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2화
무인이 성장하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다.
초식을 끊임없이 수련하여 자다가도 튀어나올 수 있도록 만드는 방법.
신체를 단련하여 그 자체의 근력을 키우는 방법.
영약을 먹어 단숨에 내공을 증진시키는 방법…….
그러나 그중에서 최고의 방법을 꼽는다면 당연 ‘깨달음’이 최고라고 할 수 있다.
깨달음이란 무인에게 가장 좋은 성장방법이다.
깨달음이라는 이름처럼 내가 하고 싶다고 하여 언제든 할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한 번 얻은 그것은 어느 한 부분이 아니라, 전체적으로 한 단계 위로 올라서게 만들어 준다.
딱!
이미 늦은 밤.
연무장에는 목검과 목검이 부딪치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하현과 남궁환의 대련이 밤늦게까지 이어진 것이다.
남궁환은 작은 깨달음이라고 했지만, 그 깨달음은 남궁환의 무공 전체를 진일보시켜 주었다.
후웅-!
이미 검을 휘두른 지 한참이 되었건만, 아직도 남궁환의 목검에서는 위협적인 소리가 났다.
남궁환의 호흡은 거칠었고, 의복은 땀에 젖어 무거워진 지 오래다.
지금 상태는 이전 같으면 이미 힘들어서 그만두었을 상태.
허나 남궁환은 아직도 검을 휘두르고 있었다.
마치 남은 기운을 한 톨까지 모두 사용하겠다는 듯.
“헉, 헉. 현아. 적당히 한 대 맞아주면 안 되냐.”
“그러면…. 만족하겠어?”
“하핫. 절대 만족 못 하지.”
사실 하현의 상태도 정상은 아니었다.
겉으로야 최대한 아무렇지도 않은 척을 하고 있다지만, 숨이 차고 검이 무겁게 느껴지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남궁환의 검을 막아내는데 생각보다 큰 기운을 소모했기 때문이다.
“이제는 힘들어서 안 되겠다.”
몇 번 더 합을 나누고 나서 남궁환은 목검을 떨어뜨리며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일부러 한 행위가 아니었다.
손가락에 힘이 들어가지 않아 검이 떨어졌고, 다리에 힘이 풀려 주저앉은 것이다.
남궁환의 손가락은 덜덜 떨리고 있었다.
“후…. 괜찮아?”
하현도 잠시 숨을 고르고 나서 남궁환에게 다가갔다.
남궁환은 하현을 보고 활짝 웃었다.
“아까도 이랬다면 조금 더 도움이 됐을 텐데.”
그는 떨리는 손을 잠시 바라보았다.
죽을 만큼 힘들지만, 무척이나 개운한 기분이었다.
남궁환은 앉아있기도 힘들었는지, 그대로 털썩 누워버렸다.
하현은 이 장면을 언젠가 본 적이 있었다.
“아이고, 죽겠네.”
“형 들어가자. 쉬더라도 들어가서 편히 쉬어야지.”
“조금만 더 쉬다가. 지금 손가락 하나 못 움직이겠어.”
그는 문득 하늘을 보고는 감탄성을 내뱉었다.
“우와…….”
하늘에는 별이 쏟아질 듯 촘촘히 박혀 있었다.
손가락도 못 움직일 것 같다고 했던 남궁환은 팔을 들어 하늘을 향했다.
그리고 공중에서 손을 한 움큼 움켜쥐었다.
당연히 손에 들어온 것은 하나 없었건만, 그는 손을 가슴에 가져다 대었다.
“현아. 내가 예전에 했던 말 기억 나?”
“어떤 말?”
남궁환이 바로 돌아갈 기미가 보이지 않자, 하현도 아예 다리를 뻗고 앉으며 대답했다.
“너랑 민이 형은 저 별 같은 사람이라고 했던 거.”
“응…. 기억하지.”
하현이 남궁세가에 온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남궁환은 하현에게 저 별 같다고 말했었다.
빛나지만, 아득하게 멀다고.
그때를 잠시 떠올린 하현이 물었다.
“지금은 어때?”
“뭐가?”
“지금도 아득하게 멀게만 느껴져?”
“…….”
이전 같으면 곧바로 그렇다고 대답이 튀어나왔을 것이다.
그런데 남궁환은 쉬이 대답하지 못했다.
조금 생각하던 그는 오히려 하현에게 되물었다.
“나도 빛날 수 있을까?”
무척이나 진중한 얼굴.
남궁환은 앞으로 어떤 무인으로 살 것인지에 대한 결정의 기로 앞에 서 있었다.
그런데 하현의 얼굴은 그렇게까지 진중하지 않았다.
오히려 이렇게 쉬운 것을 왜 물어보냐고 하는 듯한 표정이었다.
하현은 가볍게 입을 열었다.
“형은 이미 빛나고 있어.”
“아…….”
빛날 수 있다, 없다. 두 대답 중의 하나가 나올 것이라고 예상했건만, 남궁환의 예측은 보기 좋게 빛나가 버렸다.
하지만 오히려 이 대답에 그는 웃을 수 있었다.
“하하하…. 고마워. 이제 슬슬 돌아가야…. 하는데…….”
“왜 그래?”
하현이 벌떡 일어나 남궁환에게 다가갔다.
남궁환의 목소리가 심상치 않았기 때문이다.
“조금 문제가 있어. 기분에 취해서 너무 무리했나 봐…….”
“뭐라고?”
“몸에 힘이 안 들어가네.”
남궁환은 목 아래로는 움직이지를 못하겠다면서 끙끙댔다.
한참을 움직이려 해보던 남궁환은 결국 최후의 수단을 쓸 수밖에 없었다.
“하현아. 부탁이 있어.”
“부탁? 뭔데.”
“방까지 좀 업어주라.”
하현은 어이가 없어 웃음을 터뜨렸다.
한참 웃고 나서는 결국 남궁환을 업고 숙소가 있는 전각으로 향했다.
밤새 차가운 연무장에서 자게 할 수는 없었으니 말이다.
“미안해.”
남궁환은 사과하는 것도 부끄러운지 겨우 입을 떼고 말했다.
“아니야. 나중에 나도 걷기 힘들 때 형이 업어주겠지. 뭐.”
“하하! 그래. 언젠가 내가 꼭 이 은혜를 갚을게.”
당가에서의 또 하루가 이렇게 저물어갔다.
남궁환에게 있어서는 여러 의미로 평생 잊을 수 없을 하루였다.
* * *
다행히 남궁환은 하룻밤을 꼬박 자고 나니 몸을 회복할 수 있었다.
깨달음 이전보다 회복속도도 비약적으로 빨라졌다.
정말 작은 변화라고 생각했건만, 깨달음의 효과는 생각보다 많은 곳에서 나타나고 있었다.
남궁환과 하현은 이야기한 끝에 남궁세가로 곧바로 돌아가기로 했다.
어차피 그들이 마교 조사에 큰 도움을 줄 수 있는 상황도 아니었거니와, 여기서 있었던 소식을 하루라도 빨리 세가에 전달하는 것이 좋으리라 판단했기 때문이다.
당연히 다친 남궁휘연도 데리고 가려 했다.
하지만, 남궁휘연은 그 말을 거절했다.
“형님은 남궁세가로 돌아가시지 않겠다고요?”
“그래. 지금 세가로 돌아갈 수는 없지.”
그는 며칠 만에 몸이 제법 회복되었는지 조금씩 걸어 다니며 말을 이었다.
“세가에도 좋은 의원들이 많지만, 아무래도 이곳 당가가 의술이 가장 뛰어나기도 하고. 나는 아직 탐사대의 일원이야. 빨리 회복해서 탐사 임무를 계속해야지.”
“그래도 몸이 이렇게 좋지 않은데 어떻게 하시려고요?”
남궁환의 걱정스러운 물음에도 그는 웃으며 답했다.
“나는 지금 남궁세가의 얼굴이나 마찬가지. 여기서 내가 부상 때문에 빠진다고 하면 분명 이상한 소문이 돌 것이 뻔해. 남궁세가에서 겨우 한 명 보내놓고서는 그마저도 발을 빼려 한다고.”
“아……!”
남궁휘연의 추측은 정확했다.
실제로 제갈정현을 만났던 객잔에서 그와 비슷한 소리를 듣지 않았던가?
“절대 무리하지 않을게. 걱정하지 마. 나 오래 살고 싶거든. 흐흐.”
실없는 그의 웃음에 하현과 남궁환도 그만 따라 웃고 말았다.
“당가주님께는 말씀드린 거예요?”
“응. 며칠 전에 찾아오셨을 때 얘기 드렸어. 흔쾌히 그러라고 하시던데?”
하현은 며칠이든 괜찮으니 편하게 회복에 전념하라는 당규호의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그러면 할아버지께 전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전해드릴게요.”
“잠깐만 기다려봐.”
남궁휘연은 탁자 위를 뒤적이더니 종이 뭉치를 하현에게 건넸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여기에 다 적어놨어. 내가 알고 있는 정보들까지 전부다. 사실 중간에 가로채이거나 분실할 수도 있어서 서신에 모든 정보를 적어 보내진 못했거든. 너희가 와서 다행이다.”
종이는 척 봐도 두둑했다.
이렇게라도 세가에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남궁휘연의 마음이 느껴지는 듯했다.
“그럼 저희는 가볼게요. 서신 계속 보내주시고요.”
“그래. 오랜만에 봐서 반가웠다.”
그들은 얼마 있지도 않은 짐을 꾸려 이번에는 당규호에게 갔다.
이곳의 가주인 그에게 이야기하고 가는 것이 당연했다.
당규호는 마교 소동으로 인해 며칠 보지 못한 집무를 보는 와중에도 그들을 반갑게 맞이해 주었다.
“바로 떠난다니 정말 아쉽구나. 특히 하현이는 시간만 있다면 더 많은 것을 가르쳐 주었을 텐데 말이야.”
“저도 정말 아쉽네요. 아직도 궁금한 것 투성이였는데 말이에요.”
“그, 그러니? 정말 애석하구나. 다음에 또 오려무나.”
당규호의 어색한 말투에 하현과 남궁환은 웃음 지었다.
그러나 곧 진중한 표정으로 말했다.
“솔직히 말해서, 아직 마교의 일이 온전히 일단락되지 않았는데, 몸만 빼는 것 같은 기분이라 죄송합니다.”
“하하. 미안할 것도 많다. 이번 일로 사천은 걱정할 필요 없다.”
사천은 걱정할 필요가 없다는 말을 이해하지 못하여 당규호를 바라보니, 그가 이내 말을 이었다.
“마교가 확실히 무림을 횡횡하고 있고, 심지어는 우리 사천에서 이토록 큰일이 일어난 덕분에, 아미파와 청성파에서도 적극적으로 나서기로 했다. 이르면 며칠 후부터는 본격적인 연수가 이루어질 것이야.”
“청성이 움직이는 거예요?”
당규호가 의기양양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청성파는 도교 계열의 문파로, 구파일방에 속해 있긴 하지만 곤륜과 더불어 속세에 관여를 잘 하지 않는 것으로 유명했다.
“우리가 회수한 마교도의 시신만 하여도 수십이다. 아무리 산속에 틀어박혀서 사는 청성이라고 할지라도 마교에 관련된 일에서는 나설 수밖에.”
하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구파일방 중의 두 곳, 오대세가 중의 한 곳이 뭉친다면 안심할 수 있다는 듯이.
“여태까지 감사했습니다. 언젠가 남궁세가에 오시면 극진히 대접하겠습니다.”
“하하. 그 극진한 대접을 받기 위해서라도, 언젠가는 가봐야겠구나.”
“네. 주신 선물도 잘 쓸게요. 마지막으로 휘연 형을 잘 부탁드립니다.”
당규호의 알겠노라는 대답을 듣고 그들은 당규호의 방에서 나왔다.
마지막으로 그들이 당가에서 들른 곳은 객들이 모여 있는 손님방이었다.
그들은 거기서 며칠 동안 방치(?)당했던 제갈정현을 찾았다.
“하현! 나는 자네가 나를 잊은 줄 알았네.”
“잊을 리가요. 너무 바빴을 뿐이에요.”
제갈정현은 하현을 보자 진심으로 기뻐했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 정확히는 모르지만, 급박하게 돌아가는 세가 분위기는 파악하고 있는 그였다.
“이제 떠날 예정입니다. 준비하실 게 있으시면 빠르게 준비하세요.”
“떠나? 어디로 갈 셈인가?”
하현이 고개를 갸웃했다.
“옥화산 녹림채에 가야지요. 안 가실 겁니까?”
“아, 아닐세! 가야지. 잊지 않아 주었구나!”
감동한 듯한 그에게 하현은 빙긋 웃어 주었다.
제갈정현도 짐이 단출했던 덕분에 그들은 마구간으로 가 제갈정현의 마차에 올라탔다.
당가에서 며칠간 관리를 잘해준 덕분인지 말은 아픈 곳 없이 건강해 보였다.
“이랴!”
제갈정현 마부석에 타 직접 말을 몰아 당가를 빠져나왔다.
하현은 점점 멀어지는 당가를 보며 이번에도 많은 일이 있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굉장히 얻은 게 많다는 생각도 들었다.
“현아. 제갈 형. 이 길을 쭉 따라가면 나오는 객잔에서 잠시 멈출까요?”
“왜? 바로 쉬어갈 것은 아니고. 용무가 있는 것이냐?”
남궁환이 배시시 웃으며 품에서 목패를 꺼냈다.
“기왕 받은 것이니 써 봐야죠. 객잔에서 음식을 좀 싸달라고 해도 된다고 했으니까요.”
“그러면 아예 여기서 식사를 해결하고 가는 것도 방법일 것 같네. 식사도 하고 음식도 여유롭게 싸달라고 하면 중경까지는 굳이 객잔에 들릴 필요가 없을 것 같아.”
“좋습니다. 제갈 형.”
하현이 목패를 유심히 보고는 말했다.
“그게 내 비검보다 좋은 거 같은데?”
“하하. 사천에 올 일이 얼마나 있겠어?”
잠시 후 그들은 객잔 앞에 도착했다.
삼 층짜리 전각을 통으로 사용하고 있는 이 근방에서는 가장 큰 규모의 성도객잔이었다.
마차를 잘 데어놓고 객잔으로 들어가자 점소이가 그들을 맞이했다.
“어서 오세요. 성도객잔에 잘 오셨습니다. 식사하러 오신 겁니까? 아니면 숙박까지?”
“아, 일단은 식사만 할 생각입니다.”
“잘 오셨습니다. 이쪽으로 앉으시지요.”
점소이는 친절하게 그들은 안내하고는 말을 이었다.
“스스로 자랑하기는 민망하지만, 저희 숙수의 요리실력은 사천에서 단연 최고라 할 수 있습니다. 어떤 음식을 시키더라도 후회하지 않으실…….”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말하던 그가 돌연 말을 멈추었다.
모두가 의아하게 그를 바라보니, 점소이는 남궁환을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었다.
“제 얼굴에 뭐라도 묻었나요?”
남궁환이 얼굴을 더듬더듬하고 있는데, 점소이의 입이 열렸다.
“화멸검……!”
“뭐라고요?”
“화멸검(火滅劍)! 대협!!”
그는 알 수 없는 말을 내뱉더니, 남궁환의 손을 덥석 잡았다.
“화멸검 대협께서 저희 객잔을 찾아 와주시다니, 정말 영광입니다. 아차! 너무 반가워 저도 모르게 손을 잡아버렸습니다. 이 무례를 용서해주십시오!”
아직도 상황 파악이 되지 않는 가운데, 주변의 손님들이 도리어 점소이의 말을 듣고서 웅성거렸다.
“화멸검? 며칠 전 대화재 때에 불을 가르고 사람들을 구해냈다는 영웅이 아닌가?”
“그게 다인 줄 아나 이 사람아. 저분께서 더는 불이 옮겨붙지 않도록 건물을 무너뜨린 위용을 보이신 분이라네.”
“그리고서도 번지려고 하는 불을 검으로 베어냈다지? 어제는 또 천 근 바위를 번쩍 들며 사람들을 도와주었다는 말은 못 들었는가?”
남궁환과 하현은 눈이 마주쳤다.
“…내 이야기를 하는 것 같지?”
“굉장히 과장되기는 했지만…. 형이 맞는 것 같은데?”
남궁환이 얼떨떨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어느새 화멸검이라는 별호로 불리고 있었다.
남궁세가 천재 외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