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남궁세가 천재 외손자-79화 (79/304)

79화

“어머니에 대해 잘 아시나요?”

“아마 무룡이…. 그러니까 네 할애비의 친우 중에서는 아마 내가 영령이를 제일 잘 알 것이다.”

“어떻게요?”

뒤에서 듣고 있던 취월걸개가 너털웃음을 터뜨리며 말했다.

“영령이 어릴 적 사고를 적당히 쳤어야지. 혹시나 소림에서 수행을 시키면 그 성정이 조금은 누그러질까 싶어 무룡이 이곳에 한동안 보내놓곤 했었지. 한 육 개월쯤 있었나?”

“그래. 그 정도 있었던 것 같군. 그때는…. 나에게도 쉽지 않은 시절이었지.”

주원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평소에 하현은 어머니에 관한 이야기를 남궁무룡이나 기철, 기현에게 듣곤 했지만, 이렇게 듣는 이야기는 또 다른 느낌이었다.

“저희 어머니가 그렇게 사고를 많이 치셨어요?”

“말도 말아라. 그때도 영령은 지객당이 아닌 양심당(養心堂)에서 머물렀었다.”

주원대사는 양심당은 고승들이 더 높은 경지의 불도를 연구하기 위한 곳이라고 부연설명하고는 말을 이었다.

“그런데, 당시 양심당주가 그 아이는 이대로 강호에 내보내면 안 된다고 머리를 깎여 아미파에 보내야 한다고 했을 정도였으니…….”

하현은 쿡쿡 웃었다.

취월걸개도 함께 웃다가 말을 덧붙였다.

“그때 정말 영령이가 아미에 갔으면 하현이 너도 없었을 수도 있겠구나.”

“아니지. 이래서 취월 자네가 영령에 대해 잘 모른다고 하는 것이네.”

“모르긴 내가 뭘 몰라?”

“아마 영령이었다면 아미파에 보내졌어도, 어떻게든 탈출했을 것이 분명하네.”

취월걸개가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음…. 정말 그랬을지도 모르겠군.”

하현은 둘의 대화를 흥미롭게 들으며 고개를 돌려 소림의 내원을 둘러보았다.

조금 전까지는 그냥 대단한 곳이라는 생각뿐이었으나, 이제는 어머니의 숨결이 남아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주원. 그러고 보니 말은 똑바로 하게. 솔직하게 말해서 독심미화도 별호를 지어주려 한 것은 아니지 않은가?”

주원은 취월걸개의 말에 큭큭 웃더니 말했다.

“영령이 소림을 떠나던 날. 나는 그 독한 성정을 놀려주려 독심미화라고 불렀지. 그런데 영령이 그 말을 듣고 너무 좋아하는 것 아닌가?”

“그래. 자신을 너무 잘 표현했다고.”

“그래서 뭐, 그게 별호가 되었네.”

하현은 문득 신가장에서 살 당시 어머니를 떠올렸다.

분명 아버지보다 더 무서운 것이 어머니이긴 했으나, 이들이 이렇게 말할 정도로 독한 사람은 아니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제가 기억하는 어머니와는 조금 달라서 신기하기도 해요. 저한테는 엄하긴 했지만, 현숙하고 현명한 어머니셨거든요.”

하현의 질문에 주원대사가 빙긋 웃으며 말했다.

“그게 다 시주의 아비 덕이라네.”

“아버지요?”

하현은 이번에는 조금 놀라고 말았다.

지금까지 어머니에 대해서는 여러 이야기를 들었지만, 아버지를 언급하는 것은 그가 처음이었기 때문이다.

“그래. 신…. 병관이던가?”

“네! 맞아요. 신 병자, 관자를 쓰셨습니다.”

“뭐랄까. 참으로 예의 바르고 마음이 넓은 청년이었지. 영령과의 혼인 때문에 알게 된 것이 아니라면 불자로 만들어 불도를 걷게 하고 싶을 정도로.”

하현은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아버지는 무림에서는 무명소졸이나 다름없기에 어디서도 그 이름을 들을 곳이 없었다.

허나 마음만큼은 중원에서도 둘째가라면 서러울 것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혼인 전에 소림에도 둘이 손을 꼭 붙잡고 나에게 인사를 왔었다네.”

“이곳에도 두 분이 오셨었어요?”

“하하. 그때 얼마나 놀랍던지. 독심미화는 어디 가고 요조숙녀가 나를 찾아왔으니.”

주원대사는 그때를 상기하는지 따스하게 웃었다.

하현은 그의 어머니에 대한 애정이 여실히 느껴지는 듯했다.

취월걸개도 그때를 생각하는지 빙긋 웃고는 말했다.

“강호행에 한창이던 영령이 갑자기 혼인한다고 했을 때, 무룡이 표정을 네가 봤어야 했는데.”

“할아버지요?”

“그래. 그때 나도 그 자리에 있었거든. 몇 년 만에 집에 들어온 딸이 한다는 말이 혼인할 사람을 찾았다고 하니. 무룡이도 어지간히 황당했을 것이다.”

“어머니가 강호행을 얼마나 하셨죠?”

“한…. 팔 년 정도는 했을걸?”

“팔 년…….”

하현은 문득 강호행을 나서며 어머니와 아버지의 흔적을 찾아보는 것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잠시 딴생각에 빠진 하현을 주원 대사는 빤히 바라보다 입을 열었다.

“나무아미타불…. 자네에게서는 살심(殺心)이 느껴지지 않는군.”

“살심이요?”

“대단하다는 것이네. 사실 처음 자네 부모님 이야기를 꺼낼 때, 혹여 복수심이 남아있으면 어쩌나 걱정했는데…. 늙은 중의 기우였군. 자네 복수하고픈 마음은 이제 없는가?”

하현은 빙긋 웃었다.

이런 질문을 언젠가 남궁무룡에게도 받은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때는 이제 복수에는 큰 뜻이 없다고 말했었다.

하지만, 그때보다 한층 성장한 지금, 하현은 이렇게 말했다.

“부모님의 복수를 하고 싶습니다.”

“음……?”

하지만 주원이 본 하현의 얼굴은 복수심에 사로잡힌 얼굴이 아니었다.

그는 하현이 계속 말하기를 기다렸다.

“다만, 무분별한 복수심에 빠져 복수만을 위해 인생을 살아가고 싶지는 않습니다.”

“……!”

“복수는 제 인생의 목표가 아닌 지나가는 한 점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 순간을 위해 살지는 않겠지만, 그 순간이 오면 마다하지 않을 것입니다.”

하현의 말이 끝나고, 주원은 한동안 대답하지 않았다.

두 눈을 감고 연신 아미타불…. 이라며 불호만을 욀 뿐.

“거봐라. 내가 이미 애늙은이라 했지?”

취월걸개가 킬킬 웃으며 말했다.

그의 웃음소리에는 자랑스러움이 함께 담겨 있었다.

“내가 하나 배웠네. 자네의 외형만 보고 판단하는 우를 범했군. 그런데 자네 속에는 벌써 부처님이 계시는 듯하구만.”

“아닙니다. 아직 멀었습니다.”

주원대사가 무언가 알겠다는 듯 빙긋 웃었다.

“그래서, 그렇게까지 강해지려 하는 것이군? 하하하.”

“그렇습니다. 기회가 왔을 때 놓치지 않으려면 언제든 힘이 필요한 법이니까요.”

“허허. 아미타불!”

주원대사는 하현에게 감탄하고는 말을 이었다.

“모레면, 자네의 힘이 그 말 만큼 되는지 확인해 볼 수 있겠군.”

“꼭 이긴다는 생각보다는 제 현재 수준을 알아보겠다는 마음입니다.”

“이겨야 소환단을 받아 갈 수 있는 걸 잊었나?”

하현이 씨익 웃었다.

“혹여 저희가 지더라도, 친우를 생각하는 마음과 부처님의 자비로 하나는 내어 주실 거라 믿고 있습니다.”

“이런, 지더라도 하나는 달라는 소리를 이렇게 돌려 말하는 건가?”

하현의 뻔뻔한 말이 싫지만은 않은지 그는 웃음을 흘렸다.

“지금처럼만 정진하시게. 시주를 오래 보지는 않았지만, 지금 옳은 길로 가고 있는 듯하니.”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하현은 고개를 꾸벅 숙였다.

그때 지금까지 잠자코 기다리던 취월걸개가 그 둘의 사이에 끼며 말했다.

“자자. 언제까지 여기서 입씨름하고 있을 게냐. 할 일도 없어?”

“취월. 자네는 모르겠지만, 내가 지금 이곳에서 대화하는 것, 행하는 것 모두 부처님의 뜻을 헤아리기 위한 수행이라네.”

“수행은 개뿔! 밥 먹고 똥 싸는 것도 다 수행이라 그러지 그러냐.”

“어떻게 알았는가? 모든 행동에 부처님의 뜻이 깃들어 있다면 그것이 모두 수행인 것을. 나무아미타불…….”

취월걸개는 합장까지 하며 불호를 외는 주원대사가 기가 찬다는 듯 혀를 쯧쯧 차고서 하현에게 말했다.

“저기 위로 올라가는 길 뒤에 높은 언덕이 하나 보이지?”

“네. 보입니다.”

“그 언덕을 넘어가면 이제 진짜 소림이 나온다. 사찰 소림사가 아니라, 문파 소림사가.”

하현은 보이지도 않는 언덕 뒤를 바라보았다.

그곳에서 알 수 없는 경건함이 느껴지는 듯했다.

“그런데, 거기는 어지간해서는 구경시켜주지도 않아. 그러니 이제 내려가자.”

“네. 사부님.”

취월걸개가 휘적휘적 걸으며 먼저 내려갔고, 하현은 주원대사에게 꾸벅 고개를 숙여 인사하고는 그의 뒤를 따랐다.

주원대사도 하현에게 손을 흔들어주었을 뿐, 별다른 말을 하지는 않았다.

하현과 취월걸개가 완전히 시야 밖으로 사라지고 난 뒤.

“원진. 이쪽으로 오거라.”

그는 한창 연무장에서 무예를 연습하고 있는 원진을 불렀다.

그리 크지 않게 나긋하게 말했건만, 원진은 한 번에 알아듣고 그의 앞으로 신법을 펼쳐 달려왔다.

“부르셨습니까. 큰 스님.”

“그래. 아까부터 수련에 집중하지 않고, 이곳에 온통 신경을 쓰고 있었던 것, 다 안다.”

“헙…. 죄송합니다.”

원진이 즉각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주원대사의 말대로였다.

그는 그와 붙게 될 하현이 궁금해서 견딜 수 없었다.

“항상, 평상심을 유지하라 했거늘…….”

“정진하겠습니다.”

“되었다. 어차피 본 것. 네가 보기엔 어땠느냐?”

“하현 시주 말입니까?”

주원대사는 고개를 끄덕였다.

원진은 아주 잠시 하현에 대해서 생각하더니 입을 열었다.

“굉장히 총명해 보였습니다.”

“그리고?”

“몸놀림이 예사롭지 않은 것이 무예도 보통은 아닐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또?”

“음…. 나이가 겨우 열셋이라고 들었는데, 생각보다 키나 덩치가 더 커서 놀랐습니다.”

“그리고?”

주원대사는 원진에게 계속해서 물었다.

하지만 원진은 이제 더 이상 대답할 게 남아있지 않았다.

“…죄송합니다. 여기까지 밖에 보지 못했습니다.”

“허허. 그렇구나. 그러면 이렇게 물어보마. 지금 너와 하현 시주가 비무를 한다면 누가 이길 것 같으냐?”

원진이 얕게 웃으며 말했다.

“하하. 제가 일곱에 동자승으로 무공 수련을 시작한 지 벌써 스무 해가 다 되었습니다. 당연히 제가 이기지 않겠습니까?”

“아미타불…. 눈이 있으면 뭐하누. 그게 옹이구멍인데.”

“예?”

원진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듯 쯧쯧 혀를 차며 말했다.

“쯧쯧. 삼대 제자 중에는 네 무예가 가장 높지?”

“예 큰스님.”

“그러면 내가 말해주지. 단언컨대 우리 삼대 제자 중에는 하현 시주와 맞붙어서 이길 수 있는 제자는 단 하나도 없을 것이네.”

“네……?”

원진은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이었다.

대(大)소림의 제자로서, 적지 않은 시간 동안 무예를 닦아온 그였다.

심지어는 하현이 살아온 시간보다 그가 무공을 배워온 시간이 더 길다.

하지만 그는 그런 의문을 겉으로 표현하지는 않았다.

“삼대 제자들 전부, 내일까지는 십팔나한진의 숙련도를 조금이라도 더 높이는 수련을 하도록 해라. 우리는 진(進)으로 싸우는 것이니, 아직은 승산이 있다.”

“알겠습니다. 큰스님.”

주원대사는 소림사에서도 살아있는 전설이다.

그리고 그는 직설적인 말로 정신을 혼미하게는 해도, 결코 없는 말을 하지는 않는 사람이었다.

주원대사가 이렇게 말한다면 분명 이유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쯧쯧. 취월걸개. 저 아이를 믿고서 그런 내기를 하자고 했구만. 묘하게 교활하단 말이야.”

주원대사는 꿍얼거리며 양심당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그의 머릿속에는 이미 하현에 대한 인상이 깊게 박혀 있었다.

* * *

“사부님. 무엇 좀 여쭤봐도 될까요?”

다시 지객당으로 내려온 하현이 취월걸개에게 물었다.

“뭐냐.”

“우리 조금 전에 그곳에는 왜 갔다 온 거예요?”

하현이 말하는 그곳은 소림무승들의 연무장이었다.

“그건 왜?”

“거기 가서 결국 아무것도 안 하고 와서, 이유가 궁금해서요. 뭐, 주원스님을 뵙고 왔으니 아무것도 안 한 건 아니지만…….”

“낄낄. 그게 궁금했구나. 뭐. 볼 일이 있어서 갔는데. 볼 일을 마쳤으니 내려왔지.”

하현의 의문에 찬 얼굴로 고개를 갸웃했다.

취월걸개야 말로 가서 한 게 아무것도 없는데 볼 일을 마쳤다니.

‘주원 스님한테 시비를 거는 게 볼 일은 아닐 테고.’

하현은 조심스럽게 물었다.

“볼 일이 무엇이었는데요?”

“저기, 제자들 수준이나 파악하려고 했는데. 인제 보니 파악할 것도 없다.”

“수준 파악이요?”

취월걸개가 왜 당연한 말을 묻냐는 듯한 표정으로 말했다.

“아까 보지 않았느냐. 연무장에서 맨 뒷줄에서 어설프게 따라 하던 그 아이들. 그 아이들이 모레 너와 민이가 붙게 될 아이들이었다.”

“아…! 그랬군요. 그런데 왜 파악할 것도 없어요?”

“크큭.”

그는 터져 나오려는 웃음을 참다가 하현의 눈을 똑바로 보고 말했다.

“그 삼대 제자 중에, 너를 이길 놈 하나 없었다. 십팔나한진만 제대로 상대하면 이 싸움은 필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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