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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궁세가 천재 외손자-58화 (58/304)

58화

혈랑이 혈검대의 조장급으로 열 명 만을 데리고 온 이유는 간단했다.

‘혈검대 조장이 세 명만 있으면 능히 구파의 장문인을 상대할 수 있다.’

혈랑 채형석이 입버릇처럼 하는 말이었다.

그것은 그가 직접 키운 수하들에 대한 자신감이었고 어느 정도는 사실이기도 했다.

채형석은 장문인들과도 싸워본 경험이 수없이 많았으니까.

“어른 둘에게 셋씩, 꼬맹이들에게는 하나씩 붙어라. 남궁민은 내가 맡겠다.”

혈검대 중에서도 채형석처럼 눈썹과 머리칼이 붉은 자가 나머지에게 명령을 내렸다.

그들은 대답도 안 했지만, 마치 한 몸처럼 동시에 움직여 각자 흩어졌다.

“소화, 환, 현아. 몸을 붙여라. 셋이서 셋을 상대한다는 마음으로 움직여라”

남궁기철이 상황을 빠르게 판단하고는 소리쳤다.

하현은 급히 남궁환과 소화를 끌어당겨 등을 대었다.

“눈앞으로 오는 공격만 어떻게든 막아내는 거야. 우린 버티기만 하면 되니까.”

당황도 잠시.

먼저 상황을 파악한 하현이 상황을 이끌어 주자 남궁환과 소화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의 목적은 이기는 것이 아니라 버티는 것.

아직은 따로 진법이라던가 합격술을 배우지는 않았지만, 그들의 팔, 다리는 자연스럽게 움직였다.

척-

셋이 혈검대를 향해 검을 드리우자, 혈검대원 중 하나가 피식하고 그들을 비웃었다.

“애송이들의 재롱이 귀엽구나.”

쿵-

혈검대원이 바닥을 굴렀다.

몸이 깃털로 되어있는 듯 가벼운 몸놀림으로 하현에게 달려들었다.

카앙-!

그가 휘두른 도를 하현이 능숙하게 막아내었다.

묵직한 충격이 손목으로 전해져 온다.

살의를 담은 진검을 처음 받아봐서일까.

하현은 팔에 터럭 하나 곤두서는 것까지 모두 느껴지는 듯 감각이 깨어났다.

“아이들부터 죽여라. 남궁무룡의 손자들이다.”

남궁민과 대치하고 있는 붉은 머리칼의 사내가 무심하게 말했다.

세 명의 혈검대원은 신법을 전개해 들어오며 일제히 검을 휘둘렀다.

세쌍둥이라고 해도 믿을법한 움직임이었다.

“대연검법을 펼쳐!”

남궁민이 크게 소리치고는 적발의 사내를 향해 쇄도했다.

꽈릉-!

곧이어 번개가 내리치는 소리가 들렸다.

남궁민도 싸움을 시작하는 소리였다.

카가가가각-!

혈검대원들이 휘두른 도가 모두 막혔다.

대연검법은 조화와 수비를 위한 검법.

하현이 말한 대로 버티기에는 최적의 수였다.

“이것들이!”

혈검대 하나가 분노성을 터뜨렸다.

겨우 아이들을 상대로 합을 주고받을지는 생각도 못 했던 것이다.

그는 쥐고 있는 도가 우웅 소리를 내며 떨 때까지 기운을 집어넣고는 다시 도를 날렸다.

그가 노리는 것은 셋 중에 가장 약해 보이는 소화.

하지만, 소화의 눈빛이 반짝이며 검을 마주 받아내었다.

쿠쿵! 화아악-!

두 병기의 충돌에 기운이 몰아쳤다.

무림에서도 악명높았던 혈검대원과 무림에 출도도 하지 않은 소화의 격돌이었음에도 비등한 모습이었다.

하현은 그 틈을 놓치지 않았다.

뻐억-!

단순한 발차기였다.

검은 다른 혈검대원을 계속 향한 채 가까운 발만 내지른 발차기.

하지만, 그 위력만은 단순하지 않았다.

쿠당탕 -

“쿨럭, 쿨럭.”

가뜩이나 소화와 힘겨루기를 하는 와중 하현의 내력이 잔뜩 실린 발차기를 정통으로 맞은 혈검대원은 한동안 숨을 쉬지 못했다.

“크흡. 이 건방진, 꼬맹이가.”

다른 혈검대원들이 넘어진 자에게 신경이 잔뜩 쏠린 순간.

그동안 잠잠히 하현의 몸속을 돌던 내력이 창궁대연심공의 구결을 따라 폭발했다.

하현은 그 폭발력을 그대로 다리에 집중해 바닥을 강하게 굴렀다.

콰앙-!

흙먼지가 자욱하게 올라간다.

그 흙먼지에 시야가 가렸다는 생각을 할 때쯤.

스슥

하현의 신형이 사라졌다.

아니, 모두는 하현을 시야에서 놓쳤다.

쒜에엑-!!

넘어져 있던 혈검대가 아닌, 그를 멀뚱히 바라보던 혈검대원의 뒤에서 공기가 찢어지는 소리가 났다.

순간이동이라도 한 것처럼 그 자리에 뜬금없이 나타난 하현이 검을 내지르는 소리였다.

키기기- 콰아아!

혈검대원은 그 불안한 소리에 고개도 돌리지 못하고 도만 겨우 휘둘렀다.

하현의 검과 혈검대원의 도가 충돌하며 커다란 기파가 울려 퍼졌다.

콰콰쾅-!

“……?!”

하현과 가까이에 있던 남궁민도, 심지어는 끊임없이 합을 주고받던 혈랑과 남궁무룡마저 잠시 전투를 멈추고 이쪽을 바라보았을 정도였다.

“크윽-”

하현의 검을 막아낸 혈검대원의 팔이 이상한 각도로 꺾였다.

제대로 된 자세로 하현의 검을 받아낸 것이 아니라 제대로 힘을 주지 못한 것이다.

그의 신음성을 듣는 순간, 하현은 멈추지 않고 또 한 번 검을 휘둘렀다.

‘횡소천군!’

아무 기교가 없는 삼재검법의 베기.

최소한 지금, 기교가 없다는 말은 군더더기가 없다는 말과 같은 뜻이었다.

하현의 검은 바람을 타고 바람 같은 속도로 하현과 혈검대원 사이의 공간을 베어냈다.

빠악-!

하현의 공격이 한 번 더 막혔지만, 이번에는 성과랄 게 보였다.

꺾여있던 혈검대원의 팔에 한 번 더 충격이 가하며 관절이 탈구되었고, 힘을 잃은 도가 도리어 자기 주인을 때린 것이다.

큰 충격을 입은 것 같지만, 아쉽게도 치명상은 아니었다.

사용하는 병기가 도(刀)인 덕분에 뒤쪽에는 날이 없었기 때문이다.

타다다-!

모두가 이 광경에 넋을 잃고 있을 때, 정신을 차리고 있던 유일한 인물, 남궁환이 그가 낼 수 있는 최대한의 신법을 전개해 이쪽으로 달려왔다.

번뜩이는 그의 눈빛은 평소의 알던 모습이 아니었다.

‘아, 생사결!’

하현은 그 눈빛을 보며 이것이 생사결이라는 것을 새삼 깨달았다.

남궁환은 생사결을 앞두고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어있었다.

찌이익-!

남궁환의 쾌검결이 공기를 찢으며 질러 들어온다.

대연검법과는 달리 공격 위주의 창궁검법.

창궁검법 중에서도 가장 빠른 궁검시(弓劍矢)의 초식이 터져 나왔다.

푸욱-!

남궁환의 검은 혈검대원의 가슴을 정확하게 꿰뚫었다.

“마, 말도 안 되는…….”

무림을 공포로 몰아넣었다는 혈검대 중 일인의 유언치고는 형편없었다.

남궁환이 그의 몸에 박혀있던 검을 회수했다.

회수한 그의 검에 묻어 있던 피가 주르륵 흘렀다.

“하압!”

그와 동시에 넘어져 있던 혈검대원의 바로 옆에서 앙칼진듯한 기합 소리가 터져 나왔다.

소화가 검을 역수로 쥐고 바닥에 있는 혈검대원을 향해 내리찍었다.

“크흡!”

혈검대원은 창피한 줄도 모르고 바닥을 몇 바퀴나 굴러 소화의 검을 가까스로 피해냈다.

바닥의 박힌 검을 빼는 소화의 얼굴에 아쉬움이 묻어나왔다.

하현과 남궁환은 죽은 혈검대원의 시체를 널브려놓고 소화에게 달려갔다.

그리곤 또다시 한 자리에 뭉쳤다.

하지만, 아까는 서로 등을 맞대었다면, 지금은 어깨를 맞대고 있다.

마치 언제라도 튀어 나갈 수 있게끔.

“어딜 보는 거지?”

콰릉-!!

붉은 머리의 혈검대원은 남궁민의 음성이 들린다 싶더니 천둥소리가 그의 귀를 때려 정신이 번쩍 들었다.

어느새 검은 그의 목 바로 앞까지 와 있었다.

샤악-

그가 할 수 있는 가장 빠른 속도로 피했지만, 목에 또 하나의 입이 생기는 것만은 피할 수 없었다.

주륵-

상처에서 피가 흘러내린다.

그는 소매를 찢은 천을 목에 동여매 급히 지혈했다.

손가락 한마디만큼만 더 들어갔어도 치명상이 되었을 만한 날카로운 공격이었다.

이 긴박한 와중에 어울리지 않게 남궁민은 그가 목의 상처를 지혈할 때까지 기다렸다.

붉은 머리칼의 사내는 남궁민이 무슨 꿍꿍이인지 몰라 그를 유심히 쳐다보는데…. 그의 얼굴에는 자세히 보지 않으면 모를 아주 옅은 미소가 걸려있다.

‘미, 미친놈.’

전장에서 웃는 남궁민의 모습에 수십, 어쩌면 수백 명을 도륙한 경험이 있는 붉은 머리칼의 사내도 흠칫했다.

그가 정돈된 모습을 보이자 남궁민이 그밖에 들리지 않을 목소리로 말했다.

“그렇지. 몇 번을 더 버틸 수 있나 보자.”

콰앙-!

남궁민이 진각을 밟았다.

조금 전 하현이 그랬던 것처럼 흙먼지가 피어오르고.

빠직- 빠직-

흙먼지 속에서 천둥이 우는 소리가 들린다.

그리고, 검은 소리 없이 다가왔다.

채애앵-!

붉은 머리칼의 사내는 본능적으로 검을 막아내었다.

그도 그가 어떻게 막아냈는지 모를 정도로 조용한 쾌검이었다.

그의 예상을 아득히 뛰어넘는 남궁민의 수준에 그의 얼굴엔 당황이 어렸다.

“애, 애송이가!”

그도 가만히 있을 수는 없다는 듯, 목의 상처를 잡고 있던 손을 빼고 그가 할 수 있는 최고의 도법을 펼치려 기수식을 취했다.

자욱한 흙먼지 속, 흐릿하게 남궁민의 신형을 발견한 그가 대기를 찢으며 도를 휘둘렀다.

후웅-

허나, 남궁민이 있을 것으로 생각했던 자리에는 이미 남궁민은 온데간데없다.

대신 그의 관자놀이에 서늘한 감각이 느껴져 그는 고개를 숙였다.

핏-

겨우 고개를 숙인 그의 정수리에 뭔가가 스쳐 가는 소리가 들렸고, 곧이어 그곳이 뜨끈하다.

그가 급히 손을 들어 흘러내리는 피를 막아보지만, 정수리가 꽤 많이 찢겼는지 흘러내리는 피는 걷잡을 수 없다.

그의 시야를 가리는 피를 닦아내려 눈에 손을 가져간 순간.

푸학-!

그의 목이 떨어지고, 피분수가 터져 나왔다.

예의 소리도 없는 남궁민의 검이 그의 목을 치고 지나간 것이다.

“후우, 후우.”

남궁민은 그동안 숨 소리도 내지 않으려 숨을 참았는지 몇 번이고 숨을 몰아쉬었다.

그는 쓰러진 붉은 머리칼의 사내에게는 관심도 주지 않았다.

이미 죽은 자는 그에게 아무런 위협도 되지 않았기 때문에.

조금은 여유로워진 전장을 슥 둘러보니, 상황이 퍽 나쁘지만은 않다.

남궁기현과 남궁기철은 각각 세 명의 혈검대원을 능숙하게 상대중이었다.

심지어는 그의 동생들은 남은 두 명의 혈검대원과 대등하게, 아니 오히려 우위를 잡으며 싸우고 있다.

그중에서도 하현의 모습은 발군이었다.

혈검대원 두 명이 한 명을 공략하지 못하게 둘이 한 대상을 바라보는 순간 하현이 튀어나가 다른 한 명의 주위를 이끈다.

그러면 남궁환과 남궁소화가 남은 한 명을 상대하고, 만약 그 상대가 몸을 내빼면 그때는 하현도 다시 돌아와 셋이 뭉쳤다.

‘처음에 한 명을 처리한 게 상황을 유리하게 가져오도록 했다. 그리고 환이는…. 다른 사람 같군.’

하지만 남궁민이 가장 놀란 것은 바로 남궁환의 존재감이다.

아까 혈검대원을 검을 지르다가 튀었는지 얼굴에는 피칠갑을 한 남궁환은 그동안 보여왔던 게으르고 착한 인상이 아닌, 한 마리의 맹수를 방불케 했다.

‘역시, 너도 남궁세가의 피가 흐르는구나.’

남궁민은 이 와중에 씨익 웃었다.

그리곤 자연스럽게 그들을 돕기 위해 발걸음을 옮겼다.

“이보게 혈랑. 네 뜻대로 되어가지는 않는 것 같은데?”

“닥쳐라!”

상황이 좋지 않게 흘러가고 있는 것은 혈랑 그도 잘 알고 있다.

남궁세가의 손자들의 수준이 그들이 예상했던 것을 아득히 넘어가는 것이 가장 큰 이유였다.

‘능후!’

그는 항상 그의 옆에서 벌벌 떨던 능후를 찾았다.

하지만 그 어디에도 그의 기는 느껴지지 않는다.

아마 상황이 돌아가는 꼴을 보고는 곧바로 내뺐을지도 모른다.

“쥐새끼 같으니라고……!”

그도 모르게 육성으로 욕설이 튀어나왔다.

그 말끝에 노기가 묻어나왔다.

혈랑은 고개를 똑바로 들고 남궁무룡을 쳐다보았다.

‘이럴 리가 없는데……!’

그는 마교가 숨어지내던 30년간 죽음을 넘나드는 수련을 했고, 몇 단계나 더 높은 깨달음을 얻어 그때와는 비교할 수도 없을 만큼 강해졌다.

분명히 그때는 남궁무룡에 비해 한 발자국만이 모자란다고 생각했건만, 이 높은 경지에 올라서서야 그는 검존의 무공이, 실력이 한눈에 보이는듯했다.

“죽어라!”

혈랑이 도리어 사자후 같은 음성을 쏟아내며 도를 내리쳤다.

까앙! 콰아아아-

부딪힌 두 병기에서 기의 폭풍이 몰아친다.

그 둘은 힘겨루기라도 하는 듯, 검을 맞대고 꼼짝도 하지 않았다.

어째서 검이 움직이지 않는지, 혈랑은 어떻게든 이해해보려 했지만, 그가 이해할 수 있는 것은 없었다.

“그렇구나. 이것이 바로 무애(無涯)로구나.”

“무슨 수작을……!”

남궁무룡의 검이 스르륵 움직인다.

혈랑도 그것을 보고 있건만, 그는 도를 빼낼 수가 없다.

지금 도를 빼낸다면, 남궁무룡의 검을 그대로 자신의 목을 갈라낼 것이라는 강한 예감이 들었다.

"무애란 한계가 없으니……."

평온한듯한 검존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 목소리를 듣는 순간, 혈랑의 머릿속에 수십 년간 존재 자체도 모르던 단어가 떠올랐다.

공포(恐怖)라는 단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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