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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궁세가 천재 외손자-122화 (122/304)

122화

“아이고! 유아야!”

조금 전 취월걸개에게 부탁했던 여인이었다.

남궁환은 그녀에게 아이를 넘겨주었다.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대협!”

그녀는 눈물을 뚝뚝 흘리면서도 연신 남궁환에게 고개를 숙였다.

남궁환은 연기를 들이마셨는지 몇 번 더 콜록대더니 대답했다.

“아이가 무사해서 다행입니다.”

“이 은혜를 어떻게 갚아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아닙니다. 무엇을 바라고 한 것이 아니에요.”

남궁환이 미소지으며 말하자, 아이를 안은 여인은 크게 감동한 얼굴이었다.

“존함을 여쭈어도 되겠습니까?”

“남궁세가의 남궁환입니다.”

“아! 남궁세가……!”

그녀는 감탄성을 숨기지 않았다.

무림을 모르는 양민이라고 할지라도 남궁세가가 얼마나 대단한 곳인지는 익히 알고 있는 듯했다.

“이곳은 위험하니, 아이를 데리고 피하세요.”

“네. 대협의 이 은혜는 절대 잊지 않겠습니다.”

여인은 남궁환을 똑바로 바라보며 말하곤 인파 속으로 사라졌다.

이윽고 전각은 완전히 불길에 휩싸였다.

주변을 보니 다행히 여기서는 더 옮겨붙을 집은 없어 보였다.

“위험했구나.”

“그러게요. 사실 들어갈 때는 아이가 있다는 소리만 듣고 들어간 건데…….”

“녀석. 그래도 다음에는 상황을 보고 들어가거라.”

“네. 조심할게요.”

말로는 남궁환을 나무랐지만, 눈빛에는 자랑스러움이 뚝뚝 묻어나오는 취월걸개였다.

자유로운 영혼이지만, 그 역시 의를 첫 번째로 생각하는 개방의 사람.

양민을 구하기 위해 불 속에 뛰어든 남궁환이 참으로 예뻐 보였다.

“어르신!”

“형!”

그때 인파를 뚫고 하현과 당규호가 나타났다.

“잘하고 왔느냐.”

“네. 불이 옮겨붙을 만한 곳은 전부 다 무너뜨렸고, 잔해도 치웠습니다.”

“저는 혹시 몰라서 나무도 몇 그루 쓰러뜨렸어요.”

“잘했다.”

하현은 아직도 연신 기침을 해대는 남궁환을 보곤 말했다.

“무슨 일 있었던 거야?”

“별일은 무슨. 아무 일도 없었어.”

취월걸개는 단호하게 말했다.

“환아. 그건 아무 일이다. 아주 잘한 일이다.”

취월걸개가 방긋 웃으며 조금 전에 있었던 일을 설명해주었다.

“형. 멋있는데?”

“민망하니까 빨리 자리 좀 피하자. 열기 때문에 아주 후끈후끈하다.”

남궁환은 화염의 열기 때문인지 혹은 이런 시선을 받는 게 낯설어 부끄러운지는 모르겠지만, 얼굴이 붉어졌다.

취월걸개는 그를 더 놀리려다 말았다.

“불길이 잡힐 생각을 안 하는구나. 얼마나 꼼꼼하게 기름을 멕여 놓은 거야? 지독한 것들. 여기는 이대로 놔둘 수밖에 없겠다. 불이 꺼지고 나서 다시 찾아오도록 하지.”

“그러면 일단 당가로 돌아갈까요?”

“아니, 개방부터 들르자. 지금쯤이면 염강표국의 조사가 끝났을 테니.”

그들은 어수선한 장내를 조금 정리한 후에 개방 성도 분타로 떠났다.

* * *

개방 성도 분타.

당규호는 먼저 당가로 갔고, 취월걸개와 하현, 남궁환만이 분타로 왔다.

“너희는 잠시 쉬고 있거라. 힘들었을 텐데. 특히 환이는 괜찮은 것 같아도 다시 한번 몸을 살펴라. 연기를 잘못 들이마셨으면 큰일이니까.”

“네. 어르신.”

취월걸개가 분타주와 이야기를 나누러 거지 움막에 들어갔고, 하현과 남궁환은 잠시 그 앞에서 걸터앉아 쉬었다.

“형. 괜찮아?”

“이젠 괜찮아. 아까는 자꾸 기침이 나서.”

“다행이네. 걱정했어.”

남궁환이 머쓱한 듯 뒷머리를 긁으며 말했다.

“사실 내가 전각에 들어갈 때까지만 해도 불이 그렇게까지 크게 붙지는 않았었거든. 그렇게 빠르게 옮겨붙을 줄 알았으면 겁나서 못 들어갔을 수도 있어.”

하현이 그를 보며 씨익 웃었다.

“아니? 그래도 형은 들어갔을걸?”

“하하. 못해, 못해.”

남궁환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러다 슬쩍 다른 쪽을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그런데…. 그 상황이 다시 오면 들어갈 수도 있겠다. 무슨 생각을 하고 들어간 게 아니었어. 정신을 차리고 나니까 내가 애를 안고 있더라. 주변은 온통 불바다고.”

“그래서 창문으로 뛰어내린 거야?”

“응. 그 정도 높이는 뛰어내릴 수 있으니까.”

그는 문득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하현에게 물었다.

“현아. 보통 사람이라면 거기서 뛰어내릴 수 없었겠지?”

“뛰려면 뛸 수는 있겠지. 다만, 무사하진 못했을 거야. 우리처럼 내공이 있는 것도 아니고, 신법을 익힌 것도 아니니까.”

“역시 그렇겠지?”

남궁환은 이번 일로 무언가 느낀 것이 있어 보였다.

그는 허공을 바라보며 무언가를 생각하는 듯했다.

“무슨 생각해?”

“그냥. 소위 말하는 협객들이, 어째서 협행을 하는지 알 것 같아서.”

“협행?”

남궁환이 고개를 끄덕이곤 자신의 손을 가슴에 가져다 대며 설명했다.

“남을 돕는다는 게 참 묘한 기분이네. 여기 어디가 간질간질 한 것 같기도 하고…. 전각에서 뛰쳐나오는 순간, 지켜보는 사람들이 내지르던 함성이 생생해. 그리고 나에게 고맙다고 하던 그 목소리. 눈빛.

남궁환은 배시시 웃어버렸다.

이런 경험이 처음이라 그런가…. 무슨 말인지 설명할 수가 없네.”

하현은 그 얼굴을 보면서 예전에 할아버지가 말해준 것이 생각났다.

“저번에 할아버지가 해주신 말이 있어.”

“조부님께서?”

“응. 우리가 협행을 해야 하는 이유에 대해서 간단하게 말해주셨거든.”

“그 이유가 뭔데?”

남궁환은 관심이 가는지 하현에게 물었다.

지금 그가 가진 의문이 풀릴 것 같은 직감이 들었다.

하지만 하현의 대답은 생각보다 싱거웠다.

“우리는 그러기 위해 태어났으니까.”

“그게 다야?”

“응. 나도 처음에 듣고 딱 형이랑 비슷한 반응이었어. 그런데 이게 다야.”

남궁환이 말없이 하현을 바라보았다.

부연 설명을 해달라는 듯한 눈빛이었다.

하현도 그 기대에 부응하려는 듯 입을 열었다.

“세상 모든 것에는 역할이 있대. 태양은 어떻게 하늘에 떠 있는 것일까? 그리고 달은?”

“그거야…. 원래부터 하늘에 있었으니까?”

하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무림인도 마찬가지야. 속된 말로 밥 먹고 칼질하는 게 다인 우리가 중원에서 인정받고 살아갈 수 있는 이유는 원래 사람들을 돕고, 지키기 위해 태어났기 때문이라고 하셨어.”

남궁환은 무언가 알 것 같은 느낌이었다.

평소에 할아버지에게 비슷한 말을 많이 들었기 때문일까? 하현의 말이 낯설지가 않았다.

“그래서 그 역할을 저버린 자들을 사파(邪派)라고 하는 거고?”

“맞아. 반대로 그래서 우리가 정파(正派)인 거고.”

여기까지 말하자 남궁환이 씨익 미소를 지었다.

무언가 하나를 깨달은 얼굴이었다.

“다행이야.”

“어떤 게?”

“나는 앞으로 사파가 될 일은 없겠어.”

그는 자신이 말해놓고서도 어이가 없었는지 쿡쿡 웃었다.

“고맙다. 누가 보면 네가 형인 줄 알겠어.”

“지금은 동생이 아니라 정예대원으로 얘기 한 거니까, 괜찮아.”

“하하. 정예대원님 덕분에 좋은 걸 배웠습니다.”

하현은 당가에서 남궁환이 했던 말을 그대로 돌려주었고, 남궁환은 그에 맞는 너스레로 화답해 주었다.

‘이번 임무에 같이 나오길 잘했어.’

둘은 동시에 같은 생각을 했다.

특히 제대로 된 강호행이 이번이 처음이나 다름없는 남궁환은 더더욱 그렇게 생각했다.

그 후로도 둘이서 이런저런 대화를 하고 있으려니 취월걸개가 분타주와의 이야기를 마치고 나왔다.

“당가로 돌아가자.”

“뭐라도 발견했대요?”

“아니. 아무것도 없단다. 제길. 내가 너무 안일했어.”

취월걸개는 마교에 놀아나는 것 같은 기분에 표정이 좋지 않았다.

솔직히 말해서 수확이 아무것도 없느냐 하면 그건 또 아니었다.

무림에서 감쪽같이 사라졌던 마교가 사실은 무림에 발을 걸치고 있었다는 것.

그리고 표국으로 위장하여 돈을 벌고 있었다는 것은 알 수 있었으니까.

“진선표국과 염강표국이 세워진 것이 대략 이십 년 전이라 한다. 그러니 그때쯤 세워진 다른 표국이 있는지부터 알아보라고 해 놓았다. 비단 여기 사천성 뿐만 아니라, 다른 성들 전부 말이다.”

하현이는 취월걸개를 보며 말했다.

“그렇다면 지금 당장 우리가 할 것은 없는 것이군요.”

“…맞다.”

취월걸개의 기분이 나쁜 이유가 바로 이것이었다.

정말 조금이나마 마교에 가까워진 것은 알겠으나, 당장에 뭔가를 할 것이 없다는 것.

조금만 더 하면 될 것 같은데, 그 조금 더 할 게 없으니 그만큼 허망한 것도 없으니까.

“일단 너희는 당가로 돌아가면 남궁세가로 돌아가라.”

“세가로 돌아가라니요?”

“휘연을 남궁세가로 데려가야 하지 않겠느냐.”

“아……!”

하현은 급격하게 돌아가는 상황에 잠시 잊고 있었다.

그가 원래 이곳에 온 이유 중 가장 큰 것이 남궁휘연의 부상이었다는 것을.

“총관 아저씨는요?”

“그자도 일단은 네가 데려가는 게 좋겠다. 원래는 무림맹으로 보내야 한다. 혹시 더 들을 말은 없는지, 만에 하나 첩자는 아닌지.”

하현은 속으로는 총관이 첩자일 리 없다고 생각했으나, 굳이 말로 꺼내지는 않았다.

사사로운 정 때문에 일을 그르치고 싶지는 않았으니까.

“허나, 무림맹까지 데려갈 사람이 문제다. 지금 상황에는 당장 믿고 총관을 맡길 사람이 없어.”

취월걸개는 말하면서도 주변에 듣는 자는 없는지를 살폈다.

사천에서 제법 오래되었고, 규모가 있는 표국 두 개가 마교였다.

이런 상황에 완전히 믿을 수 있는 자는 없었다.

“그래서 내가 남궁세가에 다시 갈 때까지 잘 부탁한다. 사정을 이야기하면 네 할애비도 받아 줄 것이야.”

“그럼 사부님은요?”

“나는 여기 조금 더 남아서 샅샅이 조사를 해봐야 할 것 같다. 다 불타버린 진선표국이지만, 무언가 건질 게 없나 찾아봐야지. 그리고 염강표국도 한 번 더 가봐야 할 것 같고.”

“제가 도울 건 없을까요?”

취월걸개는 진지하게 물어오는 하현이 귀여웠는지 등을 토닥여주고는 말했다.

“괜찮다. 뭐든 알게 되는 게 있으면 서신을 제일 먼저 보내 줄 테니, 세가에 가 있거라.”

하현이 잠시 생각하더니 말했다.

“그런데, 지금 저희끼리만 움직이면 조금 위험하지 않을까요?”

“위험해?”

“아직 존재 자체도 모르고 있던 진선표국까지 지체 없이 불태워 버린 그들입니다. 사천사살의 일도 있고요.”

취월걸개가 고개를 끄덕였다.

잠시 잊고 있었지만, 하현과 남궁환은 무림 초출이었다.

무공이 엄청나게 뛰어나다고는 하나, 마교에서 보낸 격이 다른 고수가 나올 수도 있는 법이었다.

“그럴 수도 있겠구나. 그런데 너희가 조용히 떠나면 그들도 모르지 않겠느냐? 하루에 당가를 들락날락하는 사람은 수도 없이 많으니까.”

“맨몸으로 가거나, 말을 타고 가면 그럴 수도 있죠. 그런데 저희는 무공을 모르는 총관과 크게 다친 휘연 형님을 데리고 가야 합니다. 부득이 마차를 타고 가야 하는데, 이 시점에 당가에서 큰 마차가 떠나면 관심을 받을 수도 있지 않을까요?”

“끄응…. 구구절절 옳은 소리만 하는구나.”

취월걸개는 결국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원래는 이러지 않았는데, 왜 이렇게 말을 잘하는 게야?”

“다 사부님께 배운 겁니다.”

“난 이런 거 가르쳐준 적 없다!”

딱 잘라 말하는 취월걸개였지만, 은근히 웃음을 흘리는 것이 기분이 나빠 보이지는 않았다.

“환이는 몸은 좀 괜찮고?”

“아니요. 저도 며칠 안정을 취해야 할 것 같아요.”

“뭐……?”

취월걸개는 조금 놀랄 뻔했으나, 남궁환의 장난스러운 표정을 보고는 그가 거짓말을 했음을 깨달았다.

“둘이 완전히 한통속이구나. 형제 없는 사람 서러워서 원.”

“어쨌든 당가로 돌아갈까요?”

“그래. 너희 맘대로 해라.”

“넵!”

하현과 남궁환이 앞장서고 취월걸개가 그 뒤를 따랐다.

앞을 보고 있기에 하현과 남궁환은 볼 수 없었지만, 취월걸개의 입가에는 따뜻한 미소가 걸려 있었다.

* * *

사천당가는 떠나기 전과 별반 다를 게 없었다.

남궁휘연은 점혈 덕에 움직이지 못하여 심심했는지 그대로 쓰러져 잠에 빠져 있었고, 가주실 옆 비밀방에는 총관도 잘 치료받고 있었다.

“며칠 더 신세 져도 되겠는가?”

“물론입니다. 편하실 때까지 있으셔도 됩니다.”

“그런 말 함부로 하다가 이 거지가 평생 눌러살겠다고 하면 어쩌고?”

“그렇게 되면 영광이죠.”

“여기나 저기나, 말 잘하는 것들밖에 없구만.”

취월걸개는 입을 삐죽였다.

그 모습을 보고 당규호가 그의 관심을 돌리려는 듯 급하게 말했다.

“어르신, 제가 하현이를 따로 만나봐도 되겠습니까?”

“현이를? 왜. 당문으로 들어오라고 꼬셔보려고?”

“설마요. 저는 검존님과 어르신의 제자를 넘볼 정도로 간이 큰 사람이 아닙니다.”

“그러면 왜?”

“훗날 무림의 큰 별이 될지도 모르는 아이에게 미리 잘 보여 놓는다고 하면…. 너무 솔직합니까?”

취월걸개가 큭큭 웃었다.

“아니. 현명한 게지. 그런데 고놈 눈이 높아서 말이야. 잘 보이기가 힘들 것이다.”

당규호는 하하 호탕하게 웃고는 말했다.

“조언해주셔서 감사합니다. 하지만 그래도 이건 관심 있어 할 것이 분명합니다.”

“그게 뭐냐.”

당규호는 서랍에서 고급스럽게 장식된 목함 하나를 꺼냈다.

그리고 취월걸개에게 보이도록 목함을 열었다.

“이건?”

그 안에는 그가 쓰는 비도(飛刀)와 비슷한 모양의 비검(飛劍) 네 자루가 뉘어있었다.

그는 자신 있게 말했다.

“선대께서 사용하시던 비검입니다. 오랜 세월이 지나도록 날이 상하지 않은 특상의 물건이지만, 저는 비검술이 아닌 비도술을 주로 익혔기에 오래도록 사용하지 않은 물건이기도 하죠.”

얼핏 보기에도 그가 자심감을 가지기 충분할 만큼 좋은 물건으로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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