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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궁세가 천재 외손자-130화 (130/304)

130화

하현이 취월걸개와 함께 한창 검마를 쫓고 있을 때.

남궁환은 터덜터덜 당가로 돌아가고 있었다.

당가 무사들은 어차피 당가로 가는 것이라면 같이 가자고 했지만, 남궁환은 거절했다.

잠시 혼자 있는 시간을 가지고 싶었기 때문이다.

“후우...”

그는 일부러 먼 길을 빙 돌아가며 한숨을 내쉬었다.

“약한 것은 나 혼자만의 문제가 아니었구나.”

풀죽은 얼굴로 혼잣말을 내뱉었다.

조금 전의 경험은 그에게 큰 충격으로 다가왔다.

“당가에서 제때 와 주었기에 망정이지, 만약 오지 않았다면…….”

그는 말을 이을 수 없었다.

그 순간의 절망감이, 공포가 떠올랐기 때문이다.

만약 취월걸개, 하현과 그 셋이서 마교도들을 상대했다면 죽음을 면치 못했으리라.

그가 이렇게 심마에 빠진 이유는 단순히 죽을 위기에 처했었다는 것 때문이 아니었다.

“모두 나 때문에 죽을 뻔한 거야.”

그가 느꼈던 절망감과 공포는 자신의 위험에 느낀 것이 아니었다.

자신 때문에 하현과 취월걸개가 해를 당할지도 모른다는 것에서 오는 절망감이었다.

으득-

그렇지 않아도 꼭 쥐고 있는 주먹을 더 세게 말아쥐었다.

그곳에서 살아난다면 이제부터는 수련을 게을리하지 않겠다는 말.

그 말은 진심이었다.

언제까지고 계속 하현에게 짐이 될 수는 없기에.

“아…….”

그는 또 하나의 방법이 떠올라 자리에 우뚝 섰다.

수련하지 않고도 모두에게 짐을 지우지 않을 방법이 하나 있다.

바로 무림을 떠나는 것.

무가(武家)에서 태어났다고 해서, 또 지금까지 무공을 익혔다고 해서 평생을 무림인으로 살아야 할 필요는 없다.

어떠한 임무도 나가지 않고 세가 내에서만 일하는 자도 분명히 있으니까.

‘내가 평생 무공을…. 무림을 떠나서 살 수 있을까?’

그는 스스로 물었다.

그리고 그 결과는 곧바로 나왔다.

‘아니, 그럴 수 없다.’

남궁환은 이미 무공을, 이 세계를 알아버렸다.

극한의 수련이 주는 쾌감도.

한 단계 성장했을 때 오는 뿌듯함도.

그리고…….

‘정말…. 정말 감사합니다. 대협!’

그에게 감사의 말을 전하던 사람의 목소리와 눈빛…….

너무나도 많은 것을 알아버렸다.

“결국, 남는 건 죽자사자 수련하여 발목을 잡지 않는 것밖에 없네.”

그는 별 대수롭지 않은 것을 고민했다는 듯 혼자서 피식 웃음을 흘렸다.

생각을 마치고 나니 가슴 한켠을 억누르고 있던 무언가로부터 해방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한참을 걷다 보니, 익숙한 광경이 눈에 들어왔다.

마치 전쟁이라도 난 것처럼 어지러이 잔해가 흩어져 있고, 아직까지도 탄 냄새가 올라오는 이곳.

불타 없어진 진선표국이 있던 자리였다.

“이 길이 이렇게 이어지는구나.”

그는 생각보다 사천의 지리도 복잡하지는 않다고 생각했다.

이곳에는 꽤 많은 사람이 있었다.

원래 이곳에서 살던 사람들인지 건물이 무너진 잔해를 치우며 마을을 정리하고 있었다.

남궁환은 왜인지 그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불이 번지게 하지 않으려면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고, 당가에서 다시 집을 지어주기로 했지만 잘살고 있던 그들의 집을 부수어 버린 것이 그 자신이었기에.

“셋 하면 드는 것이네, 하나, 둘!”

“읏차!”

몇몇 사람들은 힘을 모아 무너진 벽을 들기도 했고, 또 어떤 이는 위험하게 튀어나와 있는 파편과 잔해들을 솔선수범하여 치우고 있는 사람도 있었다.

“와…….”

남궁환은 자신도 모르게 감탄사를 내뱉었다.

민초들은 이 상황에서도 끊임없이 움직이고 있었다.

혼자서 옮길 수 없을 것 같은 무거운 잔해는 몇 사람이 힘을 합쳐 나른다.

남녀노소 할 것 없이,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하고 있었다.

‘나는 조금 전까지 무슨 생각을….’

그는 뱃속에서 무언가 뜨거운 것이 올라오려 하는 것을 겨우 참아내었다.

이런 힘을 가졌으면서도 무림을 떠나니, 뭐니 잠시나마 고민했던 자신이 부끄럽게 느껴졌다.

‘그래. 나도 할 수 있는 것을 하자.’

이들을 보며 많은 생각이 머리를 스쳐 갔다.

할아버지께서 평소에도 왜 그렇게 마을을 돌아다니는지 이제야 이해가 가는 기분이 들었다.

‘내가 무공을 익히는 이유는 나를 위한 것이 아니었구나.’

얼마 전 대화했던 정파의 의미와 무림인이 존재하는 이유.

그것이 오롯이 이해되며 깨달음으로 다가왔다.

스으으-

슬며시 눈을 감은 남궁환이 슬며시 기운을 내뿜었다.

언제인가부터 발전하지 못하고 막혀 있던 창궁대연심공.

그 고절한 무학이 한순간의 깨달음으로 한 단계 상승했다는 것이 느껴졌다.

‘아니, 깨달음이 아니야.’

그는 방금 그가 발전한 이유가 무엇인지 확실히 알 것 같았다.

‘망설임이 사라진거야.’

그동안 남궁환을 족쇄처럼 얽매고 있던 망설임이 사라진 덕분이었다.

그는 지금껏 자신의 한계를 단정 짓고, 억누르고 있었다.

그가 왜 무공을 익혀야 하는지를 몰랐고, 아무리 익혀도 형이나 하현이처럼은 못 할 것 같았기에.

하지만 이제는 알 것 같다.

하현과 예전에 말했던 지키기 위한 무공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어렴풋이 잡히는 듯했다.

그리고 남궁민처럼, 하현처럼 하지 못하면 어떤가?

그가 할 수 있는 선에서 무인이 응당 해야 할 일을 하면 그뿐이다.

슥슥-

남궁환이 두 팔을 걷어붙였다.

그리고 어떤 사람이 낑낑대며 옮기려는 큰 돌덩이를 가볍게 들어 옮겨주었다.

“엇……?!”

그 사람은 남궁환을 보고는 적잖이 놀란 모양이었다.

양민들의 입장에서 무림인은 신과도 같다.

남궁환이 어떤 의도로 왔는지 경계부터 하는 그들이었다.

“놀라셨다면 죄송해요. 제가 좀 도울 수 있지 않을까 싶어서요.”

“아…! 감사합니다. 대협.”

척 봐도 남궁환보다 나이가 훨씬 많아 보이는 그였건만, 남궁환이 상전이라도 되는 것처럼 고개를 꾸벅 숙였고

그의 시선은 남궁환의 허리춤에 있는 검에 꽂혀 있었다.

검이란 양민들에겐 이런 것이다.

존재 자체만으로도 공포심을 불러오는.

“아! 잠시만요.”

남궁환은 주변을 두리번거리다가 작은 풀숲을 발견하고, 거기다가 검집째로 검을 꽂아 넣었다.

내공을 충분히 사용해서 넣어 두었기에 검집은 땅에 깊숙이 박혔다.

거추장스러웠던 검도 처리했겠다, 남궁환은 본격적으로 달라붙어 양민들을 돕기 시작했다.

머리엔 뽀얗게 재가 내려앉고, 옷도 지저분해졌지만…….

그는 그 어느 때보다 활짝 웃고 있었다.

* * *

하현과 취월걸개, 당규호는 검마의 시신을 수습하여 당가로 돌아왔다.

이곳에 돌아오자마자 취월걸개는 분주하게 떠날 준비를 했다.

“사부님. 바로 가시려고요?”

“그래. 시신이 부패해버리면 여기서 얻을 수 있는 것이 없어진다. 시간이 생명이지.”

취월걸개는 조금 전 시신을 수습하면서도 하현에게 여러 가지를 가르쳐 주었다.

정말 작은 것부터 큰 것까지 모든 것을 전수 중인 취월걸개가 이번에 하현에게 가르쳐준 것은 시신을 수습하는 방법과 시신에서 어떻게 정보를 알아낼 수 있는지에 대한 것이었다.

짧은 시간이지만, 하현은 여러 가지를 배울 수 있었다.

“시체는 생각보다 말이 많으니까요?”

“그래. 잘 기억하는구나.”

시체는 생각보다 말이 많다.

이것이 취월걸개가 가르쳐 준 가장 중요한 것이었다.

“총관도 함께 무림맹으로 간다고요?”

“그래. 검마를 죽인 것이 누구인지 알 수는 없지만, 예사 실력이 아닌 것은 확실하다. 너희보다는 내가 데리고 무림맹으로 가는 것이 안전해.”

그의 말에는 동의할 수밖에 없었다.

지금 이곳에서 가장 고수는 취월걸개다.

그런 그가 이기지 못할 상대라면 어차피 여기 있는 아무도 이길 수 없기에.

“알겠습니다.”

“기본적인 일들이 끝나면 내가 총관을 남궁세가로 데려다주마. 그 전에 이야기라도 좀 해보겠느냐?”

“네. 그렇게 하겠습니다.”

취월걸개는 하현의 등을 쓸어주었다.

몰살한 줄 알았던 신가장의 생존자를 제자에게서 뺏어가는 듯한 기분이 못내 들었기 때문이다.

하현이 싫은 내색 하나 하지 않기에 그것이 더 그를 미안하게 만들기도 했다.

“그럼 나는 규호에게 갔다 오마. 마차를 내어달라 해야겠어.”

“마차를 타고 가신다고요?”

“시신 한 구에 무공을 모르는 사람까지 둘을 내가 이고 갈 수는 없는 노릇이지 않으냐.”

“그렇죠. 마차가 훨씬 편리하겠네요. 물론 빠르기로 따지자면 사부님이 훨씬 빠르시겠지만요.”

취월걸개는 하현의 말에 기분이 좋은지 껄껄 웃으면서도 부정은 하지 않았다.

실제로 마차보다 더 빠르게 달릴 수 있는 그였으니까.

“그러면 한 시진 정도 후에 찾아가마. 그 정도면 충분하겠지?”

“감사합니다. 사부님.”

하현의 인사를 받은 취월걸개가 당규호에게 가고, 하현은 이제 당규호의 비밀 방에서 손님방으로 자리를 옮긴 총관에게 갔다.

머리뼈에 금이 가긴 했지만, 다행히도 내상이 없었고, 머리 이외에 크게 다치지 않았던 그는 빠르게 회복했다.

“도련님!”

그는 방에 들어선 하현이 반가워 끌어안으려다가 코앞에서 멈칫했다.

하현에게서 피 냄새가 물씬 풍겨왔기 때문이다.

“도련님…….”

“하하. 미안해요. 좀 씻고 왔어야 했는데, 그냥 왔네요. 몸은 좀 어떠세요?”

하현은 총관이 멈칫한 이유를 알아챘지만, 무안할 그를 위해 너스레를 떨었다.

“몸은 많이 좋아졌습니다. 도련님께서는 이젠…. 정말 무림인이시군요.”

총관은 새삼 하현을 바라보았다.

어느새 어른만큼 커버린 키.

떡 벌어진 어깨.

선이 굵어진 얼굴.

사 년 전까지만 해도 어린아이였던 하현이지만, 이제는 청년이라 부르기에도 충분할 정도였다.

“그동안 많은 일이 있었어요.”

“도련님이 태어날 때부터 봐왔었는데…. 그 시간을 못 봐서 정말 아쉽습니다. 그래도 다행입니다. 보지 못한 사 년의 시간보다, 앞으로는 더욱 많은 시간이 남아 있을 테니까요.”

총관이 절절한 눈빛으로 하현을 보았다.

그 눈빛을 받고 있으려니, 하현도 아주 잠시 신가장으로 돌아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아저씨. 앞으로는 남궁세가에서 저와 함께 살지 않으실래요?”

“제가 어떻게 그러겠습니까? 도련님께 폐를 끼칠 수는 없지요. 저는 제가 살길을 찾아보겠습니다.”

“아마 할아버지께서도 기뻐하실 거예요. 할아버지께서는 인재를 반기시거든요.”

작은 장원이었지만, 신가장의 모든 대소사를 십여 년간 단 한 번의 실수도 하지 않고 완벽하게 꾸려온 그였다.

마교에서도 죽이지 않고 데려가 쓸 정도였으니, 역설적으로 그 능력이 증명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제가…. 제가 그래도 되겠습니까……?”

그의 목소리가 어두워졌다.

그는 지금껏 살아있으면서도 살아있는 것이 아니었다.

혼자서만 살아남았다는 죄책감이 그를 괴롭혔고

신가장의 멸문에 대해서도 일말의 책임감까지 가지고 있던 그였다.

하지만 하현은 따스하게 웃으며 말했다.

“그럼요. 아저씨는 저와 가족이잖아요. 당연히 같이 사셔야죠.”

“도련님…….”

그는 그만 툭- 하고 눈물을 떨구고 말았다.

사실 하현이 살아있다는 것만으로도 마음에 큰 짐을 내려놓은 것 같은 그였다.

그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염치없지만…. 이 몸 도련님께 의탁하겠습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하하. 아뇨. 저에게 의탁하시는 게 아니라, 남궁세가에 의탁하는 겁니다. 다들 좋은 사람이라 반겨주실 거예요.”

하현은 총관의 손을 맞잡아 주었다.

그리고는 남궁세가가 아닌 무림맹으로 먼저 가야 한다는 취월걸개의 말을 전해 주었다.

총관은 실망하기는커녕 의지에 찬 얼굴로 대답했다.

“그래야지요. 제가 아는 것이 무엇이든 모두 이야기해드리고 오겠습니다.”

“부탁드리겠습니다.”

그들은 재회한 이후 처음으로 한가하게 이야기를 나누었다.

사 년간의 시간이 흘렀건만, 한 번 이야기를 시작하자 마치 헤어진 지 얼마 되지 않았던 것처럼 즐겁게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한참 이야기를 나누던 하현은 이제 곧 일어날 때가 되었음을 깨달았다.

취월걸개가 온다고 한 시간이 다 되어갔다.

하현은 마지막으로 물었다.

“아저씨. 신지혁에 대해서는 따로 알고 계신 것 없으시죠?”

신지혁이라는 이름을 입에 담는 것만으로도, 하현은 손에 힘이 들어가는 것이 느껴졌다.

“저도 신지혁에 대해 알아보려 백방으로 노력했지만…. 큰 수확은 없었습니다.”

“역시 그랬군요…….”

“허나, 한 가지, 추측하고 있는 것이 있습니다.”

“추측이라면요?”

총관은 진중한 얼굴로 말했다.

“신지혁이 신이라는 성을 받기 전에는 유 씨였다는 것. 혹시 알고 계십니까?”

하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것은 신지혁에 대해 알고 있는 유일한 정보였다.

“마교에는 삼대마가(三大魔家)가 있습니다. 중원으로 치자면 오대세가와 비슷한 개념이죠. 그중에 하나가 ‘유’라는 성을 사용한다고 들었습니다. 그들을 천마유가(天魔劉家)라고 부르지요.”

“그렇다는 것은……?”

“신지혁이 그 가문의 출신이 아닐까 추측합니다.”

남궁세가 천재 외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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