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2화
지금 이 순간. 남궁민은 미소 짓고 있었다.
웃어야겠다고 생각하고서 나온 미소가 아니었다.
살 떨리는 강자와의 싸움을 앞두고서 본능적으로 나온 미소였다.
“웃어……?”
청괴가 그 표정을 보고 어이없다는 듯 말했다.
지금껏 그 앞에서 저런 표정을 짓는 자는 거의 없었다.
대부분 공포에 질린 표정이거나, 아니면 일생일대의 싸움을 앞둔 비정한 표정이었다.
단 두 명.
두 명만이 저런 표정을 지었었다.
하나는 그와 홍괴를 꺾고 수하로 삼은 마교의 교주였고, 또 하나는 그에게 처절한 패배를 안긴 적 있는 검존 남궁무룡이었다.
“치잇!”
조손의 관계라 어찌 보면 당연한 것일 수도 있지만, 검을 들고 서 있는 남궁민에서 남궁무룡의 모습이 겹쳐 보였다.
남궁민도 청괴를 보며 예전 남궁무룡이 해주었던 이야기를 떠올렸다.
‘청홍쌍괴. 분명히 세상 물정 모르는 우둔한 자들이라 했었지.’
지금까지 그들이 보인 모습을 보아서는 충분히 그 이야기를 이해할 수 있었다.
“죽어라. 남궁무룡의 핏줄!”
청괴의 손이 일렁였다.
그의 독문 무공은 청수마공(靑手魔功).
그 무공의 이름답게 손이 파랗게 물들어 가는 듯 보였다.
후욱!
그의 손이 남궁민에게 곧장 찔러 들어왔고
그것을 본 남궁민이 몸을 피하며 검을 휘둘러 재빠르게 손을 막아냈다.
청괴는 개의치 않고 손을 빼 그대로 다시 남궁민을 향해 손을 뻗었다.
샤악 턱!
검과 손바닥이 부딪혔건만, 검등으로 나뭇등걸을 패는 듯한 소리가 들렸다.
남궁민은 이쯤은 예상했다는 듯 아무런 반응 없이 반탄력을 이용해 검을 한 바퀴 빙글 돌리더니, 그대로 청괴에게 휘둘렀다.
마음의 검을 일으킨 쾌검이었다.
“으엇!”
칵!
청괴는 상상치도 못한 속도에 놀라 소리를 질렀지만, 손가락 끝으로 남궁민의 검을 막아내는 데 성공했다.
팟!
남궁민이 청괴의 손에 잡힌 검을 빼내며 뒤로 몇 발자국 후진했다.
그 모습을 흥미롭게 보던 청괴가 말했다.
“이제 약관을 갓 넘은 듯한데, 역시 남궁무룡의 손자답구나. 죽이기가 아까워. 목숨은 살려줄 터이니 항복해라.”
항복한다고 하여 정말로 저자가 살려줄까?
그는 항복할 생각도 없었지만, 청괴가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것쯤은 쉽게 알아차릴 수 있었다.
피해를 최소한으로 하며 그를 붙잡으려는 얄팍한 술책이었다.
휙휙-
남궁민이 검을 돌리며 자세를 다잡았다.
“이것도 막아봐라.”
지체 없이 신형을 앞으로 쏟아낸 남궁민.
그 기세에 청괴는 재빨리 양손을 앞으로 내밀었다.
파악! 콰과과과각!
남궁민의 손에서 순식간에 수십 번의 칼질이 쏟아졌다.
실로 번개 같은 속도의 검이었건만, 청괴도 괜히 고수가 아니라는 듯 그 모두를 손으로 막아내었다.
“어린것아. 겨우 이 정도로는 내 몸에 생채기도 못 낸다. 빨리 항복하래도?”
청괴가 윽박지르자, 남궁민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
“우둔하다더니, 정말이군.”
“뭣이라?!”
빠직 빠지직- 꽈릉!
순간 남궁민의 몸 주위에 번개가 피어오르는가 싶더니, 그는 한 줄기 전격이 되어 청괴에게 쏘아졌다.
섬전십삼검뢰 섬전일섬.
남궁민이 가장 애용하는 초식이 펼쳐졌다.
콰앙!
청괴가 가까스로 전격을 막아내었다.
“윽!”
하지만 그것이 끝이 아니었다.
그그그그극!
“어엇?!”
남궁민의 섬전일섬은 부딪히고 그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마치 주체하기 힘든 야생동물을 품에 안은 듯, 남궁민의 푸른 전격이 갑자기 날뛰기 시작해 청괴의 몸을 밀어내기 시작했다.
“이, 이놈이?!”
남궁민이 처음부터 노린 것은 이것이었다.
청수공은 기본적으로 손에 기운을 담아 단단하게 만드는 술책이건만, 청괴는 그 성취를 아득히 넘었다. 그 결과 팔 전체가 거의 무쇠 급의 강도를 가졌다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래서 바로 직전, 남궁민은 일부러 그의 양팔을 향해 난타에 가까울 정도로 마구 검을 날렸다.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이렇게 단단한 것인지를 확인한 것이다.
“으윽, 어린 것이 무슨 힘이!”
확인 결과 남궁민은 청괴를 깨끗하게 베어내기에는 쉽지 않다고 판단했다.
그렇기에 섬전일섬으로 그와 바짝 붙은 다음, 그를 낭떠러지로 밀어내려 한 것이다.
콰악-! 콰악!
어찌나 세게 밀고 있는지, 남궁민의 발이 땅을 밀어낼 때마다 발이 푹푹 땅에 박혔다.
“이 미친 것이!”
속절없이 뒤로 밀리던 청괴가 이대로는 안 되겠다고 생각했는지, 할 수 있는 모든 기운을 끌어모아 남궁민에 대항했다.
쿵! 고오오오오-
힘과 힘, 내공과 내공의 싸움.
완전히 찰싹 달라붙어 서로를 밀어내려 하는 싸움에 주변 공기가 일그러질 듯 기운이 충돌했다.
후아아악!
그 기운을 따라 강풍이 몰아쳐 그들의 머리칼과 옷자락이 너풀거렸다.
스으윽!
그래도 그간 쌓아온 내공의 양에서 밀려서일까? 아주 조금씩, 조금씩 청괴가 남궁민을 밀어내기 시작했고
절벽 끝으로 그를 밀어내려던 남궁민의 계획은 실패로 보였다.
기어이 청괴는 앞으로 한 발자국을 내디디고 말았다.
점점 신형이 앞으로 기울어짐에 따라 청괴의 입가에는 피소가 피어올랐다.
“크하하! 어딜 감히!”
그는 점점 더 큰 내공을 쏟아냈다.
이마와 목줄의 힘줄이 툭툭 불거질 정도로 필사적이었다.
그때였다.
지금까지 온몸에서 푸른 전격의 기운을 흘려대며 청괴를 밀어내려 하던 남궁민이 돌연 땅을 박찼다.
쾅-!
그 반탄력으로 순식간에 남궁민이 뒤로 빠져버린 덕분에, 청괴는 제힘을 이기지 못하고 신형이 앞으로 쏟아지고 말았다.
그 순간 남궁민의 방향이 또 바뀌었다.
이번에는 다시 앞으로.
팟-!
하지만 원래 있던 그 자리로 가는 것은 아니었다.
휘익!
그는 쓰러지는 청괴의 위로 뛰어올랐다.
그 순간 청괴는 땅에 철퍼덕 넘어지고 말았고, 남궁민이 그 위에 올라탄 형세가 되었다.
남궁민은 검을 역수로 고쳐 쥐었다.
“등 뒤를 단련하진 못했겠지.”
푸욱!
내공을 잔뜩 담아 내리찍은 남궁민의 검은 청괴의 등을 파고들었다.
“크아악!”
청괴가 고통에 크게 몸부림친 덕분에 남궁민은 옆으로 튕겨 나가며
남궁민이 검을 꼭 쥐고 있는 덕분에 청괴의 등에서 검이 쑤욱 빠져 나왔다.
“으아아악!”
청괴는 숲이 떠나가라 소리 질렀다.
남궁민은 고통에 몸부림치는 그를 보며 인상을 굳혔다.
‘얕았어.’
분명 검으로 찌르긴 했으나, 즉사를 시킬 정도의 치명상을 주지는 못했다.
어깨 힘줄을 끊어 놓았으니 팔을 쓰기는 어려울 정도인 것은 확실한데, 저 정도의 고수라면 한쪽 팔만으로도 능히 무공을 펼칠 수 있다.
‘득보단 실이 많군.’
이제 청괴는 이전처럼 남궁민을 보며 방심하지 않을 터였다.
동네 개한테도 물리면 경계를 할 지인데, 검에 찔렸다면 더 말할 것도 없으니.
청괴는 오른팔을 기괴하게 움직여 왼쪽 어깨 뒤쪽까지 손을 뻗어 혈 자리를 눌러 지혈하고는 남궁민을 노려보았다.
“살려서 데려갈 생각으로 손속을 봐주고 있었거늘, 이젠 정말 죽여야겠구나!”
화아악!!
청괴의 몸 주변에서 엄청난 기운이 폭사했다.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사람이라고 해도 믿을 정도의 기운이었다.
“청수마공의 진수를 보여주마.”
우웅-
청괴의 손이 일렁이는가 싶더니, 푸른 물감에 손을 넣었다 뺀 듯 푸른 기운이 넘실거리기 시작했다.
비록 내색하지 않으려 했건만, 남궁민의 눈에 놀람이 깃들었다.
‘수강(手罡)?’
비록 오른손 한 손만으로 펼치고는 있지만, 지금 청괴의 손에 흐르는 것은 수강이 분명했다.
남궁민은 저토록 진하고 선명한 강기는 본 적이 없었다.
‘설마, 말로만 듣던 조화경(造化境)의 경지란 말인가?’
조화경.
줄여서 화경이라고도 하며 전설 속에서나 들었던 경지다.
강기를 자유자재로 다루며 초절정 고수를 넘어선 경지라는 그 경지.
“죽어라!”
청괴는 땅을 접어 순식간에 남궁민에게 뛰어왔다.
그런데 남궁민은 그 와중에도 미동도 없이 생각에만 잠긴 모습이었다.
‘정말로 화경이라면, 저자가 할아버지보다 강하다는 것인가…? 훗, 그럴 리가.’
강기에 눈이 팔렸던 남궁민은 순간 할아버지를 생각해내자 갑자기 마음이 평온해졌다.
청홍쌍괴.
과거에 악명을 떨쳤던 마두들이기도 하고, 엄청난 무공 수준이라는 것도 안다.
조금 전 청괴와는 직접 손속을 나누어 봤기에, 저자가 얼마나 강한 무인인지도 알고 있다.
하지만 할아버지가. 검존이 가진 그 무게감과 존재감에는 결코 미치지 못한다.
콰앙!!
생각이 거기까지 도달한 남궁민은 검을 휘둘러 청괴의 손을 맞받아쳤다.
내공을 가득 실어낸 검으로 청괴의 손을 막아내는데 성공한 것이다.
사아아-
남궁민의 검에는 푸른 검사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언제 이 경지에 올랐는지, 그는 검사를 자유자재로 피울 수 있었다.
‘그래. 이건 진짜 강기가 아니었어.’
남궁민의 눈빛에 확신이 깃들었다.
만약 청괴의 손에 흐르는 수강이 진짜 강기였다면 남궁민이 그것을 제대로 쳐냈을 리 없다.
‘애송이 주제에 검사를 쓴다고?’
이번엔 청괴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보통 놈이 아니라는 것은 이미 알고 있었지만, 이 정도일 것이라고는 생각지도 못한 것이다.
하지만 그에 놀라고 있을 수만은 없다.
저것은 단지 남궁민이 죽어야 할 이유 하나가 더 생긴 것일 뿐이었다.
그는 이를 악물고 남궁민에게 재차 달려들었다.
파앗! 퍼버벅!
한 개뿐인 손이건만, 그의 손은 쉴 새 없이 남궁민을 찔러 들어갔다.
남궁민을 노린 손이 허공을 때리는가 싶으면 어느새 그의 머리를 향해 찔러 오고, 그 머리를 피하면 어깨를 짚어오는 절묘한 수공이었다.
후욱! 훅훅훅!
범인의 눈에는 보이지도 않을 정도로 빠르게 움직이는 청괴의 손도 손이지만, 그를 모두 피해내는 남궁민의 신법도 신묘했다.
하지만 청괴가 깨닫지 못 한 한가지.
내내 피하기만 하는 것 같던 남궁민의 몸이 점점 그에게 다가가고 있다는 것을.
처음에는 팔을 쭉 뻗어야 닿을까 말까 하던 그의 손이 이제는 팔꿈치를 접어 공격해가고 있다는 사실을.
핏!
청괴가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느꼈을 때는 역설적으로 그의 손이 남궁민의 얼굴에 스쳐 혈선을 만들어냈을 때였다.
공격 일변도였던 그가 남궁민의 얼굴에 손이 닿을 수 있었던 것은 공격이 효과적으로 먹혀서가 아니었다.
남궁민이 어느새 서로의 숨결이 느껴질 정도로 바짝 붙어섰기 때문이다.
“미, 미친놈!”
남궁민의 집중력이 극에 달한 순간, 그는 이 와중에 또다시 웃고 있다.
이토록 목숨이 경각에 달려본 적이 또 있던가!
정말 생사를 넘나드는 결전에서 남궁민은 즐거움을 느끼고 있었다.
쒜에엑!
그 웃는 얼굴에 순간 한눈을 팔아버린 청괴는 남궁민의 팔이 번개처럼 휘둘리고 있음을 알지 못했다.
푸우욱!
청괴가 다시 정신을 차렸을 때는 이미 남궁민의 검이 배에 박혔을 때였다.
“크윽!”
후웅!
벼락을 맞은 듯한 고통 속에 청괴는 끝까지 손을 휘둘렀건만, 남궁민은 청괴의 복부에 꽂혀있는 검을 두고 그대로 뒤로 신형을 날려 그 손을 피해버렸다.
끝까지 무섭도록 치밀한 싸움이었다.
“쿨럭!”
청괴는 남궁민의 검을 부여잡고 그대로 옆으로 쓰러졌다.
검을 뽑지도 않았건만, 얼마나 예리한 보검인지 피가 울컥울컥 쏟아졌다.
“애송…. 이가…….”
뒤로 빠졌던 남궁민은 청괴의 말은 듣지도 않고 그대로 다시 앞으로 달려가 그의 머리를 발로 차버렸다.
빠악!
내공을 가득 실은 그의 다리는 쇠몽둥이와도 같았다.
복무에 검까지 찔린 청괴로서는 그 다리를 버텨낼 재간이 없었다.
“끄으…….”
그는 잠시 몸을 부르르 떨다가 그대로 축 늘어지고 말았다.
“헉, 헉…….”
남궁민은 계속해서 그를 경계하다 그가 절명했음을 확인하고는 큰 숨을 몰아쉬며 아직도 배에 꽂혀있는 검을 회수했다.
검에 묻은 피를 청괴의 옷에 대충 닦아낸 그는 전력을 다했었는지 아직도 거칠게 숨을 쉬며 말했다.
“먼저…. 후, 끝내긴 했는데…. 하아……..”
청괴를 죽였음에도 그의 표정을 좋지 못했다.
절벽 가까운 곳에서 느껴져 오는 인기척 때문이었다.
“청괴에에에-!!”
청괴의 죽음을 직감적으로 눈치챘는지, 바로 그 절벽 밑에서 처절한 외침이 들려왔다.
홍괴의 목소리가 분명했다.
“제기랄.”
좀처럼 상스러운 소리를 입에 담지 않는 남궁민이 거칠게 입을 열었다.
홍괴가 청괴만큼 강하다면 지금 상태로는 결코 이길 수 없다.
그리고 만약 유지혁까지 가세한다면…….
‘필패야.’
남궁민은 냉정하게 상황을 판단했다.
지금부터 바로 뛰어서 도망친다고 해도 내력을 모두 소모한 지금 곧 붙잡힐 것이 뻔했다.
척-척-척-척!
절벽을 기어 올라오는 속도는 점점 더 빨라지고, 점점 더 커지고 있다.
이대로라면 홍괴가 올라오는 것도 얼마 남지 않았을 것이다.
남궁민은 계속 생각했다.
“후…….”
그는 심호흡을 한 번 했다.
그가 내린 방법은 이것 하나밖에 없었으니.
“네 이놈! 거기서 꼼짝 말아라!!”
진노한 홍괴의 목소리가 바로 턱밑에서 들려온다.
‘이 절벽의 밑바닥은 급류야.’
이제 홍괴가 올라오기까지는 정말 얼마 남지 않은 상황.
남궁민은 품 안에서 봉환을 꺼내 바닥에 던졌다.
퍼엉-!
봉환은 커다란 소리를 내며 거대하고 붉은 운무를 피어 올렸다.
그 이름답게 거대한 봉황 한 마리가 하늘로 승천하는 듯한 모습이었다.
그때 홍괴의 머리가 절벽 위로 쑤욱 올라왔다.
“개수작 부릴 생각……?!!”
그는 남궁민을 잡아먹을듯한 눈빛이었는데, 순간 자신이 분노했었다는 것도 잊고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타다다다-
“저, 저놈이 무슨 짓을!”
남궁민은 갑자기 절벽을 향해 냅다 달리기 시작한 것이다.
내공이 부족해 이전처럼 빠른 속도는 아니었어도, 홍괴가 낚아채지 못할 정도의 속도인 것은 분명했다.
“죽으려는 것인가?!”
홍괴가 소리쳤지만, 남궁민은 자포자기한 심정은 아니었다.
그의 눈빛은 단호하게 빛났다.
파앗-!
남궁민은 주저하지 않고, 깎아내릴 듯한 단애에 몸을 던졌다.
남궁세가 천재 외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