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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궁세가 천재 외손자-56화 (56/304)

56화

“가주요?”

하현은 남궁민이 무슨 말을 하는가 싶어 두 눈을 깜빡거렸다.

“그래. 우리 남궁세가의 가주 말이다. 조부님처럼.”

“제가 어떻게 가주를 하겠어요…….”

하현은 말끝을 흐렸다.

일반적으로 가주는 현재 가주의 친아들이나 친손자가 하는 것이 일반적이기 때문이다.

“왜 네가 못 할 거라고 생각하니?”

“아무래도 저는 조부님의 친손자도 아니고…….”

“그게 뭐 어때서?”

“네? 그게 뭐 어떻다니요.”

남궁민은 허리를 숙여 하현의 눈높이를 맞추며 말했다.

“아직도 모르는구나. 우리 남궁세가를.”

“제가 무엇을 모르죠?”

“능력만 있으면, 그 어떤 것이든 가능한 것이 바로 우리 남궁세가다.”

“능력만 있으면…….”

그의 말이 하현의 마음을 울렸는지, 하현은 자신도 모르게 남궁민의 말을 따라 했다.

“그리고 너도 이제는 ‘남궁’이지 않니. 그 이름 앞에 그 성을 달고 있는 사람은 누구에게나 가능성이 있는 거란다.”

“그런…. 거에요?”

남궁민은 두 눈을 동그랗게 뜬 하현이 귀여워 머리를 헝클이곤 말했다.

“하하. 하지만, 그 말인즉슨 능력이 모자라면 우리 중 누구에게도 기회가 가지 않을 것이라는 뜻이다. 그러니 더욱 정진해야 할 거야. 일단 나부터 넘으려면 고생 좀 해야겠는데? 삼 년 안에 가능하겠어?”

“삼 년 후에 형님을 뛰어넘는다고 장담할 수는 없지만, 형님과 비무를 했을 때 만족할만한 고수가 되어 있을게요.”

“하하. 그때쯤이면 나도 지금보다 더 발전할 텐데, 그것까지 고려해서 말하는 거야?”

하현이 당당하게 가슴을 펴며 대답했다.

“그럼요. 제가 더 빨리 발전하면 되니까요.”

“하하하. 벌써부터 따라잡힐까 무섭네.”

남궁민은 기분 좋게 웃으며 허리를 폈다.

“자. 들어가자 하현아. 네 덕분에 생각이 조금 정리된 것 같다.”

“그래요. 형님. 그런데 저는 조금 더 있다가 가고 싶네요.”

“왜?”

“하…. 들어가 보시면 알아요.”

잠시 후.

그들이 다시 숙소에 도달했을 때, 남궁민은 아까 자신이 다른 곳에 정신이 팔려있느라 보지 못했던 광경을 목도 했다.

“하현! 오라버니! 어디 갔었어?”

“잠, 잠깐 산책을 좀…….”

“지금 산책할 때야? 내가 아까 무엇이 부족해서 졌다고 생각해? 거의 이길 수도 있었는데?”

“그거야 내력이 부족해서…….”

소화의 눈이 번쩍 뜨였다.

“내력?!”

“그래. 네가 내력만 충분했다면 능히 이길 수 있었을 거야.”

“그렇단 말이지?”

소화는 갑자기 문으로 향했다.

“소화야. 어디 가?”

“할아버지한테!”

“왜?”

“영약. 영약을 달라고 할 거야!”

“소화야 여기 모용세가야!”

쾅-

하지만 소화는 듣지도 않고 문을 닫고 나가버렸다.

남궁민은 찍소리도 안 하고 조용히 있던 하현을 바라보았다.

하현도 남궁민과 눈이 마주치고서는 어깨만 한 번 으쓱하고는, 구석에 거의 웅크려 있다시피 한 남궁환을 가리켰다.

“환아, 너는 왜 또 이래.”

“형님…….”

“그래 환아.”

“저는 왜 이 모양 이 꼴일까요…….”

“뭐?”

남궁환이 울상을 지었다.

몹시도 우울해 보이는 얼굴이었다.

“저도 형님이나 하현이처럼 잘하고 싶어요.”

“그럼 열심히 수련하면 되지 않니.”

“그런데 수련하기가 싫습니다……!”

“뭐라고?”

남궁민은 어이가 없는지 자기도 모르게 웃음이 터지고 말았다.

“수련은 왜 이렇게 힘든 걸까요.”

“힘들기에 수련이지 않겠니. 안 힘들면 놀이지.”

“안 힘든 수련이 있으면 열심히 할 텐데……!”

남궁민은 대답 대신 고개를 절레절레하면서 하현을 보았다.

“난 재밌는데…….”

“뭐?”

“아, 아니에요. 환형님도 걱정이네요!”

남궁민은 이 상황이 너무나도 웃겨 쿡쿡 웃고 말았다.

“현아. 고맙다.”

“뭐가요?”

“다. 고마워.”

하현은 무슨 말인지 제대로 이해는 못 했지만, 고개를 끄덕였다.

“읏차. 그러면 어쩔 수 없지. 우리 동생이 열심히 하고 싶다는데, 이제부터는 내가 좀 나서야겠다.”

남궁민은 혼잣말처럼 말을 내뱉고는 아직도 웅크려있는 남궁환에게 갔다.

“환아. 일어나라.”

“네?”

“따라 나와. 같이 수련하자.”

“수련이요?”

“그래. 내가 진짜 재밌는 수련법을 가르쳐주마.”

“세상에 재밌는 수련법이 세상에 어디…. 알겠습니다. 나가겠습니다.”

남궁환은 남궁민이 빤히 바라보자 하려던 말을 다 잇지 못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환아. 지금까지 왜 네가 수련이 재미없는지 알 것 같다.”

“오! 이유가 무엇입니까?”

“아직 제대로 안 해봐서 그런 것 같아.”

“네? 저는 항상 열심히…….”

“아니다. 너는 아직도 적당히 하고 있어. 진정한 쾌감은 한계를 경험하고, 그걸 이겨낼 때 찾아온다.”

옆에서 하현이 그럼 그럼! 이라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 말뜻은…. 제게 한계를 보여주시겠다는 말씀입니까?”

“그렇지.”

“아직 모용세가인데…….”

“좋지 않으냐? 환경이 다른 곳에서도 수련을 해보고 말이다.”

“저 아까 비무도 했는데…….”

“그럼 더 좋지. 몸이 풀려 있으니 말이다.”

남궁환은 도축장에 끌려가는 소 같은 눈망울로 하현을 바라보았지만, 하현은 단호한 표정으로 말했다.

“형님. 힘내십시오.”

“크흡…. 내 편은 없구나.”

“아니지. 모두 네 편이다. 그러니 도와주려고 하는 거고.”

결국, 남궁환은 남궁민을 따라 밖으로 나갈 수밖에 없었다.

얼떨결에 방에 혼자만 남게 된 하현은 빙긋 웃으며 자리에 가부좌를 틀고 앉았다.

“누나, 형님들이 저렇게 열심히 신데, 나만 놀고 있을 수는 없지.”

순식간에 내면의 세계로 빠져든 하현의 표정을 행복해 보였다.

얼굴만 본다면 아까 그가 말했듯 가장 재미있는 놀이를 하는 것은 아닌가 착각할 정도로.

* * *

한바탕 소동이 벌어진 그날 밤.

소화는 할아버지를 졸라 집으로 돌아가면 영약을 하나 구해주겠다는 약조를 기어코 받아내었고, 남궁환은 남궁민과 어찌나 힘든 수련을 했는지 벌써부터 곯아떨어져 있었다.

남궁민도 다시금 마음을 다잡았는지 방 한쪽 구석에서 운기조식을 하며 홀로 수련에 삼매경이었다.

하현도 한참을 운기조식하다가, 밤바람도 쐴 겸 밖으로 나왔다.

남궁세가를 나선 지도 어느덧 삼 개월.

하현은 슬슬 집이 그리워지고 있었다.

‘돌아갈 때는 지금보다는 빨리 돌아간다고 하셨었지.’

이곳까지 오는 길은 오다 경치가 좋은 곳이 있으면 앉았다 가고, 힘들면 쉬었다 가는 여유로운 일정이었다.

하지만 돌아갈 때는 어느 정도는 속도를 내어 한 달 만에 돌아갈 계획이었다.

검존의 부재는 남궁세가에뿐만 아니라, 무림맹에도 큰 손실이었으니까.

‘이 남궁 늙은이! 어딜 그렇게 싸돌아다니다 온 게야! 나만 부려 먹고서는.’

하현은 순간 취월걸개의 목소리가 들려오는 듯하여 혼자 푸흡 하고 웃었다.

“혼자서 무엇이 그렇게 재미있나?”

그때 뒤에서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하현이 깜짝 놀라 뒤를 돌아보니, 하현의 비무 상대였던 모용청이 서 있었다.

아까 하현에게 당한 상처가 그리 작지는 않았는지, 상의 대신에 붕대를 칭칭 감고 있는 모습이었다.

“모용청…. 님?”

하현은 그의 이름을 말했다가 급히 뒤에 한 글자를 더 보탰다.

“하하. 안 자고 있어서 다행이군. 그나저나, 모용청님이라니. 청형 정도로 불러주면 좋겠는데.”

“청형이요?!”

“그게 불면하면 모용형이라 불러도 좋고…. 편한 대로 불러주면 좋겠네.”

하현은 지금 그의 앞에 있는 사람이 아까 그와 맞붙었던 사람인지 의심이 될 정도였다.

“무슨 일로 이 밤에 여기까지 오신 겁니까?”

“사과하고 싶어서 왔네.”

“사과를요?”

하현은 순간 잘못 들었는지 조금 전 들은 말을 다시 떠올려 볼 수밖에 없었다.

비무에서 이긴 것도 자신이고, 상대를 때려눕힌 것도 자신인데, 도대체 왜 자신이 사과를 받아야 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모용청은 하현의 의문 섞인 표정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몸을 움직이는 것이 힘든지 낑낑대며 정중하게 포권했다.

“미안하네. 내 사과를 받아주게나.”

“그러니까 무엇이…….”

“아까 전 비무에서, 자네를 똑바로 보지 않은 것이.”

모용청의 태도는 진중했다.

하기는, 진심이 아니라면 저 몸을 이끌고 여기까지 오지 않았을 것이었다.

“자네도 어엿한 한 사람의 무인으로서 그 자리에 올라왔을 텐데, 내가 자네를 무시하고 모욕했네. 정신을 차리고 내가 무슨 짓을 한 것인지 깨닫고 나니 창피하더군. 그래서 찾아왔네.”

“아닙니다. 괜찮습니다.”

하현은 문득 무언가 떠올랐는지 머리를 긁적이며 말했다.

“아까 저도 사실 비무에 이기기 위해서였지만, 모용…. 형을 자극하기 위해 그렇게 도발하고 건방지게 건 것 사과드립니다.”

“하하. 정말 연무대 위에서와는 다른 사람 같을 정도군.”

“그런 말을 종종 듣는 편입니다.”

모용청은 큭큭 웃다가 통증이 도졌는지 가슴을 부여잡았다.

“크윽…….”

“저, 괜찮으십니까?”

“별로 괜찮지 못하네. 누가 무지막지하게 때려서 말이야.”

“아, 그건 저도 죄송…….”

“하하하. 자네 진짜 모습이 무엇인지 모르겠군.”

모용청은 무엇이 그렇게 기분이 좋은지 호탕하게 웃어버렸다.

하현도 곧 그를 따라 웃었다.

아까는 서로를 죽일 듯 싸웠던 이와 별다른 말 없이도 이렇게 마음이 통한 것 같으니, 정말이지 신기한 따름이라고 생각하면서.

“남궁세가는 한 번도 가본 적이 없군. 다음번에는 내가 한 번 가도록 하지.”

“네. 평화롭고 따뜻한 곳이니 분명 마음에 드실 겁니다.”

모용청은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다음 용봉지회 때 참가할 예정인가?”

“아직 계획은 없습니다. 사실 용봉지회라는 것이 있다는 것도 알게 된 지 얼마 되지 않아서…….”

하현은 머쓱한 듯 뒷머리를 쓸었다.

그런데 모용청은 큰 충격을 받은듯한 표정이었다.

“하하…. 그래. 자네가 맞아. 용봉지회니, 공명심이니 같은 게 중요한 게 아닌데 나는 지금껏 무엇을 좇고 있었나 모르겠군.”

“저는 그렇게 거창한 뜻이 있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하현은 모용청이 큰 오해를 하고 있는 것 같아 양손을 내저으며 만류했지만, 오히려 그것이 모용청에게는 더 큰 충격으로 다가오는 듯했다.

“거창한 뜻이 없다라…. 그래. 맞지…. 그러면 한 가지만 더 물어도 되겠는가?”

“무엇입니까?”

“자네는 무공을 왜 익히고, 수련하는가?”

뜬금없는 질문이라고 생각되었지만, 하현의 대답은 빠르게 튀어나왔다.

“강해지기 위해서입니다.”

“무엇을 위해서?”

“힘이 없어서 소중한 사람을 지키지 못하는 일은 없어야 하니까요.”

남궁세가에 처음 오던 날, 할아버지의 앞에서 했던 말.

그때의 그 말은 하현이 평생을 지켜갈 이정표가 되어주었다.

“하하하. 그랬군…. 그래. 고맙네. 오늘 큰 걸 배워가네.”

“아닙니다.”

“그래도 용봉지회에는 꼭 나오게. 그때 다시 겨뤄보도록 하지.”

“좋습니다.”

모용청은 하현을 향해 깊이 허리를 숙이며 포권했고, 하현도 그를 따라서 포권으로 응해주었다.

깊은 밤. 둘은 서로를 깊이 인정했다.

둘 사이에는 낮에 있었던 승패도, 서로의 나이도 상관하지 않았다.

다만, 그곳에는 두 무림인(武林人)만이 존재했을 뿐이었다.

* * *

며칠 뒤.

남궁세가의 식솔들은 모용세가에서 며칠 잘 쉬고 난 뒤에 그곳에서 떠날 준비를 마쳤다.

“어르신. 먼 길이 되실 텐데, 살펴 들어가십시오. 덕분에 큰 가르침을 얻었습니다.”

“아니네. 자네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됐다면 나는 그걸로 족하네.”

남궁무룡은 모용세가에 있던 며칠간 냉혈검 모용비산의 무공을 아주 조금 봐주었다.

남궁세가와 모용세가의 검법에는 커다란 차이가 있었지만, 검존은 검법의 차이는 무의미하다는 듯, 검 그 자체의 묘리를 아주 조금이나마 전수해주었다.

도대체 왜 모용비산에게 이렇게까지 해주냐는 남궁기현의 불만 어린 질문에 남궁무룡은 웃으며 말했다.

‘모용세가도 우리 정파의 한 축이다. 이런 어수선한 시국에 힘을 보태어 나쁠 것이 없지.’

사사로운 감정보다는 무림 자체를 위한 남궁무룡의 대승적인 결정이었다.

“앞으로는 절대, 저희 모용세가가 남궁세가를 귀찮게 하는 일은 없을 것입니다.”

“하하. 당연히 그래야지. 약조는 꼭 지켜야 하는 것 아닌가?”

“그렇습니다. 저희도 당당한…. 크흠! 정파니까요.”

당당하다는 말에서 멈칫하는 모용비산을 보며 남궁무룡은 피식 웃었다.

“떠나시기 전에 몇 가지 식량이나 생필품을 준비했습니다. 그리고 요녕까지는 오실 때와 마찬가지로 마차로 모시겠습니다.”

“이렇게까지 안 해도 괜찮네만.”

“아닙니다. 제가 하고 싶어서요.”

“그럼 어쩔 수 없구만.”

말과는 달리 남궁무룡은 그다지 기분이 나빠 보이지 않는 얼굴이었다.

“그리고…. 가기 전에 소화 아가씨께 선물이 하나 있습니다.”

“선물을?”

모용비산은 시종에게 작은 목함을 하나 건네받아 남궁무룡에게 내밀며 말했다.

“백년설삼입니다. 요녕보다 더 북쪽에 있는 산에서 구한 것입니다.”

“이건 왜?”

“소화 아가씨가 영약을 찾으시지 않았습니까. 만년설삼 보다는 효과가 덜해도 분명히 효과가 있을 것입니다.”

옆에서 이야기를 듣던 소화의 두 눈이 반짝였다.

하현은 바로 옆에 있었기에 소화가 아주 작은 소리로 ‘내공 증진!’이라고 한 것을 들을 수 있었다.

“하하. 민망하구만. 그래도 주는 것이니 잘 받아가겠네. 고맙네.”

“그럼 살펴 가십시오.”

요 며칠 사이 정이라도 든 것인지.

두 가문의 사람들은 헤어짐이 아쉬웠다.

결국, 인사를 마치고 남궁세가의 식솔들은 마차에 올라탔다.

그리고 마차가 움직이자, 남궁무룡이 식솔들을 둘러보며 말했다.

“자 이제 집으로 가자.”

하현은 남궁무룡의 말에서 집이라는 단어가 정겹게만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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