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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궁세가 천재 외손자-81화 (81/304)

81화

하현은 그들의 모습을 스윽 둘러보았다.

누군가는 맨 주먹이고, 누군가는 곤(棍)을, 또 누군가는 봉(棒)을 들고 있다.

소림의 권과 장은 무림 제일이라는 말이 머리를 스쳐 갔다.

“본 승은 원진이라 합니다. 나머지는 원자 항렬의 사제들입니다.”

“저는 남궁민. 여기는 남궁하현입니다. 좋은 대련이 될 것이라 생각하니 기대됩니다.”

원진이 합장하며 인사하자, 남궁민이 포권으로 응대했다.

열여덟 명의 나한들은 모두 건장한 신체를 지녔다.

내공과 더불어 외공에도 게을리하지 않는다는 소림의 무승다웠다.

그리고 원진도 남궁민을 보고 감탄했다.

‘기세가 보통이 아니다.’

우락부락한 근육질은 아니건만, 남궁민의 자태에서 찔러도 피나지 않을 것 같은 단단함이 느껴졌다.

웃는 얼굴이건만, 착 가라앉은 눈에서는 그의 무공 수준이 보통이 아니라는 것이 느껴졌다.

이대 십팔의 싸움.

사실 숫자만으로 본다면 상대가 안 되는 싸움이다.

하지만 그는 자신들이 유리하다는 생각은 지워버렸다.

“다행히 아직 시작 전인가?”

그때 차분한 목소리가 그들의 귓가에 울렸다.

분명 나직이 말한듯한 목소리였지만, 바로 옆에서 소리치는 듯 생생하게 들린 목소리였다.

“방장님!”

“나오신다는 말씀도 없이!”

소림의 방장 주산선사였다.

주원대사의 사형이자 소림사라는 거대한 집단의 수장인 그는 겉으로 보기에는 고고한 고승(高僧)이라는 인상이 들지는 않았다.

몸은 안쓰러워 보일 정도로 홀쭉하고, 두 눈은 퀭했으며 광대와 턱은 툭 튀어나왔다.

보통 이런 외모의 사람은 신경질적인 분위기를 풍기는데, 신기하게도 그런 분위기는 없었다.

“허허. 나는 신경들 쓰지 말고, 하려던 것들 계속하시게.”

그는 휘적휘적 연무장이 잘 보이는 나무 아래로 걸어가 나무를 등지고 편하게 앉았다.

그는 신경 쓰지 말라고 했지만, 그 존재감을 지울 수는 없었다.

“이봐. 땡중. 아무리 봐도 네 사형은 편해지지가 않는단 말이지.”

“그건 나도 마찬가지라네. 팔십 년을 함께했는데도 어려워.”

취월걸개와 주원대사가 속닥속닥하는 사이, 하현과 남궁민은 다시 집중력을 찾았다.

그것은 소림무승들 역시 마찬가지.

그들은 방장까지 직접 내려와 그들을 지켜본다는 사실에 한 번 더 의기투합했다.

꽤 나이가 있어 보이는 승려가 대련의 시작을 알렸다.

하현과 남궁민은 바로 공격해 들어가지 않고, 잠시 가만히 서서 기다렸다.

열여덟 명의 승려가 진을 펼칠 시간을 준 것이다.

무승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앞으로 네 명, 뒤로 여섯 명. 그리고 양쪽에 네 명씩.’

그들은 일사불란하게 진을 짰다.

아직은 어떻게 움직이는 진인지 가늠이 가지 않았다.

“현아. 혹시 보이니?”

승려들의 움직임이 멈추었을 때, 남궁민이 하현에게만 들리게 슬쩍 말하며 턱 끝으로 진의 끝쪽을 바라보았다.

“사상(四象), 팔괘(八卦)가 주축을 잡고, 양옆의 네 명으로는 사방(四方)을 잡아낼 것 같아요.”

“그래 잘 보았다. 아마 쉴 틈 없이 공격해올 거야.”

하현은 재빨리 눈을 돌려 이 진이 구성이 어떻게 되어 있는지 확인하려 했다.

하지만 당연하게도 한 눈에 파악할 수는 없었다.

“정신 바짝 차려. 들어온다!”

부웅-!

먼저 하현의 눈앞에 봉이 날아왔다.

다리는 땅에 붙인 채 허리만 뒤로 숙여 봉을 피해내자, 곧바로 머리 위에서 곤이 떨어졌다.

그리고 곤을 피하는 순간 물 흐르듯 무승이 장(掌)을 부딪쳐 왔다.

타닷!

하현은 발을 굴러 아예 높게 뛰어버렸다.

휙! 휘휙!

그리고 하현이 있던 자리에는 동시라고 해도 무방할 정도로 세 명의 무승이 주먹을 내질렀다.

마치 한 몸인 듯 자연스럽다.

첫 번째 공격이 허사로 돌아가면, 곧바로 대기하며 공격 자세를 취하고 있는 무승이 공격해 들어오고, 또 그것마저 피하면 그새 하현의 뒤까지 와 있던 무승이 무기를 휘두른다.

‘이것이 십팔나한진……!’

하현은 마치 깊은 계곡에서 골바람을 피하고 있는듯한 착각이 일었다.

바람은 날카로웠고, 빈틈없었다.

‘먼저 이 연계를 끊어야 한다.’

하현의 오른손이 왼 허리에 가는가 싶더니,

카앙-!

어느새 발검한 검이 하현을 향해 날아오는 곤을 쳐냈다.

지금껏 피하기만 하던 하현의 첫 반격이었다.

그리고 하현은 아주 미세한 차이로 들려오는 타격음을 통해 남궁민 역시 반격을 시작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쉬익! 쉬익……!

하현은 곧장 날아오는 봉을 향해 검을 날리고는 곧바로 그 뒤에서 권을 내지르려 하는 승려에게까지 검을 뻗었다.

뻐억-!

“크윽.”

기습과도 같은 공격에 승려는 내지르려던 권을 회수하고 팔을 들어 하현의 검을 겨우 막아냈다.

그 덕에 작은 균열이 생겼고, 하현은 그 틈을 놓치지 않았다.

파바바박!

하현이 땅을 박차며 조금 전 하현의 검을 막아낸 승려에게 보법을 전개했다.

땅을 접어 가는듯한 신속한 움직임으로 그의 앞에 당도한 하현은 그를 그대로 어깨로 받아버렸다.

퍼억!

“원후사제!”

하현은 그의 어깨에 부딪혀 넘어진 승려의 법명이 원후였나? 라고 생각하며 그의 얼굴을 흘끗 보았다.

다른 승려들에 비해서 확연히 어려 보이는 얼굴이었다.

그리고 하현은 아무도 모르게 살풋 미소 지었다.

쒜엑!

그러나 그 꼴을 가만히 두고 볼 소림승들이 아니었다.

하현이 있는 곳으로 여섯 개의 손이 쇄도해 들어왔다.

“후욱!”

하현은 몸을 활처럼 튕겨 그곳에서 벗어났다.

그가 애써 넘어뜨린 원후라는 승려는 이미 일어나 다시 하현을 공격해올 자세를 취하고 있었다.

‘대단하다!’

하현은 솔직한 심정으로 십팔나한진에 감탄했다.

괜히 무림 최고의 진법이라는 이름이 붙은 것이 아니었다.

십팔나한진의 원리 자체는 단순하다.

열여덟 명 무승의 공격이 서로에게 방해되지 않도록 최적의 효율로 끊이지 않고 공격해 오는 것.

거기에 진을 펼친 덕에 감각을 공유하는 듯한 느낌을 줄 정도로 기감이 예민해진다.

즉 십팔나한진을 이루는 동안에는 두 개의 눈이 아닌 서른여섯 개의 눈으로 상대를 보고, 서른여섯 개의 귀로 상대를 듣는 것이니, 그 움직임을 파악하기에 더욱 쉽다.

‘만약 이것이 십팔나한진이 아니라, 백팔나한진이라면?’

하현은 순간 오싹한 느낌이 들었다.

백팔나한진은 여섯 개의 십팔나한진으로 이루어지는 대규모의 진이다.

‘과연 내가 지금보다 여섯 배나 많은 공격을 받아낼 수 있을까?’

하현은 속으로나마 고개를 내저었다.

여섯 배가 아니라, 지금 수준에서는 갑절만 더 많은 공격이 들어왔어도 버텨내지 못했으리라.

우우웅-

피하기만 하는 것 같던 하현의 검에 충만한 내력이 깃들었다.

취월걸개가 만들었던 진은 그 진을 구성하는 물체 하나만을 제거하는 것으로 진이 풀려버렸다.

그리고 그 원리에 따르면 백팔나한진도 마찬가지.

다른 점이 있다면 진을 구성하는 것이 물체가 아니라 사람일 뿐이다.

무승들은 계속해서 자리를 옮겨가면서도 계속해서 약속된 방위를 놓치지 않는다.

하현의 움직임, 또 그들이 공격해오는 것에 따라 계속해서 쉴 새 없이 위치를 옮기며 진을 유지했다.

“흐아압!”

눈을 쉴새 없이 굴리던 하현이 이번에 들어오는 권은 피하지 않고 주먹을 향해 검을 휘둘렀다.

쒜에엑!

빠악!

검과 권이 부딪혔건만, 충만한 내공 덕인지 박 터지는 소리가 났다.

다만, 권의 주인이 주먹을 부여잡으며 뒤로 물러나지만.

“크윽……!”

“원후!”

이번에도 원후라는 승려였다.

원후가 뒤로 빠지며 잠시 만들어놓은 틈으로 하현은 신형을 날리며 남궁민을 향해 외쳤다.

“형님 이쪽입니다!”

“그래!”

흘끗 남궁민을 돌아보니 남궁민도 검을 빼 들긴 했지만, 그는 피하는 데에 중점을 두고 있었다.

그는 하현의 목소리에 땅을 박차고, 신법을 최대한 펼치며 위로 솟구쳤다.

그리고 그는 마치 하늘에 발판이 있는 것처럼 공중을 박차고 하현의 바로 옆으로 떨어졌다.

“헛! 운룡대팔식?”

“불광어기류?”

이 대련을 유심히 지켜보던 소림무승들의 입에서 무림의 고절한 신법들의 이름이 튀어나왔다.

운룡대팔식과 불광어기류.

둘 다 공중에서 운신할 수 있게 해주는 신법들이었다.

“쯧쯧. 남궁세가의 천풍신법이다.”

하지만 주원대사는 혀를 차며 그들을 나무랐다.

운룡대팔식은 곤륜의 무공이라고 할지라도, 불광어기류는 소림의 무공.

소림무승들의 입에서 불광어기류라는 이름이 나온 것이 못마땅한 그였다.

“하현아. 내 뒤를 맡아라.”

“네!”

순식간에 남궁민과 하현의 위치가 바뀌는가 싶더니, 남궁민이 하현과 싸우던 자들에게 검을 날렸다.

파바박!

분명 검은 한 번만 휘둘렀건만, 들리는 파열음은 세 번이었다.

이 다급한 와중에도 남궁민은 마음의 검을 능숙하게 써내었다.

“……!”

생각지도 못한 공격에 놀란 소림 무승들은 잠시 멈칫했고, 그 사이에 남궁민 역시 아직 손을 감싸고 있는 어린 승려를 눈에 담을 수 있었다.

“저기구나.”

“맞습니다!”

하현이 남궁민을 향해 날아오는 곤에 검을 밀어 넣어 막으며 대답했다.

남궁민은 하현의 대답이 끝나기도 전에 곧장 원후를 향해 쇄도하며 검을 휘둘렀다.

퍼벅!

한 번으로 보이는 두 번의 검.

원후는 한 번은 겨우 막아내었지만, 다른 한 번에 허벅지를 내어주고 말았다.

“크읍.”

원후가 한쪽 무릎에 힘이 빠졌는지 풀썩 무릎 꿇었다.

남궁민이 다시 공격 해오려 했으나, 뒤로 물러날 수밖에 없었다.

그 작은 틈을 놓치지 않고 다른 승려들이 공격해왔기 때문이다.

그런데 남궁민은 단순히 뒤로 피신한 것이 아니었다.

그는 뒤로 뛰며 하현에게 육장을 날리는 세 명의 승려들에게 신형을 날리며 검을 휘둘렀다.

빠악!

그들은 남궁민의 검을 무사히 막아내었으나, 그 사이에 하현이 자유로운 몸이 되었다.

그리고 하현은…. 아직도 무릎을 꿇고 있는 원후에게 그가 할 수 있는 가장 빠른 보법을 밟아 들어갔다.

‘지금 내 검은 보법보다 느리다.’

검을 휘두르려던 하현은 그 생각을 거두었다.

그에게 허락된 시간은 아주 찰나.

검을 휘두르려면 당연히 검을 뒤로 빼야 한다.

그러나 하현이 지금 달리는 속도로는 검을 뒤로 빼는 도중에 원후의 앞에 도달할 것이 분명했다.

그리고 십팔나한진은 그가 멈칫하는 잠깐의 순간을 허락하지 않을 것이 분명하다.

빠악!

생각은 길었지만, 행동은 순식간이었다.

하현은 달려가는 속도 그대로 무릎을 들어 원후라는 승려의 머리를 무릎으로 찍어버렸다.

마침 원후가 무릎을 꿇고 있기에 높이 뛸 필요도 없었다.

“…크윽.”

엄청난 충격에 원후는 그만 눈을 까뒤집고 그 자리에서 혼절하고 말았다.

“통했다!”

하현은 기쁘게 소리쳤고, 남궁민도 승려 한 명이 기절한 것을 알았는지 웃는 얼굴이었다.

쉬이익!

기쁨도 잠시.

다시 하현이 있는 곳에 곧장 공격이 들어왔고, 하현은 한 방위가 비는 덕에 수월하게 몸을 빼낼 수 있었다.

하현이 남궁민의 옆으로 피신했을 때, 남궁민도 마침 다른 승려들의 공격에서 몸을 빼낸 직후였다.

“후욱, 후욱…….”

그리고 생긴 잠시의 소강상태.

연무장 위에는 거칠게 몰아치는 숨소리밖에 들리지 않았다.

‘내력을 한 점에 응축해라.’

두 사부님이 하현에게 해준 말이건만, 그는 이 말이 무엇을 뜻하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정말로 내력을 검의 한 점에 집중하라는 말인가 싶어 연습해보기도 했고, 그 덕에 약간의 깨달음도 얻었지만, 그것으로는 충분하지 않았다.

검 한번 휘두르지 못하고 내력이 고갈되어버리는 검사(劍絲)는 아직 실전에서 쓸 수는 없었으니까.

그런데 어제 어머니가 공부했다던 경전에서 그는 실마리를 찾을 수 있었다.

그 경전에는 불 공부 대신 낙서들만이 빽빽하게 적혀 있었고, 그중에는 이런 낙서도 적혀 있었다.

‘소림승들은 자신들을 점(點)이라고 표현한다. 점들이 모여 선을 이루기 때문이라는데, 나는 머리카락이 없어 위에서 보면 둥근 점으로 보이기 때문에 그런 줄 알았다.’

처음에는 그저 웃어넘길 뿐인 이야기였지만, 그것이 결정적이었다.

‘내력을 일 점에. 점이 스님이라면…. 공격을 한 명의 승려에게만?’

그러고 나서 생각해보았다.

내력을 한 점에 응축하라는 말은 곧 이 말이나 다름없었다.

‘한 놈만 패라.’

취월걸개라면 충분히 이런 말장난을 할 만했다.

할아버지까지 같은 말을 해주어서 헷갈렸지만, 할아버지와 취월걸개가 가장 친한 친우라는 것을 생각하면 이상하지 않다.

그리고 하현은 한 가지 생각을 덧붙였다.

‘그냥 한 놈이 아니라, 제일 약한 한 놈.’

하현은 그가 깨달은 바를 새삼 상기하며 연무장을 스윽 돌아보았다.

그가 기절시킨 원후는 도무지 깨어날 기미도 보이지 않는다.

하현은 서 있는 승려들을 돌아보며 나직이 말했다.

“십칠나한진…. 이라는 것도 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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