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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궁세가 천재 외손자-93화 (93/304)

93화

“이런 아둔한 것들. 발도 못 맞춰? 왼발, 왼발! 왼발 모르냐!”

가마 지붕에 앉아 있는 취월걸개가 연신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당연하게도 가마를 이고 연신 걸음을 옮기는 가마꾼들에게 하는 소리였다.

“에잇! 답답해라.”

취월걸개가 가마에서 뛰어내렸다.

가마꾼들이 움찔하며 걸음을 멈추려 하자 취월걸개가 빼액 소리 질렀다.

“발은 멈추지 말고 들어라!”

“네, 넵!”

취월걸개가 몇 발자국을 앞으로 나가더니 앞을 향해 몇 걸음 걷는 것을 보여주며 설명했다.

“봤느냐? 이 발바닥 사이에 이곳이 바로 용천혈이다. 용천혈을 땅에 먼저 대면서 걷는 습관을 가지란 말이야. 이게 그렇게 어렵냐?!”

가마꾼들은 그의 걸음을 어설프게 따라 하려다 비틀거리기도 하고 넘어질 뻔하기도 하더니 결국 취월걸개가 원하는 걸음을 따라 할 수는 있게 되었다.

“윽. 사부님. 저 너무 흔들려서 어지러운데요.”

가마 안에 있던 하현이 문을 살짝 열고 말했다.

취월걸개가 보고는 낄낄 웃으며 대답했다.

“하현이 너도 균형감각을 키우는 훈련이라고 생각해라. 이제 얘네들이 제대로 걷기 시작하면 더욱 편안해질 테니.”

“…알겠어요.”

취월걸개는 이 상황이 즐거운지 한 번 더 웃고는 가마꾼들에게 다시 말했다.

“그리고, 발바닥이 땅에 닿는 순간마다 용천혈에 기운을 집중해라. 아예 거기로 기를 내뿜는다는 생각으로. 옳지. 그렇게 하는 거다. 다만 너무 큰 기운을 쏟아내지는 말아라. 너희들은 한참 걸어야 하니까.”

취월걸개는 다시 가마 위에 올라탔다.

“아니, 너는 방금 가르쳐줬는데 또 이렇게 걸어? 용천혈 몰라? 너 처음에 심공 배울 때 안 배웠어?!”

잠시도 지나지 않아서 소리를 빽 지르고 말았지만.

가마 뒤를 천천히 쫓아가며 이 모습을 지켜보고 있던 남궁민은 입가에 웃음이 걸려 있었다.

‘말씀은 저렇게 하시지만 즐거워 보이시는군.’

취월걸개는 지금 가마꾼들에게 신법의 기초에 관해 설명하는 중이나 다름없었다.

그들이 마음에 들었는지, 아니면 정말로 답답해서 저러는지는 몰라도 취월걸개쯤 되는 무인이 누군가를 가르칠 때는 다 이유가 있는 법이다.

‘자질이 보인 것이지.’

왈패들의 나이는 이미 서른 줄을 넘었다. 무공을 제대로 익히기에는 이미 늦은 나이.

하지만 그들은 취월걸개의 막무가내식 가르침을 제법 따라 해내고 있다.

하현의 스승이 되면서 가르치는 것에 재미를 들린 취월걸개에게 이보다 좋은 유희거리는 없었다.

“다리를 더 뻗어라! 그렇지!”

가마꾼들은 가뜩이나 무거운데 익숙하지도 않은 걸음을 하려니 죽을 맛이었다.

그들을 지탱해주는 한 가지는 걸음을 옮길 때마다 목적지는 점점 가까워진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들도 모르고 있는 사실 한 가지가 있었다.

‘이놈들 제법 재능이 있는데?’

그들은 생각보다 좋은 자질을 가지고 있었고, 발걸음을 내딛는 지금 이 순간에도 개미만큼이나마 조금씩 발전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 * *

안휘성 부양(阜陽)현은 그 이름에서 알 수 있듯 넓은 평지로 이루어진 도시다.

주변에 산이 없어서 햇볕을 가리는 때가 없고, 사시사철 강하게 내리쬐는 덕분에 이 주변에서는 제일가는 곡창지대였다.

그만큼, 이곳은 몸을 숨길만 한 숲이나 산이 없는데, 단 한 곳. 넓게 펼쳐진 사람 키만 한 갈대밭만이 유일하게 은밀한 활동을 할 수 있는 곳이었다.

“형님. 여기인 것 같은데. 맞습니까?”

운후와 같이 흑석파 출신이자 어제까지는 교룡문도였던 곽규가 운후에게 슬쩍 물었다.

그는 현재 생존해 있는 흑석파 파락호 중 운후 다음가는 서열이었다.

“그래. 이곳이다.”

운후가 고개를 끄덕였다.

장영감의 막내딸. 장소유를 납치하는 데 성공하면 이곳으로 데려오기로 했었다.

교룡문주가 준 임무지에 상세하게 적혀있던 내용이니 분명할 것이다.

하늘을 올려다보니 해가 뉘엿뉘엿 져가고 있었다.

“때가 되어 가는구나. 자연스럽게 행동해라. 평소처럼.”

“알겠습니다.”

운후의 말에 곽규를 포함한 흑석파 다섯 명이 긴장을 풀었다.

그의 말대로 긴장할 필요는 없다.

부끄러운 일이지만 이렇게 사람을 납치해서 인도하는 임무는 몇 번이고 해봤기 때문이다.

그때 가마 안에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사람이 접근합니다.”

“사람이요?”

운후는 하현이 보일 리도 없건만 그도 모르게 고개를 숙이며 물었다.

“네. 저한테는 느껴집니다. 다가오는 속도가 꽤 빠른 거로 봐서 신법을 익혔나 보네요. 무인입니다.”

“무인이요?”

“제가 느끼기에 아저씨는 당해내기 힘든 고수이니, 무슨 일이 있더라도 싸우지 말고 도망치세요.”

“알겠습니다.”

그 뒤로 하현은 아무 말도 없었다.

아무래도 하현의 목소리를 들으면 남자아이인 것이 들킬 수도 있기에 말을 아끼는 것이리라.

저벅- 저벅-

조금 시간이 더 흐르고 나서야 운후는 사람의 인기척을 느낄 수 있었다.

‘기감이 얼마나 예민한 거야?’

운후는 하현의 기감에 속으로 혀를 내둘렀다.

적어도 오십 장 바깥에서부터 사람이 오고 있는 것을 알아채고 있는 것 같았다.

이윽고 갈대를 뚫고 한 명의 사람이 나타났다.

그는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흑색의 무복으로 칭칭 감고 있었고, 얼굴에는 복면을 써 두 눈만 형형히 빛나고 있었다.

‘정말로 상당히 강하다……!’

운후는 아무도 모르게 침을 꿀꺽 삼켰다.

하지만 겉으로는 그런 티를 전혀 내지 않았다.

사내는 말 없이 가마를 보았다.

내리쬐는 석양이 가마를 비췄다.

“아……!”

그는 창호지로 발라진 가마의 창문에 비친 사람 그림자를 보고 그도 모르게 감탄사를 내뱉었다.

비록 그림자뿐이지만, 그 아름다운 자태에 그는 자신도 모르게 가마를 향해 몇 발자국 다가갔다.

“멈추시오.”

그때 운후가 앞으로 나서며 말했다.

운후의 눈빛에는 살기가 형형했다.

마치 하현과 취월걸개를 만나기 전의 그로 돌아간 듯한 눈빛이었다.

“…….”

흑의 사내는 물끄러미 운후를 바라보았다.

운후가 그의 눈빛을 맞받아치며 말했다.

“잔금부터.”

“…….”

그는 말을 할 줄 모르는 사람인 듯, 운후를 물끄러미 쳐다보다가 허리춤에서 주머니 하나를 던졌다.

운후가 얼른 주머니를 집어 열어보니 찬란하게 빛나는 은자가 가득했다.

그는 주변의 다른 동료들을 보고 고개를 끄덕이더니 뒤로 물러났다.

“혹여나 더 필요한 일이 있다면 다시 찾아주시오.”

그리고는 갈대밭으로 사라졌다.

가마 앞에 홀로 남은 사내는 곧바로 가마에 다가갔다.

그리곤 나오지 않을 것 같은 목소리가 그의 입에서 나왔다.

“답답해도 조금만 기다리시오. 내 주변 상황을 조금 더 확인해보고 오겠소.”

“…….”

그러나 가마에서 대답이 돌아올 리 만무했다.

“여기까지 오느라 많이 피곤하셨을 것이오. 조금 쉬고 있으면 금방 오리다.”

그의 목소리에서는 걱정이 가득했다.

그는 가마를 조금 더 애틋한 눈으로 바라보다가 주변 갈대밭을 살폈다.

주변에 느껴지는 인기척이나 기운은 없는지, 조금 전 교룡문도들은 확실히 자리를 떠났는지 살펴보는 모습이 꽤 체계적인 교육을 받았음을 짐작게 했다.

한참 동안 꼼꼼하게 살핀 그는 주변에 아무도 없다고 생각했는지 복면을 벗었다.

복면 안에서는 제법 잘생긴 얼굴이 나왔다.

두 눈은 맑게 빛나 정순한 기운을 품고 있는 것을 보여주고 있는 듯했고, 영웅건을 매고 뒤로 질끈 묶은 머리는 평소 그의 차분하고 깔끔한 성격을 보여주는 듯했다.

“소유! 이 주변은 안전하오. 이제 나오셔도 되오.”

그는 감격스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그의 목소리와 말투는 결코 납치범이 할 만한 것이 아니었다.

마치 연인에게 말하는 듯한 부드러운 목소리였다.

“소유……?”

“…….”

그는 이제야 무언가 이상하다는 것을 눈치챘다.

분명히 가마 안에 장소유가 있는 것이 분명한데 아무런 대답도 없었으니까.

“아! 혹시 몽혼약을 쓴 것인가?”

그가 깜짝 놀라 말하며 가마로 뛰어갔다.

“멍청한 사파놈들! 소유의 털 오라기 하나라도 해가 가면 안 된다고 몇 번을 당부해 놓았거늘!”

그는 굉장히 분노했다.

조금 전 교룡문도들을 그냥 보내준 것이 후회될 정도였다.

상대를 잠재우는 몽혼약이라고 해서 다 같은 것이 아니다.

상급의 몽혼약은 조용히 잠에 빠지고 깔끔하게 일어나지만, 저급한 것은 두통과 후유증을 동반할 수도 있다.

군소 사파인 교룡문에서 상급의 것을 사용할 리 만무했으니 그가 분노한 것이다.

“소유!”

그가 순식간에 가마 앞에 다다르고, 문을 벌컥 열려고 할 때.

콰악!

갑자기 가마 문을 뚫고 손 하나가 튀어나왔다.

“헛!”

그는 깜짝 놀라 손을 빼려 했지만, 그 손은 교묘하게 움직여 결국 그의 팔목을 잡고 말았다.

분명히 여자 저고리를 입고 있건만, 손은 그보다 투박했다.

그렇다고 남자의 손으로 보이지도 않았지만, 한 가지는 확실했다.

‘소유가 아니다!’

그는 손목을 잡은 손을 떨쳐내려 했지만, 생각처럼 마음대로 되지 않았다.

손아귀의 힘이 보통 강한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크윽!”

도리어 그가 떨쳐내려 할수록 손아귀의 힘은 점점 강해져 그를 고통스럽게 했다.

자신도 모르게 신음을 흘린 그는 허리춤에서 재빨리 단도 하나를 꺼내 그 손을 향해 휘둘렀다.

휘익-

그러나 단도는 허공을 가를 뿐이었다.

그를 그토록 고통스럽게 하던 손이 어느새 다시 가마 안으로 쏙 들어갔기 때문이다.

“누, 누구냐!”

끼이익-

그의 외침에 대답 대신 가마 문이 열렸다.

그리고 그는 자신도 모르게 감탄사를 한 번 더 내뱉고 말았다.

“아……!”

그곳에 타고 있던 것은 절세미녀였다.

나이는 조금 어려 보였지만, 나이 차이 따위는 눈에도 안 들어올 정도의 절세미녀.

결국, 그는 하현이 가마에서 완전히 내릴 때까지 넋을 놓고 지켜보다 정신을 퍼뜩 차렸다.

“소유, 소유는 어딨지?”

“장소유와 잘 아는 사이인가 보죠?”

“?!”

그는 하현의 목소리에 놀랐는지 두 눈이 커다래졌다.

“장소유는 지금 안전한 곳에 있어요. 왜 장소유를 납치하려 한 거죠? 동료는 없나요?”

“안전한 곳…? 그곳이 어디냐!”

“내가 먼저 물었잖아요. 동료는 없어요?”

“동료는 없…. 헛!”

그는 말을 끝까지 잇지 못했다.

동료가 없다는 말을 듣자마자 하현이 보법을 밟아오며 그에게 주먹을 뻗어왔기 때문이다.

뻐억-!

그는 부지불식간에 날아오는 주먹을 팔을 들어 막아냈다.

“큭……!”

“오……?”

둘에게서는 상반된 반응이 터져 나왔다.

사내는 겨우 막아내긴 했지만, 두 팔이 부러지는 듯한 고통에 심음을 흘렸고, 하현은 그가 생각보다 수월하게 막아낸 것에 놀란 것이었다.

하지만 하현은 씨익 미소 지었다.

꽤 강자이기는 하지만, 자신에게는 미치지 못한다는 것을 단 한 번의 부딪힘으로 파악했기 때문이다.

채앵-!

정신을 차린 사내가 허리춤의 검을 빼 들었다.

더 이상은 하현의 외모에 홀리지 않겠다는 듯 결연한 표정이었다.

타다다닷-

하현은 그에 아랑곳하지 않고 경쾌하게 보법을 밟아나갔다.

취월걸개는 상대가 만약 무기를 들고 있으면 최대한 시간만 끌라고 했었지만, 하현은 그 말을 따를 생각은 없었다.

‘무기가 없긴 왜 없어?’

그는 속으로 씨익 웃었다.

이번에 소림을 갔다 오며 가장 크게 느낀 것이 하나 있다.

‘나 스스로가 무기인데.’

검, 도, 창 등 병기들만이 무기가 아니다.

권, 각, 장 등…. 인간의 신체는 충분한 무기가 될 수 있다.

소림만 해도 그렇다.

십팔반무기를 포함한 수많은 무기를 사용하는 무공이 있지만, 결정적으로 소림을 정파제일문의 자리에 올려둔 것은 두 주먹을 사용하는 백보신권이 아니던가?

쒜에엑!

하현이 주먹을 공기를 찢는 소리를 냈다.

‘진짜 백보신권은 아니지만……!’

하현은 순간 원진을 떠올렸다.

소림을 떠나기 전, 그와의 교류는 하현에게 권법에 대해 이해할 수 있게 해줄 수 있는 소중한 시간이었다.

하현은 그때의 깨달음을 지금의 두 주먹에 담았다.

완벽할 수는 없어도, 지금 그의 주먹은 충분히 무기라고 칭할만했다.

콰아아-

하현의 권격이 흑의사내의 몸에 짓이겨 들어간다.

사내가 검을 들어 막아보려 했지만, 겨우 검으로는 이 넓은 경력을 막아낼 재간이 없었다.

퍼버버버벅!

검을 지나친 기운이 그대로 사내의 복부에 틀어박혔다.

사내는 복부에서 오는 엄청난 충격에 그만 정신줄을 놔 버리고 말았다.

그리고 그 순간 그는 하현이 무공을 펼치는 모습을 보며 생각했다.

‘아름답다…….’

상황에 맞지 않는 생각이었건만, 그는 그 생각을 마지막으로 기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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