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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궁세가 천재 외손자-72화 (72/304)

72화

마윤철은 다시 한번 눈을 비비고 하현을 바라보았다.

“네가 여기를 어떻게?!”

어떻게 잊겠는가, 저 얼굴을.

그때는 넝마 조각 같은 옷을 입고 있었지만, 유독 깨끗했던 얼굴이었다.

그리고 삼 년 전보다 성숙해졌고 키도 엄청나게 컸지만, 마윤철은 하현을 한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

그리고 하현의 이름 역시 한 번도 잊어본 적이 없다.

죽도록 무공을 수련하다 힘들 때면 하현의 이름을 되뇌며 절치부심하곤 했으니까.

“지나가다 들릴 일이 있어서. 잘 지냈나 보네?”

하현은 마치 오랜 친우를 만난 것 같은 말투였다.

아니, 사실 하현은 실제로도 마윤철을 친우 비슷한 것으로 기억하고 있었다.

그가 태어나서 가장 처음 비무한 상대이자, 내력을 무기에 담는 방법을 가르쳐준(?) 것이 마윤철이었으니까.

“그렇다. 이게 안 보이냐?”

마윤철은 자랑스럽게 그의 허리춤에 있는 이결 매듭을 내보였다.

지난 삼 년간의 노력의 산물이었다.

그리고 하현에게 호언장담한 대로 타구십팔초의 수련도 게을리하지 않았다.

“넌 행색을 보아하니, 좋은 집에서 잘 먹고 잘사는 것처럼 보이는구나.”

“응. 그때 내 성을 말해주지 않았지? 남궁하현이야.”

“남궁?”

하현이 눈부시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 남궁의 성을 붙여 자신을 소개하는 것도 굉장히 자연스러워졌다.

“너 남궁세가의 사람이었어?”

“맞아.”

그때 하현의 뒤에서 취월걸개가 걸어와 말했다.

“왜 이렇게 안 오는 것이야. 무슨 일이라도 있는 게야?”

그를 발견한 마윤철의 눈빛이 흔들렸다.

“자, 장로님!”

“오냐.”

“장로님을 뵙습니다!”

마윤철이 큰소리로 외치며 납작 절을 하자, 다른 거지들도 눈치가 있는지 후다닥 달려와 그 옆에서 절을 올렸다.

“쯧쯧. 이럴까 봐 돌아가려 한 것인데…. 이제 일어나라. 응? 너는…. 그때 그 아이구나?”

“저를 기억해주시는 겁니까?!”

“그래. 인상에 남는다. 이름이 뭐라더라…. 마, 뭐시기였는데.”

“성이라도 기억해주시는 것만으로도 영광입니다! 마윤철입니다!”

마윤철은 자신을 기억해주는 것에 진심으로 감동하였는지 눈물까지 글썽거렸다.

“그래. 마윤철. 그런 이름이었지. 복우는 잘 있나?”

“네. 분타주님은 분타에 있을 겁니다.”

“그래. 안부는 전하지 마라. 귀찮아지니까.”

“아, 알겠습니다.”

취월걸개는 귀찮은 듯 손을 휘휘 저으며 말했다.

“그러면 이제 가봐라. 음식은 분타에 가져가서 잘 나눠 먹고.”

“알겠습니다. 장로님.”

마윤철은 조금 실망한듯한 얼굴이었다.

수년 만에 보는 사문의 큰 어른이다.

그런데 저렇게 귀찮은 티를 팍팍 내고 있으니, 속이 상한 것이다.

마윤철이 힘없이 돌아서려는데, 다시 취월걸개의 목소리가 들렸다.

“잠깐. 아이야.”

“네. 장로님?”

“생각해보니, 삼 년 전에 너는 갓 일결을 단 제자였던 것 같은데. 삼 년 만에 꽤 큰 성취를 이루었나 보구나.”

“동냥할 때와 잠잘 때를 제외하고는 무공 수련에만 힘썼습니다.”

취월걸개의 얼굴에 흥미가 생기기 시작했다.

“네가 올해로 몇 살이지?”

“열다섯입니다.”

“스승은 누구냐?”

“따로 스승님은 없습니다.”

“그래?”

몸만 살짝 틀어 마윤철과 대화하던 취월걸개는 아예 그를 바라보았다.

완전히 관심이 생겼다는 증거나 다름없었다.

“네. 가끔 분타주님이 무공을 한 번씩 봐주기는 합니다.”

“벌써 그 나이에 이 결이 되었는데, 아무도 제자 삼으려 하지 않았다?”

“제가 총타에 가질 못해서 그런 것 같습니다. 재작년부터 고시에 새끼 거지들이 갑자기 많이 유입되어 이들을 돌보는 역할을 하느라 그만…….”

취월걸개는 그 얘기를 듣는 데 사람 좋은 미소를 짓고 있었다.

평소에 항상 불만이 가득한 그의 얼굴로는 상상할 수 없는 따뜻한 미소였다.

아니, 가끔 하현만이 볼 수 있는 그런 얼굴이었다.

“그러면 이렇게 만난 것도 인연인데. 한 번 다시 손속을 나누어보지 그러냐?”

“지금 말입니까?”

“그럼. 지금이지. 대련을 하는 데 시간이 필요한 건 아니잖느냐? 사람 둘이랑, 디딜 땅만 있으면 되거늘.”

그는 흘끗 하현을 보았다.

그런데 하현은 취월걸개가 아무런 설명도 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말을 하지 않아도 통한다는 듯 취월걸개 역시 고개를 끄덕여 준 뒤 입을 열었다.

“자. 둘이 붙어보거라. 여기는 너무 사람이 지나다니는 길인가?”

취월걸개가 주위를 두리번거리더니 저 멀리를 가리켰다.

“오. 저쪽에 제법 괜찮은 공터가 있구나. 저쪽으로 가자.”

그가 먼저 자리를 옮기자 나머지는 자연스럽게 그를 따라갔다.

모두 공터로 옮기자 자연스럽게 하현과 마윤철의 대치 구도가 이루어졌다.

남궁민 역시 흥미로운 표정으로 그 둘을 지켜보고 있었다.

척-

마윤철은 허리춤에서 타구봉을 꺼내 들었다.

삼 년 전에 쓰던 그 타구봉이었다.

휙!

하현 역시 취월걸개가 던진 타구봉을 받아들었다.

“현이는 지금 진검밖에 없지 않으냐. 이걸 쓰거라.”

“감사합니다.”

하현은 취월걸개의 타구봉을 몇 번 부웅 부웅 휘둘러 보았다.

타구봉은 태어나서 두 번째 잡아보는 것이지만, 하현은 이 타구봉이 얼마나 길이 잘 들려 있는지 느껴지는 듯했다.

“자. 시작해라!”

하현은 취월걸개가 시작하라고 말하면 마윤철이 곧바로 달려들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의 예상은 틀렸다.

마윤철은 기수식을 취하기는 했으나, 하현에게 말을 걸었다.

“그런데, 한 가지 물어볼 게 있다.”

“뭔데?”

“아까는 경황이 없어서 못 물어봤는데. 네가 왜 우리 장로님이랑 같이 다니는 거냐?”

“그건…….”

하현이 취월걸개를 흘끗 보고 말했다.

왠지 장난기가 가득한 얼굴이었다.

“이 대련이 끝나고 말해줄게!”

타구봉을 꼬나쥔 하현이 마윤철에게 달려들었다.

특별하게 휘두르는 법도 따로 없는 마구잡이식 휘두르기였다.

부웅- 부웅-!

하지만 그 세기만은 장난이 아니었다.

저 봉에 잘못 걸리면 머리통이 깨지고도 남을 것 같았다.

그리고 잠시 하현의 공격과 공격 사이의 틈.

마윤철은 그가 익혀온 보법을 극성으로 펼쳐 하현의 봉이 닿지 않는 곳으로 벗어났다.

“하하! 취팔선보(醉八仙步)가 제법이군.”

취월걸개가 손뼉을 치며 좋아했다.

마윤철이 펼쳐낸 개방의 독문 보법이 제법 그럴싸했다.

하지만 마윤철의 표정은 그리 좋지 못했다.

“너, 이 자식!”

하현은 씨익 웃으며 어깨를 으쓱했다.

그는 마윤철과의 첫 대련에서 마윤철이 하현에게 했던 공격을 그대로 돌려주었다.

그리고 마윤철 역시 하현이 그때 그의 공격을 피해냈던 방법을 그대로 따라 한 것이고.

“이제 장난은 끝이야. 하압!”

하현이 기합성을 지르며 이번에는 타구봉에 내공을 실었다.

비록 검이 아닌 타구봉이라지만, 하현은 검을 다루는 것만큼이나 자연스럽게 타구봉을 다루었다.

검으로 검법이 아닌 도법을 사용할 수 있고, 주먹과 손으로도 검법을 펼칠 수 있다는 것을 이미 깨달을 하현이다.

상승의 무공을 바로 따라 하는 것은 무리겠으나, 타구봉을 자연스럽게 사용하는 것쯤은 식은 죽 먹기였다.

쒜엑-!

하현의 타구봉이 바람을 찢으며 날아갔다.

그가 펼치는 초식은 타구십팔초의 초식 중 하나인 아구흘뇨(餓狗吃尿).

공격 초식은 가장 기본적인 찌르기이지만, 빈틈을 주지 않는 공격과 수비를 동시에 하는 초식이었다.

물론 하현은 이 초식명도 모르지만.

마윤철의 눈이 번뜩였다.

이제는 제법 눈썰미가 좋아진 그는 하현이 펼치는 초식을 바로 알아챘고, 지지 않겠다는 듯 같은 초식을 펼쳐내었다.

“이야압!”

까앙-!!

두 타구봉이 부딪히자 금속끼리 부딪치는 소리가 났다.

하현은 부딪힌 그 자리에 가볍게 서 있었지만, 마윤철은 부딪힘의 여파를 흘려보내려 뒤로 몇 걸음 물러섰다.

씨익-

하지만 마윤철은 웃었다.

예전에는 단 한 번의 부딪힘에 승부가 났었다.

하지만 지금은 왜인지 할만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얼얼한 손에 힘을 더욱 주어 타구봉을 꽉 잡고는 다시 달려들었다.

“이것도 받아봐라!”

마윤철의 손에서 타구십팔초의 마지막 초식.

사각난붕(四各亂崩)이 펼쳐졌다.

그의 호언장담대로 타구십팔초의 수련을 게을리하지 않았는지, 어지러이 움직이는 그의 타구봉은 여러 개로 보일 정도로 현묘한 변화를 주었다.

“대단하구나.”

하현은 그 초식과 마윤철의 숙련도에 순수하게 감탄하고는 타구봉을 검을 잡듯 다시 고쳐 잡았다.

부웅-

그리고 타구봉은 빙글 동그란 원을 그리며 움직였다.

하현의 독문무공. 월광검법이었다.

솔직히 말해 지금 마윤철의 수준으로는 하현을 결코 따라가지 못한다.

하지만 지금 하현이 펼칠 수 있는 가장 강력한 초식으로 그를 이겨주는 것.

그것이 하현이 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배려였다.

카카카캉-!

하현은 단순히 검을 크게 원을 그리며 휘두른 것 같아 보이는데, 두 타구봉이 부딪히는 소리는 여러 번 들려왔다.

만월검법이 가진 기묘한 변화의 묘리 덕분이었다.

“크윽-!”

그 부딪힘이 계속될수록, 마윤철의 팔은 점점 느려져 갔다.

마윤철은 하현의 타구봉과 부딪힐 때마다 내공이 뭉텅이로 빠져나가는 것을 느꼈으나, 여기서 그만둘 수는 없다는 듯, 계속해서 기운을 밀어 넣었다.

우뚝!

그러던 중, 하현의 봉이 시간이 정지한 듯 공중에 우뚝 서버렸다.

부웅-

그 덕에 마윤철의 봉이 허공을 가르고 말았다.

그와 동시에 그의 몸이 기우뚱 균형을 잃었다.

샤악!

그와 동시에 멈췄던 하현의 봉이 다시 움직였다.

뻐억!

“으악!”

타구봉은 그대로 마윤철의 옆구리를 강타했고, 마윤철은 허리를 부여잡으며 비명을 지를 수밖에 없었다.

정말이지 완벽한 하현의 승리.

그 누구도 이 결과에는 이견이 없을 정도였다.

“괜찮아?”

“으윽, 아무렇지도 않아.”

마윤철은 옆구리를 부여잡고 비틀대며 일어났다.

아직도 놓치지 않은 타구봉을 꼭 쥔 채였다.

“정말 수련을 많이 했나 보다. 엄청나게 발전했는데?”

“동정 같은 건 듣고 싶지 않아.”

마윤철이 옷을 들춰 옆구리를 살폈으나, 하현이 손속에 사정을 둔 덕에 시퍼렇게 멍만 들고 말았다.

그런데 마윤철이 문득 무언가 생각 난 듯 하현에게 말했다.

“그러고 보니 너는 몇 살이냐?”

“나. 열셋인데.”

“아까 못 들었어? 나는 열다섯이라니까. 계속 반말을 하고 말이야. 무공만 강하면 되는 거냐?”

하현이 씨익 미소 지었다.

“너, 아까 내가 취월걸개 장로님이랑 무슨 사이냐고 물어봤지?”

“그래.”

“나는 취월걸개 사부님과 사제지연을 맺었다.”

“뭐…? 그럼 너도 개방의 문도란 말이야?”

하현이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설명 대신 뒤쪽의 취월걸개를 향해 물었다.

“사부님. 사부님은 마윤철보다 몇 대 사숙조신거에요?”

“어디 보자. 나보다 사 대 아래 제자군.”

“사 대요? 그러면 제가 사부님 제자니까…….”

취월걸개는 이제야 하현이 왜 그것을 물어봤는지 깨달았는지 낄낄거리며 웃기 시작했다.

마윤철은 지금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몰라 얼떨떨하고 있을 때, 하현이 마윤철에게 손을 내밀며 말했다.

“자. 이 정도면 계속 반말해도 되겠지? 아니, 네가 나한테 존대를 해야겠는데?”

“잠깐만…. 그러면 네가 내…….”

하현이 피식 웃고는 말했다.

“맞아. 내가 네 삼대 사숙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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