 기대를 걸고 있다고 했던 일이 떠올랐다.

꽈악-!

도를 쥔 그의 손에 더더욱 힘이 들어갔다.

* * *

하현의 실력은 날로 일취월장했다.

특히 혼원벽력도에서 영감을 월광검법의 성취는 눈부실 정도였다.

괄목상대. 무인은 사흘이 지나 다시 만나게 되었을 때 눈을 비비고 다시 대하게 할 정도로 일취월장해야 한다는 말이 있다.

하지만, 하현은 사흘이 아닌, 매일매일 다르게 봐야 할 정도로 성취가 뛰어났다.

본인이 직접 창안해낸 검법이기에 그 숙련도가 뛰어난 것이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일 수도 있다.

게다가 하현은 그의 깨달음과 무공을 나누는 데 있어서도 인색하지 않았다.

누구라도 원하는 자가 있으면, 거리낌 없이 월광검법을 가르쳐 주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쉽게 배울 수 있는 자는 손에 꼽았지만.

하현의 월광검법을 견식 한 자 중에는 남궁민도 있었다.

남궁민은 하현이 창안했다는 검법을 보고서는 작지 않은 충격을 얻은 듯했다.

월광검법을 펼치는 하현을 바라보는 남궁민의 얼굴은 수개월 전 하현이 처음 남궁민이 펼치는 삼재검법을 바라보았을 때의 얼굴과 흡사했다.

감탄과 경악, 그리고 조금의 선망까지 깃들어 있는.

벽.

하현을 보며 남궁민은 벽을 떠올렸다.

천고의 기재로 불리던 그로서는 난생처음 마주하는 벽이었다.

그의 백부이자 사부인 남궁기철과 함께하는 수련 시간에도, 그는 하현을 생각하고 있었다.

“오늘 통 집중하지 못하는구나.”

남궁기철의 날카로운듯한 음성이 들렸다.

남궁민은 잠시 머뭇거리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죄송합니다. 스승님.”

“왜. 심마(心魔)가 너를 괴롭히느냐?”

“아닙니다.”

“굳이 부정할 필요 없다. 심마가 생겼다고 하여 그것이 네가 잘못했다는 것은 아니니.”

평소 남궁민에게 엄하게 대하는 남궁기철이건만, 오늘은 왠지 자상한 목소리였다.

“네 동기···. 아니, 너보다 몇 기수는 더 위의 무인 중에서는 대적할 자가 없었으니 더욱 그랬겠지. 현재의 능력이 아닌 재능과 미래의 모습에서 말이다.”

남궁민은 이번에는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오만하게 들리실지도 모르나, 저는 태어나서 제 자질이 모자란다는 생각은 단 한 번도 한 적이 없었습니다.”

“오만하지 않다. 그게 사실이니.”

“허나, 하현을 만나고, 함께 시간을 보내면 보낼수록 제가 초라하게 느껴집니다. 저는 고작 이 정도의 재능을 최고라 믿었었나 하는 생각에···.”

남궁민은 씁쓸한 표정을 지으며 말을 이었다.

“그런데, 그런 생각이 드니 또다시 꼬리를 무는 생각이 있습니다. 내가 이런 생각을 한다면 다른 이들에게 어떻게 보일까? 저들을 기만하는 것으로 보이지 않을까?”

남궁기철은 이 심각한 상황에 피식 웃었다.

그 역시 아주 아주 작은 부분은 남궁민이 배부른 소리를 한다는 생각이 있었기 때문이다.

“심각한 상황에서 이런 말을 하기는 미안하다만, 나로서는 재미있구나. 네가 조금 전에 한 말을 나는 얼마 전에 들은 적 있어서 말이다.”

“얼마 전에 말입니까?”

“그래. 몇 달 되지 않았다.”

“그게 누구였습니까?”

“환이었다.”

“아···.”

남궁민은 곤란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남궁환은 그의 사촌 동생이기 이전에 남궁기철의 친아들이다.

그가 자기 아들의 이야기를 직접 해주는 마음이 좋지만은 않을 것이라 짐작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남궁기철의 표정은 나쁘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기꺼워 보였다.

“환이가 몇 달 전 하현이와 대련을 했었다면서 찾아왔다.”

“그렇습니까?”

“그리고 나에게 솔직하게 말하더구나. 되지도 않을 것, 깔끔하게 포기하고 자신이 할 수 있는 걸 하겠다고.”

남궁기철은 아무 대답도 못 하는 남궁민의 어깨를 두드려 주며 말을 이었다.

“네가 고민하고, 힘들어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 모든 것을 받아들여 모두 너의 동기로 삼아라.”

“감사합니다. 사부님.”

“그리고, 나는…. 이런 일이 더 늦게 오지 않은 것이 너에게는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남궁기철은 현재 상황에 남궁민에게 필요한 말을 해주었다.

‘비록 당장 내 말을 모두 이해할 수는 없겠지만, 언젠간 그 심마를 다스릴 것이다.’

그는 이렇게 생각하며 남궁민을 다시 바라보았다.

오늘 수련은 여기까지 하자고 말하려는 순간.

‘헛?’

그는 자기도 모르게 헛숨을 들이키고 말았다.

분명히 조금 전까지만 해도 불안하고, 복잡한 눈빛의 남궁민이었으나, 지금 그의 얼굴은 매우 차분했다.

‘이 짧은 순간에 마음을 다스렸다는 건가?’

남궁기철은 새삼 남궁민에게 놀라고 말았다.

또 아주 찰나의 시간 후, 평소의 눈빛으로 돌아온 남궁민은 부끄럽다는 듯 멋쩍게 웃었다.

“사부님. 죄송합니다. 정말 아무것도 아니었던 것으로 제가 고민을 했군요. 창피합니다.”

“무엇이?”

“하현의 재능이 뛰어나다고 해서 제 수련과 성취에는 어떠한 영향도 없는 것인데 왜 저는 이 간단한 것을 깨닫지 못했는지···. 많이 부족합니다.”

고개를 꾸벅 숙이는 남궁민을 보며, 남궁기철은 이내 남궁민에게 질렸다는 표정을 지었다.

하현이 아무리 뛰어난 모습을 보여준다고 해도, 그가 보았을 때는 남궁민도 그에 버금가는 천고의 기재였다.

“섬전십삼검뢰가 극성에 다다를 때까지는 다른 무공에 눈을 돌리지 않겠습니다. 더욱 정진할 테니, 앞으로도 새삼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좋다. 현재 우리 세가에서 천뢰제왕신공을 익힌 것은 너와 나뿐이니, 내가 아니면 누가 널 돕겠느냐. 하현이 쫓아온다면, 네가 그만큼 더 달아나버리면 될 일이다.”

남궁민이 씨익 웃었다.

남궁기철의 유도신문을 알아챈 것이다.

“아닙니다. 하현도…. 아니, 그 누구도 쫓아오는 게 아니지 않습니까?”

남궁기철도 마주 웃었다.

남궁민은 심마를 완전히 떨쳐낸 것으로 보였다.

“그래. 바로 그것이다. 누가 쫓고 잡히는 게 아니다. 같이 가는 것이다. 조금 빠르고, 느리고 가 있을 뿐이지.”

“큰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언젠가, 하현의 무공이 남궁민을 앞지르는 날이 올지도 모른다.

아니, 그날은 언젠가 분명히 오고 말 것이다.

하지만 그날이 오더라도 남궁민은 기꺼이 그 사실을 받아들이고 인정할 것이다.

그런 일이 생기더라도, 그가 남궁세가의 남궁민이라는 사실은 결단코 변하지 않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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