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화
다음 날.
남궁무룡은 하현이 정식으로 ‘남궁’의 성을 받았음을 세가에 선포했다.
솔직히 말해서 하현이 남궁하현이 되었다고 하여 크게 변하는 것은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했다.
여태까지 남궁세가의 식솔들이나 하인들, 심지어는 인근 마을의 주민들까지 원래부터 하현을 남궁세가의 직계이자, 가족이라고 생각하고 있있었기 때문이다.
덕분에 오늘은 하현은 살면서 가장 많은 축하를 받은 날이 되었다.
세가에 같이 살고 있는 남궁기철이나 기현은 당연하고, 어지간해서는 청룡각 밖으로 잘 나오는 일이 없는 남궁규현도 직접 하현의 숙소로 찾아와 축하한다는 말을 건네주고 돌아갔다.
“현아. 축하한다. 이거 받아. 선물이야.”
남궁휘연은 표국 일 때문에 눈코 뜰 새 없이 바빠서 보통은 세가 안으로 들어올 일도 없건만, 양손에는 당과며 산자 같은 먹을거리를 잔뜩 가지고 와 하현에게 주며 축하 말을 전했다.
그리고 방산 역시 하현이 공식적으로 남궁세가의 일원이 된 것을 진심으로 축하해 주었다.
그런데 이들보다 더 기뻐한 이들은 따로 있었다.
어쩌면 하현 그 자신보다도 더 기뻐하는 것 같아 보이기도 할 정도였다.
“야! 남궁하현!”
“누나. 그냥 전처럼 부르라니까?”
“좋으면서 왜 그래? 남궁하현?”
“그래. 소화 말이 맞다. 남궁하현아. 아니면 혹시 남궁이라는 성이 싫은 것이야?”
“환형님까지! 그게 싫은 것이 아니라…….”
“싫은 게 아니면 받아들여라. 남궁하현.”
그 전에도 그냥 현이라고 부르던 남매들이 꼬박꼬박 남궁하현이라고 부르는 통에 하현은 어딘가 민망하기도 하고, 부끄러운 것 같은 느낌까지 들기도 했다.
“하현…. 아니, 남궁하현아! 다 같이 수련 가는 것이야?”
“민 오라버니! 왜 이렇게 오랜만에 보는 거 같아. 난 또 오라버니가 또 임무 나갔는지 알았잖아.”
“민형님마저…….”
하현이 왠지 모를 패배감에 낙담하고 있을 때, 남궁민이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소화에게 말했다.
“소화야. 오랜만이라니. 우리 아까 아침에도 봤잖아? 내 처소까지 와서 하현이를 만나면 꼭 ‘남궁하현’이라고 불러달라고 해놓고서는”
“아니!! 오라버니는 그걸 이 자리에서 말하면 어떡해?!”
“하하하. 말하지 말라고도 나한테 얘기하지 그랬니.”
남궁민이 하현을 보며 눈을 찡긋했다.
이 상황에 남궁환과 하현도 결국 웃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한바탕 웃어젖히고 난 넷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남궁민을 중심으로 둥그렇게 둘러섰다.
“어찌 되었든, 이제 우리는 공식적으로 사 남매구나.”
“네. 형님.”
“지금까지도 잘 지냈지만, 앞으로도 새삼 잘 부탁한다. 하현아.”
“저야말로 형님, 누나들에게 잘 부탁드려요.”
“좋아! 남궁하현!”
“누나는 끝까지!”
“나는 계속 이렇게 부를 거야. 억울하면 남궁 하기로 한 거 무르던지.”
소화는 하현에게 혀를 메롱하며 내밀어 주고는 우다다 달려 연무장으로 먼저 뛰어갔다.
하현이 마음먹고 잡고자 하면, 틀림없이 소화를 잡을 수 있을 것이었으나, 하현은 소화를 따라가지 않았다.
다만 하현은 배를 잡고 웃었다.
그 웃음에는 행복이 진하게 베어 있었다.
* * *
“하나!”
“하압!”
“둘!”
“흐아압!”
남궁무룡의 구호에 맞추어, 남궁환과 소화, 그리고 하현은 앞으로 크게 한 발을 뻗어 나갔다.
“더 빠르게. 더 깊숙이! 너희의 발이 얼마나 들어가는지에 따라 검이 닿는지, 닿지 않는지가 결정된다. 목숨이 달려있다고 생각하고, 필사적으로 들어가라!”
“넵!”
“다시 하나!”
“하압!!”
최근 남궁무룡은 민을 제외한 세 남매를 데리고 본격적인 훈련에 들어갔다.
지금까지 배워온 것처럼 심법을 익히고, 초식을 익히는 그런 단련을 위한 수련이 아니었다.
“상대가 병기를 찔러오는 것이 아닌, 내리치는 느낌으로 들어온다면 뒤로 빠지면 안 된다. 내 검이 항상 닿을 거리를 유지하며 피해야 한다.”
남궁무룡이 남궁환의 머리를 향해 목검을 내리쳤다.
남궁환은 조금 할아버지가 말한 대로 뒤로는 피하지 않았지만, 옆으로 피하려 몸을 뒤틀었다.
퍼억-
“으악!”
하지만 그의 노력에도 남궁무룡의 목검은 남궁환의 옆구리를 후려쳤다.
“그렇다고 옆으로 도망치면, 다음 공격에 당할 뿐이다. 이럴 때는 앞으로 한 발자국 더 나아가 몸을 붙여버려라. 그것 때문에 지금 앞으로 다리를 뻗는 연습을 하는 것이잖느냐.”
쉬익-!
이번의 목검은 소화의 머리를 향했다.
유일한 손녀였건만, 손속에 사정을 두지 않는 조금 전 남궁환에게 휘두른 것과 똑같은 속도였다.
타앗!
남궁소화는 할아버지의 말을 곧바로 적용하여 남궁무룡의 품에 안기다시피 붙었다.
남궁무룡의 목검은 당연하게도 허공을 갈랐다.
“소화야 잘 했다. 조금 전처럼 상대에게 붙었다면, 그대로 검을 이용해 베거나, 소도를 꺼내 몸에 박아 넣어도 좋다. 한 번 출수한 검은, 회수해야만 다시 공격할 수 있다. 이 틈을 무방비라고 하는 것이다.”
“네! 할아버지!”
“저 할 때도 좀 그렇게 가르쳐 주시지…….”
남궁환이 옆구리를 부여잡고서는 투덜거리자 남궁무룡이 남궁환을 바라보며 말했다.
“환아. 뭐라고?”
“아, 아닙니다. 저도 앞으로는 그렇게 해야겠다고요!”
“그렇지?”
쒜엑-!
남궁무룡은 방긋 웃으며 이번에는 하현에게 기습적으로 검을 날렸고.
휘익-
하현은 제자리에서 잠깐 사라지는가 싶더니, 바람처럼 남궁무룡의 앞에 나타나 남궁무룡에게 주먹을 날렸다.
턱-!
당연히 남궁무룡의 손에 막히고 말았지만 말이다.
“좋다. 이렇게 하는 거야. 절대 검에 겁을 먹거나, 당황하지 않고 대응하는 것이 가장 기본이다.”
“네엡!”
지금 남궁무룡이 손주들에게 가르치는 것은 철저히 사람을 상대하기 위한 수련이었다.
남궁무룡은 수십 년간 강호에서 활약한 무인이다.
지금까지 수백, 수천 번의 생사결을 치렀고, 죽음의 문턱까지 갔다 온 것도 손에 꼽을 수 없을 정도.
그보다 더 실전을 방불케 하는 수련을 시켜줄 수 있는 이는 남궁세가에 없었다.
그런 남궁무룡이 그의 손주들에게 그가 실전에서 터득한 것들을 아낌없이 전수하는 것이다.
‘에고고, 죽겠다. 할아버지께서 모용세가와의 가문전은 그저 경험으로 삼았으면 좋겠다고 하셨으면서…. 속마음은 굉장히 진심이시네.’
남궁환은 지금껏 할아버지가 이렇게 열성적으로 누군가를 가르치는 것을 처음 보았기에 처음에는 의아했으면서도 이제는 그를 이해할 수 있었다.
‘할아버지께서는 지금 굉장히 즐거워 보이신다. 내가 진작 할아버지께 기쁨을 드릴 수 있었을 것을.’
남궁환은 후들거리는 다리에 힘을 꽉 주어 똑바로 섰다.
목숨 걸고 수련에 임하는 하현. 그리고 이번엔 그보다 더 눈에 불을 켜고 열심히 하는 소화 앞에서 창피한 모습을 보여줄 수는 없었다.
“하압-!”
세 남매의 기합이 연무장을 쩌렁쩌렁하게 울렸다.
* * *
잠시 쉬는 시간.
흙먼지를 뽀얗게 뒤집어쓴 소화가 꼴깍 물을 삼키고는 남궁환에게 물었다.
“환 오라버니.”
“왜?”
남궁환도 녹초가 되어 바닥에 널브러져 있던 탓에 건성으로 대답했다.
“좀 앉아봐. 물어볼 게 있어.”
“뭔데?”
“오라버니, 저기 팽가 놈…. 아니, 팽 오라버니랑 대련해봤어?”
“헌홍이?”
“응.”
남궁환은 갑자기 소화가 팽헌홍의 이야기를 왜 꺼냈나 싶어 갸웃하고는 대답했다.
“몇 번 붙어봤지. 공터에서 수련할 때는 말이야.”
“그래그래? 누가 더 강해?”
“아무래도 내가 더 강하지? 대련을 죽자사자해본 적은 없는데, 아직 까지는 내가 진 적은 없었으니까 말이야.”
남궁환의 대답에 소화의 눈이 반짝였다.
“그래? 그렇단 말이지. 그러면 내가 환 오라버니를 이길 수 있으면 팽가…. 아니, 팽 오라버니를 이길 수 있다는 거지?”
“음…. 그동안에 헌홍이도 놀고 있지는 않지 않을까?”
“그러면 오라버니도 계속 노력해서 항상 팽 오라버니보다 강하면 되잖아!”
“아잇 깜짝이야. 갑자기 소리 좀 지르지 말라니까. 목소리도 큰 게.”
남궁환은 정신이 번쩍 들었는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며 말을 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헌홍이는 왜? 무슨 일 있어?”
“아, 아니! 없어. 아직은.”
“아직?”
“몰라. 알 거 없어.”
“야. 말을 하려면 끝까지 해야지 사람 궁금하게. 무슨 일인데?”
“알 거 없대도!”
남궁환은 소화가 또 소리를 빼액 지르자 왜 저러는 거냐며 꿍얼거리고는 다시 연무장 바닥에 누웠다.
‘팽가 놈한테 본때를 보여줘야 하는데.’
얼마 전, 소화는 팽헌홍과의 대련에서 진 기억을 떠올렸다.
솔직히 말해서 소화는 남궁환에게는 당연히 아직은 안 될것이라는 것도 잘 알고 있었고, 심지어는 하현에게도 지금 상태로는 상대가 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내심 자신이 이번 청룡각 동기들 중에 하현 다음이라고 생각하고 있던 그녀에게 팽헌홍과의 대련에서의 패배는 큰 충격이었다.
게다가 팽헌홍은 그 일을 계기로 가끔 수련 때 소화를 도발하기도 하고, 가끔은 귀찮게 하기도 했다.
“누나. 솔직히 내가 보기엔…….”
“뭐?!”
“아, 아니야. 우리 열심히 하자고.”
하현은 소화가 어떤 일에든 사사건건 적당히 넘어가는 법이 없고, 또 반응도 격렬한 소화가 귀여워서 더욱 그런다는 말을 해줄까 하다가 소화의 반응을 보고 말을 아꼈다.
괜히 지금 그 얘기를 했다가는 왠지 저 불똥이 그에게 튈 것만 같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하현은 속으로 한숨을 푹 내쉬고는 휴식에 몰두했다.
세 남매가 쉬고 있는 그늘과는 조금 떨어진 곳.
그곳에는 남궁무룡이 그 셋을 흐뭇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현재는 수련 중이기에, 이런 마음을 겉으로 내비치지는 못했기에 이렇게 손주들이 그를 보고 있지 않을 때는 흘러넘치는 이 기분 좋음을 만끽했다.
‘삼십 년 전으로 돌아간 것 같구나.’
남궁무룡은 수십 년 전을 떠올렸다.
그때도 바로 이곳에서 그는 두 아들과 딸 하나를 데리고 함께 수련하곤 했었다.
비록 순서는 바뀌었지만, 성비가 그대로이다 보니, 마치 그때로 돌아간 것 같은 기분이었다.
‘민이는 잘 하고 있을까?’
남궁무룡은 그의 개인지도를 정중하게 거절한 남궁민을 떠올렸다.
‘조부님. 저는 백부님과 함께 천뢰제왕신공을 익히는 데에 더욱 몰두하겠습니다. 그리고, 더욱 잦은 임무를 다니며 실전 경험을 더 쌓고자 합니다.’
한 치에 흔들림도 없는 목소리와 눈빛이었다.
그때의 일을 생각하다 남궁무룡은 이내 피식 웃어버렸다.
‘그래, 민이는 걱정할 필요도 없지. 내가 걱정할 나이도 훌쩍 지났고.’
그때의 대화 후에 만난 남궁민은 그 어느 때보다 무공에 집중하고 있었다.
그 모습은 남궁무룡마저 일말의 무서움을 느끼게 할 정도였다.
‘재미있겠군.’
남궁무룡은 혼자서 허허 웃었다.
그때, 하현과 소화, 그리고 마지못해 따라온듯한 남궁환이 그를 향해 달려와 말했다.
“할아버지! 이제 다시 시작해요. 저희 다 쉬었어요!”
“혹여 조부님께서 아직 준비되지 않으셨다면, 아까 했던 동작을 반복하고 있을까요?”
“조부님께서 너무 힘드시다면 조금 더 쉬어도 좋을 것 같습니다.”
“환 오라버니!”
“…….”
“하하하. 하하하하!”
남궁무룡은 그만 육성으로 큰 웃음이 터지고 말았다.
먼저 수련을 시작하자고 하기도 전에 먼저 휴식을 마치고 온 손주들이 기특하기까지 했다.
아이들이 잘 하면 응당 그에 보답하는 것이 어른의 도리.
남궁무룡은 자리를 털고 일어나며 말했다.
“그렇게 수련하고 싶다면, 바로 시작하자. 이번에는 조금 힘든 수련을 할 거다. 모두 각오는 되어있겠지?”
“네!”
“네! 조부님.”
“…네.”
남궁무룡은 모용세가에 가는 날이 진심으로 기다려지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