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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궁세가 천재 외손자-128화 (128/304)

128화

취월걸개의 목소리는 이곳에 있는 모두의 귀에 생생히 들렸다.

그의 웅혼한 내력을 가득 담은 목소리이니 귀를 막고 있어도 똑똑히 들렸으리라.

“물러서라!!”

가장 앞섰던 마검원 무사가 고슴도치가 되는 것을 보고 검마가 다급히 외쳤다.

예상치도 못한 급습이었다.

“어떻게 당가 것들이……?!”

마교의 군사, 마뇌(魔腦)의 계획이 어긋나는 일은 거의 없었다.

그의 계획대로라면 사천당가는 지금쯤 모두 불타서 재가 된 진선표국에 있어야 했다.

더군다나 일개 무사들만 온 것이 아니었다.

조금 전 하늘에서 내린 암기의 비는 가주들에게만 전해 내려온다는 사천당문의 비기 만천화우.

그 말인즉슨 현재 당가주 역시 이곳에 지원을 왔다는 소리였다.

“이게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이란 말이야!”

그가 분통을 터뜨리며 취월걸개를 노려보았다.

취월걸개는 그 눈빛을 담담히 받아내며, 옆에 있는 하현과 남궁환을 바라보았다.

“혹여라도 먼저 내빼겠다고 한 사람이 있었으면 아주 개망신을 당할 뻔했구나.”

“그러게요.”

“환이는 아까 각오 잘 들었다. 이제 살아났으니 수련을 정말로 열심히 하겠구나?”

“이런, 언제나 입조심을 해야 했었는데 멋있는 척을 하려다 앞으로 큰일이네요.”

그들은 웃음까지 흘렸다.

그때 어느새 그들의 지척까지 따라붙은 당규호가 외쳤다.

“어르신! 얘들아!”

“당가주님!”

“제때 도착해서 다행입니다.”

“너무 멋지게 나타난 것 아닌가? 누가 보면 주인공인 줄 알겠어.”

당규호가 빙긋 웃었다.

“어르신 잊으셨습니까? 이곳은 사천입니다. 사천에서의 주인공은…. 저희 사천당가입니다.”

“그래. 덕분에 살았다.”

그는 당규호의 어깨를 쳐주고서는 다시 표정이 진지해지며 턱으로 검마 쪽을 가리켜 말했다.

“저대로 보낼 셈이냐?”

당규호의 만천화우는 끝났지만, 그 뒤의 당가 무인들은 쉴 새 없이 암기를 쏘아대고 있다.

마교도들은 몹시도 당황했는지 뒤로 몇 발자국씩 연신 물리고 있었다.

하현과 남궁환이 그 모습을 아주 잠시 지켜보다 고개를 저었다.

“아니요. 저대로 보낼 순 없지요.”

“맞습니다. 분위기도 다 넘어온 마당에.”

“만천화우를 또 펼칠 수는 없는 겁니까?”

당규호가 양팔을 들어 보였다.

아침까지만 해도 장포가 하도 두둑해, 두꺼운 옷을 입은 줄 알았다.

허나 인제 보니 굉장히 얇은 옷이었다.

그 사이에 수백, 수천의 임기가 숨어 있었던 것이다.

“만천화우는 정말 강력하지만, 한 번 사용하면 준비시간이 필요하지. 저 수많은 암기를 모두 준비해야 하니까. 만천화우가 극성의 경지에 오르면 암기들을 내 몸처럼 자유자재로 움직일 수 있다고는 하던데, 나는 그 정도 실력은 되지 못하네.”

그는 소매에서 병 세 개를 꺼내 각자 하나씩 건넸다.

“대신 나는 독공을 깊이 수련했지. 이걸 마시게. 어르신도 드십시오.”

그들은 곧장 해독제를 마셨다.

굉장히 쓸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는 시원한 맛이었다.

“이거라면 계속 날뛸 수 있겠군.”

취월걸개는 기꺼운 듯 낄낄 웃으며 말했다.

“좋습니다. 당가주님. 저희 셋이 앞장서겠습니다.”

“얼마든지. 그리고 해약을 먹었다고 해도 독이 완전히 면역되는 것은 아니네. 내가 조심하겠네.”

“알겠습니다.”

그들은 서로 눈이 마주쳤고.

파악!

그리곤 앞으로 박차고 나갔다.

가장 빠르게 앞으로 나간 취월걸개가 목표하는 곳은 정해져 있었다.

“검마!”

그의 눈에는 오로지 검마밖에 보이지 않는다는 듯 그는 일직선으로 달려갔다.

두두두두!

땅을 밟아가는 취월걸개의 발소리가 경쾌하게 울려 퍼졌다.

그는 거대한 존재감을 숨기지 않았다.

취월걸개의 기백에 움찔하는 자마저 있을 정도였다.

“이 미친 거지가!”

검마 역시 취월걸개를 똑바로 바라보며 소리쳤다.

그리고 할 수 있는 가장 빠른 속도로 인파를 헤집고 앞으로 나섰다.

쾅!!

전속력으로 달려온 취월걸개와 온 힘을 다해 검을 휘두른 검마의 검이 부딪히자 굉음과 함께 거대한 기파가 몰아쳤다.

가까이에 있던 일반 마교도는 버티지 못하고 그만 자리에 주저앉을 정도의 기파였다.

“네놈이라도 데리고 가겠다……!!”

“할 수 있으면 해봐라!”

팍! 팍! 척! 척!

아주 짧은 순간에 몇 번의 합을 주고받았다.

금나수의 수법으로 검마의 팔을 제압하려 하면 검마가 겨우 퉁겨내고.

취월걸개의 급소를 노리는 검마의 검은 강철만큼 단단한 취월걸개의 손바닥이 막아내는 연속이었다.

팟!

합을 겨루던 그들이 떨어지며, 소강상태가 만들어졌다.

서로를 노려보고 있는 와중, 취월걸개의 얼굴엔 조금씩 미소가 피어올랐다.

“왜, 왜 웃는 것이냐!”

“지금 설마 대등하다고 생각하는 건 아니겠지?”

“뭣이라?!”

“네 주변을 보아라!”

검마가 반사적으로 주변을 되돌아보았다.

“쿨럭, 쿨럭!”

“끄아악!”

“내 눈. 내 눈이!!”

주변 상황은 좋지 않았다.

목에 칼이 떨어져도 꿈쩍 안 할 것 같던 검마원 무사들은 괴로움에 몸부림치고 있었다.

검마는 그들의 상태를 한눈에 알아보았다.

“독공?! 이런 비겁한……!”

“비겁? 네 입에서 비겁이라는 말이 나오다니, 참으로 우습구나!”

끊임없이 날아오는 암기.

그리고 그 암기에 발라져 있는 독.

게다가 물 만난 물고기처럼 여기저기를 휘젓고 다니며 독무를 피워 올리는 당가주까지.

아비규환이 따로 없었다.

그 와중에 하현과 남궁환은 독에 당해 무방비인 무사들을 차례로 베어나가고 있었다.

무리하지 않는 선에서 한 번의 칼질에 한 명씩.

실로 냉정한 처사였다.

“원주님! 몸을 빼셔야 합니다!”

“검마님! 이대로라면 개죽음입니다!!”

그의 직속 부하들이 검마에게 소리쳤다.

검마는 허망한 눈으로 전장을 둘러보다가, 입술을 으득 깨물었다.

어찌나 세게 물었던지 터진 입술에서 피가 흘러나왔다.

“다음에, 다음에는 꼭 네 멱을 따주마.”

“어딜 가려고!”

“원주님을 비호해라! 취월걸개의 앞을 막아라!”

검마는 미련 없이 뒤돌았다.

취월걸개는 그를 따라가려 했으나, 막무가내로 십 수명의 무사가 달려드는 바람에 그럴 수 없었다.

땅굴로 들어가기 전, 검마는 취월걸개와 하현을 한 번씩 노려보았다

“이 수모는 기필코 언젠가 갚아주마……!”

그는 으르렁거리듯 말하고는 구멍으로 사라져버렸다.

그러자 그 구멍을 막아내듯 마검원 무사들이 구멍을 에워쌌다.

“검마를 쫓아야 한다!”

취월걸개가 소리치자, 당가 무사 하나가 대답했다.

“쫓을 수 없습니다. 완전히 틀어막았습니다!”

죽어서 쓰러질 때도 검마원 무사들은 구멍 안으로 쓰러졌다.

죽은 시체라도 쌓아 구멍을 막아버릴 요량으로 보였다.

당규호는 질린다는 듯 혀를 내둘렀다.

“미친것들…! 어디서 이런 충성심이 나오는 겁니까?”

“마교도 교(敎)다! 종교만큼 인간을 미치게 만드는 것이 없지!”

취월걸개는 당규호에게 말하면서도 차근히 눈앞에 적들을 쓰러뜨려 갔다.

그는 조바심을 내지 않았다.

“먼저 정리부터 해라! 사로잡을 놈들은 사로잡고, 죽일 놈들에겐 손속의 사정을 봐주지 말아라!”

“알겠습니다!”

마검원 무사들은 쓸려오는 파도에 버티려는 것처럼 서로 등을 맞대고 끈질기게 시간을 끌었다.

하지만, 아무리 그들이 훈련받은 무인들이라고 할지라도, 취월걸개라는 초고수의 존재와 당가의 암기와 독.

그리고 가장 앞에서 냉정하고 용맹하게 싸우는 두 어린 무인을 당할 재간이 없었다.

털썩-

그 덕에 가장 마지막에 남은 자가 쓰러지기까지는 일각이 채 걸리지 않았다.

“어디 다친 자는 없느냐?”

마지막에 쓰러진 마교도가 절명한 것을 확인한 당규호가 당가 무사들을 돌아보며 물었다.

“네. 사망자는 물론 부상자도 없습니다.”

“그래. 다들 고생 많았다.”

남은 마교도 들은 최대한 시간을 끌기 위하여 싸우는 내내 수비적으로 나왔다.

게다가 당규호의 지휘에 따라 철저히 거리를 두고 싸웠기에 피해를 전혀 입지 않을 수 있었다.

물론 전장의 가장 앞에서 날뛰었던 세 명 역시 다치지 않은 것은 매한가지였다.

‘저 둘은…. 볼수록 탐이 나는군.’

그중에 취월걸개는 원래부터 날고 긴다 하는 초고수이니 그렇다 쳐도, 아직 약관도 되지 않은 남궁세가의 두 무인이 보여준 신위는 대단했다.

“사부님. 검마를 추적해야 하지 않아요?”

“추적? 이미 멀리 도망쳤을 것이다. 그리고 저 입구를 막고 있는 시신들을 치우고 가야 하는데, 그렇게 되면 시간은 더욱 지체되겠지.”

“그러면 이대로 보내주어야 하나요?”

남궁환이 물으며 취월걸개를 바라보았다.

그런데 취월걸개가 비릿한 웃음을 짓고 있었다.

마치 선물을 숨기고 있는 것 같은 표정이었다.

“그래. 이대로 보내주자. 그놈이 마교로 돌아갈 때까지.”

“무슨 수를 써 놓으셨군요?”

그가 깊은 미소를 지으며 품에서 작은 무언가를 꺼내 앞으로 내밀었다.

그것은 조금 전 마신 해독제가 들어 있던 것과 비슷하게 생긴 작은 유리병이었다.

“이게 무엇입니까?”

“병이지. 보면 몰라?”

그때 당가 무사들에게 무언가를 말하고 있던 당규호가 취월걸개가 들고 있는 유리병을 보고 놀라며 다가왔다.

“어르신! 이것은, 제가 일전에 드렸던 만리향 아닙니까?”

“클클. 너는 알아보는구나.”

이것은 어제 땅굴을 빠져나오고 나서 수레바퀴 자국을 따라가기 전 취월걸개가 당규호에게 받아냈던 만리향이었다.

“저번에 다 쓰셨던 게 아닙니까?”

“아주 혹시 몰라서 조금 남겼지. 양이 많으면 좋겠지만, 없어도 찾을 수 있는 것 아니야?”

“그렇습니다! 그렇다면 혹시……?!”

취월걸개가 의기양양하게 말했다.

“그래! 마지막에 굳이 가까이 붙어서 합을 겨룬 이유는 이것을 검마놈에게 묻히기 위함이었다.”

“그랬군요!”

“그래. 네 놈의 만리향은 지독해서 물에 들어가도 씻기지 않을 테니까.”

“사실이긴 한데, 지독하다고 표현하시니 뭔가 찜찜한 기분이긴 합니다.”

“뭐가 찜찜해? 검마가 만약 이대로 마교로 도망쳐 준다면 우리에겐 가장 좋은 일일 텐데.”

모두가 고개를 끄덕였다.

마교의 위치를 알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다.

“규호야. 이제 다 쉬었으면 빨리 냄새를 맡아라.”

“그러면 굴 입구는 당장 정리할 필요도 없을 것 같습니다.”

취월걸개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굳이 비좁은 땅굴로 갈 필요가 없으니 말이다. 출구가 있는 곳은 이미 알고 있지 않느냐?”

“네. 똑똑히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래. 그러니 빨리 맡아라.”

“자꾸 그렇게 말씀하시니 개가 된 기분입니다.”

당규호는 투덜거리면서도 다시금 기운을 끌어올렸다.

그가 다시 눈을 떴을 때.

그는 한쪽 방향을 가리키고 있었다.

“저쪽입니다! 이대로 일직선으로 달려가면 만날 수 있을 겁니다.”

“그래. 그러면 바로 출발해야겠다.”

“제가 같이 가겠습니다. 중간에 방향을 틀 수도 있으니까요.”

“좋다. 현이랑 환이는 당가로 돌아가서 좀 쉬거라.”

하현이 취월걸개의 소매를 붙잡고 고개를 저었다.

그도 가고 싶다는 표현이었다.

“하여간, 말 안 듣는 제자로는 네가 무림 제일일 것이다. 환이 너는?”

“저도 따라가고 싶은데, 기운이 바닥났습니다. 시간이 조금 필요할 것 같아요.”

“그래. 고생 많았지.”

취월걸개는 이렇게까지 노력한 남궁환이 기특한지 그의 등을 두드려주었다.

“자. 그럼 가자. 이번에는 많은 인원이 갈 필요는 없다. 내 신법을 따라올 수 있는 자는 어차피 이 둘밖에 없으니, 둘만 같이 가자.”

“알겠습니다. 식솔들에게 당가로 돌아가 있으라 말하겠습니다.”

당규호는 무인 중 우두머리로 보이는 자에게 장내를 정리하고 세가에 돌아가 있으라 말한 뒤에 취월걸개 옆에 섰다.

“가자. 이번에야말로 저 마교놈들의 본거지를 찾아내는 것이다.”

취월걸개와 당규호 그리고 하현은 힘차게 발걸음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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