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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궁세가 천재 외손자-115화 (115/304)

115화

하현의 눈은 놀랍도록 올곧았다.

제갈정현은 그가 빈말하는 게 아니라는 것이 직감적으로 느껴졌다.

그는 자신도 모르게 남궁환을 바라보았다.

그러자 남궁환은 제갈정현이 무슨 뜻으로 그를 바라보았는지 알아채고는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제갈 형. 저번에도 말했지만, 저는 하현이 하자는 대로 따를 거에요.”

두말할 것도 없이 승낙이었다.

제갈정현은 아무것도 이루어지지 않았음에도 복받쳐 오르는 감정을 억누르며 겨우 말했다.

“고맙네…….”

“아닙니다. 그러면 오늘은 이만 올라가서 쉬는 게 어떻습니까? 내일 아침 일찍 출발하게요.”

“그래. 알겠네. 지금 올라가지.”

“술이 남았는데 다 안 드시고요?”

“그깟 술이 뭐에 중하겠는가. 앞으로 자네들과 함께하는 동안은 내 절대 술을 마시지 않겠네.”

하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잘 생각하셨습니다. 제가 제갈 형이었다면 그 시간에 운기조식을 한 번이라도 더 했을 겁니다.”

“그래. 알겠네.”

그를 질책하거나 힐난하는 말투가 아니었다.

그저 자신이 행하는 것을 담담하게 말하는 듯한 목소리였다.

‘저런 마음가짐이기에 저 나이에 저렇게 뛰어난 무공실력을 갖추게 되었구나.’

제갈정현은 하현과 남궁환을 보며 무언가를 깨달았다.

‘실력이 없다고 불평할 게 아니라, 그 시간에도 갈고 닦아야 하는 것을.’

그는 지금껏 자신이 핑계만 대 왔다고 생각했다.

서열에 밀려서, 실력이 부족해서.

하지만 정작 자신은 그것을 뒤집을 노력은 하지 않고 있던 것이다.

“고맙네. 어서 올라가지.”

제갈정현은 식대까지 모두 자신이 계산하고서는 하현과 남궁환을 따라 이 층으로 올라갔다.

그의 눈빛은 이전과는 달라져 있었다.

* * *

사천(四川)

장강, 민강, 타강, 가릉강 네 개의 강이 성내를 흐르기 때문에 사천성이라고 불리게 되었다는 이 성은 넓디넓은 중원에서도 가장 큰 성 중에 하나다.

매운 음식과 함께 자연경관이 뛰어난 성이기도 하다.

그리고 사천에는 구파일방과 오대세가 중 세 개가 자리를 잡고 있는데, 아미파, 청성파, 그리고 사천당가가 그것이다.

제갈정현이 자처해서 몰고 있는 마차는 사천에 들어서서도 곧장 당가를 향했기에 그들은 사천당가에 거의 도달할 수 있었다.

“당가는 특이하게 당가(唐家)라고도 하고 당문(唐門)이라고도 하네.”

마차를 모는 제갈정현이 말했다.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기본적으로는 다른 가문들처럼 혈족 계승으로 이루어지긴 하지만, 문도를 또 따로 받기 때문이라네. 독과 암기는 배우기도 까다로울뿐더러, 그 시간도 오래 걸리네. 그렇기에 많은 문도를 두어 명맥이 끊이지 않게 하기 위함이지.”

제갈정현은 제갈세가의 사람답게 무림의 정세에 밝았다.

그는 하현과 남궁환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려는 듯, 쉴 새 없이 그가 아는 정보를 말해주었다.

그들은 이윽고 당가에 도착할 수 있었다.

당가의 문지기는 하현이 남궁세가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 되자 그를 데리고 곧장 안으로 들어갔다.

그의 뒤에는 남궁환과 더불어 마차를 하인에게 맡긴 제갈정현도 따라붙었다.

“당가도 규모가 상당하네. 건물이 모두 몇 채야?”

남궁환이 주위를 둘러보며 말했다.

장원의 넓이는 남궁세가보다는 못하지만, 건물의 숫자가 배로 많았다.

“그러게, 그런데 대부분 건물 안에서 사람의 기운이 느껴지질 않아. 사람이 상주하는 것은 아닌 것 같아.”

하현이 고개를 두리번거리자 제갈정현이 대답했다.

“아마 대부분 창고일 것이네.”

“창고요?”

“잘 알다시피 당가의 주특기는 독과 암기지. 그리고 그것들은 소모재라네. 정작 필요할 때 모자라지 않으려면 평소에 비축을 잘 해둬야 하니까.”

하현이 그를 보며 고개를 끄덕이는데, 앞쪽에서 카랑카랑한 목소리가 들렸다.

“그래. 그 말이 맞다. 그런데 이렇게 보면 엄청나게 많아 보여도, 당가 무인 전체가 사용하면 모두 한 달도 안 되어 다 소진이 되는 양이긴 하지.”

하현은 반가운 목소리에 고개를 퍼뜩 돌리니, 그곳엔 취월걸개가 서 있었다.

“사부님!”

그는 마치 원래부터 같이 있었다는 듯, 자연스러운 태도였다.

“귀 안 떨어졌어! 조용히 말해도 된다.”

말은 이렇게 해도 하현을 보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좋은지 그의 입은 귀에까지 걸려있었다.

하현은 그에게 한달음에 달려갔다.

“환이도 같이 왔구나. 그런데 그 허여멀건 한 건 누구냐? 옷 입고 다니는 행색이 제갈세가 사람 같기는 한데.”

“취월걸개 어르신! 제갈세가의 제갈정현. 인사 올립니다.”

제갈정현이 정중하게 포권하며 취월걸개에게 인사했고, 취월걸개는 손을 휘휘 저으며 그 인사를 받아 주며 하현에게 말했다.

“참나. 저번에는 운후를 줍더니, 이번에는 제갈세가 사람까지 주운 게야? 저건 또 어디에 써먹으려고.”

“사부님도 참. 줍다니요. 그런 거 아닙니다.”

둘은 감격스러운 해후를 나눈 것도 잠시.

이내 곧 심각해졌다.

“휘연 형님은 안에 계시는 겁니까?”

“그래. 누워있다. 자꾸 움직이려 해서 내가 절대 못 움직이게 혈을 짚어놨다.”

“혈을 짚어요?”

“어쨌든 가서 보자. 이야기를 빨리 나눠야 할 것 같구나.”

그들은 남궁휘연이 있다는 전각으로 자리를 옮겼고

제갈정현은 함께 하지 않았다.

그는 그들을 따라가지 않고, 따로 휴식을 취하기로 했다.

* * *

“하현아. 정말 너 맞아? 몰라보겠는데?”

남궁휘연의 목소리는 쾌활했다.

취월걸개가 어떻게 혈을 짚어 놓은 것인지는 모르지만, 목 위로만 움직일 수 있으면서도 그는 연신 고개를 휘저으며 떠들었다.

“형님…….”

“왜 그렇게 울상이야? 곧 죽을 것도 아닌데.”

곧 죽을 것도 아니라는 것 치고는 온통 상체를 붕대로 휘감고 있었다.

취월걸개가 혀를 쯧쯧 차더니 말했다.

“다행이라고 해야 할지, 내상은 그리 크지 않다.”

“그러면 이게 다 외상이라는 거에요?”

“그래. 갈비뼈가 다섯 대나 부러졌고, 허리도 다쳤어. 그래 놓고서는 자꾸 괜찮다면서 돌아다니려 하기에 내가 아예 못 움직이게 한 거지.”

남궁휘연이 취월걸개에게 외쳤다.

“어르신! 너무 답답합니다. 팔이라도 움직이게 해주세요.”

“떽! 일주일은 그러고 있을 줄 알아라. 네 팔로 점혈을 풀지 어떻게 알아?”

하현이 걱정스러운 눈으로 휘연을 보자, 남궁휘연은 언제 울상을 지었냐는 듯 웃으며 하현에게 말했다.

“소림에서 십팔나한진을 격파했다고? 대단하다고는 생각했는데, 너 정말 대단하구나.”

“운이 좋았어요. 저 혼자 한 일도 아니고요.”

“민이와 함께했다고 해서 그 대단함이 떨어지는 것은 아니야.”

남궁휘연은 눈으로만 하현의 옆에 있던 남궁환을 보고 말을 이었다.

“환아. 너도 잘 지냈지?”

“형님은 잘 못 지낸 것 같으시네요.”

“하하. 이거 생각보다 좋아. 밥도 사람들이 먹여주고. 그나저나…. 너는 기도가 많이 변했다?”

“제 기도가요?”

“그래. 네 주변을 흐르는 바람이 예전과는 딴판이야. 그때가 나른한 여름 바람이었다면 지금은 서늘한 북서풍 같아.”

남궁휘연은 때때로 이렇게 바람을 말하곤 했다.

하지만 하현과 남궁환은 그의 말에서 짐작 가는 바가 있었다.

‘환 형님은 싸움에 들어가면 완전 다른 사람이 되니까.’

산적들과의 싸움이 고작 며칠 전이였다.

휘연의 놀라운 감각이 그 살기를 잡아낸 것이리라.

“그런데 형님.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겁니까?”

휘연의 눈이 취월걸개를 향했다.

취월걸개는 위아래로 고개를 끄덕였다.

애초에 모든 것을 이야기해 주려 하현을 부른 것이니.

“내가 마교의 흔적을 찾는 탐사대에 들어갔던 건 알고 있지?”

“그럼요.”

하현은 하북팽가에서 그와 만났던 것을 기억했다.

“다른 탐사대원들은 마교가 중원 어디에 있는지를 찾는 데 집중했어. 하지만 나는 그러지 않았지.”

“어디에 집중하셨는데요?”

“사람.”

그는 입술이 마르는지 혀로 입술을 한 번 핥고 나서 말을 이었다.

“사 년 전, 소리소문없이 멸문당한 군소 방파가 모두 열아홉 곳이야. 신가장을 포함해서.”

하현이 굳은 표정으로 고개를 끄떡였다.

그 이야기는 이전부터 할아버지께 들어서 알고 있었으니까.

“하현이 너한테는 가슴 아픈 말일지도 모르지만, 그냥 말할게. 나는 너처럼 마교의 혈겁에서 살아남은 생존자들을 찾아다니고 있었어.”

“생존자……!”

하현은 지금껏 생존자가 있을 것이라고는 생각도 하지 못했기에 휘연의 말에 놀라고 말았다.

그때 남궁환은 뒷이야기가 궁금했는지 휘연에게 물었다.

“그래서 생존자는 찾은 겁니까?”

“그래. 찾았어.”

“……!”

“그자는 어디에 있습니까?”

“내가 생존자를 찾고 있다는 소문이 퍼졌는지, 그 생존자 측에서 먼저 연락을 취해 왔다. 자신이 마교로부터 탈출했다고.”

“탈출이요?!”

“그래. 혈겁 때 납치를 당했었다고 하면서 말이야. 그래서 나와 객잔에서 비밀리에 만나기로 했지. 그런데 그와 접선한 순간, 객잔이 무너졌다…….”

남궁휘연이 말끝을 흐리자, 취월걸개가 말을 거들었다.

“아직도 마교에 쫓기고 있던 게지. 휘연의 무공이 무시할만한 수준이 아니니 아예 건물을 무너뜨려 그 안에 모든 진실을 덮으려 했던 게다.”

취월걸개는 남궁휘연을 한번 쳐다보고는 말을 이었다.

”여기 휘연이 녀석도 혼자라면 몸을 뺐을 수도 있었는데, 그 생존자를 감싸 안았다더라.”

남궁환의 두 눈이 동그래졌다.

그렇다면 휘연은 무너지는 건물을 몸으로 받아냈다는 말이었다.

“그래서 결론만 말하자면, 나도 살고 그자도 살았지.”

“다행이로군요! 살아있다니.”

“그런데 천장이 무너질 때, 그 생존자는 머리를 맞고 말았어. 그래서 아직 깨어나지 못하고 있지.”

남궁휘연이 조금 풀이 죽었다.

하현은 지금 상황 파악이 어느 정도 되었다.

“그 생존자는 어디 있습니까?”

“이곳 당가에서도 가장 경비가 삼엄한 곳에 있지. 당가주님의 집무실 바로 옆이야. 지금 수많은 의원이 붙어서 그를 치료하고 있어.”

독과 약은 종이 한 장 차이고, 암기와 침술은 손바닥 뒤집기라는 말이 있다.

그만큼 당가는 약과 침술에도 일가견이 있다는 뜻이다.

“그가 일어나면 수많은 의문이 해결되겠군요.”

“그래. 어쩌면…. 마교의 위치가 어디인지를 바로 알 수도 있으니까.”

다들 무거운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하현은 한 가지 의문이 들었다.

“그런데 왜 저를 이곳까지 오라고 하신 겁니까? 지금 얘기를 들어보면 저보다는 할아버지가 급히 오셔야 할 것 같은데.”

마교에 관련된 것은 무림의 큰 어른인 남궁무룡이 취급하곤 했다.

그러니 하현의 의문은 정확했다.

“아니, 현아. 네가 봐야 할 일이야.”

“도대체 무슨 일인데요?”

휘연이 잠시 뜸을 들이다 하현에게 말했다.

“지금 깨어나지 못하고 있는 그 생존자. 건물이 무너지기 직전에 그가 나에게 이렇게 말했거든. 자신은 섬서성의 신가장(申家場) 출신이라고.”

“신가장?!”

“신가장이라고요?”

그의 말에 하현과 남궁환 모두 눈이 화등잔만 해졌다.

신가장이라는 이름의 장원은 흔히 있을 수 있다.

하지만, 하현이 아는 한 섬서성에 있는 신가장은 단 하나.

사 년 전 멸문한 하현의 가문이 틀림없었다.

“그가 말하길. 신가장에 있는 모두가 죽거나 납치당했다고 하는데, 단 한 명의 생사만을 아직도 확인하지 못했다고 했었다.”

“그, 그게 설마……?!”

“네 이름을 말하진 않았어. 다만…. 도련님이라고 했었지.”

하현은 망치로 머리를 한 대 얻어맞은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신가장의 도련님.

그가 기억하는 한 그는 자신밖에 없었으니까.

“이제 너를 왜 불렀는지 알겠지?”

“그자의 얼굴을 확인해야겠습니다.”

하현의 얼굴이 굳었다.

이제는 세상에 없다고 생각했던 신가장의 흔적이 가까이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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