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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궁세가 천재 외손자-84화 (84/304)

84화

“그…….”

“하하. 소승이 가진 모든 것을 주겠다는 것은 아니고, 일부를 건네주고 싶다는 것이오.”

“아무리 일부라고 해도…….”

혜원대사가 단호하게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까도 말하지 않았소?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무림에서 가져온 것이라고. 소승도 이제…. 내려놓고 싶구려.”

그가 아련하게 말했다.

하지만 하현은 아직도 물어볼 것이 많았다.

“그러면 다른 소림의 제자분께 전해드려야 하는 게 아닙니까? 어째서 오늘 처음 본 저에게…….”

“허허허! 시주는 어째서 다른 고수들이 은거할 때 그 기운을 제자나 자손들에게 건네주지 못하는지 아시오?”

“무슨 이유입니까?”

“첫째로는 효율이오.”

하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할아버지에게 예전에 들은 적이 있었다.

“내공이 전달되는 과정에서 온전히 받아들이지 못하고 대부분 소실되기 때문이라고 들었습니다.”

“맞소. 바로 그 때문이지 그리고 두 번째는 부작용이오. 타인의 기운을 과도하게 받아들이려다가 주화입마에 빠질 수도 있는 법이니.”

바로 이것이 수많은 무림인들이 함부로 내공을 전수하지 않는 가장 큰 이유였다.

주화입마에 빠지게 되면 운이 나쁘면 죽거나 무공을 폐해야 할 수도 있으니.

“소승도 예전에 몇 번 시도해본 적이 있소.”

“잘 안되었나 보군요.”

혜원대사가 고개를 끄덕였다.

“부작용이 있어 보이지는 않았지만, 일 할도 채 받아들이질 못했소.”

보통 이런 식으로 기운을 건네주면 이 할에서 삼 할 정도는 받아들일 수 있다.

하지만 그에도 한참 미치지 못하는 것이다.

“그러면 저도 소용없지 않겠습니까?”

혜원대사가 눈을 반짝이며 대답했다.

“허나, 시주라면 분명히 받아들일 수 있다고 생각하오.”

“어째서입니까?”

“조금 전 손바닥을 맞댈 때 직감적으로 느껴졌소.”

혜원대사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창문 앞으로 걸어가 바깥을 보며 말을 이었다.

“그리고, 월룡의 마지막 흔적이 나와 같은 뜻을 가진 무인에게 이어졌으면 하는 마음이오.”

“같은 뜻…. 소중한 사람들을 지키고자 하는 마음…….”

혜원대사가 빙긋 웃으며 하현을 돌아보았다.

“그렇소. 월룡의 의지는 솔직히 말해 우리 소림의 제자들보다는 시주에게 더 어울리니.”

그는 월룡이라는 별호를 마치 남을 얘기하듯 말했고

무림에 있는 마지막 미련까지 모두 털어내려는 듯 보였다.

하현은 굳은 표정으로 대답했다.

“그 의지. 제가 이어가겠습니다.”

“고맙소.”

혜원대사가 기꺼운 얼굴로 대답했다.

그때 방장실의 문이 열렸다.

“아직도 할 대화가 많이 남으셨나?”

“방장님. 이제 막 이야기가 끝난 참입니다.”

“허허. 잘 되었나 보구만.”

“네. 잘 되었습니다.”

주산선사의 표정은 미동도 없었다.

이미 둘이 대화할 수 있도록 자리를 비워 준 순간부터 마음을 먹은 그였다.

“무림은 자네 덕에 더욱 평화로울 것이네.”

“제 덕이 아닙니다. 한때 무림의 영웅이라 불리었던 월룡이라는 무림인의 덕이지요.”

“허허. 아미타불…….”

혜원대사는 철저하게 선을 그었다.

그는 무림인으로 사는 삶이 아닌, 불자로 사는 삶을 택했다.

주산선사 역시 그 자체로도 성실한 불제자다.

그렇기에 혜원대사의 뜻을 모두 헤아릴 수 있었다.

“월룡의 진전에 소환단까지. 우리 시주는 많은 것을 얻어 가시는군.”

“감사할 따름입니다.”

주산선사는 혜원대사에게 물었다.

“따로 준비가 필요한가?”

“그럴 필요 없을 것 같습니다.”

“그러면 바로 하겠나? 혹시 모르니 내가 지켜보지.”

혜원대사가 빙긋 웃으며 합장했다.

“방장님께서 봐주신다면 걱정이 없지요. 시주. 괜찮겠소?”

“네. 저도 괜찮습니다.”

주산선사는 둘을 이끌고 방장실에서 나왔다.

그리고 방장실의 뒤편으로 끌고 갔는데 그곳에는 작은 공터가 있었다.

“아미타불…….”

주산선사는 이곳에 들며 공터 끝에 붙어 있는 사람 키를 조금 넘는 절벽을 향해 합장했다.

그곳에는 작은 불상이 있었다.

혜원대사도 작게 불호를 외치며 합장하고, 하현은 어찌할 바를 모르다가 꾸벅 고개 숙여 인사했다.

“하하! 시주는 굳이 인사를 올릴 필요는 없다네.”

“아, 네. 하하.”

주산선사는 새삼 하현이 그 나이 또래의 아이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그 아이에게 너무 큰 짐을 지워준다는 생각도 동시에 들었다.

“시주. 마지막으로 한번 묻겠네.”

“네. 방장님.”

“통제하지 못하는 큰 힘에는, 큰일이 따르는 법이라네. 그래도 계속 강해지고 싶은가?”

“각오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큰 힘에는 큰 책임이 따르는 법이라네. 그 점도 이해했는가?”

책임.

그것은 가장 가까이에서 배우고 있기에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다.

하현의 조부이자 스승인 검존 남궁무룡은 무림의 대소사라면 무슨 일이든 발 벗고 나서는 것에 주저하지 않았으며, 또 다른 스승인 취월걸개 역시 무림맹의 일로 항상 바쁘게 지냈으니까.

“네. 방장님.”

하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눈빛에는 결연한 의지가 담겨 있었다.

“이리로 와 앉게나.”

하현은 주산선사의 이끌림에 따라 공터 중앙에 가부좌를 틀고 앉았다.

그리고 곧바로 그의 등에 손길이 닿는 것이 느껴졌다.

“하하. 너무 긴장하지 마시오.”

“네.”

하현이 대답한 순간, 따뜻한 기운이 들어오는 것이 느껴졌다.

조금 전 혜원대사가 손바닥으로 건네준, 그리고 방장실을 가득 메웠던 그 따스한 기운이었다.

구우우우-

기운이 밀물 일 듯 천천히 하현의 몸으로 들어왔다.

“흡!”

하현은 이질적인 기운에 숨을 참았다.

조금만 받아들였을 때는 따스하다고만 생각했던 기운이었건만, 이렇게 많은 기운이 물밀듯 들어오니, 마치 뜨거운 물에 빠진 것 같은 느낌이었다.

그 순간 하현의 단전에서 자연스럽게 기운이 흘러나왔다.

그리고 그 기운은 혜원대사가 보내주는 기운을 데리고 하현의 몸을 일주천 하기 시작했다.

“……!”

둘의 모습을 유심히 지켜보는 주산선사는 평정을 깨고 놀란 눈을 할 수밖에 없었다.

그가 살아온 구십 평생 이런 광경은 처음 보았기 때문이다.

“후우우…….”

하현이 깊은숨을 내쉬고, 표정이 점점 편안해졌다.

하현의 기운은 혜원대사의 기운을 조금씩 흡수하며 그 덩치를 계속 불려갔다.

한 바퀴, 두 바퀴…. 일주천이 계속될수록 기운은 점점 커졌다.

고오오-

일정 이상의 기운이 몸에 들어오자 하현의 주변으로 강맹한 기운이 몰아치기 시작했다.

하현이 의도하지는 않았건만, 무공을 사용하기 전 기운을 끌어올린 것과 비슷한 모양새였다.

기의 폭풍이 몰아치는 덕에 그들의 주변으로 강풍이 일어 옷자락이 펄럭이고 하현의 머리카락이 나풀댔다.

하지만 하현의 표정은 이전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편안한 표정이었다.

그대로 일각 정도의 시간이 흘렀다.

사납게 일었던 바람이 잦아들고, 주변에서 느껴지는 기운도 여실히 적어졌다.

하현의 몸을 일주천 하는 기운 역시 매우 작아져 있었다.

그리고 또 시간이 흘러 하현의 일주천이 기어코 멈추었다.

“후우…….”

혜원대사가 깊은숨을 몰아쉬며 하현의 등에서 손을 떼어냈다.

그가 입은 가사는 온통 땀으로 젖은지 오래였다.

또 그의 얼굴은 순식간에 십 년은 더 늙은 것처럼 보였다.

“괜찮은가?”

“하하…. 방장님. 정말 좋습니다.”

혜원대사가 자리에서 일어나다 휘청거렸다.

어지럽거나 기운이 없어서가 아니었다.

평생을 내공의 힘을 보태 살아왔다.

그런데 육체의 힘으로만 일어서려니 익숙하지 않은 것이다.

“하하하……!”

하지만 그는 호탕하고 시원하게 웃었다.

그는 비로소 자유를 느끼고 있었다.

평생을 무림의 굴레에서 빠져나오지 못해 전전긍긍했던 그였다.

그는 비로소 무림과는 온전히 이별했음이 느껴졌다.

“그간 고생 많았네. 월룡.”

“앞으로는 못 볼 것처럼 말씀하십니다? 하하. 당장 내일도 공양드리며 얼굴 뵐 것이지 않습니까?”

“클클. 그건 혜원이지 않은가? 나는 월룡에게 말한 것이네.”

“아…! 그렇군요.”

혜원대사는 자신이 했던 말을 그대로 돌려받았지만 웃었다.

그는 아직도 앉아 있는 하현을 내려보았다.

인제 보니 앉은 자세 그대로 잠에 빠진 모양이었다.

“월룡의 기운은 전달이 잘 되었는가?”

“그건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저는 건네기는 모두 건네었습니다만…….”

주산선사가 하현의 곁으로 가 조심스럽게 그에게 손을 대었다.

그리고 주산선사는 곧바로 깨달을 수 있었다.

“절반…. 아니, 삼 할도 채 받아들이지 못했군.”

“아…. 그렇습니까?”

“허나 이상하네.”

“무엇이 이상합니까?”

주원대사는 조금 더 하현의 몸을 살핀 후에 말했다.

“단전이 아니라…. 온몸에 퍼진 기운이 사라지지 않고 있네.”

“네……?”

혜원대사가 깜짝 놀라며 하현을 바라보았다.

보통 단전에 자리 잡지 못하고 온몸으로 퍼져버린 기운은 흡수하지 못하고 사라지기 마련이다.

이 기현상에 당장이라도 하현의 상태를 확인해보고 싶건만, 아쉽게도 모은 내공이 모두 사라졌기에 할 수 없음을 안타까워했다.

“지금 이 시주의 몸에는 두 가지 기운이 물과 기름처럼 몸에 존재하고 있다네.”

“제 기운과 하현 시주의 기운이군요. 둘이 섞이질 않는 겁니까?”

“일부는 섞여서 이미 단전에 자리를 잡았지. 그런데 흡수하지 못한 자네의 기가 온몸 곳곳에 자리를 잡은듯한 느낌이라네.”

주산선사는 평생 처음 보는 일들을 한꺼번에 겪는다는 생각이 들었다.

모든 것이 여기 하현과 관련된 일들이었다.

“기운이 사라지지 않는다면, 언제고 그 기운을 받아들일 수도 있겠군요.”

“그렇다고 볼 수 있겠네. 나머지를 얼마나 잘 녹여내는지가 이 시주의 과업이겠지. 자네의 기운은 모두 이곳에 있네.”

“아미타불…! 부처님께서 도우셨습니다.”

혜원대사가 합장했다.

그의 눈가에서 한줄기 눈물이 또르르 흘렀다.

혜원은 그 눈물과 함께 마지막 남은 속세의 아쉬움 마저 털어내었다.

* * *

하현이 다시 눈을 뜬 것은 깊은 밤중이었다.

그는 눈을 뜨자마자 이곳이 어디인지 파악할 생각도 하지 않고, 몸 상태부터 확인했다.

“있다……!”

하현은 똑똑히 느껴졌다.

이전과는 확연하게 다르게 커다란 기운을 가진 단전이.

“이 기운은……?”

그리고 혜원대사에게서 느꼈던 따스한 기운들이 이물감처럼 온몸 곳곳에서 간헐적으로 느껴졌다.

하현은 급히 가부좌를 틀고 내공을 돌려 그 기운을 녹여내려 해 보았다.

하지만 뜻대로 되지 않았다.

돌덩이처럼 단단한 기운은 하현의 내공이 지나가도 냇가에 바위처럼 끄떡도 하지 않았다.

아무리 노력해도 기운을 녹여낼 수가 없다는 것을 확인한 하현이 이제야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이곳이 어디인지 알아내려 노력했다.

“현아. 일어났니?”

하지만 그가 알아내기도 전에, 방문이 스르륵 열리더니 남궁민이 들어와 하현에게 말을 걸었다.

“형님!”

하현이 정신을 차리고 주위를 둘러보니, 며칠 밤이나 묵었던 지객당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수련하다 잠이 들어버렸다며 방장님께서 직접 너를 안고 내려오셨단다.”

“방장님께서요?!”

빼빼 마른 소림의 방장이건만, 하현을 가볍게 한쪽 어깨에 들쳐메고 내려왔다며 말한 남궁민은 하현을 유심히 바라보더니 말했다.

“현아. 축하한다.”

“아닙니다.”

하현의 성취는 축하받을 만했다.

단전에 똬리를 틀고 있는 내공의 양이 이번보다 곱절은 되는 것 같은 느낌이었으니까.

“이렇게 격차가 또 줄어들었구나.”

“기연…. 이번에는 정말 기연이었습니다.”

남궁민이 미소 지었다.

진심으로 기분 좋은 미소였다.

“가는 곳마다 기연을 만난다면, 그것 역시 네 실력이지 않을까 싶구나.”

실제로 남궁민은 하현의 가장 큰 재능은 무공을 빠르게 익히는 것이 아니라 사람을 끌어들이는 재능이라고 생각했다.

“하현 시주. 일어났는가?”

그때 밖에서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하현은 한 번에 알아들을 수 있었다.

나무가 갈라지는 듯하지만, 따뜻한 음성.

주산선사였다.

“방장님!”

하현이 문을 급히 열자, 예상대로 주산선사가 그 앞에 서 있었다.

“잠시 이야기를 나누어도 되겠나?”

“물론입니다.”

남궁민을 흘긋 돌아보니, 그는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빨리 다녀오라는 뜻이었다.

하현이 남궁민에게 눈인사하고 주산선사를 따라 방문을 나섰다.

주산선사는 멀리 가지 않았다.

예의 그 공터에 서서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방장스님. 혜원 스님께서는 어디 계십니까?”

“혜원은 먼저 들어가서 쉬고 있다네.”

“쉬다니요?”

“하하. 놀랄 것 없네. 무림인들은 쉽게 잊곤 하지만, 보통 사람들은 원래 힘이 들면 쉬곤 하지.”

“아…!”

하현은 말을 잊지 못했다.

‘보통 사람’이라는 말이 무겁게 다가왔으니까.

“후후. 시주는 이럴 때 보면 영락없는 어린아이군.”

그는 하현의 얼굴을 빤히 바라보았다.

그리곤 진지하게 말을 이었다.

“본승이 시주에게 묻고 싶은 것이 하나 있네.”

“무엇입니까?”

주산선사가 하현의 눈을 바라보며 천천히 다가왔다.

그리고 지척에 다다랐을 때, 그가 천천히 입을 뗐다.

“정의가 무엇인지 아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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