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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궁세가 천재 외손자-135화 (135/304)

135화

“산속에 이걸 어떻게 만든 거지?”

“그러게, 사람이 한두 명 필요한 게 아닐 텐데.”

용호채는 실로 압도적인 크기였다.

삼백 명이 넘는 사람이 살아야 하니 크기가 커야 하는 것은 당연하지만, 깊은 산 속에 이렇게 큰 산채가 있을 것이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

“이 나무를 구하는 것도 일이었을 것 같은데.”

하현이 담벼락 대신 일렬로 길게 세워진 통나무에 손을 가져다 데며 말했다.

“주변에 널린 게 나무잖아. 산채 내부에 있던 나무를 베어서 여기에 꽂아둔 게 아닐까?”

그들은 분명 적진으로 쳐들어가는 중이었으나, 마실을 나가는 것처럼 여유로운 얼굴이었다.

다만, 그것이 자만심에서 오는 여유는 아니었다.

하현은 지금 자신의 실력과 남궁환의 실력을 객관적으로 정확히 알고 있다.

대력거웅은 자신이 산채에서 두 번째 가는 고수라 하였고, 현재 채주는 자리를 비웠다고 했다.

그렇다면 현재 용호채에는 그들을 상대할 만한 고수가 없다는 뜻이기도 했다.

‘여차하면 도망가면 되니까.’

그들은 할아버지가 항상 하시는 말을 떠올렸다.

남궁환의 신법도 수준급이니, 도망갈 때 잡힐 일은 거의 없을 것이다.

“그러면 나는 여기쯤으로 할까?”

산채 주변을 한 바퀴 둘러본 뒤 남궁환이 통나무 벽을 통통 두드리며 말했다.

하현도 주변을 둘러보고는 괜찮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면 이따 봐. 화멸검 대협.”

“이런…. 너한테 별호가 붙으면 내가 어떻게 하나 봐.”

하현은 큭큭 웃으며 등을 돌렸다.

지금까지는 진중하지 못한 태도였건만, 갑자기 그의 눈빛이 변했다.

이제 장난칠 때가 아님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후우-”

발걸음을 옮기며 심호흡을 한다.

바로 조금 전 장난기 많은 하현은 온데간데없고, 무인 하현만이 남아 있었다.

긴장은 전혀 하지 않지만, 경계를 늦추지는 않는다.

상대의 수준이 현격히 낮다고 하더라도, 그 숫자가 많고 다들 검을 들었기에 자만심은 곧 죽음으로 이어질 수 있다.

검이란 위험한 것이다. 세 살 아이가 찌른 검에도 치명상을 입을 수 있는 법이니.

어느덧 산채의 입구가 보였다.

예민한 하현의 기감에 입구를 지키고 있는 여러 사람이 느꼈지만, 그는 아랑곳하지 않고 그 앞으로 걸어갔다.

‘더 요란하게, 더 혼란스럽게.’

하현이 하려는 것은 혼란을 야기하는 것.

그의 양손에 강맹한 기운이 몰려들었다.

* * *

“하암-.”

산채 입구를 지키던 산적, 인황은 따사로운 햇볕에 하품까지 하며 여유로운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그가 용호채에 몸담은 이후 삼 년간 용호채를 찾아온 자는 단 한 명도 없었다.

“오늘도 따분하구먼.”

옥화산을 넘어 중경시, 더 나아가서는 호북까지도 손을 뻗으려 하는 거대한 산채가 바로 이곳이다.

목숨이 아까운 줄 아는 자라면 이곳에 모습을 드러낼 리가 없는 것이다.

“어라? 형님. 저거 사람 아니오?”

“사람? 우리 식구냐?”

“행색이 그래 보이진 않소.”

그는 반쯤 누워있던 몸을 일으켜 바깥을 내려다보았다.

부하의 말처럼 누군가 접근하는 것이 보였다.

“누구지? 처음 보는 자인데.”

“길을 잘못 든 자 아니겠습니까?”

“흐흐. 그렇다면 선물이 제 발로 걸어들어오는구나.”

인황는 산적이 되기 전부터 무공을 익혀온 자였다.

하지만 자질이 뛰어나지 않았는지, 애매한 수준에 머물렀고, 그 무공 실력으로는 출세하기가 어려울 것이라고 생각한 그는 산적이 된 것이다.

“어라……?”

그런 인황의 눈에 침입자의 행동은 조금 이상해 보였다.

만약 길을 잘못 든 사람이라면 우왕좌왕하거나, 이 거대한 산채를 보고 위압감을 느낄 만도 한데, 그는 굳게 닫힌 대문을 향해 곧장 걸어왔으니 말이다.

우웅-

게다가 그도 무림인이기에 느낄 수 있었다.

저 침입자의 양손에 모여드는 기운을.

그는 깜짝 놀라 소리쳤다.

“무림인! 무림인이다! 다들 경계태세를 갖추고, 활을 쏘아라!”

인황의 커다란 목소리는 부하들은 물론, 침입자 하현에게도 똑똑히 들렸다.

하현은 그 목소리를 듣고 가볍게 중얼거렸다.

“너무 늦었어.”

팍!

그는 보법을 전개하며 앞으로 쇄도하여 기운이 모인 양손을 그대로 산채 대문에 꽂아 넣었다.

콰앙!

마치 폭환이라도 터진 것 같은 굉음이 울려 퍼졌다.

그러나 문은 뒤로 넘어가지 않았다.

“치잇.”

하현은 혀를 크게 찼다.

‘아직은 얕아. 무엇이 문제지?’

그가 생각한 항룡유회의 위력이라면 이 정도의 문은 쉽게 부술 수 있어야 한다.

그런데 어느 부분에서 잘못되었는지, 생각한 만큼의 위력이 나오지 않았다.

휘익-!

그때 하현에게 화살 세례가 쏟아졌다.

비록 산적들이라고는 하지만 평소에 체계적으로 훈련을 하고 있었는지 생각보다는 대응이 빨랐다.

순간 취월걸개 사부님처럼 손으로 모두 막아볼까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그는 자만하지 않기로 했다.

스릉-

적룡검의 붉은 검신이 빛을 뿜고, 하현에게 쏟아지던 화살들은 모두 공중에서 갈라졌다.

“고, 고수!”

그 모습을 본 산적들은 모두 아연실색했다.

그들이 아무리 이 일대를 주름잡는 산적들이고, 보통 사람들에 비해서는 엄청나게 뛰어난 용력을 가지고는 있지만, 무림인들 앞에서는 번데기 앞에서 주름잡기다.

“경거망동하지 말아라!”

부하들을 진정시킨 인황은 하현의 앞으로 뛰어내렸다.

‘저 문을 한 번에 부수지 못할 정도라면.’

분명히 문을 부술 목적으로 장을 내질렀을 것이 분명할 터.

그것에 실패한 것을 보고 자신감이 생긴 것이다.

“어디서 온 웬 놈이냐.”

인황이 거대한 도를 치켜들며 말했다.

어지간한 무인은 이 도만 보고도 위압감을 느끼기 마련이다.

그러나 앞에 있는 자는 신경도 쓰지 않는 것 같았다.

오히려 다른 소리를 했다.

“그 큰걸 휘두르긴 할 수 있는 건가요?”

“뭐, 뭐라고?”

“효율적이지 못할 것 같은데…. 아! 도를 앞으로 내미는듯한 기수식을 취하면 빠르게 출수할 수 있겠군요. 방어의 용도로 쓸 수도 있겠고요.”

“무슨 소리를 지껄이는 거냐!”

인황은 거대한 도를 휘두르며 하현에게 달려들었다.

하현은 그 모습을 보고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발도는 포기하시고 도를 앞으로 하는 기수식을 취하시라니까요.”

하현은 가볍게 앞으로 몇 발자국만 걸으며 가볍게 팔을 횡으로 그었다.

검이 지나가는 소리도 들리지 않는 아주 가벼운 검이었다.

“억……!”

그러나 인황에게는 절대 가볍지 않은 한 수였다.

그가 도를 온전히 추어올리기도 전에 하현의 검이 그의 어깨를 베어내며 지나갔으니까.

털썩!

어깨 힘줄이 갈라진 그는 도를 계속 들고 있을 수 없었다.

뻑!

하현은 검 손잡이로 망연자실한 표정을 짓고 있는 인황의 관자놀이를 강하게 내리쳤고, 그는 결국 혼절하고 말았다.

“혀, 형님께서 한 수에!”

“검이 어떻게 나가는지 보이지도 않았어……!”

산적들은 믿기지 않는 광경에 혼비백산했다.

“침입자다! 침입자가 나타났다!”

“무공을 익혔다!”

개중에는 크게 소리치며 산적들을 부르러 갔지만, 하현은 그에 개의치 않았다.

결국, 최대한 많은 사람의 이목을 집중시키는 게 하현의 목적이었으니까.

“기운을 어깨에서 폭발시키는 게 아닌가?”

대신 하현의 머릿속은 아직도 항룡유회에 대한 생각으로 가득했다.

“분명히 사부님은 이렇게 하셨는데.”

다시 한번 끌어올린 기운을 다리로 내린다.

다리를 한 번 휘감은 기운은 허리와 등을 지나서 다시 어깨로, 어깨에서 다시 손으로 이동했다.

우우웅-

기운이 몰려든 덕에 손에서 기파가 일어나기 시작했다.

저벅-

하현은 다시 문 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검으로 한다면 이미 문을 쉽게 베어냈을 것이다.

허나 하현은 고집을 부렸다.

어떻게든 새로 배운 이 장법으로 문을 뚫어내고 싶었다.

‘사부님이 어떻게 하셨는지 한 번만 더 떠올려보자.’

눈을 감고 그날의 상황을 다시 떠올렸다.

그러자 이 급박한 상황 속에서도 취월걸개의 모습이 생생히 떠올랐다.

‘기운을 어깨에서 터트리는 것은 맞다. 다리로 땅을 단단히 받치는 것도 맞고.’

번쩍!

무언가를 깨달았는지 하현의 두 눈이 번쩍 뜨였다.

그의 입가에는 미소가 걸려 있었다.

그는 문을 향해 팔을 쭈욱 내뻗었다.

콰작!

조금 전에 문을 향해 출수했을 때는 폭발하는 듯한 거대한 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에 비교하면 굉장히 소박한 소리였다.

하지만 위력만은 소박하지 않았다.

하현의 양손이 두부를 뚫듯 손쉽게 문을 뚫고 들어갔다.

팔을 회수하고는 문의 잠금쇠 부분에 팔을 내뻗자 이번에도 허무하게 빗장이 뚫려 버렸다.

잠금장치가 망가진 문은 슬쩍 밀어내니 손쉽게 열려버렸다.

“이렇게 하는 거였구나. 방사가 아니라 집중이었어. 검법, 도법과는 또 다르구나.”

하현의 얼굴은 굉장히 즐거워 보였다.

그는 취월걸개가 들었다면 깜짝 놀라 까무러쳤을지도 모르는 소리를 아무렇지도 않게 했다.

본디 항룡십팔장은 초식이 중요한 무공이 아니다.

내공을 운용하는 방식과 폭발시키는 방법이 시작이자 끝이라고 할 수 있다.

초식이란 그 기운의 효율에 맞게 움직일 수 있는 동작을 정리해낸 것뿐.

결국, 항룡유회를 성공적으로 해낸 하현은 이미 항룡십팔장을 익혔다고 봐도 무방한 것이다.

“누가 보내서 온 것이냐!”

하현이 자신의 성취에 기꺼워하고 있을 때, 어디서 튀어나왔는지 수많은 산적이 하현을 에워싸고 있었다.

조금 전 하현의 신위를 보았을 것이 분명하건만, 압도적인 숫자에서 오는 자신감 덕분일까? 그들에게는 하현을 두려워하는 기색은 보이지 않았다.

“여러분들이 이 근방에서 일으키는 문제가 만다고 하여 왔습니다. 항복하신다면 목숨은 살려드리겠습니다.”

죽어 마땅한 놈들이지만, 하현은 이렇게나 많은 사람을 도륙할 생각은 없었다.

그렇기에 제갈정현에게 관군을 최대한 많이 불러오라 한 것이다.

관군과 산적들을 싸움 붙이려 한 것이 아니라, 산적들을 관아로 압송할 인원이 많이 필요할 것이기에.

“어린놈이 무공을 좀 배운 것 같은데, 겁도 없구나. 여기가 어디인 줄 알고 찾아온 것이냐?!”

“용호채라고 들었습니다.”

“그래! 용호채다. 그걸 알고서도 찾아왔다는 말이냐?”

“만약 몰랐다면 이곳에 올 수 없었겠지요.”

“이익……!”

하현은 산적에게 한마디도 지지 않으며 적룡검을 검집에 넣고, 검과 검집이 분리되지 않도록 끈으로 꼼꼼히 묶었다.

‘이 장법은 아직 세밀하게 조종하는 것은 무리겠어.’

힘 조절을 잘못하면 상대의 머리를 그대로 터트려 버릴 수도 있기에 하현은 조심하기로 했다.

대신에 택한 것이 검집에서 뽑지 않은 검이었다.

척-

하현이 검을 치켜 올렸다.

적룡검은 검집도 특상급의 제품이었다.

어지간한 충격에는 깨질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된다.

게다가 하현이 기운으로 검집을 보호할 테니, 지금 하현이 든 것은 검이라기보다는 차라리 몽둥이라고 하는 게 적절할 것이다.

‘일흔…. 여든…. 아흔…. 좋아. 점점 더 많은 숫자가 이곳으로 오고 있다.’

하현의 예리한 기감은 주변에 점점 산적들이 몰리는 것을 알려주었다.

그리고 그것이 하현이 의도하는 바였다.

‘조금 더 요란하게, 조금 더 혼란스럽게.’

하현의 진짜 목표는 산적을 때려잡는 것도 있지만, 남궁환이 잠입할 수 있도록 이목을 이쪽에 완전히 쏠리게 하는 것.

그는 주변을 둘러보다가, 가장 가까운 자를 향해 검집을 휘둘렀다.

빠악!

번개같이 휘두른 검집에 머리를 맞은 그는 별다른 반항도 해보지 못하고 그대로 쓰러졌다.

“하나.”

“죽어라!”

검을 들고 달려오는 자의 명치에 그대로 검집을 찔러넣자 그 역시 첫 번째 산적처럼 일격에 쓰러지고 말았다.

“커헉!”

“둘.”

“으아아! 죽어!”

“에워싸라. 꼼짝도 못 하게 만들어라!”

두 명이나 기절하여 흥분했는지 산적들이 미친 듯이 달려들기 시작했다.

하현은 여유로운 모습으로 기수식을 취했다.

조금이라도 흐트러진 모습을 보일 수는 없다.

앞으로 삼백이 넘는 숫자를 세어야 하니까.

남궁세가 천재 외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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