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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궁세가 천재 외손자-126화 (126/304)

126화

하현의 의도를 눈치챘기 때문일까?

마교도의 눈빛이 달라졌다.

하현은 저 눈빛을 잘 알고 있다.

죽음을 도외시하는 눈빛.

예전에 혈검대와의 싸움에서 그들이 이런 눈빛을 했다.

지금 당장 죽더라도 상대는 데리고 가겠다는 집념.

스윽-

한 발을 뒤로 빼며 그들을 맞을 준비를 한다.

이제부터는 더욱 힘들 것이다.

이제 그들은 선천지기를 아까워하지 않고 사용할 것이며, 동귀어진은 기본으로 생각하고 있을 것이다.

“무엇이 당신들을 그렇게까지 하게 만드는 겁니까?”

“…….”

당연하게도 하현의 질문에는 답이 없었다.

아니, 답을 하긴 했다. 말 대신 검으로.

하현은 피하지 않았다. 그의 검에서는 바람이 이는 듯했다.

쩌엉!

하현의 검격에 검을 쥔 마교도의 손아귀가 찢어지며 검을 놓쳤다.

그리고 검격은 멈추지 않았다. 부드럽게 몸을 타고 올라간 검이 목에 깊은 흔적을 남기고 돌아왔다.

“끄윽.”

단말마도 남기지 못하고 쓰러지는 그의 뒤로 이번엔 둘이 한꺼번에 튀어나왔다.

그런데 앞선 이는 검을 휘두를 의지조차 보이지 않았다.

그는 자신이 하현의 검에 죽더라도 끝까지 하현의 몸을 끌어안을 작정을 하는 듯했다.

움직임을 제한하면 뒤따라오는 자의 검으로 함께 꿰뚫을 작정이었다.

턱!

하현은 순식간에 검을 다시 검집에 착검했다.

그리곤 검을 뽑지 않고 검집째로 허리에서 끌러버려 휘둘러 쳤다.

뻐억!

죽음을 각오하던 그는 마음대로 죽지도 못했다.

검집에 턱을 제대로 얻어맞은 그는 이빨을 우수수 토해내며 멀찍이 날아갔다.

당장에 즉사는 하지 않았더라도, 턱뼈가 모조리 부서졌으니, 평생 죽만 먹으며 살아야 할 것이다.

이자가 하현을 끌어안는 것을 실패했으니, 당연히 뒤따라오는 자는 검을 내지르기를 포기하고 뒤로 빠졌다.

‘몇 명이나 상대했지?’

정신이 없는 탓에 몇 명이 남았는지도 정확히 헤아릴 수 없었다.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저들은 여기서 멈출 생각이 없어 보인다는 것이다.

쿠아앙!

갑자기 들려오는 굉음에 슬쩍 눈을 돌려 보았다.

취월걸개의 장이 담벼락에 닿으며, 담이 무너져 내리는 소리였다.

“쥐새끼 같은 것. 잘도 피하는구나.”

“어디 끝까지 광대놀음 해보아라!”

여유로웠던 검마의 표정에도 어느덧 초조함이 깃들이 시작한다.

예상보다 취월걸개와의 싸움이 지지부진하게 흘러갔기 때문이다.

‘혈검대주와 남궁무룡이 양패구상을 보였다던데. 이 늙은이는 그보다 한 수 아래라 하였고.’

지난 삼십 년간 숨어 지내며 검마는 스스로 발전했다고 느꼈다.

혈검대주와 직접 맞붙어 본 적은 없지만, 그에게 많이 근접했다고 생각한 것이다.

‘언젠가 내가 그 자리를 가지려 했는데…….’

마교는 기본적으로 강자존의 원칙을 따른다.

정해진 서열을 뒤집고 싶으면 언제든 호법회의 승인을 받아 윗서열에게 도전할 수 있고, 도전을 받은 자는 그 도전을 피할 수 없다.

그래서 같은 마교인들끼리도 서로 피를 보는 경우가 허다했다.

그런데 검마가 목표로 삼고 있던 혈랑이 어이없게도 죽어버렸다는 소식을 들은 것이다.

“검마. 표정이 좋지 않은데? 왜. 상황이 생각처럼 흘러가지 않는가?”

취월걸개의 말대로 지금 상황은 좋지 않았다.

그들의 숫자가 훨씬 많았음에도 불구하고, 하현과 남궁환. 두 어린 무인에게 맥을 못 추는 판국이었다.

“닥쳐라.”

“혹시 검존보다 한 수 아래인 취월걸개는 쉽게 상대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나?”

“뭐라?”

검마는 움찔했다.

정곡을 찔린 탓이었다.

“무룡이가 그러더군. 혈랑이 말년에 큰 깨달음을 얻었나보다고. 지금까지 만나 본 무인 중 가장 강했다고 한다. 삼십 년 전, 너희 교주보다도 더 강했다던데?”

“……?!”

“혈랑과 검존이 양패구상했다. 그 문장 하나만 가지고 이렇게 판단했겠지? 나는 혈랑과 비슷한 수준인데, 그렇다면 검존과도 할 만하겠다. 그런데 검존보다도 약한 취월걸개는?”

취월걸개는 입꼬리 한쪽을 씨익 올렸다.

“나 혼자로도 충분하다.”

“치잇……!”

“그런 알량한 판단의 결과가 이것이다. 넌 아직 나도 넘지 못했어.”

검마의 눈에서 불이 나는 듯했다.

“닥쳐라 이 거지 놈!!”

“그것 봐라. 정곡을 찔리니 화내는 것 말고는 할 것이 없지?”

너는 나보다 약하다.

힘을 숭상하는 마교에서 이것보다 큰 모욕은 없었다.

그는 물불을 가리지 않고 취월걸개에게 달려들었다.

쩌어엉-!!

두 거대한 기운의 충돌은 다시 한번 대기를 진동시켰다.

그 굉음은 현장에 있는 모두의 이목을 돌리기에, 충분했다.

다만, 하현만은 달랐다.

그는 재빠른 손놀림으로 품 안에 손을 집어넣었다.

품 안에서 느껴지는 네 자루의 비검.

파앗! 푸욱!

그중 하나가 마교도의 목에 적중했다.

암기를 던지는 힘이 넘치면 과녁을 관통하고 만다.

그렇다고 힘이 부족하면 치명상을 입힐 만큼 충분히 살을 찢고 들어가지 못한다.

하현이 던진 비검의 세기는 딱 적당했다.

검 자루만을 남기고 검 날은 전부 박혀있었다.

“큽……!”

아무리 목에 박혔다 한들, 이 정도로 즉사하진 않는다.

하지만 목에 비검이 박힌 마교도는 이를 뽑아낼 수는 더더욱 없다.

검을 뽑는 순간 피가 분수처럼 터져나갈 것이 분명하기에.

타다다-

하현이 보법을 밟아 그에게 접근하며 검을 내리쳤다.

그 덕에 다른 마교도들이 정신을 차리고 하현의 검을 막았다.

“검을 막아!”

챙!

검끼리 맞부딪치는 소리가 청명하게 울려 퍼졌다.

생각보다 하현의 검이 가벼웠다.

검을 직접 막은 그는 조금 전과는 다른 무게감에 의아함을 느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그의 목에 무언가 들어갔다 나오는 것을 느꼈다.

푸슉!

조금 전 다른 이에게 던졌던 비검이었다.

하현은 왼손으로 비검을 쥐고는 그대로 목을 찔렀다 뺀 것이다.

“커억!”

마교도는 목에서 쏟아지는 피를 막으려 양손으로 목을 부여잡고 그대로 쓰러졌다.

“후우.”

하현이 피가 묻어 미끈거리는 왼손을 탈탈 털며 아직 서 있는 자들을 응시하였다.

사람이 한 명 죽을 때마다 전력은 점점 약해진다.

싸움이 계속될수록 저들이 이길 확률은 점점 낮아진다는 소리.

그런데도 이들은 물러설 기색조차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다시 물었다.

이 의문에 누군가 대답해주기를 바라면서.

“어째서 이렇게까지 하는 겁니까?”

하지만 당연하게도 돌아오는 대답은 없다.

하지만 하현은 이번에는 대답을 들은 듯했다.

상대의 눈빛에서, 행동에서, 충분히 읽어낼 수 있었다.

“그것이 당신들의 정의(正義) 군요.”

이제야 소림 방장이 했던 말의 뜻이 온전히 이해가 간다.

악한 것보다 잘못된 정의가 더 위험하다는 것이 무엇인지.

물론 이전에도 이해하고는 있었다.

다만, 이렇게 눈앞에서 마주하니 더욱 실감이 갈 뿐.

이들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싸우다 죽을 개죽음이 아닌, 자신들의 교를 위한 순교자(殉敎者)라고 생각할 것이다.

“당신들의 정의는 틀린 정의입니다.”

순간, 하현의 마음이 편해진다.

큰 번뇌를 벗어버린 듯, 몸도 가벼워졌다.

투욱-

하현은 가볍게 땅을 박찼고, 그의 신형이 시야에서 사라졌다.

그를 상대하던 마교도들이 움찔했으나, 하현은 그 방향으로 가지 않았다.

하현을 다시 발견한 곳은, 남궁환과 맞붙던 마교도들의 옆이었다.

푸학!

하현의 검이 마교도의 팔 하나를 끊어냈다.

거침없는 검놀림 이었다.

그에 화답하듯, 수비적으로 운용하던 남궁환도 무한보를 밟아 나왔다.

마치 제자리에서 퉁겨오듯 다가오는 남궁환의 검에 마교도 하나는 가슴을 꿰뚫렸다.

남궁환도 진작 이럴 수 있었건만, 하지 않은 이유는 공격한 다음이 문제였기 때문이다.

찌르기는 가장 거리도 길고, 위협적인 동작이지만, 검을 회수할 때는 여지 없이 무방비가 된다. 그렇다고 검을 놓고 뒤로 빠지자니, 병기 없이는 다음 싸움을 지속할 수가 없다.

카앙!

가슴에서 검을 뽑아내는데, 바로 옆에서 불꽃이 튄다.

그에게 날아오는 검을 하현이 튕겨준 것이다.

남궁환은 이것을 믿고 검을 내지른 것이었다.

“어떻게……?!”

하현과 맞붙던 마교인들이 서둘러 달려왔을 때는 이미 세 명이나 더 유명을 달리한 뒤였다.

그들의 얼굴에는 짙은 패배감이 깃들었다.

그때 하현의 눈이 번뜩 뜨였다.

그와 싸우던 이들 모두가 이곳에 온 것은 아니었다.

네 명은 이곳으로 왔는데, 나머지는 취월걸개와 검마가 싸우는 쪽으로 갔다.

검마를 지원해주기 위해 간 것이다.

“형.”

“왜.”

“지금 여기는 다시 여섯 명이야. 버틸 수 있지?”

남궁환이 쓰게 웃었다.

“아까보다는 두 명이 줄었네?”

“버틸 수 있지?”

남궁환이 고개를 끄덕였다.

하현은 남궁환을 믿었다.

자신은 ‘이겨라.’ 가 아닌, ‘버텨라.’라고 했다.

지금 남궁환의 실력으로 여섯을 모두 죽이는 것은 힘들지 몰라도, 창궁검법을 잘만 펼친다면 막아내는 것은 충분히 가능하다.

“좋아.”

하현은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그와 대치하고 있는 마교도들의 얼굴에 당혹이 서린다.

이 와중에 남궁환을 혼자 두고 자리를 비울 줄 몰랐을 것이다.

부왕-!

하지만 남궁환이 검을 휘두르자, 하현에게서 시선이 멀어졌다.

당장 눈앞의 남궁환도 호락호락한 상대가 아니었다.

저벅- 저벅-

하현은 천천히 검마에게 다가간다.

마교도들은 잘못된 선택을 했다.

검마를 지원하러 온 그들이건만, 두 명의 초절정 고수들이 맞붙는 여파에 휘말릴까 아무런 도움도 되지 못하고 발만 동동 구르고 있다.

콰앙! 콰앙-!

둘이 부딪힐 때마다 엄청난 기파가 몰아쳤다.

하현은 이런 싸움은 처음 보았다.

‘할아버지와 혈랑이 싸울 때는 오히려 더 조용했는데.’

그때는 몰랐건만, 이제는 이해할 수 있다.

예전의 그 싸움이 얼마나 수준 높은 싸움이었는지.

할아버지와 혈랑은 직감적으로 알고 있었을 것이다.

서로의 목숨을 뺏는 데에는 많은 합이 필요 없다는 것을.

그래서 화려한 싸움이 일어나지 않았던 것이다.

하현은 발걸음을 옮기는 와중에도 한 단계 더 진화하고 있었다.

예전에 봐두었던 싸움이 이제야 이해가 되며 그를 한 차원 더 높은 경지로 이끌었다.

성취에 비해 수준이 너무 높아서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네 녀석은?!”

천천히 걷는 것처럼 보이던 하현은 어느새 검마의 지척에 다다랐다.

이제야 그를 발견한 취월걸개마저 깜짝 놀랐고, 검마는 더더욱 놀랐다.

쒜에엑-!

검마의 검이 취월걸개가 아닌, 하현에게 쏟아졌다.

취월걸개의 장에 몸이 터지더라도, 하현만은 데리고 가겠다는 듯 극한으로 기운을 욱여넣은 검이었다.

걸리는 무엇이든 갈라버리겠다는 그의 의지가 엿보였다.

‘보인다.’

그런데 힘이 너무 들어갔기 때문일까. 아니면 하현이 새로운 세계를 보고 있어서일까.

검의 궤적이 선명하게 눈에 들어왔다.

일전에도 이런 경험은 몇 번 한 적이 있었다.

하지만 지금처럼 선명하게 보이는 것은 처음이었다.

스윽- 콰앙!

받아내기에 버거울듯한 기력의 검.

하현은 그 검을 받아내지 않았다.

간단한 발놀림으로 피해냈을 뿐.

검마가 내지른 회심의 일격이 애꿎은 땅만 파내었다.

“헙!”

그가 헛숨을 들이켰다.

검을 든 손이 아닌, 아무것도 들지 않았던 하현의 왼손이 자신을 향해 뻗어오고 있었다.

필사적으로 고개를 틀어 피해냈다.

아니, 분명히 피해냈다고 생각했다.

서걱-!

그러나 손바닥에서 작은 무언가가 튀어나오듯 솟아올랐다.

당규호에게 받았던 비검이었다.

비검은 검마의 귀를 훑고 지나갔다.

“끄아악-!”

검마가 귀를 부여잡고, 튕겨 나가듯 뒤로 신형을 물렸다.

그가 손을 떼어냈을 땐, 마땅히 있어야 할 것이 없었다.

하현의 비검에 귀가 깨끗하게 잘려 나간 것이다.

“죽일 놈!”

검마는 노호성을 터뜨렸으나, 앞으로 달려들진 않았다.

귀에서 쏟아져 목덜미를 뜨듯하게 적시는 피가 오히려 그를 냉정하게 만들었다.

조금 전 하현의 수는 그로서도 피할 수 없는 속도였다.

이대로 붙으면 필패를 면치 못했다.

저벅-

하현이 한 발자국 다가가며 말했다.

“아쉽습니다. 그곳을 노린 게 아닌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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