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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궁세가 천재 외손자-138화 (138/304)

138화

“아버님. 취월걸개 어르신에게 서신이 왔습니다.”

“그래? 현이가 사천에 간 일은 잘 해결되었는가?”

남궁기철이 가지고 온 서신에 남궁무룡이 반색했다.

아직 취월걸개의 이름밖에 거론하지 않았건만, 그는 벌써 하현을 말하고 있었다.

“제법 상세하게 적혀 있는 서신입니다. 제가 말씀드리기보다는 직접 보시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그래? 알겠다. 읽어 보지.”

남궁무룡이 서신을 받아 처음부터 끝까지 샅샅이 읽었다.

중간쯤 읽을 때는 그의 미간이 확 좁혀지더니, 마지막에 가서는 다시 미미하게 웃음 짓고 있었다.

“검마라니…. 이젠 아예 대놓고 활동을 시작했군.”

“그런 것으로 보입니다. 허나 그를 죽인 무인이 누구인지는 아직 밝혀내지 못했다고 합니다.”

“당가의 추적술은 무림에서도 손꼽히는 수준이건만, 흔적도 없다니…….”

서신을 초에 가져다 대 불을 붙이니, 서신은 순식간에 타버렸다.

불에 잘 타도록 기름을 먹여놓은 특수한 종이였다.

“시신을 조사해본 결과, 검마는 별다른 대항 없이 검을 맞아 죽은 것으로 보인다고 하니까요.”

“면식이 있는 자거나, 혹은 검마가 스스로 생을 포기했다고 볼 수 있겠구나.”

“네. 여러 가능성을 두고 아직 조사하는 중이라 하니, 기다려 봐야겠습니다.”

남궁무룡은 고개를 끄덕였다.

무림의 큰 어른으로서 그는 중심을 지켜야 했으니까.

“민이는 연락이 있었느냐?”

“섬서에 도착했다는 연락을 끝으로, 더 온 연락은 없습니다.”

“그랬구나. 별일 없어야 할 텐데.”

남궁기철이 빙긋 웃었다.

“민이에게 큰일은 없을 것입니다. 혹여나 버거운 상대를 만나더라도, 신법으로 민이를 잡을 수 있는 자는 거의 없을 테니까요.”

“그렇겠지. 취월걸개도 인정했을 정도니까.”

남궁무룡은 어디 내놓아도 자랑스러운 그의 큰손자를 떠올리고는 말을 이었다.

“그러면 하현이는 여기에 언제쯤 돌아올 것 같은가?”

“빠르면 일주일, 늦어도 열흘 안에는 돌아올 것입니다.”

“그 안에 민이가 돌아오면 좋겠건만.”

“신가장에서의 볼일을 보고 돌아오는 데는 일주일이 채 필요하지 않을 겁니다. 그 안에 돌아올 수 있습니다.”

남궁민이 임무로 향한 곳은 원래 하현이 살았던 섬서성의 신가장이었다.

예전에도 그곳을 몇 번이고 수색한 적은 있지만, 다시 한번 남궁민을 보내 샅샅이 수색하도록 했다.

이전에는 여러 사람이 몰려갔다면 이번에는 한 명이 알아보도록 한 것이다.

“알겠네. 신가장 소식을 그러면 더 기다려 보도록 하마. 창천각에는 따로 얻은 정보가 없는가?”

“이외에는 마교에 대해서는 별 것 없었습니다. 다만 조금 특이한 무인에 대한 소식이 하나 들어왔습니다. 화멸검이라는 별호를 가진 무인인데…….”

“화멸검?”

남궁무룡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평생 무림에서 살아온 그이지만, 처음 들어보는 별호였다.

“화멸검이라는 무인이…. 환이인 것 같습니다.”

“뭐라? 우리 환이 말이냐?”

“네. 분명히 자신을 남궁세가의 남궁환이라고 소개했다고 합니다.”

“그래? 허허…. 더 자세한 소식을 알아보도록 할 수 있겠나?”

“그리하겠습니다.”

남궁무룡이 빙긋 웃으며 말했다.

“그래. 오늘은 이쯤 하지. 나이를 먹으니 오래 앉아있기가 힘들어서.”

“알겠습니다.”

남궁기철은 그의 아버지이자 가주인 남궁무룡에게 읍소하고는 그의 집무실을 나갔다.

남궁무룡은 자리에서 일어나며 아까의 그 별호를 작게 중얼거리며 웃었다.

“화멸검? 하하하.”

발 없는 말이 천 리 간다.

이보다 더 적절할 수 있는 말은 없어 보였다.

* * *

하현을 태운 말은 시원하게 바람을 갈랐다.

사천과 중경의 마지막 경계지역에서도 남궁환이 당규호에게 받은 목패는 유효했다.

그곳의 역참에서 준마를 받은 그들은 벌써 호북성에 들어온 지 한참이었다.

“좀 쉬어가야겠다. 말들 물도 좀 먹이고.”

“좋아.”

온종일 달린 덕인지 말들은 콧김을 쉭쉭 뿜으면서 지친 기색이 역력했다.

남궁환이 잠시 시냇가로 말을 끌고 가 물을 먹이는 동안에 하현은 주변을 정리했다.

이런 아무도 없는 첩첩산중에 말을 두고 갈 수도 없는 노릇이니.

말들이 휴식을 취하는 동안은 꼼짝없이 쉴 수밖에 없기 때문이었다.

“말도 내공을 쓸 수 있다면 정말 좋을 텐데.”

그는 혼잣말하고서도 어이가 없는지 피식 웃었다.

언젠가 동물들이 오래 살며 무언가를 깨닫게 되면 내공도 쌓고, 사람처럼 의사소통도 할 수 있다는 이야기를 들은 것이 생각났다.

“말들이 갑자기 그런 영물이 될 수는 없는 법이니까.”

잠시 후에 남궁환이 말 두 마리를 이끌고 다시 나타났다.

그는 오자마자 말을 묶은 목줄을 길게 묶어 자유롭게 주변의 풀을 뜯을 수 있게 한 후에 하현의 옆에 앉았다.

“그래도 덕분에 이렇게 쉬어가고, 바람도 맞고 좋네.”

“그러게. 형은 돌아가면 뭐 할 거야?”

“나? 음…. 단독임무를 몇 번 받아서 나도 정예대원으로 승급부터 해야겠지.”

진지한 목소리였다.

남궁환은 정말로 앞으로 더 발전하리라 마음먹은 것 같았다.

“잘 생각했어. 본격적으로 해볼 생각이구나?”

“지금까지도 본격적으로 했거든?”

“그래? 난 잘 몰랐네.”

하현의 능청스러운 대답에 둘은 큭큭 웃었다.

“하현이 너는?”

“나는 아직 모르겠네. 특별한 계획은 없어. 매일 똑같이 수련하는 거지 뭐.”

“하긴, 넌 그것만 해도 하루가 모자라니까.”

둘이 하릴없이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어느덧 해가 져가고 있었다.

그들은 아예 오늘 하루는 야영하며 쉬어가기로 했다.

밤에도 말을 몰고 이동할 수는 있으나, 밤에 천천히 움직이며 힘을 빼놓기보다는 아예 지금은 쉬어 두고, 해가 뜨면 빠르게 달릴 생각이었다.

이윽고 해가 넘어가고, 하현과 남궁환은 수풀에 누웠다.

누군가에게 쫓기고 있는 상황도 아니고, 쫓을 일도 없기에 두 사람은 땅을 파내어 작은 구덩이를 만들고, 그 안에는 불을 피워 놓았다.

구멍을 파고 불을 피우면 불을 끄고 나서 다시 흙을 덮어주면 그만이니 뒤처리하기에도 그만이었다.

“잘 자. 내일은 또 새벽같이 움직여야 할 테니까.”

“응 형도.”

하현은 간단히 인사를 나눈 뒤에 잠자리에 들었다.

아니, 정확히 말해 잠든 것처럼 누워있었다.

그의 창궁대연심공은 발전하고 또 발전해서 한 차원 더 상승한 경지에 이르렀다.

위기와 깨달음을 겪을 때마다 상승한 창궁대연심공은 이제 누워서도 운기를 할 수 있게 되었다.

걸으면서도 운기를 할 수 있을 정도이니, 누워서 하는 것은 더욱 쉬운 일이었다.

구우우-

아무에게도 들리지 않지만, 하현에게는 몸 안에 거대한 기운이 움직이는 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이 기운은 천천히, 그리고 끊임없이 움직이며 하현의 몸 안 곳곳에 자리 잡은 월룡의 기운을 녹여내고 있었다.

스슥-

그때 하현의 귀에 무언가 스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하던 운기를 멈추고 청각에 집중했지만, 한참 동안 아무 소리도 들려오지 않았다.

‘잘못 들은 건가?’

풀이 바람에 스치는 소리일 수도 있었지만, 하현은 계속해서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었다.

그리곤 또 한 번

스슥!

하현은 슬며시 눈을 떴다.

무언가 이 주변에 있다는 것은 확실했다.

‘살수?’

하현의 머릿속에 두 글자가 지나갔다.

얼마 전 사천사살이 보였던 수법과도 비슷하게 느껴졌다.

그들은 기를 숨기는 수법으로 하현의 기감을 피해낸 적이 있었으니까.

‘누구지? 언제부터 따라온 거지?’

수많은 생각이 머리를 스쳐 간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봐도 쉬이 가늠이 가질 않았다.

시종일관 말을 타고 전속력으로 달렸던 하현과 남궁환이다.

은신술을 펼치면서도 그 정도 속도의 신법으로 하현을 따라왔다는 것은 곧 엄청난 고수라는 것과 다름없었기 때문이다.

‘취월걸개 사부님 정도는 되어야 할 수 있을 텐데.’

하현은 생각하면서도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만약 그 정도의 고수가 나쁜 마음을 먹고 온 것이라면 하현으로서는 어찌할 방도가 없었기에, 눈으로라도 확인하고자 한 것이다.

스슥- 스슥-

하현이 몸을 일으켰음에도, 풀에 쓸리는 소리는 점점 더 커졌다.

그 소리가 나는 곳은 말이 묶여 있는 곳이었다.

‘말을 먼저 죽여 도망칠 방도를 없애려는 것인가?’

하현은 소리의 근원지를 찾아 천천히 다가갔다.

달빛이 밝은 덕분에 최대한 풀이 나 있지 않은 곳을 밟아가며 소음을 최소화한 덕분일까, 괴한은 하현이 다가오고 있다는 것을 눈치채지 못한 듯, 빠른 속도로 말에게 다가가고 있었다.

하현도 말을 지키기 위해 재빨리 발을 놀렸다.

“……?”

말이 묶여 있는 곳 언저리까지 내려왔을 때,

하현은 괴한의 정체를 확인하고는 말을 잇지 못했다.

“표범인가……?”

그것은 사람 정도 되는 크기의 맹수였다.

하현이 말하기 전까지는 하현이 오는 것을 알아차리지도 못한 듯 말에게만 온 신경을 집중하고 있었는데, 하현의 육성이 들리는 순간 머리를 홱 돌려 하현과 눈이 마주쳤다.

밝은 달빛 덕에 푸른색의 안광이 빛났다.

“표범이 아니라…. 호랑이잖아?”

크기가 작아 표범인 줄 알았는데, 몸통과 머리의 무늬가 눈에 들어왔다.

“그르르…….”

호랑이는 하현에게서 위험을 감지했는지, 그를 보며 으르렁거리기 시작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하현은 위험하다는 생각이 전혀 들지 않았다.

몸집이 작아서 그런 것은 아니었다.

작은 호랑이지만, 아직 어린 개체로 보이지는 않았으니까.

‘저 눈…….’

호랑이와 눈이 마주치는 순간 하현은 느낄 수 있었다.

왜인지 이 호랑이는 말을 알아들을 수 있을 것 같다고.

“사냥 중에 방해해서 미안한데, 이 말들은 안 돼. 우리를 집까지 데려다 줘야 하거든.”

“그르르…….”

마치 하현의 말을 알아듣는 듯 호랑이가 으르렁거렸다.

“먹을 게 필요한 거면 대신 다른 걸 줄게. 기다려.”

하현은 말에 묶어놓은 봇짐에서 육포를 꺼냈다.

“사람이 먹는 거라 네가 먹어도 되는지는 모르겠지만, 이것도 결국은 고기야.”

호랑이 앞에 육포를 던지자, 호랑이는 끝까지 하현을 경계하며 냄새를 맡아보더니 곧 육포를 가지고 사라졌다.

하현은 마치 꿈이라도 꾼 기분이었다.

“지금 내가 꿈을 꾸고 있는 건 아니겠지?”

허벅지를 꼬집어 봐도 생생한 고통이 느껴졌다.

“저게 진짜 영물이라는 건가?”

* * *

다음 날 저녁.

하현과 남궁환은 호북 무한에 도착하였다.

그들은 사천으로 갈 때 들렀던 객잔에 다시 들르기로 했다.

점소이에게 방과 식사를 부탁하고, 그들은 식당에 앉았다.

이 자리도 그때 앉았던 그 자리였다.

옆자리의 탁자를 보니 객잔 주인이 즉각 탁자를 바꾸었는지, 남궁환이 만들어 놓은 손자국이 보이지 않았다.

“여기서 제갈 형을 만났었지.”

“그러게. 지금쯤 제갈세가에 도착했을까?”

“헤어진 지 이틀밖에 안 되었으니, 아직은 도착하지 못했을지도 몰라. 중경까지 산적들 호송하는 것을 끝까지 봐주겠다고 했으니까.”

하현은 그의 얼굴이 떠올라 피식 웃었다.

“내가 생각했던 제갈세가와는 정말 다른 느낌이었어. 제갈세가는 엄청나게 똑똑하고 권모술수에 능한 사람만 있다고 생각했는데, 제갈 형은 되려 순수한 느낌이었지.”

“맞아. 거짓말은 못 할 사람처럼 보였으니까.”

그러다 문득 옆자리에 앉은 사람이 이쪽을 빤히 바라보고 있다는 것을 알아챘다.

“무슨 볼일이라도 있습니까?”

“아…! 죄송합니다. 바로 옆자리에서 이야기를 듣다가 익숙한 가문 이름이 들려서 말입니다.”

“익숙하다니요?”

반문하며 그의 외견을 훑어보니, 여리여리한 선비 같은 얼굴에, 제갈정현이 입은 것과 비슷한 장포를 입은 자였다.

그가 아차 하는 표정을 지으며 하현과 남궁환에게 인사했다.

“아, 제 소개를 못 드렸군요. 제갈세가의 제갈정규입니다.”

“제갈정규라면……?”

그때 남궁환이 그의 이름을 듣고 떠오르는 기억을 말했다.

“혹여 배화문 사건의 그 제갈정규?”

“아! 알아봐 주시는군요. 작은 소동이었는데, 기억해주시어 감사합니다.”

“현아. 저번에 정현 형님이 말씀해주셨잖아. 형이 있다고.”

제갈정규가 정현이라는 말을 듣고 이제야 알겠다는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아…! 정현이를 만나셨던 거군요.”

그는 사람 좋게 웃었다.

하현이 만나는 두 번째 제갈세가 사람이었다.

남궁세가 천재 외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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