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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궁세가 천재 외손자-89화 (89/304)

89화

취월걸개가 사파를 대하는 태도는 명확했다.

‘민초의 등골을 빨아먹고, 무림을 좀먹는 벌레들!’

오십 년 전 정사대전에서의 처참한 패배로 무림에서는 공공연히 사파라고 하고 다니는 자들은 사라졌다.

하지만 교룡문처럼 공공연하게 무림 곳곳에서는 사파문이 존재한다.

“그들을 왜 그대로 두는지 알겠느냐?”

“뿌리 뽑기 힘들어서 아닙니까?”

“맞다. 한여름 모기는 아무리 잡아 죽여도 어디선가 나타나기 마련. 어차피 날아다닐 거라면 눈앞에서 날아다니도록 하는 것이지.”

남궁민이 돌아오고 개방의 거지들에게 다리가 다친 교룡문도들을 인계하고 나서 그들은 양양으로 향했다.

그들의 앞에는 팔이 묶인 교룡문도가 걷고 있었다.

그를 길잡이 삼아 교룡문에 가는 것이다.

하현은 문득 궁금한 것이 생겼다.

“정파 무인에게 들키면 치도곤을 치를 것이 분명한데, 왜 그들은 꿋꿋이 사도문을 개파하는 겁니까?”

“그것이 이득을 보기에 빠르기 때문이지.”

“이득이요?”

취월걸개의 미간이 확 좁혀졌다.

“돈 말이다! 돈 벌기 제일 쉬는 방법이 뭔지 알아?”

“음…. 장사를 하는 건가요?”

“아니다. 제일 쉬운 방법은 나보다 약자한테 뺏어 오는 것이다.”

“아…!”

하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사람이 힘을 갖게 되면 그것을 이용하고 싶은 것은 당연지사다.

그리고 무공은 아무리 저급한 무공이어도 일반인들의 시점에서 보면 신선이나 다름없다.

취월걸개의 말대로 양민들의 것을 빼앗기에는 충분한 것이다.

그 명분이 자릿세든, 혹은 보호비든.

“그렇기에 조그만 무공이라도 어디서 얻으면 사도문파를 개파하여 양민들의 고혈을 빨아먹는 것이다. 뭐, 뒤에 있는 저 버러지들처럼 무공에 조금 자신이 있으면 이런 식으로 의뢰도 받지.”

취월걸개가 문득 한 가지가 떠올랐는지 복면인에게 날카롭게 물었다.

“너네, 혹시 살인 청부도 받았냐?”

“아! 아닙니다. 절대 받지 않았습니다. 저희는 살수가 아닙니다.”

양손이 묶여 있지 않았더라면 필사적으로 손을 내저었을 것이다.

그는 최대한 억울한 얼굴로 취월걸개에게 계속 말했다.

“그리고 저희는 엄밀히 말하면 사도문도 아닙니다. 자릿세나 보호비 같은 걸 걷은 적도 없습니다.”

“그러면 무림맹에는 왜 들어오지 않았어?”

“그건…….”

그가 대답을 망설이자 취월걸개는 호통쳤다.

“뒤가 구린 의뢰를 받으려니까 그렇지!”

“끄응…….”

복면인은 결국 아무 대답도 하지 못했다.

조용히 하현의 옆에서 걷던 남궁민이 하현에게 조심스럽게 말했다.

“그런데 하현아. 교룡문에는 혼자 간다고?”

“네. 사부님께서도 그러라고 하셨고, 이번에는 저 혼자서 가보고 싶어요. 형님.”

“위험할 수도 있어.”

하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도 한 번 해볼게요. 정 안 되겠으면 도망칠게요.”

“알겠다. 널 쉽게 잡을 수 있는 무인은 흔치 않을 테니.”

취월걸개가 복면인에게 흥미가 떨어졌는지 하현을 돌아보며 말했다.

“많이 데려올 필요는 없다. 쌩쌩한 것들로 넷 이상만 데려오면 된다.”

“알겠습니다. 사부님.”

그들은 밤을 새워가며 양양으로 향했다.

내일모레 부양현까지 가려면 시간을 아껴야 했다.

* * *

양양에 도착한 직후 취월걸개와 남궁민은 하현과 복면인만을 남겨두고 자리를 떴다.

하현은 묶여 있는 그의 팔을 풀어주고, 복면을 벗겼다.

복면 속 얼굴은 생각보다 평범한 인상이었다.

“고, 공자님. 감사합니다.”

“뭐가요?”

“살려주셔서…….”

하현이 고개를 갸웃했다.

“제가 언제 살려드린다고 했어요?”

“죽이지 않으신다고…….”

“아까 못 들으셨어요? 쓸모가 있어서 안 죽인다고 했잖아요. 그 말은 쓸모가 없으면…….”

“최,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저는 운후(雲厚)라고 합니다!”

그의 모습을 본 하현이 피식 웃었다.

하현은 이렇게 자신의 목숨에 솔직한 사람들이 싫지는 않았다.

“그런데 정말로 본문에 홀로 가실 겁니까?”

“왜요?”

“물론 공자께서 대단한 무공을 가지신 건 저도 익히 알고 있지만, 지금 교룡문에 남아있는 문주와 그의 세 호법의 무공은 대단합니다. 능히 일류 고수라고 할 수 있을 정도입니다.”

“아저씨랑 비교하면요?”

“저 같은 건 열 명이 덤벼도 문주 한 명을 감당하지 못할 겁니다.”

하현은 싱긋 웃었다.

“그러면 괜찮겠네요.”

“네?”

“열 명이라면서요. 저는 아저씨 같은 사람 백 명이 와도 별로 안 무섭거든요.”

보통의 아이가 말했다면 허무맹랑한 소리로 치부할 수도 있건만, 그는 하현의 실력을 익히 알고 있는 자였다.

“대단한 용맹입니다. 제가 잘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운후가 눈을 뒤룩뒤룩 굴렸다.

그는 살아날 길을 모색하고 있었다.

‘만약 이 아이가 문주에게 죽는다면 그 길로 낙향하여 조용히 살아야지. 그 무서운 취월걸개가 분노할 테니.’

그리고 하현을 곁눈질로 살짝 쳐다보았다.

‘만약 이 아이가 정말로 문주를 이긴다면…. 뭐 어쩌겠나. 이대로 따라야지.’

“교룡문에 대해서나 더 설명해줄래요? 문주는 어디서 무공을 익혔죠?”

“저도 정확한 과거는 모르지만, 어느 큰 문파의 속가제자였다고 합니다. 그걸 독자적으로 변화시켜서 쓰고 있습니다.”

흔하디흔한 이야기였다.

큰 문파의 무공을 수학했지만, 대성하지 못하고 어설픈 무공을 익힌 제자가 사도문을 개파 했다는 이야기는.

무공을 변형시켜 사용하는 것도 문주가 대종사의 기질이 있어서 무공을 연구하고 발전시킨 것이 아니다.

“문파의 공적이 되기 싫으니까.”

사도문의 문주가 만약 구대 문파의 무공을 사용한다는 것을 알게 되면 그 문파가 가만둘 리 없다.

자신들의 무공을 더러운 짓에 쓰는 것이 알려지면 그날로 사형을 선고받는 것이나 다름없기에 출신을 속이기 위해서 무공을 변형했으리라.

“네? 방금 뭐라고 하셨습니까?”

“아니에요. 주로 쓰는 병장기는 뭐죠?”

“검입니다. 그런데 검뿐만 아니라 괴(拐)를 사용하는 것도 종종 보았습니다.”

“괴(拐)요?”

괴는 쉽게 말해 손잡이를 부착한 봉으로 십팔반무기 중 하나에 들어가는 무기이다.

사용법이 어렵지만 한 번 배워두면 공, 수에 능한 무기이다.

“주로 어떨 때 괴를 쓰죠?”

“저도 단 한 번밖에 못 봐서…….”

“언제였나요?”

“다른 문파와 세력을 두고 다툴 때, 그 문파의 문주와 싸울 때였습니다.”

“아하.”

하현은 대충 어떻게 된 일인지 감이 오는 것 같았다.

문주의 독문 무기는 검보다는 괴가 맞을 것이다.

다만, 그런 특이한 무기를 쓰는 문파는 몇 되지 않을 것이기에 진짜 이기기 힘든 상대에게만 그 무기를 꺼내는 것이리라.

하현이 궁금한 것을 풀어내며 한참을 산속으로 들어가자 분지에 떡하니 들어앉아 있는 전각 하나를 발견할 수 있었다.

구불구불한 산길을 꽤 찾아 들어왔기에 운후의 안내가 없었다면 한참을 찾아야 겨우 발견할 수 있을 법한 곳이었다.

“저곳입니다.”

“말 안 하셔도 알겠네요. 앞장서세요.”

“네넵!”

운후가 다시 복면을 얼굴에 쓰고 하현에게 전각 앞으로 향했다.

하현은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그를 따라갔다.

이윽고 다다른 정문 앞.

주변에서 느껴지는 기척은 없었다.

“이건 뭐…….”

하현은 긴장도 되지 않았다.

주변을 경계하고 있는 자 하나 없는 듯 보였으니까.

[교룡문(攪龍門)]

하현은 멋들어진 글씨로 써 놓은 현판을 올려보았다.

척 보기에도 무척이나 고가의 현판에 장인이 글씨를 조각낸듯한 현판이 인상적이었다.

그러나 하현의 표정은 미미하게 굳어져 있었다.

“이것이 다 양민들의 고혈인 것을.”

스르릉

하현이 조용히 검을 빼 들었다.

번쩍!

번개처럼 휘둘려진 검이 햇빛을 반사해 반짝였다.

그리고 완벽해 보이던 교룡문의 현판이 쩌억- 하고 갈라졌다.

쿠웅!

갈라진 현판은 제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바닥에 떨어지며 자욱한 흙먼지를 일으켰다.

“이, 이게 무슨…….”

운후는 하현의 돌발행동에 적잖이 당황했다.

원래 하현과 그는 입을 맞추고 왔다.

하현을 의뢰자라고 소개하며 문주의 코앞까지 하현을 데리고 가기로.

그러나 하현이 낸 큰 소리로 교룡문 안쪽에서는 요란한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웬 놈이냐!”

내원에서 먼저 몇 명이 나타났다.

체계적으로 훈련을 받은 자인지 급박한 와중에도 검을 빼 들고 신법을 펼치는 모습이 제법 그럴싸했다.

하현도 그들을 발견하자마자 검을 쥔 손에 힘을 주며 그들에게 달려들었다.

“무공을 익혔다!”

“어디서 온 잡것이냐!”

하현은 대답하지 않았다.

쉴 새 없이 그들과의 거리를 접어가며 검을 휘두를 뿐.

푸학!

단 한 번의 지체도 없는 하현의 검이 맨 앞에 있던 자의 어깨를 갈랐다.

하현에게 잡것이라고 했던 무인은 힘줄이 찢어지며 검을 놓치고 말았다.

그는 왼손으로 피가 울컥 쏟아져 나오는 오른 어깨를 감싸 쥐었다.

빠악!

그리고 하현은 지체 없이 검병으로 그의 관자놀이를 후려쳤다.

그는 즉시 눈을 까뒤집고 혼절했다.

남은 세 명이 반응도 하지 못한 시간이었다.

하현은 숨도 고르지 않고 그들 사이에 뛰어들었다.

스걱- 샤악!

하현이 단 한 번 검을 휘두르는 것 같았건만, 두 명이 바닥을 뒹굴었다.

남은 두 명 역시 손쉽게 기절시킨 하현은 운후를 향해 외쳤다.

“응급처치, 포박!”

“네, 넵!”

하현은 짧은 단어만 내뱉고 나머지 한 명에게 무한보를 펼쳐 거리를 좁히고는 검을 꼬나쥐고 있는 그의 손에 검을 휘둘렀다.

“끄아악!”

손가락이 잘리지는 않았건만, 검을 쥐고 있을 힘은 없었던 그가 검을 떨어뜨린 순간.

퍼억!

하현의 주먹이 그의 복부를 강타했다.

털썩-

그리고 그 역시 혼절해버리고 말았다.

하현은 기절한 문도에게 뛰어 들어가 이전과 똑같이 혈도를 짚어 지혈하고 정신을 잃은 그들을 포박하고 있는 운후를 흘긋 바라보고는 내원으로 뛰어들었다.

“후우…. 이대로 도망가버려?”

운후가 한숨을 쉬며 잠시 고민했지만, 그는 이내 고개를 저었다.

도망친다고 해도 하현이 금방 잡으려 하면 잡힐 것 같았기 때문에.

그는 한숨을 푹 쉬고 나머지 문도들을 포박한 후에 하현을 따라 내원으로 신법을 펼쳤다.

“하하…….”

내원으로 들어간 운후는 그만 자신도 모르게 헛웃음을 켜고 말았다.

겨우 세 명을 지혈하고 포박하는 그 짧은 시간에 하현은 이미 여섯 명을 추가로 쓰러뜨린 상태였다.

그런데 그들은 이전의 네 명처럼 피를 흘리고 있지 않았다.

하현은 상대를 전혀 다치지 않게 하고서도 그들을 기절시킨 것이었다.

“포박.”

“넵!”

그는 최대한 충성스러운 얼굴로 하현이 있는 곳으로 달려가 문도들을 포박했다.

하현은 더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그는 여러 명의 기척이 연무장으로 보이는 곳에서 느껴진다는 것을 깨달았다.

연무장은 입구부터도 고급이었다.

오랜 세월을 사용해 온 남궁세가보다도 더욱 세련되어 보일 정도였으니.

“과분하군.”

쾅!

하현은 문을 발로 박차며 연무장으로 들어섰다.

그의 예상대로 연무장에는 여덟의 무인이 있었다.

‘처음에 넷. 다음이 여섯. 여기 있는 여덟까지 하면 전부다.’

하현은 마치 그를 기다린 것처럼 늘어서 있는 무인들을 바라보았다.

“바깥이 소란스러워 어떤 손님이 왔나 했건만, 이런 애송이라고?”

연무장의 맨 뒤에서 하현을 향해 말한 사람은 척 보기에도 특이한 용모였다.

머리카락이 하나 없는 대머리에 보통의 무림인이라면 입지 않을 갑옷을 착용하고 있었다.

이곳이 아닌 바깥에서 보았다면 황실의 군인으로 보았을 것이다.

“이곳이 어디라고 건방지게!”

“토룡이라고 들었는데.”

“토룡? 이것이!”

쿠웅!

그가 강하게 발을 구르며 앞으로 튀어나왔다.

진각에서 제법 강력한 기파가 느껴졌다.

“당신이 문주인가?”

“그래. 본좌가 문주다. 어디서 온 잡것인지는 모르겠지만, 고개를 조아리고 사죄한다면 아프지 않게 죽여주도록 하지.”

“본좌?”

하현의 눈썹이 꿈틀댔다.

그의 할아버지인 검존 남궁무룡도. 취월걸개도.

심지어는 소림의 방장도 조심스러워 사용하지 못하는 단어가 바로 본좌였다.

그런데 저런 시정잡배의 입에서 그 소리를 듣다니.

하현의 표정이 싸늘해졌다.

화악- 고오오오

하현이 순식간에 기운을 끌어올렸다.

월룡에게 전수받은 기운 덕에 이전과는 비교도 되지 않게 커다란 공명이 일었다.

“허…. 헙!”

교룡문주는 그 여파에 자신 있게 앞으로 나섰던 것이 무색하게 뒷걸음질 쳤다.

“죽여라!”

교룡문주의 말에 교룡문 문도들이 하현에게 쇄도했다.

나름 수련을 한 자들인지 정교하게 동시다발적으로 들어오는 공격이었다.

하현은 그들을 향해 무표정하게 검을 휘둘렀다.

콰아아-

하현의 검이 닿은 곳에서 흡사 폭발음 같은 것이 들려왔다.

그에게 달려든 문도 중 두 명은 낭패한 표정으로 하현을 쳐다보았다.

저 표정은 인간의 힘으로는 어찌할 바 모르는 자연재해를 대할 때와 비슷한 표정이었다.

하현이 문주를 보며 싸늘하게 말했다.

“당신은 살려둬선 안 되겠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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