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0화
사천사살 중 셋과 처음 맞붙었을 때, 당규호는 조금은 당황했다.
‘원래 이들이라면 끝까지 몸을 은신해 있다가 기습했을 것이다. 그런데 어째서 무인처럼 정면에서 맞붙은 거지?’
사천사살의 악명은 십오 년 전에도 대단했다.
아미파, 청성파, 사천당문이라는 거대한 세 문파가 자리 잡은 사천성에서 난다 긴다 하는 살수들을 제치고 살수라고 하면 그들이 제일 먼저 불리었으니.
그런데 그들은 예전처럼 살수로서 싸우지 않았다.
조금 전 하현의 말처럼 자신들을 무인이라고 착각하고 있는 듯한 태도였다.
부웅!
쒜엑!
하지만, 당규호는 이들이 이토록 자신감 넘치는 이유를 깨달았다.
‘예전의 그 사천사살이 아니다.’
사용하는 무공, 내공, 심지어는 검을 쥐는 법까지 이전과는 판이하게 다른 그들이었다.
마교에 의탁하며 새로운 무공을 배운 것으로 보였다.
그리고 그 성취에 이토록 자신만만한 것이고.
촤라락-
당규호가 뒤로 신형을 물리며 그들에게 비침을 쏘아냈지만, 모두 사천사살의 검에 막히고 말았다.
살수가 아닌 무인으로서도 능히 일류라 할 만한 수준이었다.
그렇다고 해서 그의 특기로 상대하게 되면 못 할 것도 없었다.
그를 사천당가라는 거대한 집단의 수장으로 만들어 준 것은 바로 암기술이 아닌 독공.
독공을 펼친다면 앞에 있는 사천사살쯤은 순식간에 한 줌 혈수로 만들 수 있다.
하지만 그는 하현과 남궁환이 신경 쓰였다.
‘아이들이 위험할 수도 있다.’
애석하게도 독은 사람을 가리지 않는다.
그래서 싸우기 전, 아군들은 모두 해약을 먹고 전투에 임한다.
혹여나 부지불식간에 독무(毒霧)를 들이마셔도 해가 가지 않도록.
하지만 하현과 남궁환에게 그 해약을 건네줄 시간조차 없었다.
‘어쩔 수 없다.’
사천사살을 상대하며 고민을 하던 그는 본격적으로 기운을 끌어 올리려 했다.
사후에 해독약을 주더라도 일단은 독공을 활용해 순식간에 싸움을 끝내기로 마음먹은 것이다.
그런데 그때.
쾅- 콰과 쾅!
아이들이 있는 쪽에서 굉음이 들렸다.
그와 사천사살은 싸우던 것도 잊고 그쪽을 돌아보았다.
“폭환?”
“일살이 폭환을 썼다고?”
당연히 사천사살은 폭환의 존재에 대해 알고 있었다.
그것은 목숨이 경각에 달렸을 때만 사용하는 최후의 구명줄이다.
그런데 폭환이 터졌다는 것은 일살의 목숨이 위험하다는 뜻이나 다름없었다.
툭-
곧이어 일살의 목이 떨어졌다.
사천사살. 아니, 사천삼살은 지금의 상황을 받아들일 수 없어 그 광경을 넋을 놓고 보았다.
그때 그들에게 은밀히 날아오는 것이 있었으니.
슈욱! 푹!
“끄윽….”
정확히 삼살의 목을 꿰뚫어버린 당규호의 비도였다.
무영비(無影飛). 사천당가의 비도술 중에서도 가장 은밀하고 조용한 비도술을 펼친 것이다.
“삼살!”
“어딜 한눈파는 것이냐!”
“이놈이!”
정신을 판 대가는 혹독했다.
눈 깜짝할 사이 보법을 밟아 달려온 남궁환과 하현이 전투에 합류하면서 사대 삼의 싸움이 어느덧 이 대 삼의 싸움이 되었으니까.
이들이 싸움에 합류하고 나서부터는 일방적으로 흘러갔다.
당규호가 따로 언질을 준 것도 아니건만, 남궁환과 하현은 전방을 책임졌다.
채앵-!
푹푹푹-
하현과 남궁환이 동시에 이살(二殺)의 검을 올려 쳐 검을 놓치는 순간 그의 가슴에 세 개의 비도가 박혔다.
그는 곧바로 절명하지는 않았으나, 폐를 찔렸는지 숨을 제대로 쉴 수 없어 전투를 계속하지 못했다.
그리고 마지막 사살(四殺)은 더욱 쉬웠다.
당규호가 비침과 비도로 그의 운신의 폭을 제한했고, 그 덕에 하현과 남궁환은 사살에게 바짝 붙어 검을 휘둘렀다.
카앙! 카가강!
하현의 검만 해도 집중하지 않으면 막아낼 수 없는 쾌검이다.
그런 와중에 남궁환까지 가세하여 하현에 못지않은 속도로 검을 휘두른다.
신형을 뒤로 물리기라도 하고 싶으나, 뒤로 몸을 빼는 순간 당규호의 암기가 날아올 것이 뻔하니 사살로서는 막아낼 방도가 없었다.
서걱!
얼마 지나지 않아 남궁환의 검이 사살의 손가락을 베어내는 데 성공했다.
손가락이 없는데 검을 쥘 수는 없는 법이다.
검은 그대로 땅에 툭, 떨어졌다.
순간 사살의 눈이 번뜩였다.
그는 번개 같은 움직임으로 쓰러져 있는 이살에게 다가가 그의 가슴팍에 꽂혀 있는 비도 하나를 꺼냈다.
푸학! 푸욱-
그리곤 지체 없이 자신의 심장에 비도를 박아 넣었다.
“끄윽…….”
“이런!”
급히 달려온 당규호가 응급처치를 하려 했지만, 그는 입과 상처에서 울컥울컥 피를 내뱉더니, 결국 절명하고 말았다.
그리고 이살 마저 비도를 뽑아낸 곳에서 피가 분수처럼 뿜더니 이내 죽어버렸다.
“한 명은 살렸어야 했는데, 막지 못했습니다. 이토록 가차 없이 자결해 버릴 줄…….”
“나도 막지 못했네. 이들은 자신의 삶을 최우선으로 하던 것들이다. 이기적인 것들이었지. 그런데 이렇게 자결을 택하다니. 자네의 책임이 아니네.”
당규호는 말하면서도 하현과 남궁환으로부터 시선을 떼지 못했다.
그들이 보인 무위는 실로 놀라웠다.
‘일류, 아니 어쩌면 벌써 그 이상일지도 모른다.’
취월걸개와 남궁무룡의 제자라는 하현은 그렇다 쳐도, 솔직히 말해 지금까지 남궁민에게 가려져 있던 남궁환도 이런 수준의 무공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큰 충격이었다.
심지어 남궁환은 정예대원도 아닌 일반대원이라고 들었는데.
“가주님…. 당가주님?”
당규호는 그를 부르는 하현의 목소리에 번뜩 정신이 들었다.
“그, 그래.”
“조금 이상하지 않습니까?”
“무엇이?”
“이들은 분명 살수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어째서 살수답지 않게 정공을 취한 것일까요?”
“그러게 말이다.”
당규호도 하현과 같은 의문이었는지 고개를 갸웃했다.
그런데 남궁환이 입을 열었다.
“보여주고 싶었을 겁니다.”
“보여주다니. 무엇을?”
“자신들의 실력을요.”
당규호는 지금 남궁환이 하는 말이 당최 무슨 말인지 알아들을 수 없었다.
남궁환은 슬쩍 웃음을 흘렸다.
지금 당규호가 가진 의문이 당연하다는 듯한 웃음이었다.
“이들은 자신들이 무인이 아니라 살수라는 것에 평생 열등감을 가지고 살았을 겁니다.”
“열등감이라고?”
“네. 그리고 그들이 지금까지 숨어 살았던 것에 억울함도 가지고 있었을 겁니다.”
“억울함이라….”
당규호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 보니 처음 싸우기 전에 살수라서 억울하게 당했다는 말을 하기도 했다.
“그런데 눈앞에 가주님께서 나타난 겁니다. 평생의 원수라고 할만한 가주님이.”
남궁환은 숨이 끊어진 자들을 둘러보고는 말을 이었다.
“그래서 가주님께 정공법으로 싸움을 걸어 이겨내고 싶었을 겁니다. 평생의 열등감을 털어내기 위해서요.”
“어떻게 그렇게 잘 아는가?”
남궁환이 싱긋 웃었다.
하지만 그 웃음은 어딘가 슬퍼 보였다.
“그런 건 저도 제법 겪어봐서요.”
“음…….”
당규호가 남궁환의 말에 대답하지 못하고, 침음성을 흘리자 남궁환이 대수롭지 않다는 듯 말했다.
“그나저나, 빨리 당가로 돌아가야 하지 않습니까? 서두르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그래. 서두르지.”
그들은 다시 당가로 향했다.
* * *
당가에 도착한 그들은 서둘러 채비를 했다.
하현은 채비라고 해봤자 별것 없었다.
혹시 모르니 벽곡단을 조금 챙기고, 남궁휘연에게 있었던 일을 간략히 설명한 후에 당규호를 기다리는 것.
총관은 현재 안정을 취하는 중이라 하여 만나지 않았다.
갔다 와서도 얼마든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으니.
당가의 대문 앞에서 당가주를 기다리며 하현은 혼잣말했다.
“당가주님께서는 왜 이렇게 오래 걸리시지?”
그런데 그에 대답하는 목소리가 있었다.
“아까 독공을 제대로 펼치시지 못해서 이번엔 단단히 채비하신다 했잖아.”
“형?”
남궁환이었다.
남궁휘연을 돌본다고 했던 남궁환이 어느새 채비하고 이곳에 온 것이다.
“형도 가려고?”
“응. 가만히 생각해보니 나도 가야 할 것 같아서 나왔어.”
“휘연 형님은 어떻게 하고?”
“하인에게 부탁하고 왔어. 얼마나 오래 걸릴지는 모르겠지만.”
남궁환이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하현은 그를 의아한 눈으로 보았다.
원래 이렇게까지 적극적인 남궁환이 아니다.
이런 일이 있으면 되도록 빠지려 한 그였다.
하지만 어떤 심경의 변화가 있었는지 이렇게 앞으로 나서니, 하현으로서는 반대할 이유가 없었다.
“그래 가자.”
“고마워.”
남궁환은 하현에게 고맙다고 했다.
하현이 그럴 의도로 말한 것은 아니지만, 그가 정예대원으로서 허락했다고 받아들인 듯했다.
잠시 더 기다리니 당규호가 나왔다.
조금 전까지는 가벼운 옷차림이었는데, 지금 입은 옷은 소매도 넓고 품도 넓은 옷을 입었다.
분명히 저 안에는 수많은 암기와 독이 들어 있으리라.
“조금 늦었구나. 많이 기다렸느냐?”
“아닙니다. 저희도 금방 왔습니다.”
간단한 대화를 마친 당규호는 기운을 일으켜 후각에 집중했다.
만리향의 향을 찾아내려는 것이다.
화아아-
그가 불러일으킨 기운 덕에 주변의 풀들이 사락사락 흔들렸다.
하현과 남궁환은 그를 잠자코 기다렸다.
사천당가에서는 무인이 한 사람의 몫을 할 수 있게 되었을 때, 자신만의 만리향을 제조한다.
기본적인 제조법이야 정해져 있지만, 무엇을 첨가하여 어떤 향이 나게 하는지는 다른 그 누구에게도 가르쳐 주지 않는다.
오로지 자신만 알아보고, 추적할 수 있게 하는 것.
그것이 만리향이었다.
스으읍!
당규호가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
그리곤 두 눈이 흔들렸다.
그는 이해할 수 없다는 듯, 향을 조금 더 들이마신 후에 말했다.
“아니, 이상한데?”
“무슨 일이라도 있는 겁니까?”
“아니, 취월걸개 어르신께서 분명히 남쪽으로 염강표국을 쫓아 내려가지 않았나?”
남궁환은 어리둥절한 얼굴로 답했다.
“네. 그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향이 이 근처에서 나는 것 같네. 그리 멀지 않은 곳이야. 그리고 점점…. 다가오고 있는 듯하군.”
“그게 정말입니까?”
“무슨 일이 생긴 것인가? 혹시 모르니 더욱 서둘러야겠네.”
당규호는 품에서 작은 병 두 개를 꺼내더니 각각 하현과 남궁환에게 건넸다.
“마시게.”
“이것이 무엇입니까?”
“해약(解藥)이네. 그것을 마시면 최소 세 시진 동안은 내가 쓰는 독에 내성이 생기게 만들어 줄 걸세.”
“알겠습니다.”
하현과 남궁환은 재빨리 뚜껑을 열고 마시려 했다.
그런데 그때 목소리가 들려와 그들을 제지했다.
“마실 필요 없다.”
하현과 남궁환은 병을 입 가까이 댄 채 그대로 멈췄다.
“사부님?”
“어르신?”
취월걸개였다.
평소에도 그리 깨끗해 보이지 않던 그지만, 지금은 그보다 배는 더러워 보였다.
온몸은 진흙투성이에, 군데군데는 핏자국마저 엿보였다.
당연히 그게 취월걸개의 피 일리는 없어 보였지만.
그는 자신의 몸을 내려보더니 쯧! 하고 혀를 찼다.
“떼잉, 십 년 만에 목욕을 하게 생겼구먼.”
“사부님. 어떻게 이곳에 계시는 겁니까? 염강표국은요?”
“쫓을 필요 없다. 다 죽었어.”
모두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죽다니요?”
“내 실수다. 내가 쫓는 걸 눈치챘는지, 누군가 염강표국을 죄다 죽이고 사라졌다. 원래부터 그들과 같이 있던 자인지, 혹은 다른 곳에서 왔는지는 알 수 없었다.”
“흉수는 확인하신 겁니까?”
취월걸개가 심각한 얼굴로 고개를 저었다.
“확인 못 했다. 다만 굉장한 고수일 것이야. 표국의 표사들, 쟁자수들의 무공이 아무리 보잘것없다고 해도 수십 명이나 되는 그들을 겨우 두 명이 도륙을 냈으니 말이다.”
“두 명이요?”
“그래. 상흔이 두 종류밖에 없었다. 하나는 검, 하나는 도. 시신의 흔적으로 봤을 때 그 두 명이 모조리 해치운 솜씨야.”
취월걸개가 바닥에 침을 탁 뱉고는 말을 이었다.
“그런데 너희는 왜 이렇게 오래 걸렸냐? 아직 출발도 못 한 것처럼 보이는구나.”
“저희도 중간에 싸움에 말려들었습니다.”
“그래?”
취월걸개는 하현을 위아래로 훑어보았다.
어디 다친 곳은 없는지를 살피는 듯했다.
하현이 멀쩡한 것을 확인하자, 그가 말을 이었다.
“자세한 이야기는 가면서 듣자. 일단은 개방부터 가야 한다. 이 사실을 알리고 현장을 수습해야 하니.”
“알겠습니다. 어르신.”
그들은 나온 그대로 개방으로 향했다.
개방에 도착한 그들은 새로 들은 소식에 깜짝 놀랄 수밖에 없었다.
“진선표국에 불이 나서 모조리 잿더미가 됐다고?”
진선표국은 규모가 염강표국보다도 더 작지만, 나름 사천에서 인정받기 시작한 표국이었다.
그들은 확신에 가까운 추측을 했다.
진선표국 역시 마교와 관련되어 있을 것 같다고.
취월걸개는 분타주에게 염강표국 사람들의 시신이 있는 곳을 일러 주었다.
“우리는 진선표국으로 가보자. 혹여 얻을 게 있을 수도 있으니.”
“알겠습니다.”
그들은 진선표국으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