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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궁세가 천재 외손자-45화 (45/304)

45화

남궁세가가 있는 안휘성에서 모용세가가 있는 요녕까지는 약 오천 리 가까이나 되는 엄청나게 먼 거리다.

남궁무룡은 모용세가에게 두 달 뒤에 도착할 것이라고 통보하였고, 모용비산은 그렇게 해도 좋다는 답신을 보내왔다.

그 덕에 남궁세가의 식솔들은 하루에 백 리 정도만 움직이기로 했다.

두 달이나 되는 긴 여정이지만, 이만큼 길게 세상을 구경할 기회도 없었기에, 하는 김에 제대로 즐기고자 마음먹었다.

하현으로서는 종종 있던 초급 임무 외에는 장원 밖에는 거의 나온 적이 없었기도 했고, 이렇게 오랫동안 장원을 떠나는 것은 처음이었기에 가슴이 두근거렸다.

두두두두-

“와!”

하현이 빠르게 지나가는 마차를 보고서는 감탄을 내뱉었다.

또 하현이 처음 경험하는 것이 있었는데, 이번 모용세가로 가는 길은 모두 마차가 지나갈 정도의 관도(官道)를 이용해서 간다는 것이었다.

굳이 험난한 산길을 갈 필요는 없었기에 관에서 닦아놓은 도로를 이용하기로 한 것이다.

“하하. 마차를 처음 보는 것도 아닐 텐데, 어찌 그리 놀라느냐.”

“마차를 처음 보는 것은 아니지만, 말 네 마리가 이끄는 저렇게 큰 마차는 처음 보는걸요. 저기에는 누가 타고 있을까요?”

“글쎄. 고관대작이나, 거상이 타고 있을지도 모르지.”

“그렇군요.”

“왜. 너도 타고 싶으냐?”

“하하. 아뇨. 신기해서요.”

그래서일까?

그들의 여정은 평탄해도 너무 평탄했다.

“아버지! 우리가 큰길로만 가니까, 그 흔한 녹림도 하나 보이지 않는 거겠죠?”

소화가 남궁기철의 팔에 매달리며 말했다.

“그렇겠지? 소화 너는 꼭 녹림도를 만나고 싶어 하는 말투다?”

“하핫. 설마요.”

소화는 정곡을 찔렸는지 팔을 놓고 슬며시 기철의 뒤로 가 걸었다.

남궁기철은 피식 웃었다.

“어쩌면 우리를 피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솔직히 말해 우리를 노략질하려면 그냥 녹림도가 아니라, 녹림 채주가 와도 나나 기현이 선에서 정리될 게 분명하니 말이다.”

남궁기철의 목소리에는 자신감이 진하게 배어 있었다.

무림에서 남궁기철과 남궁기현을 평하기를, 남궁세가에서 태어나지 않았다면 각각 다른 문파의 장문인이 될 수도 있었을 정도의 수준으로 평가하고 있었다.

그러니 그의 자신감이 근거 없는 것만은 아닐 것이었다.

그들이 이제 슬슬 걷는 것에 질리기 시작할 무렵인 일주일이 지났을 때.

그들은 산동성의 성도인 제남에 도착할 수 있었다.

제남은 과거 제나라 때는 잠시 수도로 지냈을 만큼 지형도 좋고 발전된 도시다.

그만큼 인구도 많고, 하현이 여태까지 보지 못했던 큰 건물들도 많았다.

하현은 주변 모든 것들이 신기한지 시종일관 두리번거리며 주변을 구경했다.

“현아. 뭐가 그렇게 신기하냐?”

봇짐을 잔뜩 멘 남궁기현이 하현에게 물었다.

큰 덩치 덕인지 이번 출타의 짐꾼 역할을 자처하고 다른 이들보다 더 많은 짐을 지고 있는 그였다.

“사람이 이토록 많은 것도 신기하고, 시장에 저렇게 많은 물건을 쌓아놓고 파는 것도 신기합니다. 저걸 다 팔 수는 있을까요?”

“하하하. 저 정도면 이틀이면 다 팔 거다. 이 시장이 제남에서도 제일 큰 시장이니 말이다.”

하현은 신가장에서 남궁세가로 도망칠 때나, 임무를 다닐 때 모두 산길 위주로 돌아다녔기에 이렇게 사람이 많은 광경은 몇 번 본 적이 없었다.

그나마 처음 신가장에서 도망쳐 나올 때, 취월걸개를 처음 만났던 고시현이 제법 크긴 했지만, 이곳 제남에 비하면 그저 초라한 시골 마을이나 다를 바 없었다.

“그런데, 섬서도 제법 사람이 많이 사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섬서의 성도인 서안은 제남에 비해서 면적이나, 인구수로 보아도 결코 작다고는 할 수 없는 도시니까 말이다.”

“하하…. 사실 서안에는 한 번도 가본 적이 없습니다. 어머니께서 사람 많은 곳을 피하시다 보니, 자연스럽게 저도 장원 주변에서만 살았었습니다.”

“하하하. 그렇구나. 생각해보니 영령이는 그럴만하지. 사람 많은 곳을 싫어했거든. 아니, 정확히는 무인이 많은 곳을 싫어했다. 섬서에는 화산과 종남이 있지. 그래서 더더욱 나가지 않으려 했을 것이다.”

“어째서요?”

어머니의 이야기가 나오자, 하현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물었다.

남궁기현은 옛날을 생각했는지 큭큭 웃고는 대답했다.

“저자에 나가기만 하면 꼭 시비가 붙곤 했거든.”

옆에서 둘의 대화를 듣던 남궁기철도 그 말에 미소를 띠며 말을 보탰다.

“현이 너도 잘 알겠지만, 영령이 성격이 워낙 불같았다. 불의를 보면 절대 참지 못하고, 파락호라도 얼쩡거리면 꼭 쫓아가서 쫓아내곤 했지. 그런데 무인이라는 족속들이 현이 너의 생각만큼 공명정대한 무인들만 있는 것은 아니다.”

“그래. 우리 정파에도 분명 자신이 가지고 있는 힘을 함부로 다루는 사람들이 있기 마련이지.”

남궁기현은 아주 잠깐 과거를 떠올렸는지 표정이 굳었다가 다시 풀어졌다.

“영령은 그런 놈들만 만나면 싸우지 않고는 배기지 못했다. 그래서 아예 싸울 일이 없도록, 무인이 많은 곳에는 가지 않으려 했지.”

“신기하네요. 솔직히 저는 상상이 잘 안 갑니다. 어머니는 저한테 항상 현숙한 모습만 보여주셨거든요.”

“하하하! 그것참 재미있는 말이구나. 나도 얌전한 영령은 상상이 잘 안 간단다.”

이제 남궁세가의 식솔들과 하현은 남궁영령의 이야기를 하는 것을 꺼리지 않았다.

남궁영령의 죽음으로 인한 흉터는 남아있다지만, 상처는 거의 아물었다.

그리고 그들은 하늘에 있는 영령 역시 자신이 언급될 적마다 가족들이 우울하고 침울해하는 것보다는 이렇게 추억할 거리를 나누는 것을 더 좋아할 것이라 믿고 있었다.

“자. 오늘은 여기서 묵어가자꾸나. 내가 젊을 적 종종 오던 곳이야.”

맨 앞에서 앞장 서가던 남궁무룡이 객잔 앞에 우뚝 서며 말했다.

“네. 아버님.”

“기철이랑 기현이는 미리 들어가 방을 준비해 주고, 손주들은 나를 따라오너라.”

“알겠습니다. 아버님. 그런데, 아이들은 어찌···.”

남궁무룡이 얼굴 가득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모처럼 여기까지 나왔는데, 시장을 돌아다니며 이것저것 사 먹이고 싶어서 말이다.”

“하하. 알겠습니다. 좋은 시간 보내다 오십시오. 아버님.”

“얘들아 이리 오너라.”

“네!”

남궁무룡의 이야기를 들은 아이들은 기대되는지 은근슬쩍 남궁무룡의 뒤에 가서 섰다.

그리고 쭈뼛쭈뼛하며 어디로 가야 할지 고민하는 사람도 있었으니.

올해로 스물하나가 된 남궁민이었다.

“형님. 어서 오세요!”

“맞아. 오라버니. 할아버지가 손주들 오라고 하셨잖아. 오라버니는 할아버지 손자 아니야?”

“맞지?”

“그럼 빨리 이쪽으로 와!”

남궁민은 머쓱한 표정으로 등에 메었던 봇짐을 남궁기현에게 건넸다.

남궁기현은 씨익 웃으며 남궁민의 짐을 기꺼이 받아들었다.

그는 요 며칠 부쩍 그의 아버지가 자신이 알던 아버지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손주들이 저렇게 좋은지, 좋은 게 있으면 아이들부터, 맛있는 게 있어도 아이들부터 찾는 것이 보통의 할아버지들과 같았다.

‘생각해보면, 모든 건 하현이가 오고 난 후부터다.’

정말로 하현이 오고 나서부터 변했다.

세가의 일밖에 모르던 아버지, 무공 말고는 아무것도 관심 없던 남궁민, 게으른 남궁환까지.

그랬던 그들이 온화한 미소를 지을 줄 알고, 무공이 인생의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고, 최고는 못 되지만, 지신이 가진 능력의 끝을 보고 싶어 매일 힘겹게 수련을 하게 되었다.

‘하여간 복덩이라니까.’

모든 일이 하현이 남궁세가에 들어오고 나서 잘 되기 시작했다.

남궁기현은 하현에게 다가가 그의 머리를 한 번 헝클어 주고는 남궁기철과 함께 객잔으로 들어갔다.

* * *

여행.

말 그대로 이번 모용세가 행은 여행이었다.

그들은 급할 것이 전혀 없었기에 모용세가까지 가는 길 동안, 호수도 구경하고 기암절벽도 구경하며 천천히 걸었다.

배가 고프면 식사를 준비해 먹고, 졸리면 가까운 객잔에 들러 쉬다 갔다.

하현은 남궁세가에 온 뒤로 이렇게 한가한 시간을 보낸 것은 처음이었기에 왠지 모를 불안감이 피어났다.

매일 피나게 하던 수련을 하지 않으니 도태되는 것만 같다고 생각한 것이다.

‘이렇게 아무것도 안 하자니, 도리어 불안하구나.’

그래서 매일 아침 새벽에 일어나 홀로 수련을 했다.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스스로가 괴로워서.

방을 함께 쓰는 형들이나 숙부들이 운기조식을 하는 것은 종종 보았지만, 그보다 하현은 실제로 몸을 움직이고, 땀을 흘리는 수련을 더 선호했다.

“후욱. 후욱.”

거친 숨을 몰아쉬고, 굵은 땀방울이 뚝뚝 떨어진다.

하현은 육체라는 것은 참으로 신기하고 생각했다.

근육을 열심히 쓰면 그만큼 근육이 더 붙고, 숨이 차게 달리면 어느새 폐활량이 증가한다.

쉬익-

하현의 검이 둥글고 크게 움직인다.

이미 수천, 수만 번을 행한 익숙한 검법인 월광검법이었다.

그런데 무공을 모르는 자가 보기에도 하현의 모습은 이상했다.

힘에 겨운지 검 끝이 부들부들 떨렸고, 하현의 다리도 그에 맞추어 후들후들 떨렸다.

“으윽.”

하현은 무너지려는 하체에 힘을 더욱 주어 겨우겨우 초식을 펼쳐냈다.

그렇게 겨우겨우 모든 초식을 끝마쳤을 때, 하현은 맨바닥에 털썩 누워버렸다.

“하이고, 죽겠다.”

말은 이렇게 하지만, 입은 방긋 웃고 있다.

하현이 오늘 한 것은 내공의 도움 하나 없이, 오로지 육체의 힘으로만 월광검법 펼쳐내는 것이었다.

하현의 체력으로는 내공을 활용해서도 단 한 번만 펼치는 것도 고역이었는데, 몇 달이 지난 지금 결국 해낼 수 있게 되었다.

스윽-

하현이 누운 채로 하늘을 향해 주먹을 들어 보였다.

조금 전 월광검법을 펼친 여파가 남아있는지 부들부들 떨리는 주먹을 보며, 이 충실감 때문에라도 무공 수련을 게을리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가 성취감을 한껏 맛보고 있을 때, 객잔에서 남궁환이 목소리가 들려왔다.

“하현아! 인제 그만하고 와서 아침 먹어! 출발해야지.”

“네! 형님!”

가족들도 당연히 하현이 매일 아침 수련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들은 하현에게 여기에 나와서까지 무슨 수련이냐 같은 말은 일절 하지 않았다.

하현이 하고자 한다면 그저 하는 것이다.

그의 뜻을 존중해줄 뿐.

수련 때문에 그들이 가야 하는 거리에 차질이 생긴다면 문제가 되겠지만, 계획에 어긋나게 하지 않았기에, 그들은 하현이 무엇을 한다고 해도 좋다고 해주었다.

하현은 충분히 쉬었는지 벌떡 일어나 벗어 놓은 상의를 잘 입고 객잔으로 들어갔다.

오늘도 갈 길이 멀었다.

* * *

남궁세가의 사람들은 어느덧 하북성, 북경에까지 도착했다.

지금까지 오면서 거쳤던 크고 작은 도시들에 감탄했는데, 북경은 또 차원이 다른 크기였다.

개미굴처럼 이리저리 얽히고설켜 있는 북경의 거리를, 남궁무룡은 마치 제집 다니듯 편하게 다녔다.

그 덕에 그의 아들들과 손주들은 남궁무룡의 뒤만 쫄래쫄래 따라다닐 수밖에 없었다.

“여기 북경이 있는 하북성은 모용세가가 있는 요녕과 붙어 있다. 마음을 먹으면 하루라도 갈 수 있는 거리지. 그러니 오늘은 여기서 하루 쉬고 내일 아침에 떠날 것이다.”

“네 아버님. 그러면 객잔을 구해볼까요?”

“하하. 아니다. 하북에 오면, 마음 편히 잠잘 곳은 있으니.”

굳이 남궁무룡이 어디라고 말하지는 않았지만, 그에게 그곳이 어디냐고 묻는 사람은 없었다.

검존과 가장 친한 친우라고 하면 전 무림에서 모르는 사람이 없었기 때문이다.

남궁무룡과 취월걸개, 그리고 도제 팽길산은 서로 의형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얼마나 서로가 가까우면, 팽길산이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정도라던 막내아들을 남궁세가에 의탁시켰을까?

남궁무룡의 뒤를 따라 조금 더 도시 안으로 들어가니, 사람 키만 한 담장으로 빙 둘러싸인 거대하고 네모반듯한 장원이 나타났다.

이윽고 그들이 입구 앞에 당도했을 때, 하현은 거대한 크기의 현판에 압도당하는 기분이 들었다.

현판에는 힘이 넘쳐 흐르는듯한 강인한 필체로 이렇게 쓰여 있었다.

‘하북팽가(河北彭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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