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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궁세가 천재 외손자-87화 (87/304)

87화

넓디넓은 중원에는 수많은 산이 있다.

성(城)마다 명산이라고 부를만한 산이 몇 개씩은 되니까.

그런데 조금 더 정확히 말하자면 그저 산이 많은 수준이 아니다.

산은 독립적일지라도 산맥은 이어진다.

산맥은 각 성과 성을 이으며 혈맥처럼 중원 전체에 퍼져있다.

물론 황실에서 수많은 예산을 투입하여 관도를 닦아 놓기는 했다.

그러나 산을 뚫고 길을 낼 수는 없는 노릇이니 산을 빙 돌아가야 한다.

그렇기에 산을 뚫고 가는 것보다 몇 시진에서 며칠은 더 걸리게 되기에 위험을 무릅쓰고 산을 건너는 사람들이 많다.

‘그래서 산적들이 많을 수밖에 없고.’

산적들은 그렇게 산을 건너는 사람들을 노린다.

성과 성을 넘나드는 사람들은 단순 여행객도 있지만, 대부분은 성 간의 교류를 해야 하는 상인들이나 표물을 운반하는 표사들이다.

그들이 가지고 다닐 것이 분명한 돈이나 값나가는 물건들은 산적들이 노리시 십상이다.

스스슥-

하현이 소리를 거의 내지 않고 바닥에 붙어가며 소리가 난 근원지로 향했다.

‘이런, 내 옷 색을 살피지 않고 오다니.’

지금 하현은 소림에서 받은 흰색의 옷을 입고 있었다.

‘검정 옷이었다면 은신이 더욱 쉬웠겠지만.’

더욱 은신에 힘쓰며 언덕 하나를 넘어가자 호화스러운 가마 앞을 한 무리의 복면인들이 막아서고 있었다.

가마를 호위하던 무사들 중 호위대장이 복면인들 앞에 나서며 소리쳤다.

“당신들은 누구시오!”

“그 꽃가마 굉장히 좋아 보이는군. 탐이 나서 말이야.”

“산적이오? 녹림도라면 통행세를 내겠소.”

호위대장의 말에 복면인 중 수장으로 보이는 자가 클클 웃었다.

“녹림? 우리가 겨우 녹림으로 보이는가? 그런데 통행세라. 그건 구미가 당기는군.”

“우린 당신들이 어디 소속인지 관심 없소. 통행세를 낼 테니 보내주시오.”

“통행세는 얼마를 낼 생각인가?”

“은자 열 냥을 드리겠소이다.”

은자 열 냥은 굉장히 큰돈이다.

평범한 양민 가족이 일 년을 먹고살 수 있는 돈이니.

“겨우 열 냥?”

“열 냥이 적다는 소리요?”

“너희들의 목숨값으로는 싸지. 네 목숨값은 겨우 은자 열 냥이더냐?”

“그러면 얼마를 원하시오?”

복면인의 시선이 가마를 향하더니 그가 입을 열었다.

“저 가마 안에 있는 사람.”

“뭣이오?!”

“그 가마를 내려놓고 도망가면 목숨은 살려주지.”

호위대장은 이 복면인이 단순한 강도가 아니라는 것을 직감적으로 느꼈다.

챙-!

검을 빼든 호위대장이 다른 호위무사들에게 외쳤다.

“장(蔣) 부인을 노리는 자들이다. 모두 검을 빼 들어라!”

그의 외침에 따라 다른 호위무사들도 검을 들었다.

“쯧쯧. 살길을 마련해줬는데도. 죽을 길을 찾아가는구나.”

스르릉

복면인도 천천히 검을 빼 들고는 기수식을 취하며 기운을 내뿜었다.

호위대장은 그 기운에 이를 악물었다.

‘고수……!’

그가 느끼기에 복면인은 굉장한 고수였다.

절대 단순한 녹림도는 아닐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 역시 황산파(黃山派)의 속가제자로 절정의 고수는 아니지만, 나름 실력을 인정받은 무인이다.

하지만 그가 한껏 긴장하게 할 정도로 복면인의 기세는 흉흉했다.

“죽어라!”

복면인이 신법을 전개하며 호위대장에게 달려들었다.

내뿜는 기세에 걸맞게 꽤 상승의 신법이었다.

“온다!”

호위대장은 그의 성명절기인 황산검법을 펼치며 그를 맞았다.

씨익-

그런데 복면인은 웃고 있었다.

호위대장의 검이 준비되기도 전, 복면인이 곱절의 속도로 보법을 밟아오더니 호위대장을 검으로 찔러 들어왔다.

‘힘을 숨겼었나! 당했다!’

퍼억-!

그때 엄청난 소리가 울려 퍼졌다.

“어……?!”

분명히 그를 향해 쇄도하던 복면인이 갑자기 시야에서 사라졌다.

호위대장은 자신도 모르게 자기의 몸을 더듬더듬했다.

털끝 하나 다치지 않은 모습.

“끄어억…….”

신음소리에 고개를 돌려 바라보니 조금 전까지 기세등등하던 복면인이 머리에서 피를 쏟아내며 바닥에 쓰러져 있었다.

그리고 그 옆에는 아이 주먹만 한 돌덩이 하나가 데구르르 구르고 있었다.

“누구냐!!”

그들의 수장을 따라 마차를 공격하려던 복면인들이 돌덩이가 날아온 곳을 바라보며 소리쳤다.

그리고 그곳에서 풀숲을 헤치고 흰옷을 입은 소년이 걸어 나왔다.

“휴. 하마터면 늦을 뻔했네.”

달빛을 반사하는 흰옷은 얼핏 빛나는 것 같기도 했다.

그리고 그 위에 있는 새하얗고 조각 같은 얼굴 역시.

“웬 놈이냐!”

“개성이 없네요.”

“뭐?!”

“너무 똑같은 질문만 하시는 거 아니에요? 그리고 그 질문도 그래요. 제가 누구인지 알면 뭐가 달라져요?”

하현은 말하며 언덕에서 휘익 하고, 신법을 전개하여 한 번에 가마 앞까지 뛰었다.

복면인들은 그 모습만 보고도 느낄 수 있었다.

“고수……!”

“이번엔 제가 기회를 드리죠. 어디서 온 누구고, 왜 이러셨는지 가르쳐 주시면…….”

하현은 싱긋 웃었다.

“걸어서 돌아갈 수 있게 해드리죠.”

하현의 말에 복면인들은 눈을 부라리며 하현에게 달려들었다.

“이 어린것이! 죽어가면서 아프다고 울지나 말아라!”

스아악-!

하현을 향해 몇 개의 검이 동시에 날아오기 시작했다.

그런데 하현은 여유롭게 말했다.

“입으로는 어린 것이라고 하면서 살초를 펼쳐요? 이러다 진짜 죽으면 어떡하려고?”

“네 입부터 찢어주마!”

복면인들의 검이 하현의 지척에 다다랐다.

하지만 하현은 십팔나한진도 능히 상대했던 경험이 있다.

이런 조잡한 협공 따위는 상대도 되지 않는다.

채채채챙-!

“어엇!”

어느새 하현의 손에 들려있는 검이 날아오는 검을 모두 쳐냈다.

단 한 번의 출수로 네 개의 검을 쳐낸 것이다.

한 번의 초식에 무한한 변화를 담을 수 있는 만월검법의 묘리였다.

‘생각보다 기본기가 잡혀있다.’

하현은 냉정하게 복면인들의 실력을 평가했다.

단 한 번 부딪혔을 뿐이지만, 하현은 그들이 마구잡이로 무공을 배운 것은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당신들. 어느 문파에서 보낸 겁니까?”

“문, 문파라니! 우리는 아무 문파도 아니다!!”

맨 앞의 복면인이 눈에 띄게 당황하며 대답했다.

하현은 너무나도 뻔히 보이는 그의 행동에 피식 웃었다.

“그건 나중에 물어보면 되겠군요.”

타다닷!

이번엔 하현이 보법을 밟아 그들에게 달려들었다.

조금 전 펼쳐 보인 복면인들의 수장도 상당한 수준의 신법을 펼쳤지만, 하현의 신법은 말 그대로 공간을 접어 들어가는 것처럼 보였다.

샤아악-!

복면인들이 미처 대비하고 있지 못할 때, 하현은 들고 있던 검을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가볍게 휘둘렀다.

“으악!”

“크윽!”

한 번의 칼질에 두 명의 복면인이 허벅지를 부여잡으며 주저앉았다.

‘역시. 이렇게 하는 거였어.’

하현은 속으로 빙긋 웃었다.

‘마음의 검은 어려운 게 아니었어. 중단전이 뭔지는 아직 모르겠지만, 마음이 가니 검이 따라오는 것.’

아직은 두 개뿐이지만, 남궁민이 큰 깨달음을 얻어가며 배운 마음의 검을 따라 해내는 데 성공한 것이다.

“무, 무슨 검이!”

“이게 뭐야?!”

겨우 한 초식을 펼친 하현이건만, 복면인들은 크게 당황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덕에 조잡하게나마 잡혀있던 그들의 진형이 무너지기 시작했다.

그 틈을 놓칠 하현이 아니다.

하현은 그가 할 수 있는 가장 빠른 보법을 밟아 그들의 사이로 들어가 버렸다.

“아, 아닛!”

“잡아라!”

“죽어라. 이 자식!”

푸학!

복면인 하나가 휘두른 검이 육신을 갈랐다.

하지만 그 육신은 하현의 것이 아니었다.

“아니! 휘두르지 마라! 아군이 다친다!”

동료의 검에 베인 복면인이 털썩 쓰러졌다.

하현은 그를 흘긋 보더니 싸늘하게 말했다.

“검격의 범위도 제대로 체득되지 않았군요. 문파가 아니라…. 소모임 같은 건가?”

“이익……!”

하현이 도발했지만, 복면인들은 지척의 거리에 있는 하현에게 쉬이 달려들 수 없었다.

하현이 피식 웃고는 검을 빙글 돌려 역수로 잡았다.

“이렇게 근거리에서 하는 전투는 공격 범위를 확실히 아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는 가르치듯 말하고 검을 휘둘렀다.

샤악- 샤악- 슈학-!

“으어억!”

“크윽!”

하현이 걸음을 옮기며 검을 한 번 휘두를 때마다 복면인이 한 명씩 쓰러졌다.

그런데 그들의 공통점은 하나같이 허벅지를 부여잡고 쓰러진다는 것이었다.

하현은 그들의 공격을 피해내고 공격하는 와중에 정확하게 허벅지만을 노렸다.

“오, 오지 마.”

“그러는 당신은 저기 아저씨들이 오지 말라고 하면 안 갈 거였어요?”

“크악!”

일대 다수의 싸움이었건만, 어른과 아이의 싸움만큼이나 일방적으로 흘러가는 싸움이었다.

이윽고 모든 복면인이 다리를 부여잡고 있고, 마지막 한 사람만이 남았다.

“살…. 살려주시오.”

“지금까지 한 명도 죽이지 않았는데요?”

“허업!”

그가 헛숨을 들이키며 주변을 돌아보니 정말로 죽은 자는 단 한 명도 없었다.

처음에 돌덩이를 머리에 맞고 쓰러진 그들의 수장도 가슴이 오르락내리락하는 것으로 보아 아직 숨을 쉬고 있었고.

“아저씨는 검으로 베지 않을 테니. 저기 쓰러진 아저씨 응급처치나 하세요.”

하현이 가리키는 곳을 보니 조금 전 동료의 손에 가슴이 길게 베인 복면인이 쓰러져 있었다.

다른 복면인들은 하현이 손을 썼기에 치명상을 입히지 않았건만, 부지불식간에 가슴을 베인 자는 위험할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넵!”

“도망갈 생각 하면, 정말로 죽입니다.”

“네…. 넵!!”

그는 검도 아예 그 자리에 버리고 동료에게 달려가 응급처치를 하기 시작했다.

“클클. 이건 뭐. 실력을 보고 자시고 할 것도 없구만.”

“사부님!”

그때 뒤에서 느긋하게 구경하고 있던 취월걸개가 뒷짐을 지고 느긋하게 내려왔다.

진작 도착해서 하현의 싸움을 보고 있었지만, 척 봐도 수준 차이가 엄청났기에 굳이 관여하지 않은 것이다.

“현아. 정말로 많이 발전했구나.”

남궁민이 웃으며 하현의 어깨를 두드려 주었다.

일반적으로 상대를 죽이는 것보다 이렇게 무력화시키는 것이 훨씬 어렵다.

그것도 모두 똑같이 오른쪽 허벅지를 베어낸다는 것은 어지간한 실력 차가 아니고서는 불가능에 가깝다.

“하하. 형님. 감사합니다. 내공이 늘어나니까, 이제는 조금 여유롭게 싸움에 임하게 된 것 같습니다.”

“그래 보이는구나.”

사실 이 정도의 신위를 보이는 것은 월룡의 기운을 건네받기 전에도 충분히 가능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때는 지금과 마음가짐이 달랐다.

‘내공이 언제 바닥을 보일지 모르니 항상 조급하게 싸웠었지.’

그런데 내공의 양이 늘어나니 하현은 한층 더 여유롭게 전황을 살필 수 있었다.

싸움이 길어져도 괜찮다는 생각이 오히려 싸움을 빠르게 끝낼 수 있게 해준 것이다.

“대, 대협! 정말로 감사합니다!”

그때 그들을 향해 호위대장이 다가와 포권하며 고개를 숙였다.

호위대장의 눈에는 하현이 어린아이가 아닌 신선으로 보일 터였다.

“아닙니다. 우연이었습니다.”

“혹시 반로환동하신 대선배님이십니까?”

“네?”

그의 말에 취월걸개가 낄낄 웃었다.

“반로환동이라니. 하현 요 녀석이 애늙은이 같기는 하다만.”

그를 유심히 보던 호위대장의 눈이 왕방울만 해지더니 기겁하며 소리쳤다.

“어, 엇! 취, 취월걸개 장로님!!!”

취월걸개라는 이름에 다리를 부여잡고 끙끙대던 복면인들도 아연실색하며 쳐다보았다.

“응? 나를 아느냐?”

취월걸개가 호위대장의 얼굴을 살폈지만, 처음 보는 얼굴이었다.

“아! 죄송합니다. 저는 장로님을 몇 주 전에 뵈었었습니다.”

“어디서?”

“장 노야(老爺)의 장원에서입니다. 얼마 전에 혼인식을 올린…….”

“아! 장 영감네 호위무사였나?”

“그렇습니다.”

취월걸개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 봤더라면 충분히 그를 기억할 수 있었다.

“이쪽 대협분들께서는 누구십니까?”

“여기는 남궁세가의 남궁민.”

“헙! 청룡신검!!”

그가 또 소리쳤고, 그 별호를 들은 복면인들은 이게 거의 울기 직전의 표정이었다.

“그리고 여기는 내 제자.”

“취월걸개 장로님의 제자! 어쩐지. 무예가 보통이 아니시던데……!”

“클클. 그렇지?”

하현의 칭찬에 취월걸개가 기분 좋은지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그러면 이제 중요한 걸 해야지.”

취월걸개는 복면인들에게 터덜터덜 걸어가더니 물었다.

“너희들 뭐 하는 놈들이지?”

그와 가장 가까이에 있던 복면인이 취월걸개가 다가오자 다친 허벅지도 돌보지 않고 바닥에 납작 엎드려 부복하며 소리쳤다.

“저희는 아무것도 모릅니다. 심부름을 받았을 뿐입니다.”

“무슨 심부름?”

“오늘 혼인식을 올린 장 노인의 막내딸이 이곳을 지나갈 테니 데려오라는 것이었습니다.”

“누가?”

“그게…….”

그가 말끝을 흐리자 취월걸개가 버럭 소리쳤다.

“죽고 싶은 게냐?!”

“허억! 아, 아닙니다. 정말로 누구인지를 몰라서 그런 것입니다.”

취월걸개는 미간을 찌푸렸다.

“그게 말이나 되는 소리냐? 의뢰인도 모르는데 이런 짓을 한다고?”

“정확한 것은 저기 쓰러져 있는 단주가 알고 있습니다. 저희는 시키는 대로 한 겁니다.”

취월걸개가 아직도 쓰러져 있는 복면인들의 수장에게 다가갔다.

“아까 깬 거 다 아니까 일어나라.”

“…….”

그가 묵묵부답하자 취월걸개가 옆에 떨어져 있는 돌덩이를 다시 집어 들었다.

“정말로 아무 대답도 못 하게 만들어 주랴?”

“아닙니다!”

복면인은 언제 엎어져 있었냐는 듯 벌떡 일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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