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남궁세가 천재 외손자-88화 (88/304)

88화

취월걸개는 그를 노려보며 말했다.

“누가 시켜서 한 거냐.”

“저… 정말로 모릅니다.”

취월걸개가 은근히 기운을 흘리고 있었기에 복면인은 오한이 이는 것처럼 몸이 덜덜 떨려왔다.

그는 떨리는 손을 붙잡고 급히 말을 이었다.

“장노인의 막내딸을 데려와 달라는 서신을 받았습니다.”

“서신? 그러면 누가 보냈는지도 모르는 서신 때문에 이 일을 벌였다고? 그게 사실인지 어떻게 알고?”

“서신과 함께 은자가 들어있는 상자가 함께 왔습니다. 그 돈은 선수금이고 성공하면 그만큼을 더 주겠다면서요.”

“그래서, 아는 게 하나도 없다?”

“정말입니다. 믿어주십시오!”

그가 복면인들을 노려보았다.

“그러면 너희는 어디서 온 것이냐. 무공을 어설프게나마 익힌 것 같은데. 문파냐?”

“그, 그렇습니다.”

“어딘데?”

“저희는 교룡파(攪龍派)입니다.”

“교룡? 들어본 적이 없는데?”

“호북성 양양에 있는 조그마한 문파입니다. 어르신께서 잘 모르실 수도 있습니다.”

“흐음…….”

취월걸개는 잠시 기억을 떠올렸다.

“이상하네. 호북에 있는 문파들은 내가 모르는 문파가 없는데. 너희 무림맹에는 속해 있는 것이냐?”

“그, 그게…….”

취월걸개가 그들을 노려보았다.

“무림맹에 속해 있지도 않고. 사주를 받아서 사람을 납치하고…….”

그의 얼굴이 점점 험악해졌다.

그와 동시에 복면인들은 온몸을 덜덜 떨고 있었다.

취월걸개가 그들을 보며 일갈했다.

“네 이놈들! 사파놈들이로구나!”

“히…. 히익!”

슈악!

실로 바람 같은 움직임이었다.

하현의 보법도 제대로 포착하지 못한 그들인데, 취월걸개는 정말이지 순간이동하는 것처럼 보였다.

“켁, 켁!”

취월걸개는 복면인의 지척까지 순식간에 나타나 그의 멱살을 틀어쥐고 그대로 들어 올렸다.

“어디 사파놈들이 여기서 설치는 것이야!”

취월걸개는 본신의 기운을 여과 없이 드러냈다.

취월걸개가 사파를 벌레보다 싫어한다는 것은 온 무림에 공공연하게 퍼져있는 소문이다.

‘이제 나는 죽었다.’

그의 기운을 정면으로 받은 복면인은 자신도 모르게 오줌까지 지려버렸다.

“에잇. 더럽게!”

취월걸개는 더러운 것을 치운다는 듯 복면인을 멀리 집어던졌다.

“당장 일어나!”

“네, 넵!”

복면인은 바지가 축축한 것이 느껴졌지만, 재빨리 일어나 차렷했다.

“저기, 저놈들 팔다리를 다 포박해라.”

“저놈들이라면…….”

“네 문파 놈들 말이다!”

“알겠습니다!”

복면인은 재빨리 그의 부하들의 팔과 다리를 포박하기 시작했다.

따로 오랏줄을 가지고 다닐 리가 없었기에 급한 대로 각자의 웃옷을 찢어서 포박했다.

그 덕에 복면인들은 살이 에이는 듯한 추위에 웃통을 벗고 꼼짝없이 찬 바닥에 누워있을 수밖에 없었다.

“민아. 부탁 하나 하자.”

“네. 어르신.”

“고시 분타에 가서 개방 거지들을 좀 데리고 오거라. 이것들을 모두 쳐 죽이고 싶으나 무림맹으로 연행하게 할 것이다.”

“알겠습니다.”

“캐낼 수 있는 건 다 캐내고 죽여주마.”

취월걸개가 바닥에 침을 탁 뱉었다.

마음 같아서는 양민들의 고혈을 빨아먹으며 사는 사파들을 모조리 도륙하고 싶으나, 더 큰 그림을 보기 위해서 당장은 참아야 했다.

“개같은 사파놈들!”

“진정하시지요. 어르신.”

남궁민이 나서서 그를 달래주자 취월걸개가 한숨을 쉬고는 화를 가라앉혔다.

“그럼 저는 다녀오겠습니다.

남궁민은 이곳에 도착하기 전 취월걸개가 일각만 더 가면 고시현에 도착한다고 했던 것을 기억해냈다.

고시분타는 언젠가 한 번 가봤던 기억이 있기에 위치를 상기한 남궁민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바로 출발했다.

“감 호위…. 다 끝난 거예요?”

그때 가마에서 여자 목소리가 들려왔다.

호위대장이 급히 가마로 달려가 말했다.

“아가씨! 이제 괜찮습니다. 하늘이 도우셨습니다.”

그의 말에 가마에서 여인 한 명이 잔뜩 겁에 질린 표정으로 가마에서 내렸다.

취월걸개는 이 상황을 해결한 것이 자신이 아닌 하현이였기에 그를 내세우며 말했다.

“하늘은 무슨! 여기 있는 하현이가 도운 거지.”

“아! 여기 공자께서 구해주셨군요. 정말 감사합니다. 장씨상단의 막내딸 장소유라 합니다.”

“남궁세가의 남궁하현입니다. 이쪽은 개방의 취월걸개 장로님이시고요.”

“아…! 취월걸개 대협의 명성은 익히 들었어요.”

장소유가 취월걸개와 하현에게 깊이 고개 숙이며 인사했다.

“아닙니다. 부인의 비명소리가 아니었다면 도움을 드릴 수도 없었을 것입니다.”

“그랬군요. 정말 다행이에요.”

그녀는 아직도 겁이 나는지 꼬옥 쥔 주먹이 오들오들 떨려오는 듯했다.

하현이 슬쩍 하늘을 올려보았다.

이제 해가 막 져가고 있었다.

“혼인식을 하신 지도 얼마 안 되셨는데, 어디를 가시는 중이셨습니까?”

“어머. 그걸 어떻게 아셨어요?”

“부인의 혼인식 때 저도 참가했거든요.”

“그러셨군요. 저는 그날 혼인식을 치르고 시댁으로 가서 생긴 향수병 때문에 지아비의 배려로 다시 집에 돌아가고 있었어요. 요양하고 돌아오라고요.”

하현이 언뜻 보기에도 그녀는 무척이나 유약해 보였다.

“그런데 이런 길로 지나가시는 거예요? 좋은 관도를 놔두고.”

감 호위라 불린 호위대장이 대신 대답했다.

“관도로 돌아가면 가는 중간에 하룻밤을 보내야 하기에 오늘 안에 도착하자는 마음으로 산을 가로지르기로 했습니다. 이 주변에는 녹림채도 없기에 안전하리라 판단했는데, 이런 일이 생길 줄은…….”

그는 말끝을 흐리며 손, 발이 묶여 있는 복면인들을 바라보았다.

취월걸개 역시 복면인들을 유심히 바라보다 그들의 수장에게 말했다.

“이봐. 토룡(土龍:지렁이).”

“저 말입니까? 토룡이 아니라 교룡입니다.”

“토룡이나 교룡이나!”

수장의 미간이 미미하게 좁혀졌다.

지렁이 취급을 받는 것에 자존심이 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의 앞에 있는 자는 무림에서 최고 고수 중의 하나인 취월걸개다.

그는 표정을 풀고 어색하게 웃으며 존댓말로 말했다.

“마, 맞습니다. 아무 상관 없죠. 어찌 부르셨습니까?”

“그 의뢰에 장소유를 어디로 데려오라고 했나?”

“안휘성의 부양현으로 데려오라 했습니다. 그것은 어찌하여…….”

취월걸개가 당연한 걸 왜 묻냐는 듯한 얼굴로 말했다.

“그곳에 가면 장소유를 데려오라 한 자들이 있을 거 아니냐? 그곳을 가서 그놈들을 족치면 되지!”

“그것 묘수군요. 사부님.”

하현도 취월걸개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지금까지 조용히 있던 장부인이 취월걸개를 향해 말했다.

“그러실 필요까지는 없습니다.”

“응?”

“어릴 적부터 흔한 일이었습니다. 잘 아시겠지만, 저희 부친께서 장사를 크게 하시느라 항상 적이 많으셔서…….”

그녀는 말끝을 흐리며 눈을 내리깔았다.

지금까지 얼마나 힘들게 살았는지 알 것 같은 모습이었다.

“쯧쯧. 아직 나이도 어려 보이는데. 그래서 이대로 이 일을 묻겠다고?”

“묻을 생각은 없어요. 다만, 두 분께서 개입하신 게 아니라 감 호위가 저를 지켜낸 것으로 하고 싶습니다.”

“저 녀석이?”

그녀의 말에 취월걸개가 호위대장을 스윽 바라보았다.

그는 낭패한 표정이었다.

“죄송합니다. 아가씨…….”

“만약 아버지께 사실대로 말한다면, 아버지가 감 호위를 문책할 수도 있으니까요.”

호위대장이 고개를 떨구었다.

“제가 아가씨를 제대로 지키지 못하여…….”

“아니에요. 감호위는 할 수 있는 걸 다 했잖아요.”

그녀는 다시 취월걸개를 돌아보며 말을 이었다.

“취월걸개 장로님. 이번 일은 제가 아버님께 말씀드려 저희 집안에서 해결할게요. 구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이번 일을 꾸민 흉수 역시 저희 집안에서 알아보겠습니다. 공자께도 진심으로 감사드려요.”

공손하게 고개를 숙이는 그녀의 태도에 취월걸개가 콧방귀를 뀌었다.

“흥! 성인군자 납셨군. 그래서 이제는 어떡할 거냐. 장 영감네 집까지 데려다줘?”

“아니에요. 고시현까지는 그리 멀지도 않고, 감 호위의 실력이면 산적들은 충분히 상대 가능하니까요.”

그녀는 굉장히 침착하게 말했고, 취월걸개는 결국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이봐 토룡. 너희 문도 수가 몇이나 돼? 이게 전부는 아닐 것 아니야?”

“문주님을 포함하여 모두 서른두 명입니다.”

“그거밖에 안 돼?”

“저희는 소수정예를 지향하는지라…….”

복면인은 취월걸개의 질문에 즉각 대답했다.

만약 물어본다면 집안의 젓가락 개수까지 모조리 말할 것 같은 기세였다.

“어디 보자. 하나, 둘…. 열넷이군. 그러면 나머지 열여덟은 어딨어? 혹시 이 근처에서 매복 중인가?”

“아닙니다! 모두 양양에 있습니다. 이번 임무에는 저희만 나왔습니다.”

“그래?”

취월걸개는 안전하다고 판단했는지 장부인에게 말했다.

“그럼 이만 가봐라. 밤이 깊기 전에 도착하려면 서둘러야 할듯하니.”

“네. 정말 감사합니다.”

그녀가 공손히 인사하고 가마에 올라타자 호위대장 역시 고개를 푹 숙여 감사의 뜻을 표하고는 서둘러 가마를 이끌고 사라졌다.

잠시라도 이곳에 더 있고 싶어 하지 않은 것 같은 모습이었다.

“…….”

취월걸개는 한참을 가마가 사라지는 방향을 바라보았다.

그러다가 슬쩍 입을 열었다.

“수상하지?”

“네. 사부님. 뭔가 냄새가 나는 것 같네요.”

“그래. 구려도 너무 구린데?”

취월걸개가 눈을 가늘게 떴다.

“아무리 그래도, 저렇게 그냥 간다고? 이 몸이 직접 도와준다는데?”

하현도 같은 생각이었다.

장부인의 태도는 어떻게든 이 자리를 빨리 벗어나고 싶은 것 같은 태도였다.

“게다가 너무 빠르게 침착을 찾은 것 같습니다.”

“맞다. 그것도 이상했어. 어려서부터 이런 일을 많이 겪어서 그런 걸 수도 있지만…….”

“무공도 익히지 않은 평범한 아녀자가 저렇게 태연하기는 힘든 법이니까요.”

둘은 말을 주고받으며 서로의 생각을 확인했다.

“그러면 이제 어떻게 하고 싶으냐.”

하현은 잠시 생각에 빠졌다.

할아버지에게 소환단을 빨리 가져다줘야 하지만, 이런 의심쩍은 일을 두고 그냥 지나칠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흠…. 할아버지께는 죄송하지만, 짚고 넘어가고 싶습니다.”

“그래! 협이 별거 있겠느냐. 이것이 협행이지.”

취월걸개는 하현의 대답이 마음에 들었는지 껄껄 웃으며 하현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그리곤 하현에게 다시 말했다.

“사부로서 가르쳐줄 것이 또 생겼구나. 계략에 대해 가르쳐 주랴?”

“계략이요?”

“클클. 그래. 무림에서는 무공만 강한 것이 능사가 아니다. 너의 그 뛰어난 오성을 백분 활용하기 위해서는 계략과 계책도 쓸 줄 알아야 한다.”

하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계략은 비겁한 것이 아니다.

쉬운 길이 있는데 돌아가는 것은 미련한 짓이다.

라고 할아버지 역시 말해준 적 있었다.

“가르쳐 주세요. 사부님.”

“클클. 알겠다. 이번엔 내가 하지만, 다음부터는 네가 해내야 한다. 똑똑하니까 할 수 있을 거야.”

취월걸개도 스승으로서 계속 성장하는 중이었다.

하현의 오성이 무척이나 뛰어나다는 것은 이미 알고 있는 바다.

그런데 그것을 그저 두고 보는 게 아니라 어떻게 활용할지 방법도 가르쳐 주는 것이었다.

“우선 첫 번째. 모든 계책을 짜기 전에는 정보가 충분해야 한다. 정보 없이 짜는 계책은 공상일 뿐이다. 가장 필요한 정보는 위치, 시간, 거리 등의 기본적인 정보다. 그 정보들은 변하는 것이 아니니까.”

“알겠습니다.”

“잘 봐라.”

취월걸개가 복면인에게 다가가 물었다.

“원래 장부인의 납치에 성공했으면 안휘성 부양현에 언제까지 데리고 가기로 되어 있나?”

“내일모레 저녁에 만날 예정이었습니다.”

“모레 저녁이면 시간이 있군.”

취월걸개가 기억 속에서 길을 되짚어 보고는 혼잣말했다.

“여기서 거기까지 빨리 달려가면 두 시진이면 가고…. 양양에서는 경공을 최대한으로 펼친다는 가정하에 네 시진이면 족하니까…….”

취월걸개는 머릿속에서 무언가를 잠시 계산하더니 다시 입을 열었다.

“이러면 시간이 충분하겠네. 민이가 돌아오면 먼저 양양으로 가자.”

“양양은 왜요?”

“사도문이 있다는 사실을 알았는데 그냥 지나칠 수는 없지. 그리고…. 써먹을 데도 있을 거 같고.”

취월걸개는 말하며 씨익 웃었다.

그 웃음은 무언가 재미있는 일이 생각났다는 듯한 얼굴이었다.

“하하! 그래. 이렇게 하면 되겠다. 토룡. 너는 무림맹으로 안 가도 된다.”

“저 말씀이십니까?”

“자꾸 두 번 말하게 하지 말아라!”

“네, 넵!”

취월걸개는 복면인들을 돌아보았다.

“어차피 나머지는 현이가 허벅지를 갈라놓아서 제대로 걷지도 못할 거고. 그러면 쓸모가 없으니까.”

취월걸개는 해맑은 얼굴로 무서운 말들을 아무렇지도 않게 내뱉었다.

그의 이야기를 듣는 복면인들의 표정은 점점 기괴하게 일그러져갔다.

“그런데 양양에 가면 뭐 하시려고요? 교룡문도들을 다 죽이시려는 건 아니죠?”

취월걸개는 조용히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니. 죽이러 가는 건 아니다.”

“그러면요?”

“접수하러 가야지.”

“접수요?”

취월걸개가 하현을 보고 밝게 웃더니 말했다.

“현아. 우선은 그것이 네가 할 일이다. 가서 교룡문을 접수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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