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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궁세가 천재 외손자-145화 (145/304)

145화

붙잡은 마교인들이 아무 대답도 하지 않자 남궁기현은 거침없이 그들의 혼혈을 짚었다.

그리고 풀썩 쓰러진 그들을 나름 멀쩡해 보이는 건물로 끌고 들어갔다.

“혹시 아는 자들은 아니지?”

“네. 처음 봅니다.”

“근처에 다른 무인은 더 없나?”

남궁기현 역시 하현의 뛰어남 기감을 알고 있기에 물었고, 하현은 잠시 집중하여 주변을 샅샅이 뒤졌다.

“느껴지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래? 알겠다.”

하현이 집중하는 동안 밖을 살피던 남궁기현이 쓰러진 마교인들에게 다가가며 말을 이었다.

“시간이 없기에 다소 과격한 방법을 쓰게 될 텐데, 나가 있거라.”

“저도…….”

하현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남궁기현이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네 뜻을 물어본 게 아니다.”

“아…….”

“단지 네가 어려서 나가 있으라고 하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우리 정파에게도 이런 면이 있다는 것을 숨길 생각도 없다. 지금처럼 상대를 고문하여 정보를 캐내는 것을 어쩔 수 없이 선택해야 할 때도 있으니까.”

하현은 의문을 품었다.

“그러면 왜 나가 있으라고 하시는 겁니까?”

이번엔 남궁기현이 슬쩍 미소 지었다.

“남궁세가의 정예대원 남궁하현은 이 자리에 있어도 상관이 없지. 하지만 내 조카 하현은 조금 달라. 조카한테 이런 걸 보여주고 싶지 않은 삼촌의 억지라고 생각해주려무나.”

남궁기현이 이렇게 말하는데, 하현도 끝까지 자리에 있겠다고 할 도리가 없다.

아니, 오히려 이렇게 솔직하게 말해주니 하현으로서도 쉽게 납득이 갔다.

“알겠습니다. 그러면 바깥에서 누군가 접근하진 않는지 보고 있겠습니다.”

“그래. 고맙다.”

하현은 남궁기현을 두고 밖으로 나왔다.

어딘가 마음 한켠이 간질간질한 느낌이었다.

휘잉-

하지만 바람이 불어와 이리저리 제멋대로 자란 잡초를 움직이는 소리에 하현은 퍼뜩 주변을 다시 한번 둘러보았다.

하현의 눈에 수많은 사람과 함께 살던 과거의 모습이 겹쳐 보였다.

그때와 겨우 사 년밖에 흐르지 않았건만, 너무나도 많은 것이 바뀌었다.

그는 쓸쓸한 눈으로 조금 더 장원을 둘러보았다.

‘너무나도 많은 것이 변했어.’

하현은 문득 생각했다.

사실 신가장에 오기 전 그렇게 자신했어도, 정말 이곳에 오게 되면 감정을 주체하지 못할까 두려웠다.

허나 다행인지, 불행인지 그는 별 동요가 들지 않았다.

이때까지는 막연하게 생각해왔던 것이, 정말 현실로 다가왔다고 느끼는 정도.

덜그럭-

문득 왼쪽 허리춤에 덜그럭거리는 적룡검의 존재감이 느껴졌다.

그리고 그 순간 이런 생각이 들었다.

‘가장 많이 변한 것은 나구나.’

하현은 적룡검을 내려다보며, 자신은 지금 한 명의 무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문득 언젠가 할아버지가 해준 말이 떠올랐다.

‘현아. 결국, 강호에서 무인으로 살아가려면 누군가의 죽음을 넘어 다음 시간을 살아가야 한단다. 그것이 적이든,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든.’

이 이야기를 들었을 때는 온전히 이해한 것처럼 생각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전혀 이해하고 있지 못했었다.

오히려 지금.

하현은 그 말뜻을 온전히 받아들이고 있었다.

그는 오늘 비로소 신가장의 멸문과 부모님의 죽음을 넘게 되었다고 생각했다.

털썩-

하현이 자리에 앉았다.

장원을 더 둘러보고 싶은 마음이 사라졌다.

실망했다거나, 망연자실한 것은 결코 아니었다.

하현의 눈은 착 가라앉아 있었다.

이제는 과거에 크게 얽매이지 않으리라는 의지가 담긴 눈이었다.

* * *

그러는 사이 남궁민은 절벽 아래 골짜기를 겨우 빠져나왔다.

바닥으로 내려와 보니, 유지혁은 정말 온데간데없었다.

홍괴가 하류로 내려갔으니, 남궁민은 반대인 상류 쪽으로 향했다.

상류로 올라갈수록 수풀이 우거진 덕분에 몸을 숨기며 올라가기에 수월했다.

‘어디로 가야 하지?’

남궁민은 하늘을 올려다보며 생각했다.

이 정도의 시간이 흘렀다면 분명히 이 주변에는 수많은 무인이 있을 것이다.

그 무인이 남궁민을 추적하기 위한 마교의 사람일 수도 있고, 그를 구출 해내기 위한 정파의 무인일 수도 있다.

우우웅-

남궁민이 왼손에 든 청룡검에 슬쩍 기운을 흘려 넣어 보았다.

‘된다.’

소모한 내력은 거의 회복되었다.

문제는 원래 남궁민이 검을 쓰는 손인 오른손을 쓰지 못한다는 것인데, 급한 대로 왼손에 기운을 불어넣으니 못 쓸 정도는 아니었다.

오른손으로 펼치는 것만큼 익숙하지는 않을 것이나, 초식도 충분히 펼칠 수 있으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 정도면 보통 교인들을 상대하는 것은 큰 문제가 아니다.

채앵-!

그때 그의 귓가에 조금 멀리서 병장기 부딪히는 소리가 들렸다.

남궁민은 퍼뜩 고개를 들었다.

병장기가 부딪혔다는 것은 누군가 싸우고 있다는 말이다.

그리고 싸움이 시작되었다는 적이 그곳에 있지만, 아군도 함께 있다는 것.

남궁민이 그 소리의 근원지로 발걸음을 옮겼다.

타다다닷!

그저 걷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이제는 적극적으로 보법을 밟아나갔다.

아군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된 이상 은신은 큰 의미가 없다.

조금이라도 더 빨리 그들과 조우하는 게 더 낫다.

일단은 그가 살아 있다는 것을 알리는 것이 급선무.

카앙!

병기 부딪히는 소리가 점점 가까워진다.

조금 더 속도를 내어 풀숲을 헤쳐나간 순간.

“크억!”

남궁민에 눈에 누군가 검에 맞아 신형이 무너지는 것을 보았다.

재빨리 눈을 굴려 상황을 파악했다.

개방도가 셋. 마교도가 다섯.

조금 전 개방도 하나가 쓰러졌으니, 이제 이대 오의 싸움의 다시 시작되려 하고 있었다.

‘홍괴는 여기에 없군.’

남궁민이 성큼성큼 다가서며 왼손을 뻗었다.

홍괴가 없는 마교도들 따위.

왼손으로도 충분했다.

푸학!

남궁민의 첫수에 가장 가까이 있던 마교도의 가슴이 갈라져 피를 뿜었다.

다른 사람이 볼 때는 완벽에 가까워 보이는 검법이었건만, 남궁민은 스스로 마음에 들지 않았다.

‘너무 깊었어.’

힘 조절에 익숙하지 않아 검이 너무 깊게 들어간 덕에 회수하는 과정이 매끄럽지 않았다.

마교도들의 무공 수준이 떨어져서 망정이지, 만약 그들의 수준이 조금만 더 높았다면 그 찰나의 순간을 놓치지 않았을 것이다.

츠짓-!

회수한 남궁민의 검이 번쩍이듯 움직여 다음 상대에게로 짓쳐들어갔다.

‘좋아. 이것도 된다.’

왼손으로도 섬전십삼검뢰를 펼치는 데 성공한 남궁민은 속으로 안도했다.

숙련도가 낮기는 하지만, 그래도 요령은 같으니 해낸 것이다.

마교도는 남궁민이 검을 막아내지는 못했지만, 크게 소리를 지를 수는 있었다.

“남궁민이다! 크윽!”

그는 유언으로 다른 동료들에게 남궁민의 존재를 알리는 데 성공했다.

순식간에 둘을 처리한 남궁민의 미간이 좁혀졌다.

아직 검을 회수하지 못했는데 양쪽에서 마교도가 검을 찔러왔기 때문이다.

휘릭!

그는 아예 검을 놓아버리고는 뒤로 몸을 한 바퀴 돌았고, 두 자루의 검이 남궁민을 스쳐 갔다.

남궁민은 뒤로 두어 발자국 물러나서는 곧바로 다시 앞으로 뛰쳐나갔다.

‘속전속결. 더 빠르게.’

극성으로 펼쳐진 무한보는 그가 순간이동이라도 한 것처럼 보이는 착각이 일게 했다.

손은 다쳤다 하여도 다리는 정상이다.

그는 그대로 가속도를 이용해 위로 뛰어올라 무릎으로 한 명의 관자놀이를 찍어버리곤 떨어지기도 전에 다리를 휘둘러 다른 하나의 목 뒤를 돌려찼다.

털썩!

전문적으로 각법을 배운 적도 없지만, 기운을 잔뜩 담은 다리는 쇠몽둥이 같은 위력을 냈기에 두 마교인이 버텨낼 재간이 없었다.

곧바로 절명한 것 같지는 않지만, 혼절시키기에는 충분한 위력이었다.

‘남은 건 하나.’

남궁민이 아까 놓아버린 검을 집어 들고 다시 진각을 밟았다.

쿵- 하는 소리와 함께 남궁민이 순식간에 앞으로 돌진했다.

카앙!

그의 검이 처음으로 가로막혔다.

마지막 남은 마교인은 이들 중 가장 강한 자였는지 정확하게 검을 들어 남궁민의 검을 막아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남궁민이 긴장할 정도의 실력자는 아니었다.

검을 맞부딪치는 순간 느껴지는 실력 차에 마교인이 신형을 뒤로 물리려고 할 때, 남궁민이 성치 않은 오른손을 펼쳐 손바닥으로 마교인의 턱을 강타했다.

“크윽!”

“컥!”

손에서 느껴지는 엄청난 고통에 남궁민은 신음을 흘렸고, 그의 손바닥에 뇌가 진탕된 마교인은 그대로 쓰러졌다.

‘앞으로는 왼손으로 검법을 펼치는 것도 수련에 넣어야겠어.’

남궁민은 뻘한 생각을 하며 쓰러진 마교인의 목에 검을 찔러넣어 숨통을 완전히 끊은 후에 자리에서 검을 갈무리했다.

“청룡신검! 살아 있었구려!”

“개방도입니까?”

“용출이라고 불러주십시오.”

슬쩍 허리춤을 내려다보니, 매듭 세 개가 묶여 있다.

이 근처 분타주 급의 개방도인 듯했다.

“으으…….”

처음 남궁민이 나타났을 때 공격을 받은 개방도가 신음을 흘렸다.

아직 젊은 거지로 보였는데, 치명상은 아니어도 상처가 꽤 깊어 보였다.

용출은 그 개방도를 응급처치하며 물었다.

“무슨 일인지 아직 우리도 정확하게 파악하지 못했소. 이자들은 마교도 들이오?”

“네. 청홍쌍괴가 나타났습니다. 신가장에서 마주쳐 도망쳐오다가 이곳 근처에서 몸을 피하고 있었습니다.”

“청홍쌍괴 말입니까?!”

그는 부하를 처치하던 것도 잊고 깜짝 놀라 소리쳤다.

청홍쌍괴는 전대의 고수기는 하지만, 이미 절대 고수 반열에 충분히 오른 자들이었다.

둘이 합격술을 펼치면 구파의 장문인도 상대할 수 있다는 소문이 있을 정도였다.

“네. 그중에 청괴는 죽었습니다. 그래서 홍괴가 눈에 불을 켜고 저를 찾고 있습니다.”

“청괴가 죽다니요. 그러면 설마……?”

남궁민이 고개를 끄덕였다.

“제가 죽였습니다.”

“맙소사……!”

용출은 또 한번 놀라고 말았다.

청룡신검이 후기지수 중에서는 제일이라는 말을 제법 듣기는 했지만, 청홍쌍괴를 상대할 수 있으리라고는 생각지 못했기 때문이다.

“다행히 둘이 따로 있을 때 싸웠습니다. 아마 둘이 합격을 펼쳤다면 저도 살아 있을 수 없었겠죠.”

남궁민이 이렇게 말했지만, 그래도 청괴를 이겼다는 것부터도 엄청난 것이었다.

용출은 문득 옷을 찢어 붕대처럼 칭칭 감아놓은 손에 눈길이 갔다.

“그 손, 다치신 거요?”

“그렇습니다.”

“좀 보여주시오.”

용출은 부하의 응급처치를 마치고서는 남궁민의 손을 펼치자 눈살을 찌푸렸다.

“이런, 심하군.”

남궁민의 손은 말 그대로 엉망진창이었다.

지금으로서도 고통이 엄청날 터인데, 내색도 하지 않는 것이 대단하게 보일 정도였다.

“좀 아플 건데, 참으시오.”

용출은 말을 마치자마자 남궁민의 오른손을 이리저리 잡아당겼다.

“크윽!”

남궁민 스스로 뼈를 맞추기는 하였지만, 제대로 된 의학 지식이 없는 상태에서 한 것이기에 조금은 조악했다.

하지만 용출은 능숙했다.

개방도들은 말 그대로 거지들이기에 먹을 것도 자신이 구해야 하고, 아프거나 다쳐도 스스로 처치해야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렇기에 먹어도 되는 음식을 고르는 법, 간단한 의학지식은 모든 방도가 다 고루고루 알고 있는 편이었기 때문이다.

“자. 이제 됐소. 이대로 오른손을 움직이면 안 되지만…. 지금 상황에서는 말도 안 되는 소리지.”

마지막으로 용출이 품에서 꺼낸 누런 붕대를 감는 것으로 처리를 끝냈다.

남궁민은 조금 전보다 훨씬 불편함이 덜하다고 느끼며 고개를 숙여 인사했다.

“감사합니다.”

“뭘. 이런 걸 가지고. 이제는 슬슬 빠져나갈 방법부터 생각해보는 게 좋을 것 같소.”

그가 주변을 이리저리 둘러보다가 말을 이었다.

“일단은 이 친구를 어디로 옮겼으면 좋겠는데…. 홍괴와 마교도들이 여기 어디 있을지도 모르는 상황에 부상자를 여기에 그대로 둘 수는 없으니 말이오.”

“좋은 생각입니다. 신가장에는 아직 벽과 지붕이 있는 건물이 남아 있습니다. 그곳에 모셔두는 것으로 하시면 어떻겠습니까?”

“아, 그래. 신가장이 있었지?”

그는 다친 수하를 들쳐메었다.

“빨리 이동하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일단은 그곳에 가서 이곳을 어떻게 빠져나가야 할지 고민해 봐야겠어요. 아, 그리고 혹시 남궁세가에서 온 무인들은 못 보셨습니까?”

“봤소. 그들은 지금 절벽에서 시작하여 계곡으로 내려가고 있을 것이오.”

“감사합니다.”

남궁민은 살짝 입술을 물었다.

남궁세가의 무사들이 계곡을 따라 내려가고 있다면 그들끼리만 홍괴를 만나게 될 수도 있어 걱정되었기 때문이다.

‘그들을 못 믿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자신 때문에 이렇게 되었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는 그였다.

그런데 그때 갑자기 어디 서부턴가 지축이 울리는 듯한 소리가 들려왔다.

쿵, 쿵, 쿵-, 쿵-

그 소리는 점점 가까워져 왔다.

남궁민은 직감적으로 조금 전 남궁세가의 무인들에게 했던 걱정을 거두어도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쿵! 쿵!!

발소리가 지척에 다다르고, 결국 그 발소리의 주인이 풀을 뚫고 나타났다.

“남궁민!!”

역시 예상한 대로 그는 홍괴였다.

그는 잔뜩 흥분한듯한 모습이었다.

남궁민은 무의식적으로 조금 전 쓰러진 마교도인을 눈동자만 돌려 바라보았다.

자신의 이름을 필사적으로 부른 것이 홍괴를 부르기 위함이었나보다고 생각했다.

“쥐새끼 같은 것! 살아 있었구나. 내가 산채로 씹어먹어주마!”

홍괴의 주변에 강맹한 기파가 몰아쳤다.

그의 손에서도 붉은 강기가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청괴는 푸른 강기. 홍괴는 붉은 강기.

청홍쌍괴가 배운 무공에 무언가 특이점이 있는 것으로 보였다.

남궁민은 용출에게 슬쩍 말했다.

“부상자를 데리고 먼저 가세요.”

“뭐라 하였소?!”

“홍괴가 제 이름을 듣고 흥분해서 혼자 왔는지, 아직 주변에 수하들은 보이지 않습니다. 그들마저 온다면 몸을 빼내는 것은 불가능해요.”

“그럼 청룡신검 당신은?!”

남궁민이 왼손으로 검을 바짝 들며 말했다.

“이길 생각을 하지 않고, 최대한 버티고 있겠습니다. 신가장에 들르시고 나서 우리 세가 무인들을 찾아 이쪽으로 보내주세요.”

“알, 알겠소! 내 최대한 빠르게 갔다 와보리다.”

용출은 부상자를 지고 그대로 내달려 숲속으로 사라졌다.

홍괴는 그에게는 흥미도 없다는 듯 남궁민을 이글거리는 눈으로 바라보았다.

“네놈은 곱게 죽이지 않을 것이다.”

“나와는 생각이 다르군. 나는 기회가 오면 가장 빠르게 죽여주려 했는데.”

“입만 살아서는!”

콰과과과-!

홍괴가 남궁민에게 양손을 앞으로 내지르며 쇄도했다.

남궁세가 천재 외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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