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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궁세가 천재 외손자-91화 (91/304)

91화

운후를 포함한 여섯 명의 교룡문도들은 죽을 맛이었다.

“헉, 헉, 형님. 도대체 언제까지 뛰는 겁니까?”

“모른다. 말할 기운 있으면 더 뛰어라.”

하현의 뒤를 따라 달린 것도 벌써 한 시진 째.

양양 시내 근처까지 온 것 같았건만, 하현은 계속해서 꽤 빠른 속도로 신법을 전개하고 있었다.

그런데 하현은 교룡문도들에게 조금은 이상한 점을 발견했다.

‘신법만 이렇게 성취가 떨어질 수가 있나?’

하현이 보기에 교룡문도들의 신법은 형편없었다.

무공의 기초나 검법의 기본기는 제법 갖춘 것 같았지만 신법은 거의 배우지 않은 것 같았다.

‘그래도 곧잘 뛰네?’

그렇기에 하현이 본격적으로 속도를 내면 바로 나가떨어질 것으로 생각했건만, 그들은 죽자사자 하현에게 따라붙은 것이다.

‘근성도 꽤 있어 보이고.’

어쩌다가 저런 사도문파에 들어가게 됐는지 호기심이 생기기 시작했다.

교룡문도들은 거의 순수한 육체의 체력으로 경공을 따라잡으려니 그들은 하늘이 노래지는 것 같았다.

그런데 뜀걸음을 여기서 멈춰버리면 어떤 일을 당할지 몰랐기에 목숨을 걸고 달리고 있었을 뿐이었다.

그들이 이제 더는 때려죽여도 못 달리겠다고 생각할 때쯤.

수많은 전각과 높고 낮은 건물들이 눈앞에 나타났다.

드디어 양양시내에 도착한 것이다.

하현의 발걸음이 점차 느려지는가 싶더니, 이내 멈추었다.

본격적으로 거리에 들어서기 전에 하현은 운후에게 물었다.

“아저씨. 이쪽으로 가는 것 맞죠?”

“허억, 허억…. 흡…. 잠시만…….”

운후는 폐가 터질 것 같았지만, 이내 숨을 고르고 말했다.

“맞습니다. 지금 눈앞에 보이는 것이 바로 양양의 번화가입니다.”

“사부님께서 양양에서 제일 큰 마방(馬房)으로 오면 된다고 하셨는데. 어디인지도 아세요?”

“그럼요. 여기서 크다고 할 수 있는 마방은 한 군데밖에 없습니다.”

“앞장서 주시겠어요?”

“알겠습니다.”

그런데 운후가 출발하지 않고 우물쭈물하였다.

“무슨 문제라도 있어요?”

“저…. 그…. 또 달려갑니까?”

하현이 피식 웃었다.

“사람도 많으니 빠른 걸음으로 가죠.”

“네. 감사합니다!”

운후는 고개를 꾸벅 숙이고는 앞장서며 하현에게 길을 안내했다.

교룡문도들은 운후에게 감사의 눈빛을 보내며 그들의 뒤를 쫄래쫄래 따라갔다.

“아저씨는 나이가 어떻게 되세요?”

“제 나이 말입니까? 사실 나이가 좀 있기는 한데…….”

“몇 살인데요?”

“올해로 딱 서른입니다.”

“그래요?”

하현이 놀란 눈을 했다.

생각했던 것보다 열 살은 어린 것 같았기 때문이다.

“제가 어려서부터 고생을 좀 많이 했습니다.”

“무슨 고생을 하셨는데요?”

“아까 제가 왈패였다고 했던 것 기억하십니까?”

“그럼요.”

운후가 아련한 눈으로 양양의 거리를 바라보았다.

“제 활동구역이 이쯤이었습니다. 기껏 해봤자 파락호기는 하지만. 이 두 주먹으로 이 일대의 다른 패거리들을 모두 제압했었죠. 저 뒤에 보이는 다섯 역시 그때부터 제 부하들이었습니다.”

“그래요?”

하현이 뒤를 흘끗 돌아보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가 보기에도 운후를 포함한 여섯은 제법 몸을 쓰는 것에 익숙해 보였다.

“그런데 칠 년 전 우리 패거리 본거지에 아까 죽은 교룡문주가 찾아왔었습니다. 원래 우리 패거리가 열다섯 명은 됐는데, 그때 아홉을 죽이고 나머지 저희를 데려갔습니다.”

“교룡문주가 좋게 봤나 보네요.”

“네. 불행인지, 다행인지…….”

그는 감상에 젖은 얼굴로 양양거리를 보았다.

순수했던 시절, 이 거리가 세상 전부라고 생각했던 때를 떠올렸다.

“당연히 다행인 거 아니에요?”

“네?”

하현의 당연하다는 듯한 말에 그의 회상이 와장창 깨졌다.

“먼저 그때 죽었으면 삶이 끝나버린 것이고, 계속 왈패로 살았으면 한낱 파락호인 거잖아요?”

“그…. 렇죠?”

“겨우 파락호로 살 바에야 이렇게 무공이라도 배우고 살아가는 게 낫죠.”

운후는 저도 모르게 하현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파락호 시절보다 지금이 더 나은 삶이라는 것에는 아주 조금 의문이 들긴 했지만, 어찌 되었든 죽는 것보다야 낫다.

지금도 살고 싶어서 발바닥에 땀이 나도록 달린 것이 아니었던가.

한창 얘기하며 걸어가다 보니 운후가 저기 먼 곳을 가리키며 말했다.

“흐릿하게 보이는 저기입니다.”

하현이 눈에 공력을 집중하니, 그 앞에 서 있는 취월걸개와 남궁민을 발견했다.

취월걸개는 잠시도 가만히 있지 못하고 계속해서 이리저리 왔다 갔다 하고 있었다.

앞에서는 호기롭게 하현 혼자서 교룡문을 접수할 수 있다고 해놓고서는 뒤에서 안절부절못하는 취월걸개였다.

하현은 입가에 미소를 가득 머금고 그에게 달려갔다.

“사부님!”

취월걸개는 한껏 반가운 얼굴로 돌아보았다.

“현이 왔느냐! 다친 곳은 없고?”

“네. 아무 데도 없습니다.”

취월걸개가 씨익 웃었다.

“그럴 줄 알았다. 요것들 데리고 온 거야?”

그가 앞으로 한 발 나서며 교룡문도들을 위아래로 훑어보며 말을 이었다.

“뭐, 쓸만한 것들을 데려왔군. 근성도 제법 있어 보이고.”

“일부러 한 시진 동안 빠른 속도로 쉬지 않고 달려왔는데, 곧잘 따라왔습니다.”

온몸에 흐른 땀이 마르지 않아 옷이 피부에 찰싹 달라붙어 있고, 두 눈이 퀭한 것이 정말이지 필사적으로 뛰어왔다는 것이 느껴졌다.

“큭큭. 삶에 대한 집착도 있어 보이고. 좋다. 잘 데려왔구나.”

교룡문도들은 이 상황에 좋아해야 하는지 슬퍼해야 하는지 헷갈렸다.

‘일부러 그렇게 달려온 거였구나!’

순박한 면모를 많이 보였던 하현이건만, 그들은 교룡문주를 누가 죽였는지 다시금 상기했다.

“교룡문인지 토룡문인지는 어찌 되었어?”

“현판을 부숴 버렸습니다.”

“클클. 멸문이구먼.”

“네. 문주는 살려두지 않았습니다.”

취월걸개는 고개를 끄덕였다.

평소에 워낙 착한 하현이기에 연민을 품고 적을 살려두면 어떡하나 걱정했건만, 쓸모없는 걱정이었다.

“사부님. 다음 순서는 무엇입니까?”

하현은 똘망똘망한 눈으로 물었다.

취월걸개는 클클 웃으며 말했다.

“자. 이리로 와보아라.”

하현이 그를 따라 마방으로 들어갔다.

마방에는 넓은 마당이 있었는데, 그 마당에는 화려한 가마가 하나 들어가 있었다.

“아니, 이 가마는?”

하현은 깜짝 놀라 가마로 다가갔다.

바로 장소유가 타고 있던 가마였기 때문이다.

“감쪽같지?”

“네! 이건 어떻게 구하신 겁니까?”

“자세히 보면 조금은 다르다. 고급 가마 중에서도 최대한 비슷한 걸 가져온 거지.”

“아…! 그렇군요.”

그의 말대로 자세히 보니 전체적인 문양은 비슷했지만, 세부적인 장식들은 조금씩 달랐다.

그래도 잘 모르는 사람이 본다면 감쪽같을 정도였다.

“이건 민이가 어제부터 이 양양 바닥을 이 잡듯 뒤져서 가져온 것이다.”

“형님이 고생하셨군요.”

“네가 한 수고에 비하면 산책이나 다름없었어. 운 좋게 이 지역의 거상이 가지고 있던 가마야. 잘 쓰고, 이 일이 끝나면 돌려주기로 했어.”

남궁민이 씨익 웃었다.

말은 저렇게 하지만, 이것을 구하기 위해 얼마나 노력했는지 하현은 알 것 같았다.

“그러면 이제 다음은 뭔가요?”

“가마를 구했고. 저기 가마를 이고 갈 놈들도 있으니, 이제는 뭘 하겠느냐? 가마를 타고 가야지.”

“가마를 타다니…. 아!”

하현은 무언가를 깨달은 표정이었다.

이 자리에 모인 것들을 모두 상정하니, 결론은 하나밖에 나오지 않았다.

“이 가마를 끌고 약속장소, 그러니까 부양현으로 가려는 것이군요?”

“그렇지.”

“약속장소에 무인들만 나타나면 상대가 멀리서 지켜보다가 몸을 숨겨버릴 수도 있으니까요.”

“맞다. 바로 그것이다. 계략을 세워 적을 속이려면 정말 속아 넘어갈 수밖에 없도록 해야 한다.”

하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새삼 취월걸개가 다시 보였다.

‘이런 면모는 정말 닮고 싶구나.’

무림에서 가장 거대한 조직이라고 하는 대개방에서 그것도 첫 번째로 꼽히는 장로다.

정보를 수집하고, 활용하는 데에는 도가 텄다고 봐도 무방했다.

“그래서 교룡문도들을 데려오라 한 것이군요.”

“그렇지. 이것들이 가마를 납치해서 가야 하니까.”

하현은 이토록 세세한 것까지 신경 쓴다면 상대가 누구든 속을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계략이란 건 정말 철저해야 하는군요.”

“그래. 계략을 짜려면 이 정도는 해야지.”

취월걸개는 교룡문도들을 향해 고개를 돌리고는 말했다.

“너희들…. 그러니까, 이제 교룡문도 없어졌는데 저것들을 뭐라고 불러야 해?”

취월걸개의 말에 교룡문도들은 아무 말도 못 하고 눈만 뒤룩뒤룩 굴렸다.

운후가 다리를 벌벌 떨면서도 앞으로 나서며 말했다.

“저, 저는 운후라고 합니다.”

“운후?”

“네. 별호는 따로 없습니다.”

취월걸개가 재미있다는 듯 운후를 바라보다 입을 열었다.

“용기가 가상한 거야? 아니면 의리가 없는 거야? 하긴, 사파놈들한테 의리를 바라는 것도 웃기지만.”

“무, 무슨 말씀이신지…….”

“네 사문을 멸문시키고, 문주를 죽인 자들에게 뭘 그리 잘 보이려고 해?”

운후는 꿀 먹은 벙어리처럼 아무 말도 못 했다.

그를 구해준 건 뜻밖에도 하현이였다.

“사부님. 저들도 거의 교룡문주에게 납치당한 거래요.”

“뭐?”

하현이 대략적인 상황을 취월걸개에게 설명해주었다.

하지만, 취월걸개는 콧방귀를 흥 하고 뀌었다.

“현아. 그렇게 순진해서 이 무림을 어떻게 헤쳐나가려고 그러냐.”

그는 답답하다는 듯 가슴을 쿵쿵 때리고는 말을 이었다.

“지금 보니까 무슨 금제 같은 것도 걸려있지 않은 것 같은데. 도망치고 싶었으면 진작 도망쳤겠지. 파락호를 데려다가 무공을 가르쳐 놓으니까 넙죽 뒤가 구린 의뢰나 받는 것들이다.”

“아, 아닙니다.”

그때 운후가 취월걸개의 말을 가로막았다.

취월걸개는 자신의 말이 끊긴 것에 화가 났는지 콧김을 내뿜었다.

“말할 기회를 주마. 다만 헛소리한다면 머리가 박살 날 줄 알아라.”

“이제 와서 하는 말이지만, 정말로 몇 번이나 도망치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왜 안 도망쳤어? 바깥으로 의뢰를 나올 때 그대로 사라져 버리면 되는 것을.”

운후가 그의 뒤에 서 있는 교룡문도들을 가리키며 말했다.

“교룡문주는 항상 저희 형제들을 함께 임무에 내보내지 않았습니다.”

“그게 뭐?”

“혹여라도 도망치면 남아있는 형제들을 죽이겠다고 했습니다.”

취월걸개는 대답 없이 운후를 노려보았다.

‘어차피 죽는 거, 할 말이라도 다 하고 죽자.’

운후는 그 눈빛에 다리가 후덜덜 떨리면서도 말을 이었다.

“그리고 교룡문주는 저희에게 신법을 가르치지 않았습니다. 싸움을 위한 보법은 가르쳤지만, 신법은 일절 가르치지도 않고, 수련도 하지 못하게 했습니다.”

취월걸개의 눈빛이 조금은 누그러졌다.

운후는 지금이 기회라고 생각하며 하현을 가리켰다.

“여기 하현 대협께서는 이미 아시겠지만, 교룡문은 첩첩산중에 있습니다. 신법도 모르는 저희가 도망치려 하면 진즉 잡혀서 문주에게 머리가 깨졌을 것입니다. 저도 진즉부터 그만두고 싶었습니다. 이건 진심입니다.”

“흐음…….”

취월걸개가 잠시 날카로운 눈으로 가만히 운후를 보았다.

아주 잠깐의 시간이 흐르고, 취월걸개가 입을 뗐다.

“뭐. 거짓을 말하는 건 아니군. 이제부터는 너희들이 가마를 지고 갈 거니까, 가마꾼이라고 부르겠다.”

“감사합니다!”

운후는 자기도 모르게 바닥에 납작 엎드리며 취월걸개에게 절을 올렸다.

하현은 그 모습을 보고 빙긋 웃었다.

그리 긴 시간은 아니었지만, 하현은 운후가 그리 나쁜 사람인 것 같지는 않았다.

“사부님. 그런데 가마는 빈 가마를 들고 가는 겁니까?”

“옳지! 제일 중요한 걸 잊을 뻔했구나.”

“중요한 것이요?”

취월걸개가 고개를 끄덕였다.

“이 계략의 핵심은 바로 이 가마에 누가 타고 있느냐거든.”

“그래요?”

“누가 의뢰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놈은 분명 무방비 상태로 가마에 접근할 것이 분명하다.”

“그렇죠. 이 가마 안에는 무공을 모르는 장 부인이 타고 있다고 생각할 테니까요.”

하현의 대답이 마음에 들었는지 취월걸개가 껄껄 웃었다.

“역시 배우는 게 빠르구나. 맞다. 그 흉수가 접근했을 때 가마에 타고 있던 사람이 튀어나가 그놈을 붙잡는 것이다.”

“가마를 끌고 갈 여기 교룡…. 아니, 가마꾼들도 무공을 익혔는데, 이들이 잡으면 안 되나요?”

취월걸개가 단호히 고개 저었다.

“상대가 얼마나 고수일지도 모르는데 이런 애들 장난 수준으로 무공을 익힌 것들을 뭘 믿고 맡겨?”

그의 말에 가마꾼들이 움찔했지만, 취월걸개는 아랑곳하지 않고 말을 이었다.

“자, 하현아. 생각해 봐라. 저녁 달빛이 비치면 결국 이 안에 그림자가 비치게 된다. 그러면 안에 타고 있는 사람의 그림자는 어때야 하지?”

“음…. 체구가 작아야겠군요. 여인으로 보여야 하니까요.”

“그렇지! 그리고 또?”

“체구가 작으면서도 제법 강한 무공을 가지고 있어야겠습니다.”

취월걸개가 씨익 웃으며 말했다.

“그러면 누가 타야 할까? 참고로 우린 시간이 별로 없다. 누군가를 새로 섭외할 시간은 더더욱 없고.”

“그러면…….”

하현이 고개를 두리번거리다가 문득 무언가를 깨달았는지 자신을 가리키며 말했다.

“저……?”

취월걸개가 껄껄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그래. 너밖에 없다. 그리고 기왕 가마에 타는 것 완벽하게 타야 하지 않겠느냐?”

“완벽하게요?”

“이쪽으로 나오시게!”

취월걸개가 별안간 마방 건물에 소리를 지르자, 그 안에서 몇 명의 여인이 나왔다.

“어휴. 말똥 냄새! 이봐요. 어르신! 이게 피부에 얼마나 안 좋은 일인지 알아요?”

“우리보고 오라고 하지 말고, 기루로 오셨으면 얼마나 좋아? 그러면 더 잘해드릴 텐데.”

하현이 영문을 모를 때, 취월걸개가 킬킬 웃으며 말했다.

“뭘 그리 말이 많아! 옷은 가지고 왔어? 저 아이가 입을 거야.”

“어머. 키가 딱 나만 하네. 몸도 날씬하고. 내 옷 가져오길 잘했어.”

“얼굴 하얀 거 봐. 분칠도 따로 안 해도 되겠네.”

하현이 혼란스러운 얼굴로 취월걸개에게 말했다.

“사부님. 이게 무슨 일…….”

“기왕 하는 거 완벽하게 해야지! 네가 네 입으로 말하지 않았느냐. 가마에 타는 사람은 여인으로 보여야 한다고. 여인으로 보이려면 여인의 옷을 입고 화장까지 하면 되지 않겠느냐?”

취월걸개는 무엇이 그리 재밌는지 낄낄 웃어댔다.

하현이 황급하게 남궁민을 바라보았지만, 남궁민 역시 팔로 얼굴을 가리고 큭큭 웃고 있었다.

그는 조금 전 새삼 취월걸개를 닮고 싶다고 생각한 것을 후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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