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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궁세가 천재 외손자-62화 (62/304)

62화

“뭐? 손주사위?”

남궁무룡은 지금 자신이 잘못 들었나 싶어 되물었다.

“그래. 지금껏 우리가 안 해와서 그렇지, 보통은 흔한 일 아닌가? 가문끼리 혼약을 맺는 일 말일세.”

“그건 그렇지만…….”

팽길산의 말대로 가까운 집안끼리 혼약을 맺는 것은 흔한 일이다.

그런데 남궁무룡은 무언가 찜찜했다.

“그런데 왜 하필 지금인가? 이전에도 말할 수 있었을 텐데. 민이는 나이가 너무 많다고 치더라도 환이도 있고 말이야.”

“하하. 그때는 우리 주은이가 너무 어렸지 않나? 하현이랑 딱 동갑이니 생각이 나서 말한 거지…….”

팽길산은 말끝을 흐리며 남궁무룡의 눈을 슬쩍 피했다.

남궁무룡은 눈을 가늘게 뜨고 팽길산을 바라보며 말했다.

“자네…. 무언가 있군.”

“있긴 무엇이 있어? 아무것도 없네.”

“왜 내 눈을 똑바로 못 보는가? 예전부터 거짓말을 못 하는 건 여전하구만.”

“거짓말이라니!”

팽길산은 할 수 있다는 듯, 남궁무룡의 눈을 마주쳤다가…. 십 초도 되지 않아 다시 눈을 돌렸다.

“어허. 길산!”

“흠흠. 그래. 내가 무엇을 보긴 했네.”

“무엇인가?”

“하지만 꼭 그것 때문에 혼약을 맺자는 것은 아니고.”

“알겠으니 말하게.”

“어제 몽고에서 자네 가족을 데리러 갔을 때 말이야. 그때 내가 숲에서 쓰러진 하현이를 데리고 왔지 않나?”

남궁무룡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라면 그가 내상 치료에 지쳐 잠시 잠들었을 때였을 것이다.

“그때, 하현이를 보았네…….”

팽길산은 천천히 남궁무룡에게 그때 있었던 일을 이야기해주었다.

원래도 이걸 제일 먼저 말해주고 싶었지만, 기회가 없었다.

조금 전까지 무림맹에 채형석의 시신을 보내고, 마교 측에 공식적인 항의를 보내는 등 이번 일의 사후 처리가 만만치 않았다.

“그, 그랬다고? 하현이가 검무(劍霧)를?”

“그래. 내 눈으로 똑똑히 봤다네.”

조금 전과는 달리 팽길산의 눈은 올곧았다.

남궁무룡은 그 눈빛을 보고는 사실이라고 확신할 수 있었다.

“다만, 그 시간은 얼마 되지 않았네. 거의 촌각이라고 봐도 무방할 정도였으니. 하현이가 가진 기운이 아직 크지 않기에 모든 내공을 소모하고 만 것이지.”

“혹시 하현이에게 말했는가?”

“아니. 아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네. 혹여나 혼자서 연습하다 절박한 심정에 원정까지 끌어다 쓰면 큰 내상을 입게 될 수도 있으니 말이야.”

남궁무룡은 팽길산에게 고마움을 담은 눈빛을 보내며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하북팽가의 가주는 아무나 하는 게 아닌지 적절한 판단을 보여주었다.

팽길산은 그 눈빛이 멋쩍은지 혼자 허허 웃고는 말을 이었다.

“그래서 말인데…. 너무 부담 갖지 말고 듣게나. 내가 알기로는 우리 세가에 자소단이 하나 있는 거로 알고 있다네. 그걸 하현이에게 주고 싶네.”

“자소단이?”

“저번에 화산의 일을 하나 해결해주고서 얻어왔지. 원래는 다른 손주를 먹이려 했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하현이만큼 필요한 상황은 아닌 것 같아서 말이네.”

남궁무룡은 대수롭지 않은 것을 말한다는 듯 툭툭 말하는 팽길산의 진심이 느껴지는 듯했다.

말은 저렇게 했지만, 자소단은 화산파의 보물이라고 불리우는 영약이다.

애초에 일 년에 생산되는 양이 열 개밖에 되지 않는다.

예전에 남궁무룡이 하현에게 자소단을 줄 때 무림맹주에게 뺏어왔다고 가볍게 말했지만, 사실 그 자소단 역시 남궁무룡이 무림맹에 공헌한 바가 막대했기에 받아올 수 있었던 것이었다.

“생각해준 것은 정말 고맙네. 그러나 받지는 못할 것 같네.”

“어째서? 아! 혹여, 그 자소단을 미끼로 혼약을 하자고 할까 봐서 그런가? 내 하현이를 손주사위로 삼고 싶은 것은 진심이지만, 그렇게 치졸하지 않네.”

팽길산이 삐치려 하자 남궁무룡이 급히 두 손을 내저었다.

“그런 게 아니네. 하현이가 자소단과 잘 맞지 않는 것 같아서 말이야. 아니, 잘 맞는다고 해야 하나…….”

“무슨 일이 있었던 건가?”

남궁무룡은 팽길산에게 하현이 자소단을 섭취할 때 있었던 일을 설명했다.

순간 주화입마와 헷갈렸을 정도로 기혈이 들끓었던 것과 더불어 자소단의 기운을 한 톨도 남기지 않고 모두 흡수한 것까지.

“호오?!”

그런데 팽길산이 두 눈을 크게 떴다.

무언가 떠오른듯한 모습이었다.

“왜. 짐작 가는 일이라도 있는가?”

“예전에 한 번 들어본 적이 있는 것 같네만…….”

그런데 팽길산의 표정이 살짝 오묘하게 일그러졌다가 다시 입을 열었다.

“그런데, 그 이야기의 출처가 주원 그 땡중이라서 말이야. 어디까지가 허풍인지 알 수가 있어야지.”

남궁무룡은 생각지도 못했던 이름에 껄껄 웃었다.

주원대사는 세간에서는 명망 높은 고승으로 알려져 있지만, 그들은 그의 정체를 잘 알고 있다.

개방의 취월걸개, 무당의 유엽과 더불어 무림맹의 삼대 개차반의 한 축을 맡고 있었다.

남궁무룡과 팽길산 역시 그들의 절친한 친우이긴 했으나, 둘은 점잖은 편에 속했다.

“주원이 뭐라 했는가?”

“그, 혹시 기억나는가? 소림사의 월룡(月龍) 말이네.”

“아. 기억하지. 십 년 전에 예순도 되지 않아서 소림사 법당으로 은거에 들어간 그 애송이 말하는 것 아닌가?”

팽길산이 애송이라는 말에 큭큭 웃었다.

월룡이라면 오십 년 전 정사 대전에서 겨우 약관의 나이로 큰 활약을 펼치고, 삼십 년 전 정마대전에서 역시 마교의 주구들을 일선에서 물리친 무림의 영웅 중 하나였다.

다만, 남궁무룡이나 팽길산보다야 스무 살이나 어리니 그들로서는 애송이라고 할 만하긴 했다.

“그래. 하여튼 월룡이 주원의 제자였지 않은가.”

“그랬지.”

“그래서 주원이 열심히 영약을 구해다 먹였는데, 대환단을 먹였을 때는 그 효율이 무척이나 좋았다고 하네.”

“대환단이면 당연히 그래야 하는 것 아닌가? 공청석유랑 비교될 정도로 대단한 영약이지 않은가?”

팽길산이 고개를 내저었다.

“아니, 그 정도가 아니라고 하더군. 이류급에서 한 번에 절정 수준까지 내공이 상승했다고 하네.”

“호오…….”

남궁무룡은 팽길산의 이야기에 빠져들었는지 흥미로운 눈빛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소환단 역시 효과가 좋은 건 매한가지였다고 하네. 보통의 무인들이 받아들이는 것보다 더욱 효과가 컸다고 했네. 그런데 자네도 알지 않은가? 보통은 소림의 승려들도 구경도 하기 힘든 게 대환단과 소환단이라고.”

“그렇지. 대환단은 오 년에 하나만을 만들 수 있고, 소환단도 자소단만큼이나 희귀하지 않은가?”

“그렇기에 자소단을 구해다 준 적이 있었다고 하네.”

“그러면 혹시?”

남궁무룡이 두 눈을 크게 떴다.

팽길산은 뿌듯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맞네. 하현이와 비슷한 현상이 있었다고 했네. 주원이 뭐라고 했더라…? 강해지라고 어렵게 구해서 먹여주었더니, 뱃속에서 다 불태워 버렸다고 했던 것 같군.”

“불태워? 그 말뜻은…….”

“그래. 그게 가장 큰 차이점인데, 자소단의 기운은 모두 소멸했다고 하네. 월룡이 받아들이지 못한 것이지.”

“흐음…….”

남궁무룡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

하지만, 그는 곧 오래 생각할 필요가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자네. 혹시 대환단…. 은 있을 리가 없고, 소환단 좀 가진 것 없나?”

“예끼 이 사람아. 그게 그렇게 흔한 거면 내가 진작 먹었지. 자소단도 겨우 구했다니까?”

“그렇지? 그러면 소환단은 어디에 가야 구할 수 있을까?”

“그거야…. 소림에 가야…….”

팽길산은 말을 하다 남궁무룡의 얼굴을 보고는 말끝을 흐렸다.

남궁무룡은 무언가 재미있는 생각이 났다는 듯, 환하게 웃고 있었다.

그리고, 그 웃음에는 천하의 도제마저 위험하다는 생각을 들게 만들었다.

* * *

“으으.”

팽주은과 주변 거리를 잘 구경하고 있던 하현은 갑자기 드는 오한에 몸서리쳤다.

“왜 그래? 몸이 안 좋아?”

“아, 아니. 갑자기 추워서.”

팽주은이 두 눈을 동그랗게 뜨고 하현을 유심히 바라보았다.

그녀가 보기에도 몸이 안 좋아 보이지는 않았는지 그녀는 다시 뒤돌아 걸으며 주변을 소개해 주었다.

하현은 팽주은의 뒤를 졸졸 잘 따라다니며, 평생 본 것보다도 더 많은 사람 구경을 했다.

얼마 전에 하북팽가에 왔을 때 소화와 남궁환은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이미 와본 길이지만, 하현은 처음이었기에 모든 것이 신기했다.

“자, 빨리 이쪽으로 와! 시간이 너무 늦어서 다 팔렸을지도 몰라.”

“뭔데 그렇게 급해?”

“따라와 보면 알아!”

하현은 따라오라고 해놓고서는 혼자서 저 멀리 달려가고 있는 팽주은을 바라보고는 피식 웃었다.

분명히 오늘 처음 만났건만, 팽주은은 종일 쉴 새 없이 조잘조잘 떠들며 그를 이끌었다.

참 낯도 가리지 않고, 성격도 쾌활한 아이였다.

“안 와?”

“그래. 가!”

하현은 큰 소리로 대답하고는 그녀를 쫓아 따라갔다.

팽주은이 멈춰 선 곳은 팽가와 그리 멀지 않은 한 가게.

이곳은 하현도 익히 아는 곳이었다.

“여기, 경단 파는 곳이잖아?”

“응! 내가 제일 좋아하는 곳이야. 여기 인기가 정말 많아서, 조금만 늦어도 이미 다 팔린단 말이야.”

“나 여기 와봤어.”

“정말? 누가 알려줬어?”

“아니, 그냥 우연히. 오늘도 우리 것도 사고 형, 누나들 것도 사가야겠다.”

팽주은은 손뼉을 짝! 쳤다.

“아! 맞아. 너 누나랑 형들이 있다고 했지. 그분들 얘기도 할아버지한테 들었어.”

“그래?”

“응. 청룡신검님을 제외하면 다들 우리 또래라면서?”

하현이 놀랐는지 두 눈이 커졌다.

팽주은의 말에서 하현이 놀란 것은 이미 형제들을 알고 있다는 것이 아니었다.

“민 형님 별호를 알아?”

“그럼! 강호에서 얼마나 청룡신검이 얼마나 유명한데.”

“와. 그렇게 유명하구나.”

“그럼! 용봉지회에서의 일이 얼마나 유명한데. 아! 우리 차례다.”

팽주은은 말하다 말고, 쪼르르 가게 안으로 들어갔다.

하현은 남궁민에게 용봉지회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물어봐야겠다고 마음먹고는 그 뒤를 따라 들어갔다.

“아저씨! 저 왔어요.”

“아가씨 오셨어요?”

가게 주인은 팽주은을 이미 알고 있는지 그녀를 반겨주었다.

“오늘은 하나, 둘…. 여섯 상자 주세요!”

“그렇게나 많이요?”

“네. 오늘은 줄 사람이 많거든요. 여기는 제 친구예요!”

가게 주인은 팽주은 뒤에 쭈뼛 서 있는 하현을 바라보았다.

“거기 공자는 며칠 전에 오시지 않으셨어요?”

“아! 넵. 맞습니다.”

“하하. 잘 생겨서 기억이 딱 나네요. 여기 주은 아가씨랑 친구시라고요?”

하현은 팽주은과 언제부터 친구를 하기로 했는지 기억이 불분명했으나, 팽주은이 먼저 그렇게 말해버렸기에 그냥 고개를 끄덕였다.

“네. 그렇게 됐네요.”

“주은 아가씨가 집안에 또래가 하나도 없어서 외로워하셨었는데, 잘 되었네요.”

그는 능숙하게 따뜻한 경단을 상자에 차곡차곡 담아 팽주은에게 건넸다.

“자. 여기 있습니다.”

“어! 아저씨. 여기 일곱 상자인데요?”

“그것만 팔면 오늘 장사는 끝이라서요. 더 가지고 가서 나눠 드세요.”

“고마워요. 아저씨!”

팽주은은 고개를 꾸벅 숙여 인사했고, 가게 주인은 그 모습이 귀여워 허허 웃었다.

그는 하현과 팽주은을 가게 밖까지 배웅해 주기까지 했다.

평소에 팽주은이 얼마나 이 경단 가게를 자주 왔는지 하현은 어렴풋이 느낄 수 있었다.

“엄청 좋은 아저씨지?”

“그렇네.”

“이게 다 내가 평소에 착한 일을 많이 해서 복이 돌아온 거라구.”

“평소에 얼마나 많이…….”

“뭐?”

“아니, 빨리 식기 전에 돌아가자고.”

“그래!”

하현이 팽주은과 팽가로 돌아가려 할 때.

휘익-!

어디에선가 나타난 무인 하나가 쏜살같이 신법을 전개하여 가게 쪽으로 달려왔다.

얼핏 보기에도 보통 경지의 신법이 아니었다.

“와. 빠르다. 고수인가 봐.”

“그러게.”

하현이 별 대수롭지 않게 지나치려는데, 가게 안으로 채 들어가지 못한 가게 주인 쪽에서 큰 소리가 터져 나왔다.

여인의 목소리였다.

“시간이 몇 신데, 벌써 다 팔렸다는 겁니까!”

의도한 것처럼 보이지는 않았지만, 목소리에는 내력이 담겼는지 쩌렁쩌렁 울렸다.

하현은 순간 이 목소리를 어디선가 들었다고 생각했다.

“한 상자면 충분합니다. 값을 두 배로 치를 테니, 더 만들어 주실 수 없으십니까?”

“그게, 재료도 다 떨어져서 말입니다.”

“아아…….”

하현은 혹시나 무림인이 가게 주인에게 행패를 부리려는가 싶었는데 다행히 그건 아니었다.

여인은 평범하게 고개를 푹 숙이고, 좌절하고 있었다.

“별일 아닌가 보다. 가… 자……?”

하현이 팽주은이 서있던 곳을 뒤돌아보았을 때, 팽주은은 그곳에 없었다.

그가 고개를 두리번거려 그녀를 찾았다.

어느새 팽주은은 좌절하고 있는 그 무인 앞에 서 있었다.

“자. 받으세요.”

“네……?”

팽주은은 경단 상자 하나를 그녀에게 건넸다.

무인은 그 경단 상자를 얼결에 받아들었다.

“저희한테는 너무 많거든요. 대신에 여기 아저씨한테 값은 지불해 주세요.“

“아……!”

팽주은의 말을 이해한 무인은 고개를 번쩍 들며 말했다.

“정말 감사합니다. 저희 아가씨가 정말 좋아하시는 거라서…….”

“언영이가 사 오라고 시킨 거예요?”

“아니요. 아가씨는 별말이 없으셨는데, 제가 꼭 사다 드리고 싶어서……?”

무인은 뒤쪽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아무 생각 없이 대답하다가 뒤를 홱 돌았다.

그 자리에는 당연하게도, 하현이 서 있었다.

“앵앵 이라고 하셨던 거 같은데. 맞나요?”

“당신은……!”

앵앵은 미간을 찌푸렸다.

그녀의 기준에서는 아무리 좋게 생각해도 하현과 좋은 인연은 아니었다.

하현은 도리어 앵앵에게 웃으며 말했다.

“영이가 또 가출을 하지는 않았나 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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