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화
“뭐해! 달려들어!”
문주의 다급한 목소리에 교룡문도들이 달려들었다.
그 사이 하현은 이미 기운을 가득 끌어올렸다.
날아오는 여러 개의 검이 빛을 반짝였지만, 하현의 눈은 검을 보고 있지 않았다.
계속해서 교룡문주를 노려볼 뿐.
쐐에엑!
검이 하현의 지척에 다다라서야 비로소 하현의 눈은 검을 향했다.
생각보다는 기본기가 잡혀있는 검으로 보아 운후가 말했던 세 명의 호법 중 하나로 보였다.
‘느리다.’
하지만 하현의 눈에는 너무나 느릿하게 보일 뿐이었다.
쩌엉!
하현이 날아오는 검을 그대로 받아쳤다.
가볍게 내려친 것 같지만, 창궁검법의 묘리가 담겨있는 검이었다.
검이 부딪힌 순간 호법은 확연한 내공의 차이 때문에 내부부터 흔들리는 것을 느꼈다.
“우웩!”
그가 헛구역질해댈 동안에도 하현의 검은 번개처럼 움직였다.
채채챙-!
하현의 검은 미동도 없었고, 교룡문도들은 뒤로 크게 밀려났다.
그 틈에 하현은 아직도 토악질하는 자의 머리를 향해 힘껏 다리를 올려 찼다.
빠악!
통나무가 쪼개지는 듯한 무시무시한 소리가 들리고.
그는 코에서 피를 터뜨리며 혼절했다.
교룡문도들은 생각보다 용맹했다.
이렇게까지 큰 힘의 차이를 목도하면 의지가 꺾일 만도 한데, 그들은 다시 검을 들고 달려들었다.
스윽-
하늘에서 떨어지는 듯한 검을 간단히 상체만 돌려 피해낸 하현의 발이 화려하게 보법을 밟았다.
교룡문도의 지척까지 다다른 하현은 그를 향해 발을 휘둘렀다.
퍼버버벅!
아직 그가 검을 회수하지도 못한 사이, 하현의 발이 그의 몸을 수차례 때렸다.
그 와중에도 검은 날아온다.
하현은 날아오는 검의 궤적을 똑똑히 보였다.
아니, 검이 다음에 올 위치를 미리 알고 있는 듯했다.
‘이 감각……!’
하현은 익숙한 느낌에 살짝 눈을 감았다.
이전에도 몇 번이나 느껴본 적 있었던 감각이다.
그 짧은 순간에 하현은 작은 의문까지 들었다.
‘이들에 비하면 십팔나한진은 아이와 어른의 차이일 정도로 강했다. 그런데, 그때는 왜 이 감각이 오지 않았지? 살기에 반응하는 건가?’
스스로에게 의문을 던져보지만 당연하게도 돌아오는 대답은 없다.
하현이 다시 슬며시 눈을 떴을 때는 아직도 검이 날아오는 중이었다.
그는 날아오는 검과 검의 사이로 몸을 날렸다.
슈학!
“어엇?!”
예상치도 못한 움직임에 교룡문도들이 헛숨을 들이킨다.
당연하게도 하현은 털끝 하나 다치지 않았다.
그는 두 검의 궤적이 그리지 않을 곳으로 몸을 던졌으니까.
척
하현이 순식간에 팔을 뻗어 두 교룡문도의 머리를 붙잡았다.
도대체 언제 집어넣었는지 검은 이미 허리춤의 검집에 납검한 채였다.
빠악!
그리고 두 머리를 있는 힘껏 부딪혔다.
엄청난 충격에 두 고룡문도의 눈이 흰자위만 보였다.
“잔재주를 부리는구나!”
이제야 교룡문주가 하현에게 달려들었다.
그는 원래 들고 있던 검으로는 하현을 상대하기 어렵다고 판단했는지, 한쪽 허리에 매달려 있던 괴(拐)를 들고 있었다.
“크아압!”
교룡문주가 괴성을 내지르며 괴를 앞으로 뻗는다.
하현의 눈에 이채가 서렸다.
그의 무공은 다른 교룡문도들처럼 어중이떠중이가 아니다.
수준을 떠나서라도 그는 어디선가 제대로 된 무공을 제대로 교육받은 사람임에 틀림없었다.
휘릭!
하현의 몸은 한 바퀴 돌며 그의 괴를 피해냈다.
그리고 돌아가는 속도 그대로 팔을 뻗어 괴의 끝을 잡았다.
쒜에엑!
교룡문주가 하현에게 무기를 붙잡혔다는 걸 아는 순간 앞차기를 질러온다.
날붙이가 아닌 봉이 상대에게 잡혔을 때도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도 잘 아는듯했다.
하현은 가볍게 신형을 뒤로 날려 그의 발을 피해냈다.
“하하하! 밑천이 드러나는구나 애송이.”
교룡문주는 여유로웠다.
자신이 하현보다 우위에 있다고 머릿속으로 최면을 걸고 있는 듯 자신만만한 모습이었다.
하현은 그를 잠시 빤히 보다 말했다.
“어디 출신이지?”
“뭣이라?”
“의외로 정순한 기운이 느껴지는군. 개방의 무공은 아닌 것 같으니 구파 중 한 곳에서 수학(修學)한 것 같은데…….”
“곧 죽을 목숨이 그것이 왜 궁금하지?”
“내 경험이 일천하거든. 정파의 제자가 어째서 이런 선택을 했나 궁금해서.”
“그렇게 궁금하다면 말해주지…. 지옥에서 왔다!”
교룡문주는 전신의 기운을 폭발시키며 하현에게 달려들었다.
괴라는 무기는 공격해 들어오는 경로를 예상하기 힘든 무기이다.
손잡이를 잡고 휘두르기에 변화의 묘를 담기에 제격인 무기.
훅훅훅훅!
하지만 하현은 가만히 그 움직임을 바라보았을 뿐이다.
앞으로 지나갈 경로가 눈에 보였다.
‘저 변화는 저자가 자의적으로 하는 것이 아니다. 저 변화마저 초식의 일부일 뿐.’
교룡문주는 꽤 강한 무인임에는 틀림없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무공을 이해하고 스스로 응용하는 과정에까지는 이르지 못했다.
그가 짓쳐들어오지만, 하현은 굳이 허리춤의 검을 빼어들지 않았다.
‘검은 결국 팔의 연장선.’
하현은 교룡문주의 괴가 지나가는 궤적을 포착했다.
그리고 그 궤적과 궤적 사이에는 정확하게 하현의 주먹이 하나 들어갈 만한 공간이 있다.
쾅-!
하현이 강하게 진각을 밟자, 그의 몸이 순식간에 사라진 듯했다.
이형환위로 착각할 만큼 빠르고 은밀한 움직임이었다.
하현은 조금 전에 봐 놓은 공간을 향해 주먹을 뻗었다.
쒜에에에엑!
평범해 보이는 주먹이건만, 공기를 찢는 소리가 심상치 않았다.
별다른 초식은 아니다.
대연검법 중 찌르기의 초식을 그저 주먹으로 펼칠 뿐.
허나, 그 안에 담겨 있는 공력이 남달랐다.
빠악!
하현의 주먹이 교룡문주의 턱에 꽂혔다.
“커억-!”
조금 전까지 자신만만하던 것이 무색하게 교룡문주는 썩은 나무가 쓰러지듯 풀썩 쓰러졌다.
힘을 조절하지 않은 주먹이 그의 뇌를 진탕 시켰다.
살아있기 쉽지 않아 보였다.
“…….”
아직 서 있는 교룡문도들도 직감적으로 깨달았다.
지금까지와는 달리 교룡문주가 절명했다는 것을.
주륵
그의 양 코와 귀, 입에서 피가 주륵 흘러나왔다.
하현은 더 볼 필요가 없다는 듯 그에게서 시선을 거두었다.
그리고 남아있는 교룡문도들을 돌아보았다.
하현이 아무 말도 하지 않았건만, 그들은 하나, 둘씩 검을 바닥에 내려놓았다.
이 정도로 힘의 차이가 극명한 이상 협공은 의미가 없다.
“사, 살려…….”
한 명이 용기를 내어 입을 뗐다.
하현은 그에게 대답하는 대신 연무장의 입구를 바라보았다.
연무장에는 운후가 경악한 얼굴로 넋을 놓고 있다.
그러다 문득 하현이 자신을 바라보고 있다는 것을 깨달은 그가 깜짝 놀라며 하현에게 달려왔다.
“문주를 이리도 쉽게 이기셨습니까?”
하현이 대답 대신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는 한 명도 죽지 않은 교룡문도들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운후는 하현이 하고 싶은 말이 무엇인지 즉각 깨달을 수 있었다.
“포, 포박!”
그는 시키지도 않았건만 크게 외치고는 그의 사형제들에게 달려가 그들을 포박했다.
하현은 그 모습을 말없이 지켜보았다.
얻을 것이 없는 싸움이었다.
아니, 정확히는 한 가지를 뼈저리게 얻었다.
그가 속한 세계가 얼마나 대단한 세계인지에 대해서는 새삼 깨닫는 기회가 되었다.
“다 했습니다.”
운후가 다시 하현에게 헐레벌떡 뛰어왔다.
어느새 문도들을 모두 포박한 상태였다.
이미 시체가 된 교룡문주는 굳이 포박할 필요가 없었기에 그의 시신은 그대로 널브러져 있었다.
“이 중에서 저에게 원한을 가질만한 자가 누가 있죠?”
“원한이라뇨?”
“문주와 혈연이거나, 특별한 인연이 있는 자 말입니다. 저에게 교룡문주의 복수를 할 자.”
운후는 포박한 자들을 돌아보고는 하현에게 말했다.
“저기 세 호법을 제외하고는 아무도 없습니다.”
“그래요?”
“네. 저를 포함한 나머지는 원래 교룡파가 아닌 흑석파의 일원이었습니다. 교룡문도가 우리 대장을 죽이고 우리를 부하로 삼은 것이었죠.”
“흑석파?”
하현의 반문에 운후가 다급히 말했다.
“뒤에 파(派)가 붙지만, 사도문파는 아니었습니다. 그냥 저잣거리의 왈패였습니다. 정말입니다.”
하현은 눈을 가늘게 뜨고 그를 보았지만,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면 이렇게 세 분은 개방에서 무림맹으로 데려갈 겁니다. 그리고 처음 이곳에 와서 제 검에 다친 나머지도요.”
“나머지는 어떻게 되는 겁니까?”
“몸이 성한 자들은 취월걸개 어르신께서 양양으로 데려오라고 했어요. 그러니 기절한 자들을 깨워서 데리고 가죠.”
“알겠습니다.”
운후는 공손하게 말했다.
지금 그의 눈에는 하현의 나이 따위는 보이지 않았다.
아직은 덜 자란 하현의 키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거대한 존재감을 뽐내는 한 명의 무인이 서 있을 뿐이었다.
* * *
기절한 자들을 깨우고, 그들이 정신 차리기를 기다리는 동안 개방의 양양분타에서 열 명 정도의 거지들이 교룡문에 도착했다.
애초에 하현이 운후와 함께 이곳을 찾아오며 그들이 찾아올 수 있도록 흔적을 많이 남겼기에 길을 찾는 것에는 큰 어려움이 없었다.
“개방 양양분타주 흑면개(黑面丐)라고 합니다. 사…. 사조님. 어려서부터 거지로 자라 이름은 따로 모릅니다.”
그는 이미 취월걸개에게 하현을 사조로 깍듯이 모시라고 신신당부를 들었기에 하현에게 공손하게 인사했다.
하현이 그를 바라보니, 그의 별호대로 새까만 얼굴이었다.
씻지를 않아서가 아니라, 햇볕에 유독 얼굴만 그을렸는지 어두운색의 피부를 가지고 있었다.
“남궁세가의 남궁하현입니다. 이곳까지 오시느라 고생 많으셨습니다.”
“아닙니다. 흔적만 따라왔을 뿐입니다. 그런데 이런 곳이 있을 줄은 몰랐습니다.”
“개방의 눈으로도 못 본 것이 있군요.”
흑면개가 자존심이 상했는지 미미하게 이마의 주름을 만들며 인상을 썼다.
“이런 산속까지는…. 부끄럽습니다.”
“뭐라고 하려 말을 꺼낸 건 아니니, 넘어가 주세요.”
“하하. 알겠습니다.”
흑면개가 다친 교룡문도들을 데려갈 채비를 하는 사이 하현은 이제는 정신을 차린 교룡문도들에게 다가갔다.
‘철저히 네 말을 잘 들을 것 같은 애들만 데려오면 된다. 많을 필요도 없어. 도합 넷이면 충분해.’
하현은 취월걸개의 말을 상기하며 교룡문도들의 면면을 살폈다.
그 사이에는 운후도 있었다.
그는 스스로 자진하여 하현에 의해 손이 묶여 교룡문도들 사이에 앉아 있었다.
“저는 말을 잘 들을 분이 필요합니다. 만약 제 말을 듣지 않겠다면, 저기 저분들이랑 같이 무림맹으로 가시는 게 나을 겁니다.”
“만약 무림맹에도 안 가고, 당신…. 아니. 대협의 말을 듣지 않겠다면 어찌 되는 겁니까?”
하현이 뭐 당연한 것을 묻냐는 듯 말했다.
“죽겠죠?”
“허업!”
“뭐. 꼭 제 손이 아니더라도. 취월걸개 어르신께서 가만히 두지 않으실 거예요.”
“취, 취월걸개!”
교룡문도의 목소리가 떨려왔다.
취월걸개라는 네 글자로부터 오는 효과가 대단했다.
“빨리 선택하세요.”
“저, 저는 무림맹으로 가겠습니다.”
“저는 남겠습니다.”
다섯 명 만이 하현을 따라가고 나머지는 무림맹으로 간다고 했고, 이제는 운후만이 남았다.
“아저씨는요?”
“왜 저한테는 안 여쭤보시나 했습니다. 저는 대협을 따라가겠습니다.”
하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잠시 후.
무림맹으로 가겠다고 한 자들을 흑면개들에게 인계한 하현은 그에게 인사했다.
“이 자들은 무림맹까지 잘 부탁드립니다.”
“아닙니다. 이렇게 무림의 정의를 위해 힘써주셔서 감사할 따름입니다. 나중에 뵙겠습니다. 사조님.”
그는 하현에게 인사하고 교룡문도들을 연행했다.
통통 튀는 듯 가벼운 발걸음으로 보아 흑면개도 상당히 무공 수준이 높아 보였다.
하현은 교룡문도의 포박을 풀어주었다.
하지만 그들은 도망갈 생각도 하지 못했다.
“자. 그러면 우리는 양양으로 출발하죠.”
“네. 대협.”
이곳에서 양양까지는 빠르게 갔을 때 한 시진 반이면 도착한다.
‘내일 저녁까지 부양현에 가려면 서둘러야 해.’
하현은 교룡문도들이 따라올 수 있을 정도의 속도로 경공을 펼쳤다.
그들이 잘 쫓아오는 것을 확인한 하현은 양양을 향해 힘차게 발걸음을 옮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