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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궁세가 천재 외손자-133화 (133/304)

133화

별호는 무인에게 있어 또 하나의 이름이다.

한 번 별호가 붙게 되면 이름처럼 자주 불리는 것은 물론이고, 심지어는 본래 이름을 아무도 기억하지 못하고, 별호로만 남게 된다.

개방이라는 특수성이 있긴 하지만, 취월걸개 역시 그런 경우다.

“화멸검이라니…….”

남궁환은 고개를 들지 못했다.

주변의 손님들은 아직도 남궁환을 보며 자기네들끼리 웅성거리고 있다.

“자네들이 그 모습을 보았어야 했는데 말이야. 이 층에서 아이를 안고 창을 깨면서 뛰어내리시는 그 모습을!”

“저분이 불을 검으로 잘라버리고 들어가셨다는 게 사실인가? 어떻게 불을 자른단 말인가?”

“예끼! 그게 가능하시니까 화멸검(火滅劍)이신 것이네! 의심하지 말게!”

삼인성호(三人成虎).

세 명의 사람만 있으면 호랑이가 만들어진다고 했다.

아무리 허무맹랑한 말이라도 이 객잔 안에서도 말이 돌고 돌며 남궁환은 점점 불을 가르는 영웅이 되어가고 있었다.

“남궁세가 출신이라 하였는데, 역시 천하제일가 남궁세가구만!”

“어쩐지 잘생기셨더라니. 남궁세가 출신이시란 말인가?”

하현은 청력에 내공을 집중하여 손님들의 이야기를 하나도 빼놓지 않고 잘 들었다.

그는 이 상황이 너무도 재밌어서 웃음을 참지 못했다.

“화멸검! 형. 정말 멋있는데? 멸(滅)자에는 불을 끈다는 뜻도 들어 있으니까, 아주 잘 맞기도 하고.”

“현아. 너도 잘 알겠지만, 내가 불을 끈 적은 없잖아. 불탄 전각에서 아이를 구한 것은 맞지만…….”

“이제 와서 어쩌겠어. 사람들한테 그런 적 없다고 한 명 한 명 이야기하고 다닐 거야?”

남궁환은 그 이야기를 듣고, 결심한 듯 자리에서 일어났다.

“여러분!”

“오! 화멸검 대협께서 말씀하신다.”

“화멸검 대협! 어제는 우리 마을을 도와주시어 감사합니다!”

그가 일어나자 손님들은 남궁환을 향해 손뼉을 쳤다.

남궁환은 상황이 더 커지기 전에 재빨리 입을 열었다.

은근히 내공까지 담아 귀에 쏙쏙 박히는 목소리였다.

“화멸검이라니. 정말 멋진 별호지만, 저에게는 가당치도 않습니다. 실제로 저는 불을 끄지도 않았는걸요. 그리고 제가 아니더라도 아이가 갇혀 있다고 하면 누구나 그랬을 것입니다. 저는 그리 대단한 사람이 아닙니다.”

그의 말에 장내가 조용해졌다.

조금 전까지 시끄럽게 환호성을 지르던 남자도 꿀 먹은 벙어리마냥 입을 꾹 닫고 있었다.

남궁환은 그들을 한 번 빙 돌아보고서 말을 이었다.

“여러분들을 실망하게 해드려 정말 죄송합니다. 다만…. 진실을 말씀드리고 싶었습니다. 저는 아직 별호를 받을 만큼의 공적도 세우지 못했거니와, 훗날 받게 되더라도 진실한 제 실력과 인품만큼의 별호를 받고 싶습니다.”

“…….”

그의 말이 끝났음에도, 주변은 쥐 죽은 듯 조용했다.

남궁환은 신나게 떠들던 손님들의 분위기를 눈치 없이 죽인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찔끔 들었다.

허나, 이것이 더 마음 편하다고 생각하며 자리에 앉으려 했다.

그때였다.

짝-

짝- 짝-

짝짝- 짝짝-

누가 시작했는지는 모르겠으나, 고요한 정적을 깨어내는 박수가 한 번이 들려오자 주변 사람들이 뒤이어 하나둘 손뼉을 치기 시작하더니, 이내 객잔은 무수한 손님들의 손뼉 소리로 가득 차고 말았다.

“크흡. 감동적이다. 저렇게 겸손한 분이시라니.”

심지어는 눈가에 고인 눈물을 훔치는 자도 있을 정도였다.

“저렇게 겸손하시다니! 실로 불세출의 영웅이시구나!”

“지금껏 자신의 무예를 자랑하는 무인은 많이 보았어도, 저렇게 우리 민초를 생각하시는 분은 처음 뵙는 것 같아!”

“화멸검! 화멸검! 화멸검!”

남궁환에 대한 찬양은 점점 격화되더니, 결국 객잔 내의 모든 사람이 화멸검을 연호하기까지 했다.

“형. 이쯤 되면 형이 화멸검을 안 하겠다고 말하면 정말 큰일 날 것 같은데?”

“끄응…….”

남궁환은 곤란한 표정으로 주변을 둘러보다가, 결국 한숨을 푹 내쉬고 말았다.

“민 형님이 처음 용봉지회에 갔다 오시고 나서 청룡신검이라는 거창한 별호를 받아 오고 부담스러워 할 때 할아버지께서 하신 말씀이 있어.”

“뭐라고 하셨는데?”

“못난 별호보다는 잘난 별호가 낫다.”

“할아버지께서 정말 그렇게 말씀하셨다고?”

“응.”

하현은 할아버지와 그 말이 잘 연결이 되지 않아 배를 잡고 웃었다.

옆에 있던 제갈정현도 한마디 거들었다.

“사해 동도가 붙여준 별호는 더욱 특별한 의미가 있다고 들었네. 민초들은 정말 순수한 마음으로 그 별호에 마음을 담아 불러 주는 것이니.”

“아…….”

남궁환은 갑자기 그 별호에 대한 무게감이 느껴졌는지 잠시 몸을 숙였다.

그리곤 잠시 후.

무게감을 이겨내려는 듯 힘겹게 다시 허리를 펴 일어섰다.

“어쩔 수 없네요. 소중히 해야겠어요.”

“그렇지!”

하현도 일어선 남궁환에게 말했다.

“별호가 과분하다고 생각되면 앞으로 정말 그 별호에 걸맞은 사람이 되면 되는 거 아닐까?”

“어? 그거 민 형님이 해 주신 말 아니야?”

“맞아. 형님도 그렇게 생각하면서 청룡신검이라는 별호를 받아들였다고 하시더라고.”

남궁환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아직도 그의 별호를 연호하고 있는 주변 민초들을 향해 네 방향으로 고개를 숙여 인사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여러분께서 붙여주신 별호에 부끄럽지 않은 무인이 되겠습니다!”

남궁환의 말에 사람들은 더욱 환호했다.

이윽고 장내가 조금 정리되고 열기가 가라앉자 드디어 그들은 점소이에게 음식을 시킬 수 있었다.

지금 먹을 간단한 소면과 가져가서도 먹을 수 있는 도시락을 주문한 그들은 음식이 나오자 다시 한번 놀랄 수밖에 없었다.

“이, 이게 다 뭐에요?”

“숙수께서 화멸검께 대접하고 싶으시대요. 부디 받아 주세요.”

점소이는 마치 자기가 주는 것처럼 의기양양했다.

“아, 계산은…….”

“마음만은 그냥 드리고 싶지만, 대협의 체면을 생각해서 국숫값만 받도록 할게요!”

점소이가 남궁환의 말을 자르고 말했다.

남궁환은 품 안에서 목패를 꺼내 보여주며 조금 전에 하던 말을 계속했다.

“그게 아니라 사천당가의 가주님께 이걸 보여주면 계산을 안 해도 된다고 들어서요.”

“이게 무엇…. 헛!”

점소이는 남궁환이 들고 있던 목패를 자세히 보다가 눈이 휘둥그레졌다.

사천에서 장사를 하는 사람들이라면 모를 수가 없는 것이었다.

당가의 가주가 직접 객잔과 식당, 여관등을 돌아다니며 상인들에게 부탁한 것이었으니.

“이건 당가의 증표 아닙니까?”

“다행히 알아보시는군요.”

“그것을 못 알아볼 리가 없지 않습니까?!”

점소이는 조금 전보다 더 흥분한 것처럼 보였다.

그는 갑자기 목패를 번쩍 들더니 외쳤다.

“이것은 당가의 은인이라는 증표…! 여기 화멸검께서는 당가의 은인이기까지 하십니다!”

그의 외침에 애써 진정시켰던 사람들이 다시 환호성을 질렀다.

“역시! 그럴 줄 알았다니까!”

“화멸검 대협! 대협의 이야기를 널리 전하겠소이다!”

한층 더 시끄러워진 분위기.

남궁환은 그냥 마음을 놓아버렸다.

어째서인지 화멸검이라는 별호가 외려 친숙하게 느껴지기 시작하는 그였다.

* * *

그들은 환호하는 사람들과 작별하고 성도객잔을 떠났다.

양손에는 기대하지도 않았던 음식들이 두둑이 쌓여 있었고, 행여나 상할 것이 두렵다며 마른 육포와 어포까지도 아낌없이 챙겨주었다.

그리고 관심 없는 척하던 몇몇 무인들은 구석에서 지켜보고 있다가 남궁환과 통성명까지 했을 정도이니, 그 열기는 실로 대단했었다.

“후. 이제야 좀 조용하네.”

“아까는 과장을 조금 보태서 귀청이 떨어지는 줄 알았네.”

하현의 말에 마부석에 앉은 제갈정현이 육포를 뜯으며 말했다.

“이렇게 될 줄은 몰랐어.”

“그래도 부러워 형. 정말 멋진 별호잖아. 화멸검이라니.”

“놀리지 마.”

“놀리는 거 아니야.”

하현의 말은 진심이었다.

명예나 명성에는 관심이 없다고 지금까지 생각해왔는데, 가장 가까운 남궁환이 멋들어진 별호를 가지고, 사람들에게 환호를 받으니, 속에서 무언가 끓어 오르는 듯한 느낌을 받은 하현이었다.

하지만 굳이 그 티를 내지는 않았다.

“옥화산까지는 앞으로 이틀 정도 걸릴 것 같네. 음식은 충분하니 객잔보다는 야영을 할까 싶은데, 어찌 생각하는가?”

“그게 좋을 것 같습니다. 아무래도 이제부터는 우리의 흔적을 최대한 보이지 않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은시에서 들렀던 객잔이 녹림채의 지부였던 기억을 떠올렸다.

어차피 옥화산에 있는 거대한 녹림채에 들를 것이라면 최대한 조심하기로 하였다.

그날 밤.

그들은 큰 나무 아래에 자리 잡았다.

하현은 취월걸개와 함께 다녔던 경험이 있기에 능숙하게 자리 잡고 쉴 준비를 했다.

“제갈 형. 너무 춥지 않으면 불은 피우지 않을 겁니다.”

“아, 그래?”

당연하게 화섭자를 꺼내 불을 붙이려던 제갈정현에게 하현이 말했다.

“사람이 아무도 살지 않는다고 확신할 수 있으면 상관없지만, 혹시 모르는 일일 테니까요. 불 만큼 우리의 위치를 잘 가르쳐주는 것이 또 없습니다.”

하현의 말에 제갈정현은 홀린 듯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나이를 떠나서 하현이 지금까지 해온 경험은 제갈정현보다 훨씬 많았으니까.

잘 자리를 준비하고 나서, 하현은 제갈정현에게 물었다.

“지금 우리가 가는 녹림도에 대한 정보가 전혀 없습니다. 위치, 세력의 규모, 고수의 유무 등 아시는 게 있으면 전부 말씀해주세요.”

제갈정현이 자신 있게 입을 열었다.

죽을 자리를 찾아간다고는 했지만, 아무런 대책 없이 홀몸으로 쳐들어갈 생각은 아니었다.

가문의 힘을 빌리긴 했지만, 지금껏 모은 정보를 아낌없이 풀었다.

“우선 그 규모는 작지 않네. 총 삼백여 명 정도 된다고 알려져 있네.”

“상당히 많은 숫자군요.”

“보통 녹림채에 적으면 백 명, 많아야 이백 명 정도인 것을 생각하면 굉장히 큰 편이지.”

“고수의 숫자는요?”

잠시 생각하던 제갈정현이 대답했다.

“일단 알려진 것으로는 다섯이네. 채주와 부 채주, 그리고 세 호법.”

“그 정도라면 크게 위험하지는 않겠는데요?”

“게다가 채주는 대부분 자리를 비운다고 하더군.”

하현은 이제야 어떻게 제갈정현이 녹림채에 용기 있게 뛰어들 생각을 했는지 납득이 갔다.

무려 삼백이라는 거대한 숫자지만, 무공을 익히지 않은 일반 녹림도들은 무공을 익힌 제갈정현의 신법을 죽었다 깨어나도 쫓아가지 못할 것이다.

그러면 그는 오직 네 명의 고수만 상대하면 되는 것이다.

“분명히 그 녹림채에서 가장 강한 자가 채주를 하고 있을 것이 분명하니, 나머지는 해볼만 하다고 생각했지. 또 녹림의 무공이 그리 강력한 것은 아니지 않은가.”

어떻게든 고수들만 처리하면 나머지 무공을 모르는 녹림도들은 관군을 이끌고 가서 해결하면 그만이다.

옥화산의 산적 떼는 오래전부터 인근 지역에 큰 골칫덩이였던 바.

고수만 없다면야 관군이 나서지 않을 이유가 없다.

“그런데 제일 큰 문제가 하나 남아 있는데.”

“어떤 문제지요?”

“정확한 위치를 모른다는 것이네.”

“……?”

하현의 미간이 좁혀졌다.

제갈정현의 입에서 이런 말이 나올 줄은 상상도 못 한 것이다.

“그럴 일은 없겠지만, 혹여나 장난을 치신 거라면 가만있지 않을 겁니다.”

웬만해서는 화내는 일이 없는 하현의 입에서 노기 섞인 말이 흘러나왔다.

제갈정현이 깜짝 놀라 두 손을 내저으며 급히 말했다.

“장난이라니. 설마 그럴 리가 있나.”

“그러면 위치를 알 방법이라도 있는 거예요?”

“내가 다 생각해둔 바가 있지. 내 출신이 제갈세가이지 않은가? 이래 봬도 어릴 적부터 전략과 전술을 익혀왔다네.”

하현은 한 번은 참고 그의 말을 끝까지 들어보기로 했다.

“그 방법이 뭔지 말해주시죠.”

하현이 누그러진 기색을 보이자, 제갈정현이 반색하며 말했다.

“우리가 위치를 모른다면 안내할 자들을 부르면 되는 게 아닌가?”

“안내할 사람이요? 주변 민가에 도움을 청한다는 건 아니죠?”

“그게 아니지. 저들이 무엇인가. 산적 아닌가? 그들이 우리를 찾아오게 하면 되는 것 아닌가?”

이제야 제갈정현이 하고 싶은 말이 무엇인지 이해가 가는 것 같았다.

하현이 담담하게 입을 열었다.

“일부러 산적에게 노략질을 당하자는 것이군요.”

남궁세가 천재 외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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