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남궁세가 천재 외손자-59화 (59/304)

59화

남궁무룡은 하현과 함께 수련하며 얻었던 작은 깨달음이 순간 몸으로 체화됨을 느꼈다.

끼기기기긱-

철판을 손톱으로 긁는듯한 소름 끼치는 소리가 울려 퍼진다.

천천히 움직이는 검을 혈랑이 어떻게든 막아보려다 나는 소리였다.

하지만, 이럼에도 남궁무룡의 검을 멈출 방도는 없었다.

“으아아아압!”

혈랑이 가진 마기(魔氣)를 모두 폭발시켰다.

아무리 검존이라고 한들 이렇게 가만히 당할 그가 아니었다.

꽝-!

혈랑이 무지막지한 내력을 담아 진각을 밟았다.

남궁민의 진각보다도 몇 배는 더 큰소리가 터져 나왔고, 겨우 흙먼지가 피어오르는 정도가 아니라, 땅이 움푹 패며 남궁무룡의 몸이 기우뚱 기울어졌다.

쉬익-

그 틈을 타 혈랑은 남궁무룡의 앞에서 몸을 빼냈다.

겨우 정신을 차린 그가 남궁무룡의 어깨너머를 내다보았다.

“크억-!”

공교롭게도 그 순간 혈검대원 하나가 하현과 소화 때문에 휘두를 검을 회수하지 못하는 틈을 타 남궁민의 검이 그의 등을 꿰뚫었고, 그는 곧 절명하고 말았다.

벌써 셋이 죽어 사대 일의 상황.

하나 남은 혈검대원에게 희망은 없어 보였다.

혈랑은 눈을 감았다 떴다.

수하들의 죽음은 다른 세계의 일인 것처럼 평정을 되찾은 눈.

혈랑은 본능적으로 알고 있다

눈앞에 남궁무룡을 두고 한눈을 파는 것은 자살행위라는 것을.

“자네에게 가망은 없네.”

남궁무룡은 진심을 담아 말했다.

그가 데리고 있는 모든 혈검대원들이 이곳에 왔다면 설사 남궁무룡이라고 할지라도 이곳이 그의 무덤이 되었을 것이다.

허나 그는 겨우 열 명밖에 데리고 오지 않았다.

그 오만함이 지금의 상황을 만들어냈다.

“닥쳐라.”

혈랑의 표정이 와락 구겨졌다.

그가 지금까지 써오던 중도가 아닌, 경쾌한 마기가 피어오르기 시작한다.

혈랑이 기수식을 취하는가 싶더니, 어느새 그의 도는 남궁무룡의 몸에 닿을 거리까지 가까워져 있었다.

실로 놀라운 쾌도였으나, 남궁무룡은 그가 이렇게 나올 줄 알고 있었다는 듯, 뒤로 두 걸음을 물러서 혈랑의 도를 피해냈다.

어떻게 걷는지도 모를 신비로운 걸음이었다.

“……?!”

그러나 그 순간 남궁무룡의 얼굴에 낭패가 떠오른다.

혈랑은 그저 남궁무룡을 베기 위하여 도를 휘두른 것이 아니었다.

그는 몸이 튕겨 나가는 그 힘 그대로 남궁무룡을 뛰어넘어버렸다.

그는 남궁무룡의 손주들이 있는 곳을 향해 몸을 던졌다.

쒜엑-

그의 도가 향하는 곳은 지금 그에게 등을 돌리고 있는 하현.

허나 하현은 그 찰나의 순간, 그에게 짓이겨 쳐지는 거대한 기운을 느끼고는 곧바로 몸을 돌려놓으며 검을 앞으로 내밀었다.

‘막아낼 수 있다.’

상대는 할아버지와 대등하게 합을 주고받았을 정도의 초고수.

하지만 하현은 충분히 막아낼 수 있을 것 같다는 확신이 들었다.

콰악-!

자연스레 하현의 손아귀에 힘이 들어간다.

너무 힘을 세게 쥐었는지 하현의 손이 창백해져 보일 정도였다.

순간 하현의 손에서 검격이 번뜩였다.

월광검법의 묘수가 담긴 검.

다만, 그의 월광검법은 여행을 떠나기 전과 사뭇 달라져 있었다.

도제의 오호단문도를 보며 보완시켜 더욱 발전된 달빛이었다.

쩌엉!!

“크읍!”

하현은 혈랑의 도를 기어이 멈춰 세웠다.

다만, 그 충격까지는 모두 흡수하지 못했는지 뒤로 우당탕 넘어갔다.

“……?!”

혈랑의 눈에 의문이 깃들었다.

하현의 검까지 함께 갈라낼 요량으로 모든 기운을 담아 내지른 도였다.

중(重) 보다는 쾌(快)의 묘리를 담아 깊이가 떨어지지만, 저런 꼬마가 막아낼 검은 결코 아니었다.

슈악-!

그 찰나에 세 개의 빛이 그에게 쏘아졌다.

남궁민, 남궁환, 소화가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하현이 만들어낸 찰나의 순간에 검을 찔러 들어온 것이다.

세 빛은 같은 속도로 그의 심장을 노리며 들어왔다.

콰가각!

혈랑이 도면을 앞으로 내보이며 그들의 검을 겨우 막아내었다.

그러나 뒤로 몸을 내뺄 수는 없었다.

뒤에는 그들보다 더욱 무서운 남궁무룡이 기다리고 있으니까.

탓!

혈랑은 발을 굴러 위로 솟구쳤다.

공중으로 일 장여 떠오른 그가 공중에서 몸을 굴러 남궁무룡의 손주들과 싸우던 한 명 남은 혈검대원의 옆에 떨어졌다.

“붙어라!”

그리곤 그와 등을 붙이며 도를 앞으로 내밀었다.

조금 전, 싸움이 시작될 때에 남궁환과 소화, 그리고 하현이 혈검대원들을 상대하던 것과 같은 모양새였다.

“크억!”

저 멀리서도 또 누군가의 단말마가 울려 퍼졌다.

혈랑이 힐끗 눈동자만 굴려 그쪽을 바라보니, 남궁기현의 검에 허리가 반쯤 갈린 혈검대원이 바닥에 쓰러져 숨을 헐떡거린다.

상처로 보나, 흘린 피의 양으로 보나 살아남기는 힘들어 보였다.

남궁기철을 상대하는 혈검대원들도 기세가 위태로운 것이, 곧 균형이 깨질 것처럼 보였다.

“이게…. 도대체……?!”

남궁세가의 전력은 혈랑 그가 생각하던 것과는 엄청난 괴리가 있었다.

검존 남궁무룡이나, 그의 아들들은 그렇다 쳐도 손주들의 실력은 비상식적이었다.

‘능후……!’

그는 지금은 이미 몸을 내빼고 사라진 능후에 대한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남궁세가에 대한 전력을 분석하고 이번 일의 가능성을 알아보게 한 것이 능후였다.

능후가 혈랑에게 올린 보고에는 이런 내용은 없었다.

그의 보고서에는 청룡신검 남궁민만 조심하면 나머지는 별 볼 일 없다고 했으니까.

“혈랑. 끝났네.”

남궁무룡이 나직이 말했다.

겉으로 보기에는 차분해 보이지만, 남궁무룡에게도 쉬운 싸움은 아니었는지 그의 손끝이 가늘게 떨리고 있었다.

“끝이라고?”

“그래. 더 이상의 싸움은 무의미하지 않겠나? 무림맹으로 가세. 마교의 소식도 좀 전해주시고.”

남궁무룡의 인자한 말투.

마치 옆집에 마실이라도 가자는 듯한 말투였다.

하지만 그것이 혈랑을 더욱 분노케 했다.

“이 늙은이가!!”

콰아앙-!!

혈랑이 다시 한번 마기를 폭사시키자 광풍이 불어오듯 기운이 몰아친다.

본신의 기운으로만 폭발하는 것이 아닌, 진기와 그의 생명까지 모두 갉아먹으며 기운을 불태웠다.

화르륵!

하현이 그 기운에 피부마저 따끔거리는 듯한 느낌이 든다고 생각한 순간.

쾅-!

혈랑이 땅을 박차자 땅이 무너져 내리는듯한 소리가 들리며 그가 앞으로 쏟아져 나왔다.

그의 도에는 아지랑이가 일렁이는듯했다.

신선의 경지에 이르러야 펼쳐낼 수 있다는 도강이 조악하게나마 그의 도에서 뿜어져 나왔다.

그의 이름처럼 핏빛의 붉은 강기였다.

쩌어엉!!

남궁무룡이 가까스로 흘려낸 도강이 무시무시했다.

직접 닿지도 않았건만, 그의 바로 옆에 있던 바위가 쩌억 하고 갈라졌다.

혈랑은 쉬지도 않고 바로 다음 동작에 들어갔다.

남궁무룡도 그에 지지 않는 듯 검에 모든 기운을 담기 시작한다.

고오오오-

압도적인 기의 흐름에 그의 소맷자락이 쉴 새 없이 펄럭였다.

츠츠츠-

잠시 후 남궁무룡의 검에도 무언가 안개 같은 것이 모이기 시작했다.

이전이었다면, 여기가 그의 한계점.

하지만 남궁무룡은 하현과 수련하며, 그리고 조금 전 얻은 무애의 깨달음을 다시 검에 담았다.

부우우웅

남궁무룡의 애검에 기운이 더욱 밀도 있게 들어가자 마치 맛있는 먹이를 받아먹어 기분 좋은 것처럼 검이 운다.

그리고 안개는 곧 푸른 아지랑이로 구체화 되었다.

스화아아-

그 둘을 제외한 나머지는 서 있기도 힘들 정도의 기의 폭풍이었다.

이 일대에 그들 둘 말고는 서 있는 것을 용납할 수 없다는 듯, 엄청난 내력이 그들을 짓눌렀다.

“꺄악!”

이곳에 있는 이들 중 내력이 가장 약한 소화가 결국 주저앉고 말았다.

하현도 지금이라도 당장 앉고 싶었지만, 검을 지팡이 삼아 겨우 버텨내었다.

“크으윽!”

혈랑은 남궁무룡을 보고는 곧바로 달려들어 도를 휘둘렀다.

진기를 태워내는 고통이 상상을 초월했는지 너무 세게 문 입술이 뜯어져 피가 흐를 정도였다.

“죽어라!!”

쩌어어엉-!!!

둘이 부딪히자, 이곳에 있는 모두가 태어나 처음 들어보았을 정도의 큰 소리가 터져 나왔다.

그리고 땅이 뒤집히며 흙먼지가 자욱하게 피어올라 모두의 시야를 가렸다.

“콜록, 콜록,”

몸을 짓누르는 기운은 두 기운이 부딪히며 상쇄되었다.

몸을 가눌 수 있게 되었는지 소화가 앉은 자리에서 겨우 일어났다.

“크윽.”

흙먼지 속에서 누군가의 신음이 들려온다.

아직 시야가 확보되지 않아 누구도 함부로 움직일 수 없었다.

“할아버지!”

흙먼지가 가라앉자 신음의 주인공이 누구인지 보였다.

입가에 가늘게 피를 한 줄기 흘리고 한쪽 무릎을 꿇고 있는 남궁무룡이었다.

그는 낭패한 기색이 역력했다.

혈랑은 그의 반대편에 꼿꼿이 서 있었다.

그런데 혈랑의 몰골은 남궁무룡보다 몇 배는 형편없었다.

그의 머리칼은 봉두난발을 하여 삐죽삐죽 서 있었고, 내상이 심한지 계속 울컥, 울컥 피를 토해내고 있었다.

그의 안광이 번뜩이더니, 번개같이 도를 휘둘렀다.

슈악-!

그 도는 남궁무룡을 부축하러 신법을 전개한 남궁민을 향해 쏟아졌다.

“크흑!”

남궁민은 그 빛을 흘려내는 것에는 성공했지만, 허벅지에 상처를 입고 말았다.

위력이 많이 죽어 망정이지, 아까와 같은 도격이었다면 다리가 잘려나갔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혈랑은 이제 그의 목숨을 도외시하기로 했다.

그는 남궁민에게 달려들어 동귀어진할 각오로 공격해 들어왔다.

어차피 죽을 목숨 하나라도 데려가려는 그의 의지가 보이는 듯했다.

“하아압!”

소화가 그에게 달려들었다가 곧바로 한 초식 만에 바닥을 뒹굴었다.

아직 균형을 잡지 못하는 소화의 몸에 혈랑의 도가 틀어박히기 직전.

까앙!

어느새 나타난 하현의 검이 그의 도를 막아섰다.

혈랑의 눈썹이 꿈틀댔다.

“이것이 아까부터!”

혈랑의 기세가 사나워졌다.

계속해서 그의 도를 막아내던 하현만은 죽이고자 마음먹은 것이다.

살심이 일자 그의 기세가 달라졌다.

흉포한 도격이 공기를 가르며 쏟아졌다.

그런데 그 순간.

하현은 다시 한번 세상이 멈춘듯한 감각이 있었다.

‘또 이 감각……!’

하현은 모든 것이 보인다는 생각이 들었다.

결코, 눈으로 보이는 것만이 아니었다.

지금 하현은 혈랑의 모든 것이 눈에 들어왔다.

그가 도를 어떻게 쥐고 있는지, 도를 휘두를 때 어깨와 팔이 어떻게 움직이는지, 그리고 그에 맞춰 기운은 어떻게 따라 흘러가는지.

단순히 그의 동작뿐만 아니라, 그의 동작이 하나의 그림처럼 일목요연하게 하현의 뇌리에 박혔다.

그러고 나니 혈랑의 다음 동작이 눈에 들어왔다.

모용청을 이겼을 때와 비슷한 감각.

하지만, 그 생사결에서의 그 감각은 이전과 비할 바 없었다.

그때가 작은 촛불이라면, 지금은 거대한 들불이 이는 것 같은 감각이었다.

하현이 다리를 쭉 뻗어내어 오히려 혈랑에게 다가섰다.

본디 가진 실력이나 내력으로 혈랑에게 맞붙는다는 것은 미친 짓이겠으나, 할아버지와 맞붙으며 혈랑은 가진 기운을 대부분 소진했고, 심지어는 진기까지 태워 쓰느라 심각한 내상을 입은 상태.

하현은 지금의 그라면 충분히 상대할 수 있으리라 판단했다.

쒜에엑-!

혈랑의 도는 아직도 찢어지는듯한 소리를 내며 하현에게 다가오고 있다.

하현은 그 도를 향해 검을 휘둘렀다.

아니, 정확히는 그 도를 쥐고 있는 그의 손을 향해 검을 휘둘렀다.

샤학-

그리 강하지도 않은 검격이었다.

온 힘을 다하지도 않았고, 그가 낼 수 있는 최대한의 속도를 낸 것도 아니었다.

다만, 그는 혈랑의 도가, 또 그의 손이 어디로 향할지를 미리 알았기에, 그곳을 향해 검을 휘두른 것뿐이었다.

푸학!

하현의 검에 혈랑의 손목이 베어지며 피분수를 뿜었다.

그리고 손과 함께 그 손에 쥐고 있던 도가 바닥으로 떨어졌다.

“이, 이것은!”

급히 손목을 부여잡고 뒤로 내빼려는 혈랑.

하지만 하현은 그것마저 예측했는지 그의 검은 그곳에서 멈추지 않았다.

물 흐르듯 자연스러운 검격에 혈랑의 눈이 커졌다.

“소교주의……?!”

대답할 가치도 없다는 듯, 손목을 끊어낸 검은 그대로 눈부신 빛무리를 뿜어내며 혈랑의 몸을 타고 올라갔다.

그리고 그 빛무리가 혈랑의 목을 지나갔다.

푸하악-!

툭.

순식간에 고요해진 전장.

그 전장에는 혈랑의 목이 바닥에 떨어지는 소리만이 울려 퍼졌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