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남궁세가 천재 외손자-51화 (51/304)

51화

“후욱, 후욱.”

“…….”

남궁환은 거친 숨을 몰아쉬고 있었고, 모용괴산은 말을 잃어버렸다.

그가 생각했던 양상은 이런 것이 전혀 아니었기 때문이다.

스무 합.

남궁환은 모용괴산과 무려 스무 합을 부딪쳤다.

모용괴산이 무림에서도 이름이 제법 알려진 절정고수라는 것을 상정했을 때, 이는 굉장한 성과나 다름없었다.

“와! 역시 남궁세가라는 건가? 대단하구나!”

“다들 봤어? 시종일관 저 아이가 밀어붙이는 것 말이야.”

관중들은 모두 하나같이 남궁환을 응원하고 있었다.

“치잇.”

모용괴산은 혀를 한 번 차고는 검을 치켜들었다.

‘여기서 더 시간을 끌면 안 된다.’

그는 자신이 질 것이라고는 생각도 하지 않았고, 실제로 비무의 내용도 그렇게 흘러가고 있었다.

남궁환의 호흡이 잔뜩 흐트러진 것만 보아도 그가 훨씬 유리한 상황이라는 것은 쉽게 알 수 있었다.

하지만, 그건 무공을 아는 무림인들 사이에서나 보이는 것이지, 무공은 전혀 모르는 구경꾼들의 생각과는 별개의 일이었다.

끊임없이 화려하게 선수를 취하는 남궁환의 모습에 그들이 매료되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라고 할 수도 있었다.

‘이번에 끝낸다.’

그는 한시라도 빨리 비무를 끝낼 작정으로 할 수 있는 모든 내공을 목검에 끌어당겼다.

쇄천검(碎天劍).

그를 이 자리에까지 올려놓은 그의 성명절기나 다름없는 무공을 펼칠 마음을 먹었다.

“후…….”

어느새 심호흡하며 거친 숨을 몰아낸 남궁환도 이번에는 모용괴산의 기도가 달라진 것을 눈치챘는지 목검에 힘을 주어 더욱 꽉 쥐었다.

스윽- 사악!

모용괴산이 바닥을 스치듯 빠르게 남궁환에게 접근했다.

무림에서도 일절로 뽑히는 모용세가의 신법 일엽락(一葉落)이 그의 발끝에서 펼쳐진 것이다.

지이잉-

남궁환도 가만히 있지는 않았다.

충만한 내공이 깃든 그의 목검에서도 진동이 느껴졌다.

“타압!”

“하압!”

카가가각-

두 검이 부딪히자 어딘가 갈리는듯한 소리가 터져 나왔다.

아래에서 검을 쳐올린 남궁환의 검과 위에서 내려친 모용괴산의 검이 팽팽하게 힘겨루기를 하며 나는 소리였다.

“크읍.”

내공과 힘의 싸움.

하지만 세월의 힘은 무시할 수 없는 것인지, 남궁환이 입술을 깨물어 피가 날 정도로 힘을 썼음에도, 결국 밀리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파악!

긴 줄다리기 같던 힘겨루기의 결말은 남궁환이 검을 놓치는 것으로 끝이 났다.

“후우…. 졌습니다.”

결국, 남궁환은 항복을 선언했다.

“와아-! 최고였다. 내가 살면서 이런 걸 보게 될 줄이야.”

“잘 싸웠다! 정말 멋졌다!”

관중석에서 환호소리가 터져 나왔다.

그런데 그 환호소리는 승자인 모용괴산이 아닌, 패자인 남궁환에게 쏟아지는 환호였다.

“하하…….”

남궁환은 머쓱하게 머리를 긁으며 연무장 아래로 내려갔다.

“고생했다.”

“감사합니다. 아버지.”

남궁기철은 남궁환의 손을 잡아주었다.

“하이고. 힘들다. 할만큼은 한 것 같네.”

“오라버니. 평소보다 더 잘하는 거 같던데?”

“그래? 그런데 격차가 너무 나더라. 어차피 못 이길 상대였을지도.”

남궁환은 패배에 어떤 타격도 없다는 듯 웃어넘기며 한껏 흐트러졌었던 옷매무새를 정리했다.

얼핏 보면 승패에는 관심 없다는 태도였다.

“후…….”

하지만 남궁세가의 사람들은 모두가 알고 있으면서도 말을 하지 않았다.

주먹을 꼭 쥔 남궁환의 손이 미미하게 덜덜 떨리고 있음을.

이번 비무를 하며, 그리고 패배하며 남궁환도 스스로 깨달았을 터였다.

그 역시 무인의 피가 흐르고 있다는 것을.

한편, 모용세가 진영은 이번 비무를 승리했음에도 그리 분위기가 좋지 않았다.

“고생했다. 괴산.”

“가주님…….”

“마음이 불편해도 어쩔 수 없다. 다 우리 가문을 위한 것이다.”

“…알겠습니다.”

이런 말을 들어도 모용괴산의 표정이 풀릴 일은 없었다.

“자. 다음 비무를 시작하겠습니다!”

군자검의 목소리에 그들은 자연스럽게 남궁세가쪽을 쳐다보았다.

이번에 연무장에 사뿐히 오르는 것은 남궁세가의 홍일점 남궁소화였다.

그러자 모용세가에서 선발된 이 중에서도 유일한 여인이 몸을 일으켰다.

“후…. 아버지. 이번에는 제가 갔다 올게요. 원래부터 저 아이는 제가 맡기로 했으니 말이에요.”

“도청아. 다녀오너라.”

모용비산의 딸 모용도청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고는 연무대 위로 올라섰다.

“선배님! 잘 부탁드립니다. 봐 주실 필요는 없습니다.”

소화가 생글생글 웃으며 말했다.

“후훗. 그래. 그러지 않아도 최선을 다할 생각이다.”

스윽

남궁소화가 검을 슬쩍 들어 올리며 기수식을 취했다.

‘이제 겨우 열셋이라고 들었는데……!’

모용도청은 속으로 침음성을 삼켰다.

겨우 열네 살의 여자아이라고는 할 수 없는 기도가 느껴졌기 때문이다.

‘최선을 다해야 할지도…. 아니, 최선을 다해야 한다.’

그녀는 자기 나이보다 배는 더 어린 소녀에게 긴장하는 자신이 한심하게도 느껴졌지만, 손속에 사정을 둘 생각은 없었다.

“시작!”

따악!

군자검의 목소리가 떨어지자마자, 두 무인의 병기가 부딪쳤다가 떨어졌다.

“……!”

씨익-

한 명은 생각보다 강한 위력에 깜짝 놀랐고.

한 명은 생각보다 할 만하다는 생각에 미소가 피어올랐다.

‘어떻게 저 나이에 저런 공력을……!’

모용도청은 저릿한 손의 충격을 풀어주며 생각했다.

앞에서 웃고 있는 소화의 얼굴이 조금 전까지만 해도 어리고 귀엽다는 생각이 들었건만, 지금은 그런 생각 따위는 완전히 접어 버렸다

무인(武人).

그녀의 앞에 있는 소화는 여자도, 아이도 아닌 그저 한 명의 무인이었다.

* * *

털썩-!

소화는 결국 중심을 잡지 못하고 연무대 바닥에 쓰러지며 꽤 오랜 시간 동안 지속하였던 비무가 끝을 알렸다.

다시 일어나지 못하는 것으로 보아 정신을 잃어버린 것 같기도 했다.

“모…. 모용도청 승리!”

비무의 결과를 외치는 군자검의 목소리가 떨려왔다.

“소화야! 괜찮으냐.”

“남궁소화!”

“누나!”

남궁기철이 급히 신법을 전개해 소화를 안고 연무대 밑으로 내려가 상태를 확인했다.

“후…. 별다른 이상은 없습니다. 외상도 심하지 않고요.”

“아버지. 그런데 왜 쓰러진 거예요?”

남궁환이 걱정스러운 얼굴로 물었다.

남궁기철은 안심시키려는 듯 남궁환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어찌나 최선을 다했는지 기력이 다한 것 같구나. 조금 있으면 깨어날 거다.”

“어휴, 그러니까 내가 항상 좀 적당히 좀 하라고 했는데…. 그래도 다행이네요.”

남궁세가 사람들은 소화의 상태가 생각보다 나쁘지 않아 한시름 놓았다.

“도청아. 고생 많았구나.”

“네. 아버지…….”

한쪽 어깨를 부여잡고 또 한쪽 다리를 절뚝이며 모용세가의 진영으로 돌아간 모용도청에게 모용비산이 말을 건넸다.

대답하는 모용도청의 얼굴을 말 그대로 똥을 씹은 표정이었다.

자칫하면 소화에게 질 뻔했다.

기세에서는 확실히 밀렸다.

소화와 모용도청의 비무는 굉장히 치열했다.

그랬다. 화려하다. 멋지다는 말보다는 치열하다는 단어가 가장 잘 어울릴만한 비무였다.

객관적으로 보았을 때 소화는 모용도청과 비교해 기량이 달리는 게 사실이었다.

하지만 소화는 정말이지 악착같았다.

‘저, 저런 독한 것이 다 있나!’

남궁소화는 검이 머리를 스쳐도, 손아귀가 충격으로 찢어져도 절대 검을 놓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살을 주고 뼈를 취한다는 심정이었는지 방어보다는 더욱더 공격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초식을 운용했다.

“이겼으니 되었다. 그보다 빨리 상처를 보아라.”

모용도청이 고개를 떨구었다.

비무에서 진 남궁소화보다 경기에서 이긴 자신이 훨씬 크게 다친 것이다.

그녀의 어깨와 다리.

진검이었다면 진작 치명상을 입고 유명을 달리했을 만한 상처였을 것이다.

“…….”

장내의 군중들은 오히려 조용했다.

이런 치열한 비무를 본 적이 없었던 까닭이었을 것이다.

그저 즐길 거리로만 비무를 생각하던 사람들에게 진짜 무인의 비무를 아주 조금이나마 엿볼 수 있게 해준 경기였다.

‘이, 이게 아닌데.’

모용비산은 무언가 이상하게 흘러간다는 것을 눈치챘다.

앞선 두 비무 모두 모용세가가 승리를 가져가기는 했으나, 이토록 비등한 비무를 할 것이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다.

‘만약 검존 어르신이 무림맹에서 일 년이 아니라, 삼 년 뒤를 말했다면···.’

그는 질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아니, 조금 더 솔직히 처참히 졌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 정도로 남궁소화와 남궁환의 자질은 엄청난 것이었다.

2승을 하고는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지금 상황이 좋은 것도 아니었다.

최선을 다해 분투한 남궁환과 소화가 상대한 자는 모용세가에서도 수준급의 무인들이었다.

그렇기에 얼핏 보면, 어린아이들을 핍박하는 모양새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실제로 관중들은 하나같이 남궁환과 소화를 응원하기도 했다.

‘이럴 줄 알았다면 양민들은 부르지 말 것을.’

하지만, 이제는 후회해도 늦었다.

그리고 더 나쁜 것이 하나 더 남아있었다.

다음 비무는 속행해야 하고, 다음 비무에는 남궁세가의 막내가 연무장에 오르려는지 일어나 몸을 풀고 있었다.

“이번에는 누가 나갈 것이냐.”

하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없었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세가를 위해 승리하기로 마음먹은 그들이지만, 하현같이 어린아이를 핍박하는 모습이 되는 것은 꺼려졌기 때문이다.

“가주님. 제가 나가겠습니다.”

이번 모용세가측의 참가자 중 나이가 가장 어린 묵화잠룡(墨和潛龍) 모용청이었다.

그는 차기 모용가주가 될 것이라고 추앙받는 모용세가의 후기지수였다.

“청아. 너는 청룡신검과 붙고 싶다고 하지 않았느냐?”

“사사로운 호승심과 욕망보다는, 세가를 위하겠습니다.”

그 역시 별호에 용(龍)이 들어갈 정도로 무림에서 자질을 인정받은 자였다.

남궁민보다 대여섯 살이 많은 이십 대 중반으로, 후기지수들이 자웅을 겨루는 용봉지회에서도 벌써 세 번이나 참가하여 좋은 모습을 보이곤 했다.

다만, 그는 남궁민을 의식하고 있었다.

용봉지회에는 단 한 번 밖에 나온 적이 없건만, 청룡신검이라는 거창한 별호를 받은 남궁민을.

“그래도 괜찮겠느냐?”

그가 고개를 끄덕였다.

“다녀오겠습니다.”

“그래. 부탁한다.”

그는 비장한 표정으로 연무장 위로 올라섰다.

그리고 연무장 위에 있는 하현은 무시한 채, 아래에 있는 남궁민을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다음 기회에는 너를 꺾어주마.’

남궁민이 용봉지회에 참가한 것은 4년 전에 단 한 번이다.

모용청은 그 다음번의 용봉지회부터 참가하였다.

그런데 그가 용봉지회에서 활약을 하고, 좋은 모습을 보일 때마다 항상 남궁민과 비교하는 이야기를 들어왔었다.

‘남궁민 공자에 버금갈만한 실력이군.’

‘남궁민과 붙어 보았다면 좋은 볼거리가 나왔겠어.’

그때부터 그는 남궁민과 실제로 만난 적도 없건만, 그에게 남궁민은 숙적이나 다름없었다.

“시작!”

둘 모두가 올라온 것을 확인한 군자검이 시작을 알렸다.

하지만, 모용청은 아직 하현에게 집중하고 있지 않았다.

정말 찰나의 순간이지만, 그는 남궁민에게서 시선을 돌려 하현을 보려 했다.

그래서 그는 알 수 없었다.

쿵-!

하현이 발을 크게 구르고.

눈 한번 깜빡일 시간에 제 자리에서 사라진 듯 보일 정도로 빠르게 보법을 전개한 하현이 그의 바로 앞까지 도달해 있다는 것을.

“이, 이형환위?!”

모용청을 걱정스러운 눈으로 지켜보던 모용비산이 아연실색하여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어딜 보는 겁니까?”

“헛?”

모용청이 이제야 하현을 의식했지만, 때는 늦었다.

그의 사각으로 들어온 하현이 순식간에 검을 휘둘러 모용청의 옆구리를 후려쳤다.

빠악-!

“커헉!”

어떠한 검법이나 초식도 아니었다.

그저 하현은 있는 힘껏 후려쳤을 뿐이다.

이것이 목검이었기에 망정이지, 만약 진검이었다면 허리가 갈라졌을 만한 강타였다.

“으윽!”

모용청은 꼴사납게 고통에 찬 비명을 지르며 하현으로부터 몇 발자국 떨어질 수밖에 없었다.

“이, 이놈이!”

겨우 신형을 수습한 모용청이 얻어맞은 옆구리를 부여잡고 하현을 노려보았다.

“헛?!”

이번의 놀라는 소리는 남궁세가쪽에서 나왔다.

모두가 지금껏 단 한 번도 본 적 없던 하현의 분노한 얼굴이었다.

“후우…….”

하현은 화를 삭이려는 듯, 심호흡하고 있었다.

지금껏 그가 했던 모든 비무에서 하현은 상대를 존중했지만, 존중받기도 했다.

그렇기에 서로를 존중하고 진심을 다해 부딪혀야 하는 것.

그것이 바로 하현이 생각하는 비무였다.

그런데, 비무가 시작해도 하현이 아닌 다른 이에게 정신이 팔려있던 모용청에게 모욕을 당한 것 같은 기분이 들어 화가 난 것이다.

“이놈이···!”

무언가를 말하려던 모용청의 말을 끊고, 하현이 싸늘하게 말했다.

“이제야 제가 보이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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