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남궁세가 천재 외손자-140화 (140/304)

140화

하현이 세가로 돌아오고 나서도 석 달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정말 오랜만에 하현은 여유로운 시간을 보내며, 지금까지 배워온 무학들을 정리할 수 있는 시간을 가졌다.

소화와 팽헌홍은 오월에 있을 용봉지회에 참가하기 위해 개봉으로 떠났고, 남궁민은 임무를 떠나 아직 돌아오지 않았다.

그리고 남궁환 역시 이번 사천행에서 보고, 느낀 바가 무척이나 컸기에 폐관 수련이라고 할 수 있을정도로 방과 연무장에만 틀어박혀 수련에 박차를 가하는 중이었다.

하현도 다른 형, 누나들에게 질 수 없기에 오늘도 수련하러 나왔다.

사천에 다녀오고 나서 가장 크게 변한 것이 한 가지 있었는데, 바로 하현이 항상 무공을 수련하던 숙소 옆 공터였다.

그곳에는 어느새 주변의 풀들이 깔끔하게 깎여 있었고, 작은 지붕이 달린 창고까지 지어져 있었다.

숙소에서 가장 가까운 이곳에서 수련하기를 즐기는 하현을 위한 할아버지의 배려가 느껴지는 듯했다.

“용봉지회라…….”

하현은 지금쯤 이미 무림맹에 도착했을지도 모를 소화를 떠올렸다.

용봉지회는 매년 오월에 무림맹에서 열린다.

크게 무회(武會)와 지회(知會)로 나뉘는데, 무회는 서로의 무공과 깨달음을 비무의 형식으로 나누는 것이고, 지회는 보름에 걸친 용봉지회 기간 동안 수시로 사교의 장을 여는 것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보통 사람들에게 용봉지회라고 말하면 지회보다는 무회를 즉각적으로 떠올리기 마련이다.

“소화누나와 팽형의 수준은 어느 정도일까?”

나중에 그 둘의 성적을 듣는다면, 후기지수들 사이에서 자신은 어느 정도의 위치인지 확실히 알 수 있으리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는 고개를 저었다.

“아냐. 후기지수들 사이에서 강한 것은 의미가 없어.”

그는 최근에 부딪혔던 검마를, 더 전에 싸웠던 혈랑을 떠올렸다.

과연 지금 자신이 혼자서 그 둘을 상대할 수 있을까?

하현은 냉정하게 생각하고는 고개를 저었다.

아직은 그들에게 미치지 못한다고 생각했다.

“아직은 많이 모자라.”

하현은 도망치는 염강표국의 사람들과, 검마를 죽인 사람을 문득 떠올렸다.

비록 직접 보지는 못했지만, 그 흔적으로부터 직감처럼 느껴지는 것이 있었다.

“위험한 냄새…….”

취월걸개와 당규호가 말하지 않아 굳이 티는 내지 않았지만, 하현은 검마의 수법에서 무언가 익숙하지만 아득하게 위험함이 느껴지는 냄새를 맡은 듯했다.

그리고, 그 냄새의 주인과 언젠가는 싸우고 말 것이라고 생각했다.

“어차피 생각만 해서 되는 건 없으니까.”

하현은 일단 움직이기로 했다.

머리로 걱정한다고 해서 해결되는 것은 없다.

언젠가 올지도 모를 그날을 위해서 조금이라도 강해지기 위해 노력할 뿐이다.

* * *

검존.

검에 있어 지존에 자리에까지 올랐다는 존경의 칭호.

남궁무룡은 배분과 나이로서도 무림의 큰 어른으로 받들어질 정도지만, 항상 검의 지존이라는 명칭으로 먼저 불리곤 했다.

“흐음…….”

그런 그가 수심 깊은 얼굴로 자신의 연공실에 앉아있었다.

최근 들어 그는 자신의 상태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정확히는 혈랑과 싸웠던 날 이후로 계속.

“나이 탓인가?”

생각해보면 그럴 만도 했다.

그의 나이는 아흔여섯.

벌써 백 세를 바라보고 있기 때문이다.

시간의 흐름은 인간의 힘으로 어찌할 수 없으니.

스릉-

검을 뽑아 든 검존의 팔근육이 꿈틀거렸다.

노인의 팔이라고는 생각지도 못할 팔이었다.

그는 검로를 따라 유려하게 움직였다.

파앙-! 콰앙-!

그가 검을 휘두를 때, 땅을 박찰 때마다 엄청난 기파가 몰아쳤다.

진실만을 말하자면, 사실 그는 이전에 비해 결코 약해지거나 노화한 것처럼 보이지 않았다.

다만 조급함이 그를 스스로 만족하지 못하게 하고 있는 것이었다.

부왕! 와앙!

말 그대로 공기를 찢어버리는 그의 검.

이 검에는 그의 걱정이 여실히 담겨 있었다.

모두들 정마대전은 삼십 년 전에 끝났다고 생각하고 있을 터였다.

하지만 혈랑과 검을 마주한 순간, 그는 깨달았다.

‘전쟁이 끝난 것이 아니라, 잠시 쉬고 있었을 뿐.’

사도련주의 죽음과 함께 항복선언을 하고 뿔뿔이 와해된 정사대전의 결말과는 달리, 정마대전은 싸우던 도중 그들이 안개처럼 흩어졌으니 말이다.

‘혈랑…….’

그는 문득 죽은 채형석을 떠올렸다.

삼십 년간 그는 무섭도록 발전해서 나타났었다.

원정을 바닥까지 쥐어짜냈다고는 하지만, 새로운 깨달음을 얻은 남궁무룡과 맞붙을 수 있을 정도의 수준이었으니 말이다.

채형석과 남궁무룡은 서로의 수를 읽으며 단 한 번의 실수도 하지 못하는 상황이기에 소극적이고 작은 싸움을 계속했다.

만약 혹자가 그 싸움을 보았다면 둘의 수준이 생각보다 낮다고 생각할 수 있을 정도였다.

“후우-”

그는 창궁무애검법의 초식을 일순하고서는 크게 숨을 내쉬었다.

몸을 움직이자 지금도 그를 괴롭히고 있는 조급함의 정체를 알 것 같았다.

‘마교…. 마교 때문이지.’

그들은 이제 거의 대놓고 활동을 하기 시작했다.

다시 중원에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한 것은 한 가지 이유밖에 없다.

‘이제는 다시 맞붙을 자신이 있다는 것인가……?’

지난 삼십 년간 그들은 차근차근 전쟁을 준비해왔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당연히 정파 무인이라고 해서 그동안 놀고 있었던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와 취월걸개 등 현재 무림의 중심이 되는 자들은 삼십 년, 오십 년 전에도 이미 무림의 중심이었던 무인들이 대부분이었다.

그들의 다음 배분, 다다음 배분 무인들이 약한 것은 아니지만 현재 그보다 더 강한 자를 찾아볼 수 없는 실정이니, 세대교체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고 볼 수 있었다.

“후후…….”

이 심각한 고민을 하는 와중에 그는 웃음을 흘렸다.

다음 세대에 대해 생각을 하다 보니 자연히 그의 손주들이 떠오른 까닭이었다.

눈부시게 성장하고 있는 그들을 보고 있노라면 밥을 먹지 않아도 배가 부른 것 같았다.

남궁환과 소화는 이제 당당히 후기지수라고 일컬을 수 있을 정도이고, 하현은 그 둘보다 더 어림에도 고수의 반열에 올라서고 있었다.

그리고 그의 큰손자 남궁민.

‘민이를 단순히 고수라고 하기에는 부족하지. 아마도 구파의 장로는 되어야 그를 상대할 수 있을 정도일 테니.’

제 핏줄이라서가 아니라, 다음 세대를 생각하면 그는 자연스럽게 민이와 하현이 떠올랐다.

그 둘은 필히 다음 세대를 대표할 무인이 될 수 있으리라.

‘그러고 보니, 민이가 돌아올 때가 되었던가?’

섬서성으로 임무를 떠난 남궁민.

생각해보니, 그가 서신을 보내온 지도 꽤 되었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무슨 일이 생긴 것은 아니겠지?’

하지만, 이내 그는 고개를 저었다.

위기 상황에 비상 연락을 취할 방법을 마련한 그들이다.

무소식이 희소식이라고 생각한 그는 다시 검을 집어넣었다.

슬슬 하현이 가르침을 받으러 올 시간.

그는 오늘은 하현에게 무엇을 가르쳐줄지 즐거운 고민을 하기 시작했다.

* * *

섬서성 옛 신가장이 있던 자리.

신가장이 멸문하고 나서 이 주변은 그 누구도 찾아오지 않는 곳이 되었다.

무림맹에서는 일부러 이곳에서 귀신이 나온다는 소문을 흘렸고, 그 덕에 순진한 양민들은 얼씬도 하지 않게 되었다.

그리고 무림인들도 이곳에 오지 않는 것은 마찬가지였는데, 그 이유는 단순했다.

아무것도 얻을 것이 없기 때문에.

만약 신가장이 이름있는 무가였다면 혹시나 남은 비급이라도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 기웃거릴 무인들이 있었을 것이고, 굉장한 부자였다면 미처 챙기지 않은 재물을 찾으러 많은 사람이 찾아왔을 것이다.

하지만, 신가장은 이렇다 할 무력을 가지지도 않았고, 검소하게 살았기에 큰 재물도 있지 않았다.

그렇기에 남궁민은 이곳에 있는 약 삼 개월의 시간 동안 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고 이 주변을 샅샅이 살필 수 있었다.

그리고 오랜 탐색을 마친 결과, 그는 작은 성과를 낼 수 있었다.

‘이런 걸 왜 묻어두었지?’

장원의 구석에서 발견한 것은 구련환, 칠교판 같은 아이들이나 가지고 놀 법한 장난감들이었다.

무슨 의미가 있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아무 성과도 없지는 않아 다행이라고 생각하며 그 물건들을 챙겨 장원에서 빠져나왔다.

길로 움직이면 사람을 만날 수도 있기에, 바로 옆에 길게 이어져 있는 숲으로 들어가려던 찰나, 남궁민은 인기척을 느끼고 몸을 바닥에 붙여 바짝 엎드렸다.

샤샥-!

‘저자들은 누구지?’

정말 간발의 차였다.

그가 조금만 늦었더라면 저들과 마주칠 뻔했다.

‘모두 세 명.’

남궁민은 눈에 내공을 집중해 안력을 돋우었다.

회색 장포를 입은 중년인이 하나.

그리고 각각 붉은 무복과 푸른 무복을 입은 노인 둘이었다.

“…….”

“…….”

그들이 무엇이라 말을 하고 있지만, 거리가 먼 탓인지 아무 얘기도 들리지 않았다.

남궁민은 이번에는 청력에 내공을 집중했고

그러자 이제야 무언가 들리기 시작했다.

“참나! 뭐 중요한 게 있다고 여기까지 우리를 오라 가라야?”

“네가 교주님의 총애를 받는다하여 우리 위라고 생각하지 말아라……!”

붉은 무복과 푸른 무복을 입은 노인은 회색 중년인에게 끊임없이 투덜거리며 불만을 쏟아냈지만, 회색 중년인은 허허 웃으며 그들의 불만을 모두 들어주었다.

“설마 제가 그리 생각하겠습니까? 두 분의 실력이 제일 뛰어나니, 제가 도움을 요청한 것이지요.”

“닭 잡는 데 소 잡는 칼을 쓰면 소 잡는 칼이 얼마나 기분 나쁜지 아느냐?”

“저는 닭이 아니라 소라고 생각하여 두 분께 부탁을 드린 겁니다.”

“겨우 물건 가져오는 게 뭐가 어렵다고?”

회색은 기다렸다는 듯 대답했다.

“섬서에만 해도, 화산과 종남이 자리하고 있고, 바로 옆 감숙에는 공동이, 그리고 소림과 개방, 무림맹이 있는 하남성도 바로 오른쪽에 붙어 있습니다. 그러니 섬서에 온다는 것은 적들의 심장에 들어오는 것과 마찬가지죠. 심장에 어울리는 분이 둘 말고 또 누가 있겠습니까?”

회색의 말에 금방 넘어가 언제 불만이 있었냐는 듯 헤실거리며 웃기 시작했다.

“흠흠. 그런가?”

“얘기를 들어보니 그렇게 쉬운 일은 아니구나. 누구를 마주칠지 모르는 일이니.”

조금은 모자라 보이는 그 둘을 보며, 남궁민은 속으로 생각나는 이름이 있었다.

‘혹시, 청홍쌍괴(靑紅雙怪)?’

청홍쌍괴는 정마대전에서 악명을 떨쳤던 마교의 두 고수를 함께 말하는 별호다.

둘은 같은 사부에게 마공을 전수 받았는데, 한 명은 염공, 한 명은 빙공을 익혀 각자 무공에 맞는 색의 옷을 입고 다니는 것으로 유명했다.

푸른색의 장포는 청괴, 붉은색의 장포는 홍괴로 불린다.

‘실제로 본 적은 없지만, 조금 전 교주님이라는 말과 저 둘의 행색을 봤을 때는 맞다고 봐야겠지.’

남궁민은 빠르게 머리를 굴렸다.

‘저 회색 중년인이 누구인지는 모르겠지만, 청홍쌍괴는 합격술의 대가다. 삼십 년 전에 청성파의 장문인을 죽인 적이 있을 정도. 지금의 내 실력으로는…. 쉽지 않다.’

몸을 피해 도망가기로 한 남궁민은 최대한 소리를 죽이며 몸을 천천히 빼내기 시작했다.

그 사이, 세 명의 중년인은 익숙하게 장원을 건너가 한쪽 구석으로 움직였다.

남궁민이 조금 전 장난감을 찾아낸 바로 그곳이었다.

푹- 푹- 푹-

그도 무공이 고강한 자였는지, 땅을 파내는 그의 손이 두부를 가르듯 쑥쑥 들어간다.

하지만 몇 번의 손질 이후에 그가 입을 열었다.

“없다니?”

“왜. 무엇이 없느냐?”

“우리가 찾으러 온 것이 없습니다. 분명히 무림맹에서 찾아내지는 못한 것으로 확인했는데…….”

회색은 말하다 말고, 갑자기 납작 엎드리더니 주변 흙을 만져보고, 냄새를 맡아보기 시작했다.

“이런, 파낸 지 얼마 되지 않았습니다.”

“뭐라?”

“이건 제가 방금 파낸 흙. 이건 완전히 메말라 있는 흙. 그리고 여기 보시면…….”

“덜 마른 흙이 있군.”

회색이 그 흙을 손가락으로 비벼보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의 날씨와 온도로 보아, 이것을 파낸 건 반 시진이 채 되지 않았군요.”

천천히 몸을 빼던 남궁민은 깜짝 놀라 몸을 멈추었다.

그의 말이 정확했기 때문이다.

“그러고 보니…….”

“맞아. 아까부터 찜찜했는데.”

청홍쌍괴도 갑자기 턱을 쓸며 인상을 찌푸렸다.

“쥐새끼가 하나 있는 것 같은데?”

홱!

갑자기 청괴가 고개를 돌렸다.

그의 시선은 놀랍게도 정확히 남궁민이 숨어있는 곳을 향해 있었다.

남궁세가 천재 외손자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